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탄소년단- converse high)
우리 옆집엔 고딩이 산다 05
(부제:오빠는 스무 살)
w. 애기무댱
1.
나에게 크리스마스는 좋지 않은 기억이 많은 날이었지 절대 의미 있는 날이 아니었다. 일 년 치의 고통을 다 쏟아 붓듯 크리스마스엔 안 좋은 일들만 일어나곤 했었다. 일단 초등학교 1학년 때의 크리스마스 이브 전날엔 눈이 왔었는데, 다음 날에 꽁꽁 언 빙판에 미끄러져서 다리가 부러졌었다. 그리고 초등학교 3학년 때 크리스마스엔 할머니가 돌아가셨었다. 평생 그렇게 울어 본 기억이 또 없었다. 또, 친구하고 절교한 적도 있었고.... 대학교 2학년 때부터 난 매일같이 임용고시 준비에 매달렸었는데, 그 해 크리스마스엔 남자친구가 내 동기랑 모텔에 가다가 내 친구한테 걸렸었다. 그 때부터 아마 크리스마스에 학을 뗐었던 것 같다. 더군다나 난 외로운 자취생이었기 때문에 크리스마스를 같이 보낼 사람도 별다르게 없었다. 한 마디로 외롭고 우울한 날, 그게 크리스마스였다. 남들이 보면 참 적적한 삶을 산다, 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틀린 말은 아니었으니까... 뭐.
그리고 올해 크리스마스 이브에도 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꼴이 돼 버렸다. 어제부터 목이 까슬까슬하더니만 아침에 일어나 보니 열이 39도까지 올라 있었다. 마냥 누워 있다가는 쥐도 새도 모르게 열병으로 죽을 지도 모르겠단 생각에 천근만근인 몸을 이끌고 병원에 다녀왔더니 독감이란다. 늘상 의사 선생님들이 말씀하시는 말, 물 많이 마시고 몸을 따뜻하게 하고 있어라. 그런 당부를 듣고 집에 돌아왔다. 세수만 대충 한 얼굴이 열로 벌겋게 상기돼 있었다. 바로 침대에 벌렁 누워 두통 때문에 잠도 안 오는 몸을 억지로 재우려고 애를 쓰며 눈을 붙이고 있었는데, 핸드폰이 요란하게 울리길래 보니까 정국이었다. 아.... 오늘 약속 있었지. 전정국이 오늘은 꼭 봐야 한다고 으름장을 놨었는데. 내가 버스 정류장에서 보자고 했었으니까 거기서 기다리고 있었겠지? 미리 말 해 놓을걸. 밖에 엄청 추운데.... 힘없이 전화를 받았다.
-누나 무슨 일 있어요? 왜 안 나와요.
"정국아. 미안해, 진짜...."
-뭐가 미안해요. 무슨 일 있어요?
"나 지금 열 나고 아...파서 못 나가. 미안해...."
-지금 집에 가족 있어요? 돌봐줄 사람?
"아니.... 아무도 없어."
아무도 없다는 말에 전화를 뚝 끊어 버린 정국이다. 집에 오려나? 모르겠다.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이 둘 다 직장에 나가셨기 때문에 아플 때마다 혼자 병원에 다녀오고, 혼자 앓고, 혼자 죽 사다 먹기 일쑤였다. 오빠가 돌봐주긴 했었지만 학생 때의 오빠는 가정적인 것과는 거리가 한참 멀어서 거의 혼자 다 해결하다시피 했었다. 누가 아프냐고 물어봐도 괜찮다는 말로 일관하고. 혼자 앓는 데에 익숙한 나에게 병간호는 어색하기만 한 단어였다. 어렸을 적을 떠올리니 마음 한 구석이 쓸쓸해지는 느낌이 들어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몇 분이나 흘렀을까. 초인종을 요란하게 누르는 소리에 인터폰을 보니 정국이었다. 정국이를 보자마자 코 끝이 찡해지는 것 같았지만 눈에 힘을 꽉 주고 현관문을 열었다. 현관문을 여니 죽이 담긴 쇼핑백을 든 채 빨리 뛰어왔는지 숨을 고르고 있는 정국이가 보였다. 신발을 벗고 집에 들어오자마자 내 이마에 손을 얹은 정국이가 못마땅하다는 눈빛으로 나를 훑어 보았다.
"그러게 누가 그렇게 얇게 입고 다니래."
"......."
"빨리 가서 누워요. 아픈 사람이 왜 서 있어. 빨리 들어가."
