![[방탄소년단/전정국] 우리 옆집엔 고딩이 산다 06(부제: 스치면 인연, 스며들면 사랑) | 인스티즈](http://file2.instiz.net/data/cached_img/upload/2015080116/012b8b2633ca768268b083b53d68db15.jpg)
우리 옆집엔 고딩이 산다 06
(부제: 스치면 인연, 스며들면 사랑)
전정국 번외
w. 애기무당
1.
늘 집에서 비교 당했었던 나다. 보통 늦둥이로 태어난 애들은 집에서 오냐 오냐, 온실 속 화초 취급을 받으면서 세상 물정 모르고 철없게 크곤 한다. 그러나 나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나보다 10살 많은 형은 학교 상이면 상, 전국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면 그건 그 거 대로 다 쓸어오는 그런 사람이었다. 모든 대학에서 내로라하는 인재 중의 인재였다. 그에 걸맞게 형은 우리나라 최상위권 대학의 경영대에 붙어 바로 아버지 사업을 도왔다. 아버지의 사업의 규모가 중소 규모에서 대형으로 커지고 안정적이게 된 데에는 형의 공로가 컸고, 그만큼 형의 그림자는 내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다.
머리가 나쁜 편은 전혀 아니었지만 잠이 많은 탓에 수업을 그렇게 잘 듣는 것도 아니었고, 무엇보다 흥미가 전혀 없었기 때문에 열심히 공부한 적이 손가락에 꼽힐 정도였다. 그러다 보니 성적은 바닥을 기었고, 형한테선 한번도 나오지 않았던 말도 안되는 등급이 내 성적표에는 깔끔하게 찍혀 있었다. 부모님은 고사하고 친척들이 오히려 나서서 나를 꼴통 취급했다. 너네 형은 수잰데 너는 왜 그러니. 커서 뭐 되게? 명절은 나에게 있어서 정말 지옥같은 날들의 연속이었다. 워낙에 학자 집안이었던지라 모였다 하면 성적 얘기들을 하곤 했고, 난 한없이 작아졌다. 형은 나에게 늘 잘해줬지만 나이가 들수록 난 형이 너무나도 미워졌다. 열등감은 생각보다 무서운 감정이었다.
그리고 그 열등감과 막막함은 나의 탈선으로 이어졌다. 노는 애들하고 무리 지어서 다닌 건 맞았지만 학생들을 상대로 돈을 뺏는다던가 옷을 뺏는다던가, 뭐 그런 일들은 한 건 아니었다. 그냥 조용히 삐뚤어져 학교를 다녔다. 아버지가 피는 것도 마음에 안 들어서 어렸을 땐 뜯어 말렸던 담배를 접하게 된 것도 그 때문이었다. 중학교 2학년. 그 때부터 나는 조금씩 변해가기 시작했었다.
"야, 정국아. 형 담배 다 떨어졌는데."
"저도 지금 없는데요."
"그럼 가서 두 갑만 사 와라. 내가 돈이 없어서."
"예."
입학했을 때 왜 저렇게 사나 싶었던 형들이랑 지금 같이 모여서 담배나 피고 있는 내 모습이 어느 순간부터 한심하게 느껴졌지만, 그렇다고 해서 한번 접한 담배를 끊는 건 어려웠다. 이미 교복에 잔뜩 베인 담배 냄새 때문에 부모님은 내가 이렇게 된 걸 다 눈치 채셨겠지만 그때는 내 반항심이 더 컸다. 꼴통이라며. 그럼 꼴통처럼 살지 뭐. 16살에 내가 내린 결론이었다. 제일 무서운 형이 담배를 사오라고 하는 바람에 뒷골목에서 나와 편의점 쪽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나 돈도 별로 없는데. 그리고 저 새끼는 갚을 인물도 아니고. 나 혼자 사복 입은 게 죄지. 담배 피는 애들이라면 무조건 향하는 그 편의점. 신분증 검사도 안 하고 아무한테나 담배를 막 파는 걸로 유명한 그 편의점에는 늘 나 같은 애들이 드글거렸었다. 오늘도 어김없이 그 곳으로 향했다. 유리문을 열고 조용히 편의점 안으로 들어갔다.