내 어깨를 잡고 내 방까지 날 인도한 정국이가 빨리 누우라고 팔짱을 끼며 으름장을 놓았다. 지금 내 몰골이 참 말이 아닐 텐데.... 내 이미지 어떡해. 한숨을 쉬며 침대에 기어들어가 정국이를 등지고 누웠다. 나 잘 때 진짜 추하게 잔 단 말이야. 이불도 제대로 못 덮냐며 종알종알 잔소리를 하던 정국이가 이불을 내 목 밑까지 덮어주더니 내 머리를 귀 뒤로 넘겨준 뒤 방을 나갔다. 이내 어디서 찾아온 건지 체온계와 물에 적신 수건을 가져오더니 의자를 끌어다 앉는 소리가 들려 왔다.
"똑바로 누워요."
"......."
"약 아직 안 먹었지? 저기 식탁 보니까 그대로던데."
"......응."
"아파도 밥은 먹고 약 먹어야 되는 건 알죠."
"...응."
"일단 내가 죽 데워서 가져올 테니까 죽 먹고 약 꼭 먹어요. 그 다음에 한 숨 자고."
내 머리에 수건을 얹어 주며 말하는 정국이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저런 다정함을 느껴 본 게 언제더라? 누군가가 나를 진심으로 걱정해 주고 챙겨주는 느낌이 주는 감동은 꽤나 강했다. 고맙다는 말이 나오기 전에 먼저 울 것 같아서 말을 삼켰다. 내가 정말 이번에는 사랑 많이 받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가슴이 뭉클해졌다. 정국이의 손이 닿았던 물수건의 윗부분은 따뜻했다.
"좀 앉듯이 누워 있어요. 누워서 먹으면 체해."
죽과 물을 가져온 전정국이 먼저 뜨듯한 물을 따라서 나에게 건내주었다. 우리 아빠가 나 어렸을 때 엄청 딸 바보였다던데, 기억은 안 나지만 그 때의 아빠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면 딱 전정국 같았을 것 같다. 무슨 애물단지 다루듯 나를 보는 전정국에 아픈 게 좋을 때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을 다 마시자, 숟가락에 죽을 뜬 전정국이 웃음을 띄우며 나지막하게 말했다.
"아- 해요. 아."
"......"
"빨리. 식는다. 아- 해, 아-"
"......."
"아이고, 잘 먹는다. 우리 애기."
애기래.... 이렇게 산만한 애기 본 적 있냐? 안 그래도 아파서 얼굴이 뜨거운데 지금은 폭팔할 지경까지 됐다. 흡족한 미소를 지은 전정국이 몇 번을 계속 떠서 나에게 먹여 주었다. 내 입이 그렇게 작은 편은 아니야, 정국아. 무슨 새 모이 주듯 적게 떠서 주는 정국이에게 아빠 숟가락으로 한 가득 떠 줘도 다 먹을 수 있다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말할 기력도 없어서 그냥 주는대로 덥석덥석 받아먹었다. 남은 것 없이 싹싹 긁어서 먹인 정국이가 다시 물을 떠서 나에게 주고 난 뒤, 개수대에 다 먹은 그릇을 넣어 놓고 화장실에서 휴지를 가져와 내 입가를 닦아 주었다.
"이제 약 먹어야지."
"......."
"식후 30분이라는데 그냥 바로 먹어도 된다고 그러더라고. 먹어요."
"...응."
약봉투까지 일일이 다 뜯어서 나에게 건네주더니 약을 다 먹는 걸 확인하고선 다시 누우라고 말하는 정국이다. 그리고 다시 의자를 끌어다 앉는 정국이었다. 내가 다음에 너가 무슨 말을 할 지 맞혀 볼게. 분명히 잔소리 한다. 백퍼센트!
"만나쟀더니 아프기나 하고."
"......."
"나 없었으면 또 혼자 끙끙 앓았을 거 아냐. 왜 그렇게 미련해, 진짜."
"......."
"혼자 앓는다고 누가 공로상 주나? 그냥 서럽기만 엄청 서럽지."
"......."
"진짜 나 없으면 안 되겠네."
"......."
"그리고 환자가 뭐가...."
"......."
"그렇게 예쁘고 난리래."
아프면 계속 실실 웃는 버릇이 있는데, 이번엔 그냥 실없이 웃는 게 아니라 진짜 설레서 웃는 거다. 뒤돌아 누웠기에 망정이지 하마타면 잔뜩 승천된 광대를 보여 줄 뻔했다. 너 왜 그러니, 진짜....