무리지어 담배를 필 때는 내가 뭐라도 된 양 느껴져 고개를 빳빳히 쳐 들고 다녔는데, 막상 담배를 사러 들어갈 때에는 나도 모르게 양심에 찔려서 고개를 푹 숙이고 있게 되었다. 오늘도 어김없이 계산대 앞에 서서 주머니를 뒤적거리며 말보루 두 갑 달라고 나직하게 말했다. 그냥 주겠지, 오늘도. 오천원을 손에 쥐며 내려고 할 때, 난 오늘이 평소와는 다르다는 점을 느꼈다. 평소 같았으면 얼마입니다, 하고 그냥 줬을텐데, 오늘 돌아오는 건 피식 웃는 소리였다.
"담배를 줘? 속일 걸 속여라. 아주 변성기도 안 지난게 내가 그것도 모를까봐?"
"......."
"너 중학생이지? 아니 고등학생인가?"
"......아닌."
".......너 고개 들어 봐."
아, 씨발. 망했다. 뒷머리를 긁적였다. 오늘부터 알바 바뀌었나? 평소엔 그냥 줬는데? 그럼 난 이제 담배 못 사나? 온갖 생각들이 머릿속을 돌아다녔다. 감정을 잘 얼굴에 드러내지 않는 성격인데, 그 순간만큼은 너무 짜증이 나서 미간을 좁히고 고개를 들었다. 고개를 든 순간, 나는 망치로 머리를 한 대 맞은듯한 느낌이 들었다.
"너 같은 스무 살이 어디 있어?"
"......."
"너 보니까 한 두번 이런 게 아닌 것 같은데."
"......."
"삶이 힘들다고 그렇게 담배 뻑뻑 피면 폐 썩어. 그냥 눈감아줄테니까 가."
그 누나한테 등을 떠밀려가며 나온 편의점에선 내가 그렇게 못 피면 죽을 것 같던 담배 한 개피도 건지지 못했지만, 내가 든 생각은 딱 하나였다.
예쁘다.
2.
형한테 전화 오는 걸 다 씹고 그냥 편의점 앞에 대놓고 서 있기에는 뭐해서 편의점 주변에서 계속 서성였다. 집에 늦게 들어가는 게 일상이었기 때문에 해가 기울고 가로등이 켜지고 달이 떴지만 나는 굴하지 않았다. 뭐 때문에 내가 이렇게 계속 기다리는진 모르겠지만 그냥 서 있었다. 그러다 한 형이 편의점 안으로 들어갔고, 그 누나는 그 형한테 뭐라뭐라 말을 하더니 편의점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주변에 숨어 있던 나랑 마주치고 말았다.
"너 왜 거기 있어?"
"......."
"나 해코지 하려고?"
"......내가 뭐하러."
"너 지금이 몇 신데 막 돌아다녀? 열 두시거든?"
"저랑 얘...기 잠깐만 해 주시면 안 돼요?"
내가 말 해놓고도 후회했다. 아, 씨. 내가 저 누나였으면 그냥 무시하고 가고도 남았을 것 같았다. 여자애들한테 한 번도 말을 걸어본 적이 없어서 더 어려웠는지도 모른다. 낯을 많이 가리는 성격이라 일면식도 없던 사람이랑 바로 얘기하는 일이 참 드문데, 나는 저 이름 모를 누나랑 그냥 얘기를 하고 싶었다. 왜 그랬는지는 이해도 안 되고 알 수도 없었지만.... 그냥. 거절 당할까 봐 노심초사하며 침만 꿀꺽 삼키고 있었을 때, 그 누나가 씩 웃으며 알겠어, 하고 대답했다. 아, 웃는 건 더 예뻐. 나 미쳤나?
"일단 나부터 묻자. 너 담배 왜 피니?"
놀이터 옆 벤치에 앉자마자 누나가 기다렸단 듯, 나한테 물었다. 아무한테도 하지 않았던 얘기였지만 왠지 누나한테는 말해도 될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어쩌면 다시는 안 볼 사이일지도 모르잖아. 그리고 내가 누군지도 모르고.... 잠시 머뭇거리다가 이것저것 얘기를 늘어놓았다. 말하다가 울컥했지만 명색이 남잔데, 그리고 저 누나 앞에서 울기는 싫어서 입술 꾹 깨물고 말했다.