"빨리 자요."
"...알았어."
"자장가 불러줄까?"
"......그러던가."
"엄마가 섬그늘에 굴 따러 가면. 아이는 혼자 남아 집을 봅니다."
"......."
"정국이가 불러주는 자장 노래에."
"......풉."
"아이는 스르르르. 잠이 듭니다."
2.
그렇게 4일 정도를 꼬박 아프고 나니 12월 28일이었다. 와, 대박. 진짜. 이제 4일만 더 지나면 정국이가.... 정국이가. 성인이라고? 갑자기 섭섭하다. 뭔가 엄마가 나를 시집 보내면 이런 기분을 느낄 것 같아, 정말로. 졸업식이 아니면 이제 쟤 교복 입는 것도 못 보는 거네. 아, 서러워. 왜 내가 가르치는 애 중에는 정국이 같은 애가 없는가! 서럽다! 그리고 난 지금 친구들 모임에 강제로 소집돼 가는 중이다.
"야. 너 여기 앉아. 빨리."
"......왜 그래. 왜."
"너 왜 남자친구 생긴 거 말 안 했냐?"
"......어?"
"자꾸 시치미 뗄래? 빨리 불어라. 이번엔 좀 정상적이야?"
"아, 좀 천천히 좀 말해. 정신 없어."
"빨리 어떤 앤지 말이나 해 봐."
고등학교 때부터 같이 놀던 애들이라지만 얘네랑 나는 많이 달랐다. 일단 먼저 남자 경험부터 차원이 달랐다. 뭐.... 문란하다면 문란하다고 할 수도 있는 친구도 있고, 고등학교 때부터 남자애들 여럿 울리고 다니는 친구도 있고. 그냥 인생에서 제대로 된 남자란 오빠랑 아빠밖에 없었던 나와는 수준이 다른 애들이었다. 내가 남자친구를 몇 번 사귈 때마다 얘네가 뜯어 말리곤 했었는데, 매번 안 듣고 난 뒤에 상처 받는 나를 보고 미련 곰탱이라며 욕을 바가지로 했었다. 분명히 전정국이 전화 뺏어서 받은 것 땜에 저러는 걸거다. 어차피 얘네가 어떻게 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소개만 하면 되는데, 전정국을 어떻게 소개해야 할 지 갑자기 혼란이 왔다. 얘가 내 남자...친구는 아니잖아. 근데 남자친구가 아닌 것도 아니잖아. 너 진짜 뭐냐.
"남자친구는 아니...야."
"그럼 뭔데? 썸?"
"어.... 그런 거야. 근데 곧 사귈...거 같아."
"어떻게 생겼어? 카톡한 거 있어? 프사 자기 사진이야?"
가방에서 핸드폰을 주섬주섬 꺼내니 친구들이 빨리 보여달라고 들들 볶았다. 아, 좀. 기다리라고! 재촉하는 친구들을 슬쩍 째려본 뒤에 예전에 전정국 프로필 사진 중에서 마음에 드는 거 있길래 몰래 캡쳐해 놓은 걸 보여줬다. 보여주기 전에 사진을 필사적으로 가리자 애들이 흥분이 극에 달해서 빨리, 빨리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못 이기는 척 사진을 보여주자, 애들 눈이 엄청 커졌다. 왜.
"야.... 존나 잘생겼잖아."
"내가 소개팅 해준다고 한 말 미안해, 진짜. 걘 얼굴도 아니었네."
"근데 진짜 너무 잘생겼는데? 진짜 이렇게 생겼어? 연예인 아냐?"
"아니거든. 그리고 카메라가 실물을 못 담아. 진짜야."
"너.... 능력자다. 우리가 맨날 쪼았더니.... 거물을 데려오네. 얘 몇 살이야? 겁나 어려보이는데?"
몇 살이냐고 친구가 물었다. 어.... 두 번째 난제에 봉착해 버렸다. 내가 너를 몇 살이라고 해야 할까. 왜 지금은 1월이 아니라 12월인가. 스무살이라고만 해도 내가 애들한테 욕 먹는 일은 안 생긴다고.... 그렇지만 사랑에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이 있듯, 이게 무슨 죄도 아니잖아? 갑자기 샘솟는 자신감에 십, 이라고 운을 띄웠다.
"십...."
"뭐? 십? 욕한 거야?"
"십구."
"뭐래. 십구가 뭐?"
"열아홉이라고."
"뭐? 야? 진짜야? 진짜 열 아홉? 아직 미성년자? 진짜? 와, 미쳤다."