"......그랬구나."
"......."
"나도 그랬어. 근데 난 너처럼 담배는 안 폈다."
"......."
"우리 오빠 얼마나 공부를 잘 했는데. 얼굴도 엄청 잘생기고, 키도 크고, 대학 가서도 장학이야. 징그러운 놈."
"......."
"비교 엄청 당했어. 원래 부모님들 그러시잖아. 근데 그건 그냥 나 신경쓰기 나름이더라."
"......"
"나는 나대로 잘하면 되는 거고. 그리고 재수없는 현실이지만 비교 당하는게 싫으면 비교하는 사람한테 뭐라하기 전에 내가 잘나지는 편이 빨라. 나도 오빠한테 비교당하는 게 싫어서 더 미친듯이 공부해서 올해 대학 갔다? 근데 뭐 공부도 재능이래. 그 재능 하나 없어도 돼. 너가 잘하는 게 한 두가지겠냐."
"......."
"담배는 피지 마, 진짜 몸에 안 좋아. 그리고 너무 스스로를 깎아내리지 마. 너가 얼마나 소중한 존잰데."
부모님한테도 듣지 못했던 말들을 누나에게 들었다. 순간 정말 망치로 머리를 얻어 맞은 것 같았다. 멍해졌다. 감동받은 거라면 감동받은 게 맞다. 좋은 말에 감동할 줄 아는 전정국이니까. 근데 지금은 뭔가 느낌이 달랐다. 평소에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이상한 느낌이 온 몸에 흘렀다. 지금 머리속에 드는 생각은 딱 두 가지. 담배 끊어야겠다. 예쁘다.
3.
"야, 전정국. 너 요새 금연한다며?"
"씨발, 쪽팔리니까 좀 조용히 해라. 담배 피는 게 더 비정상이지...."
"너가 그런 말 하니까 존나 소름돋는 거 알지? 왜 금연이야, 갑자기."
유일하게 담배를 안 피던 박지민이 어디서 뭘 듣고 왔는지 복도에서부터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너 금연한다며? 라고 소리를 질렀다. 덕분에 지나가는 선생님들도 다 들으셨다. 다행히 나를 다시 봤다는 표정으로 보긴 했지만. 그 누나한테 그 말을 들은 다음부터 나는 담배를 안 피기로 결심했다. 약국 가서 금연 패치를 사는데 내가 얼마나 한심한 앤지 새삼 느끼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왜냐면 약사 아저씨가 병신 보듯 나를 봐서. 그 누나가 정말 보고 싶어서 죽을 것 같았지만 내 얘기를 털어놓은 게 민망해서 편의점에 안 간지 1달이 넘었었고, 그동안 내가 염두에도 두지 않고 있었던 시험 기간이 왔다. 1년동안 빤빤히 논 바람에 아무것도 기억이 안 났지만 그 무리에서 나오고 오랜만에 펜을 잡았다. 물론 형들한테 매우 맞았지만 후회하지는 않았다.
"와, 이 새끼 봐라. 너 징그럽게 왜 쉬는시간에 앉아서 책 피고 있어?"
"...시험 기간이잖아."
"야, 들었냐? 전정국이 시험기간이래."
박지민 저 새끼는 왜 갑자기 유난을 떨어. 사람이 그럴 수도 있는 거지. 너네들도 그렇게 생각하지? 교실에 있는 애들을 둘러보았더니 박지민의 말을 듣고 다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것도 엄청 놀란 표정으로. 내가 그렇...게 꼴통이었구나. 내가.
"너 왜 갑자기 변했냐."
"...나 할 말 있어."
"뭔데, 그게."
"너 막.... 그 뭐야. 막 사람이 갑자기 예뻐 보이고."
"......어."
"막 안 보면 좀 힘들고.... 꿈...에 나오고. 밥 먹다가 생각나고. 졸다가 생각나고...."
"......어."
"그런 걸 뭐라 하냐...."
점심 시간에 식당에 내려가서 밥을 먹는 내내 나한테 왜 변한 거냐고 묻는 박지민의 말을 싹둑 자른 다음에 할 말 있다고 비장하게 말했다. 엄청 힘들게 말을 이어가는데 나를 보는 박지민의 표정은 한심한 사람 보는 듯한 것에 지나지 않아서 기분이 별로 좋지는 않았지만 아무튼 할 말을 다 끝냈다. 그걸 뭐라고 하면 되냐. 말을 끝내자마자 박지민이 헛웃음을 짓더니 수저까지 내려놓고 한숨을 쉬었다.
"아무리 너가 그 면상에 여자친구를 한 번도 안 사귀어 봤다지만."
'"......."
"너가 이 정도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는데. 넌 정말 병신이었어."
"......아니, 왜."
"그 사람 누구냐? 무슨 전지현 뺨치는 사람인가 보지?"
'"......."
"니는 지금 그 분을 좋아하고 계세요."
"......켁."
텔레비전에 아무리 예쁜 연예인인 나와도 관심 하나 없었던 나다. 그냥 그렇구나. 옷을 참 야하게 차려 입는구나. 나에게 여자란 단지 나와는 성별이 다른 생명체일 뿐이었고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남자애들이 쟤랑 사귀느니 뭐니, 이별의 한에 눈물을 찔끔 흘리는 걸 보고 한심하다고 생각했었던 나였다. 근데 내가 누구를 좋아한다고? 좋아한...다고. 전정국, 넌 미쳤어. 학교가 끝나고 집에 돌아가는 길 내내 생각했다. 내가 그럴 리가 없어. 그럴 리가....
"너 집 존나 빨리 들어가야 된다고 그러지 않았냐?"
"...어? 어."
"근데 여기 반대 방향이잖아."
"......와."
"내 말 왜...."
"존나 예쁘다.... 진짜."
집으로 빨리 돌아가야 했다. 학원 가야 돼서. 그런데 내 발걸음은 그냥 자동으로 편의점 쪽을 향하여 가고 있었다. 박지민이 왜 거기로 가냐고 물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편의점 앞까지 도착했고, 열심히 눈을 굴려 가며 유리문으로 계산대 쪽을 봤을 땐 그 누나가 책상에 턱을 괴고선 졸고 있었다. 존나 예쁘다. 여과 없이 나온 말에 박지민의 시선도 자동으로 그 곳으로 향했다.
"저 누나 때문에 담배도 끊고 공부도 다시 하시고."
"......."
"아, 근데 안 보여. 생긴 거."
"보지 마. 쳐다보기만 해. 죽여버릴 거야."
"미친놈...."
그냥 박지민이 저 누나 보면 쟤도 반할 까봐 보여주기가 싫었다. 쟤가 집에 가든 말든 나는 그냥 내 갈 길을 가겠다. 내 마음의 고향은 여기야. 벌컥 편의점 문을 열고 들어서자, 종소리에 놀랐는지 눈을 토끼같이 뜨며 어서 오세요, 하고 느릿하게 말하는 누나가 보였다. 그냥 여기서 살까? 자다 일어난 것도 예쁘다. 잠시간을 그렇게 그 자리에서 벙 쪄 있었다. 학교를 다니면서 애들이 예쁘다고 찬양하는 수 없는 여자애들을 오가면서 봤었지만 저렇게 예쁜 사람은 태어나서 본 적도 없는 것 같았다. 사람인 건 맞는 걸까. 나를 아직 보진 못한 건지 아니면 기억을 못 하는 건지, 누나가 흐트러진 머리를 귀 뒤로 쓸어 넘겼다. 그리고 나는 코피가 날 뻔 했다.
"어, 너. 그 때 걔지!"
"......맞는데요."
코피가 정말 나면 어떡하지. 안 그래도 심장이 떨어질 것 같은데 누나가 나를 보고 인사하면서 웃기까지 하니까 더 죽을 것 같았다. 나 이제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것 같다. 주책도 이런 주책이 없는데, 그냥 동문서답으로 누나 왜 그렇게 예뻐요? 라고 대답할 뻔 했다. 그리고 내 입에서 나온 건 딱딱한 말투였다. 전정국 병신. 왜 말을 그 따위로 하냐. 넌 먹는 용도 외에는 입을 제대로 쓸 줄을 모르는 게 틀림없어. 아, 진짜 존나 예뻐.