"너 존나 능력자다. 미친 거 아니야? 어린 애들 정...력도 장난 아니잖아. 너 계 탔다."
"힘 좋으면 뭐하냐. 얘 혼전순결이니 뭐니 개논리 펼치는 애잖아. 그리고 열아홉이나 반 오십이나 뭐."
"그...런건. 바뀔 수도 있는 거고...."
"야, 들었냐? 바뀔 수도 있대. 대박. 얘가 그렇게 대단한 앤가 보지?"
엄마, 아빠 미안해. 이제 내 신조고 나발이고 난 지조 없는 여자 하려고.... 나 그냥 여우는 안 어울리니까 늑대 하려고. 전정국 밤길 조심해라. 애들이 감옥이나 가라고, 신고할 거라고 말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본인들이 더 좋아하더니 무슨 정...lyuck...이라는 민망한 단어까지 언급해가면서 부러움을 토했다. 내가 보여준다고 한 적도 없는데 본인들이 내 핸드폰을 가져가서 카톡 내용까지 읽기 시작했다.
"야.... 미친. 이번에 얘 좀 괜찮은 거 같아. 이거 진짜다. 내 말 틀린 적 별로 없어."
"......근데 얘 네 옆집 사니?"
"...어? 어."
"내년 걔도 성인이니까 문제 하나도 없겠네. 불을 질러 버려."
"야, 진짜.... 아직 사귀지도 않는다니까?"
"수줍은 척 하지마. 난 아직도 너가 고등학교 때 야동 120기가 든 외장하드 애들한테 공유하던 모습이 눈 앞에 선하단다."
"...닥쳐라."
"얘가 너 먼저 좋다고 들이댄 거야? 개 부럽다 진짜. 근데 내년에 대학 들어가면 인기 존나 많겠네?"
"공대래."
"......뭐 넌 세상 혼자 사니? 대박이야."
최근에 안 사실이었다. 전정국한테 고등학교 때 문과였냐 이과였냐라고 물으니까 이과라고 해서 정말 제대로 심장 폭행 당했었는데. 거기에 한 술 더 떠서 과는 무슨 과냐고 물으니까 기계공학.... 공대.... 공대면 남자 밭일 거 아니야. 전정국은 단연 대한민국에서 가장 완벽한 남자입니다. 그건 인생의 진리. 공대라니, 공대.... 전정국이랑 같이 공대에 안 다녀서 다행이다. 같이 공대에 다녔다면 전정국 강의 듣는 것만 입 헤 벌리고 쳐다보다가 C로만 도배된 성적 받았을 것 같다.
그렇게 애들한테 절대 놓치면 안 된다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고 나서 헤어지려는 길, 지하철역까지 애들이랑 같이 가다가 어디서 많이 본 뒷통수가 보이길래.... 설마. 설마 했는데 전정국이었다. 쟤는 며칠 전까진 옷 사더니 이제는 신발에 꽂혔나. 아디다스 쇼핑백을 앞뒤로 흔들면서 가는 모양이 영락없는 4일 남은 방년 19세였다. 정국이가 슈퍼스타를 신으면 그건 사랑.... 혼자 있었으면 당연히 불렀겠지만 애들 앞에서 부르기에는 뭔가 미안해서 멍하니 있었는데, 전정국이 이어폰을 빼더니 뒤를 슬쩍 돌아보았다. 그리고 눈이 마...주쳤고, 환하게 웃었다. 웃는 거 왜 그렇게 예쁘냐. 내 친구들 조심해라.
"친구랑 만난 거에요?"
"어... 응. 넌 쇼핑했어?"
"신발 너무 오래 신어서.... 새로 샀어요. 누나 또 혼자 집 가려고 그랬죠. 그리고 얇게 입고 다니지 말라니까?"
"......그렇지?"
"앞으론 전화해요. 가요."
"응. 다음에 또 보자. 연락해."
"...저 년 진짜 계 탔네. 잘 가라. 예비 남자친구 분도 같이 잘 들어가세요."
내 친구 중에 정말 안 쳐다보고는 못 배기는 애가 한 명 있어서 약간 쫄린 마음으로 정국이를 마주했는데, 애들한테 대충 목례만 하더니 눈길 한번 안 주었다. 그리고 자기가 두르고 있었던 목도리를 풀더니 내 목에 둘러주며 만족스럽다는듯 씩 웃었다. 그 광경을 지켜본 친구들은 짜증난단 표정으로 나랑 정국이를 째려보았고, 이내 자기들끼리 쑥덕대며 지하철 역을 떠났다.