"오랜만이다? 이젠 담배 막 사도 되는 데 찾았나봐?"
"...저 이제 담배 안 펴요."
"야.... 진짜? 짱이다. 기특해 죽겠어, 아주."
"......."
"이거 그냥 내가 계산할 테니까 너 가서 먹어. 앞으로도 피면 안 돼!"
당당하게 담배 안 핀다고 말하자 누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남의 일에 저렇게 좋아하는 사람은 또 처음 보네. 기특해 죽겠다느니 뭐니 방실방실 웃는 누나의 모습에 뼈가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웃지 마. 제발. 진짜 웃지 마라. 나 죽을 것 같으니까.... 자리에서 일어나 초콜릿을 하나 꺼내 내 손에 쥐어주더니 가서 먹으라고 하는 누나였다. 왜 시선이 그 쪽으로 갔는지는 나도 모르지만 편의점 직원들이 늘 달고 있는 가슴께의 명찰이 눈에 들어왔다. 김탄소? 와, 이름도 예뻐. 그리고 심지어 골라준 초콜릿도 내가 제일 좋아하는 거였다. 우리는 운명인가봐요. 입에도 내놓지 못할 생각들을 하며 애써 올라가는 입꼬리를 억누르고 있었다. 아마 누나가 보면 안면에 경련 온 줄 알았을 거다. 내가 앞으로 담배 피나 봐라. 누가 담배 안 피면 죽는다고 해도 죽을게요. 진짜.
그 뒤에는 여름방학을 해서 몇 번을 더 편의점에 왔다 갔었다. 사실 몇 번이 아니고 들어간 건 15번이었지만 주변에 서성거리는 건 하루에 3번씩은 더 했다. 박지민도 이제는 중증이라고, 너가 누군지는 아냐고 한심하게 봤지만 그래도 나는 굴하지 않았다. 내가 여자인 사람을 이렇게 좋아할 줄을 누가 알았겠어. 최근엔 심지어 꿈에도 나왔다(꿈 내용은 박지민한테도 말할 수 없는 수위였다). 그래서 하루 종일 꿈 생각만 하다가 하루를 망치기도 했었다.
[내 친구도 그 누나 알더라]
[존나 예쁘다고 그랬음]
-좆까라그래
박지민이 보낸 문자에 피가 끓는 것 같았다. 나만 볼 거야, 미친놈들. 누나는 내 눈에만 예쁜 거였으면 좋겠는데 왜 자꾸 니네들이 난리야. 화가 난다, 화가 나! 핸드폰을 부술 듯이 세게 잡으면서 겨우겨우 답장을 했다. 더 이상 그런 얘기는 하지 마라. 진짜 걔 찾아가서 어떻게 해 버릴 지도 몰라. 그렇지만 박지민은 굴하지 않고 계속 문자를 보냈다.
[아 근데 이거 너가 들으면]
[너 우울증 오고 다시 담배필거같아]
-뭔데
[그 누나 어제가 알바 막날이었음.....]
[울지마....ㅜ]
-씨발
그 날은 하루종일 기분이 좆같았다. 사실 하루 종일이 아니고 한 3달 정도 기분이 안 좋았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날에 처음엔 안 믿었었는데 사실이라는 걸 안 뒤에 몰래 자기 전에 울었다. 번호라도 물어볼 걸. 건방져 보여도 번호라던가.... 번호라던가. 전화번호라던가. 폰넘버라던가. 물어볼걸. 호구새끼.... 전정국 병신.
4.
다행히 이름을 알아서 페이스북 계정을 찾을 수 있었다. 인정한다. 엄청난 스토커...같지만 나는 다른 남자애들처럼 저돌적인 편도 아니었고 거기다가 나를 그냥 애로 볼 것 같은 누나한테 연락할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매일같이 페이스북에 검색해서 찾아보기만 했다. 가끔 누나가 프로필 사진을 바꾸면 그거 보고 밤새 잠 못 이루기도 하고, 그냥 나는 그런대로 그렇게 지냈다. 고등학생이 됐을 때는 정신이 하나도 없었고 뼈를 깎는 고통으로 공부해야 했지만 나는 이 생각 하나로 악으로 버텼다.
"너 여자애들한테 까인대. 너 3년 동안 거의 열 명 넘게 애들 찬 거 알지."
"까라 그래. 안 좋아하는데 왜 받아줘."
"그 누나가 너 기억이라도 해 준대?"
"인연이면 반드시 만난대."
"...미친 새끼."
수능날까지 난 그 생각을 했다. 언젠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가지고 계속 살았다. 정말 고맙다고 말하고 싶어서. 일단 제일 큰 이유는 보고 싶어서. 3년동안 남녀 분반이었던지라 남자애들하고만 지냈었는데, 남자애들한테 온갖 욕이란 욕은 다 먹었었던 것 같다. 꿈 깨라고. 절대 다시 볼 일 없다고. 집에서 대학이 그렇게 가까운 편은 아니었던 터라, 부모님께서 집을 구해주셔서 이사갈 집을 한번 봤을 때에도 나는 우리 아파트에 살지는 않을까, 하는 말도 안 되는 기대를 했다.
용돈 벌이는 스무 살이 되면 내가 스스로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카페에서 알바를 하기로 결정했고 그런 대로 알바를 하고 있었다. 누나가 여기 왔으면 진짜 좋겠다. 그 날이 내 알바 첫 날이었다. 문에 달린 종이 울릴 때마다 무의식적으로 문 쪽을 쳐다봤는데, 그날따라 왜 그렇게 신경이 쓰였는지 모르겠다. 어김없이 고개를 들었을 땐 그냥 평범한 남녀의 뒤태가 보였다. 어딘가 모르게 익숙한 느낌에 혹시나 싶어 흡연실 쪽에 알짱거렸더니, 남자가 담배를 뻑뻑 피고 있었다. 딱 봐도 심상치 않아 보이는 표정의 둘. 그러다 여자가 그 남자 얼굴에 커피를 부었고, 그 남자는 손을 들.... 손을 들어? 때리려고? 그냥 지켜보고 있다가, 나도 모르게 안에 들어가서 싸움을 말렸다.
"남자 망신 다 시키네."
말렸다기 보다는 내가 한 대 친 게 맞긴 하지만. 도대체 이런 남자를 왜 만나? 어이가 없어서 여자를 슬쩍 봤을 때는 나는 내 두 눈을 의심할 뻔했다. 누나가 여기 왜 있어?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눈으로 카페를 나와 버리는 누나를 봤을 때에는 난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헤어진 것 같아서 다행이었지만 속이 상했다. 나는 진짜 아무것도 아니긴 했구나. 박지민 말대로. 그리고 정말 나 기억 못 하네. 난 한 번에 알아봤는데. 밖에 나갔더니 쭈그려 앉아 있는 누나의 뒷모습이 보였다. 진짜 죽여버릴 걸 그랬나. 우는 건지 작은 어깨가 조금씩 떨려 왔다. 어떤 여잔 줄 알고 울려, 너가.
"괜찮아요?"
"...네?"
"그냥. 울지...마세요. 울고 그래요. 저런 사람이랑 뭐하러 만나. 시간 낭비 하는 게 취미에요?"
"......"
"설마 지금 본인 탓 하는 건 아니죠."
"......."
"그럼 진짜 제대로 바보 인증 하는건데."
마음 같아선 진짜 안아주고 싶었다. 꽉. 근데 내 입에서 나오는 건 퉁명스러운 말들 뿐이었다. 그냥 화가 났다.
5.
그리고 오늘은 이사를 왔다. 옮겨지는 이삿짐들을 보며 딱히 갈 데도 없어서 현관 밖에서 서성이고 있는데, 절대 안 열릴 것 같던 앞집 문이 열렸다. 안에서 츄리닝을 입은 여자가 빨게진 눈으로 나오는데, 내가 꿈을 꾸는 줄 알았다. 누나였다. 그냥 빼도 박도 못하게 누나. 너무 놀라서 눈이 튀어나올 뻔했다. 울지 말랬더니 운 건지 눈 주변이 빨게서 괜히 또 걱정이 됐지만 기분이 정말 묘했다. 이게 말이 되는 일인가 싶었다. 나 지금 잠 자는 중인가? 꿈 꾸는 건가.
이삿짐 센터 아저씨들이 휩쓸고 지나가는 사이 주변 상가를 찾았다. 그리고 시루떡을 딱 하나만 샀다. 내가 이런 데 머리가 잘 굴러갈 줄은 몰랐는데.... 새삼 느낀다. 전정국 넌 정말 대단한 놈이야. 그리고 엄마가 옛날에 쌌던 것처럼 그릇에 올려 랩으로 꼼꼼히 떡을 쌌다. 아.... 근데 다 싸고 보니 그릇이 일회용 그릇이 아니라 그냥 자기 그릇이었네. 망했다. 너무 꽉 조이게 싸서 뜯고 다시 하기에는 모양이 망가질 것 같아 하는 수 없이 이대로 갖다줘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집을 나와, 옆집 현관 앞에 섰다. 일단 심장 떨려서 죽을 것 같았지만 심호흡을 몇 번 하고 초인종을 눌렀다. 안에서는 역시 누나가 나왔고, 난 빨게진 얼굴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저 옆집...."
"......어?"
어디서 많이 봤는데. 이런 표정으로 나를 보던 누나가 그제서야 생각난 듯 고개를 자기 혼자 끄덕였다. 아마 그 알바생 정도로 생각했겠지. 아는 척 하고 싶었던 마음이 싹 사라졌다. 기억 못하네, 진짜. 괜히 기분이 속상했지만 그래도 언젠간 기억하지 않을까. 그런 기대를 하며 말을 건넸다.
"구면이네요."
"......."
"뭔지는 아실 것 같고...."
"요새 고등학생은 엄마 심부름도 잘 하나봐요. 떡 돌리라면 돌리고."
"자 자취하는데요."
"요새 고등학생은 자취도 해요?"
"올해 수능 끝나서 대학 주변으로 방 구한 건데..."
처음 나를 봤을 때 잔소리를 했었던 것처럼, 누나는 여전히 나에 대해서 얘기를 늘어놓았다. 혹시나 싶어 마지막으로 구면이네요, 라는 말을 던졌지만 정말 내가 그 중학생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진 않았다. 별 대수롭지 않게 여긴 건가.... 설마. 진짜 그러면 나 울 거에요. 속상한 마음에 나는 세울 필요도 없는 가시를 세웠다. 따뜻하게 말하고 싶은데 내가 그냥.... 여자 대하기 고자인가봐.
"아, 그리고."
"........"
"저 그때 알바 잘려서요."
"......."
"댁 돕다가요."
"........"
"그날 처음 나온 건데.... 바로 잘려서."
"........"
"저한테 빚진 거. 알고 계세요."
전정국 병신. 존나 병신. 근데 누나는 4년 동안 뭐 계속 예쁘면 안 힘들어요?
오늘 드는 생각도 두 개다. 전정국은 병신이다. 그리고 존나 예쁘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오늘은 정말 제대로 똥을 싼 것 같아요 진짜... 죄송해요....(울컥..).....
그렇슴다 오늘은 정국이의 번외........ 정국이 번외가 몇번이나 더 이어질 진 모르겠지만
정국이 번외는 되게 끼워팔기(?)식으로 나올 것 같슴다 허허 이건 1편이에여........
네.........그렇습니다......... 정국이가 독자분들 johnna 예쁘대요 얼마나 예쁘면...........................
전 양심상 제외......... 요즘 거울 보는게 무서워여 그래서 이렇게 울죠 슙슙......
정국아 나도 예쁘다고 해조라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나도 네 꿈 나오고 싶다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정국 ㅠㅠㅠㅠㅠㅠㅠㅠㅠ 정구가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넌 내거야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셀프영창)
그럼 암호닉 진짜 많이 신청해주셔서ㅠㅠㅠㅠㅠ헝 ㅠㅠㅠㅠㅠㅠ
사랑해요 암호닉은 늘 받습니다!
[암호닉] 이렇게 신청해주시면 돼요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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