"내 얘기 했어요?"
"안 할 수가 있나. 너가 지난번에 전화 뺏어서 뭐라뭐라 했잖아."
"나 뭐라고 했어요?"
"썸남 동생."
"곧 호칭 바뀌겠네."
"뭐로?"
"정국오빠?"
3.
오늘이 몇월 몇일? 바로 12월 31일 되시겠다. 학창 시절의 연말은 단체문자도 주고받고, 뭐 가족이랑 둘러 앉아 한 해를 반성하면서 다음 해에는 이런 가족이 돼자 하고 회의하기도 하고(물론 1월 첫째 주만 화목하게 지낸다.), 그랬었는데. 지금은 그냥 한 해가 흘러가는구나.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일이기만 했었다. 근데 오늘은 굉장히 뭐랄까, 막 떨린다. 왜냐면.... 이제 정국이가 성인이라서? 점점 열두시가 가까워질수록, 아쉬운 마음과 동시에 내 맘이 방정인진 몰라도 설레기 시작했다.
-미리 전화하는 건데 일단 새해 복 많이 받아, 동생.
"오빠도 많이 받고. 올해는 뭐 여자친구가 생기신 것 같던데?"
-작년부터 있었거든.
"뭐야. 왜 나한테 말 안 했어?"
-몰라. 아무튼 잘 보내고, 아프지 말고. 막 애들이 말 안 듣는다고 울지 말고.
"알았어. 오빠도 건강해."
-그래, 만수무강해.
오빠한테 전화를 했더니 역시나 여자친구가 있는 모양이었다. 하긴.... 오빠가 없는게 이상하지. 학창시절부터 여러 여자 울리고 다녔던 김석진씬데. 진지한 목소리로 만수무강하라고 말하는 오빠에 실없이 웃으면서 전화를 끊고 무심코 핸드폰 상단바를 봤더니 오후 8시 12분이였다. 네 시간 남은 거야? 말이 돼? 그리고 정국이랑 전부터 한강 가기로 약속했었는데. 15분에 보기로 했었지. 내 정신 봐.... 마지막으로 거울을 보고 나오니 역시나 전정국이 서 있었다. 목에 두른 아이보리색 목도리가 전부터 느낀 거지만 참 잘 어울리는 것 같았다.
"너 한강 되게 좋아하는 거 같아. 한강 자주 와?"
"중학교 때부터 자주 왔었어요. 집이 근처라서."
"그냥 걸으러 오는 거야?"
"그냥 생각하러. 애들이랑 그냥 운동하려고 온 적도 있고. 그리고 야경이 예쁘잖아요."
12월의 한강 공원은 좀 추웠지만 그래도 담요를 덮고 있으니 있을만 했다. 사람이 별로 없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듬성듬성 많이 잔디밭에 앉아 있는 게 보였다. 유유히 흘러가는 물을 보며 한강 자주 오냐고 묻는 말에 야경이 예쁘잖아요, 하고 웃으면서 대답하는 정국이었다. 난 고3때 한강은 아니고 집 주변 탄천 많이 갔었었는데. 그냥 물 졸졸 흐르는 거 보면, 마음이 편안해지더라고. 너도 그런 거지?
"누나 얘기도 좀 해요. 다른 사람 얘기 말고 그냥 누나 얘기."
"너가 궁금한 거 물어봐. 내가 줄줄이 말하기엔 너무 길어."
"누나는 선생님 하게 된 계기가 뭐에요?"
"그거 완전 긴데 알려줄게."
문과한테는 선생님이 가장 안정적인 직업이라는 말을 듣고 영어교육과에 지원해 합격해서 그냥 그런대로 다니고 있었던 중에, 원래 지원하려고 했었던 경제학과에 다니는 애들을 보고 왠지 모를 회의감이 들었었던 때가 있었다. 그 때가 4년 전이었던 것 같다. 그냥 내년 버리는 셈 치고 반수나 재수를 해서 경제학과나 경영학과에 다시 지원할까, 하는 마음이 들었었다.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생각보단 안정적인 직업을 갖자, 라는 생각을 주로 해서 지원한 과다 보니 애정도 별로 없었고. 그러다 그냥 의미 없이 방학이다 보니 집에 그냥 눌러 앉아 있기에도 뭐해서 집 주변에서 편의점 알바를 했었다.
"...아무튼. 그래서 알바 하고 있었는데 어떤 새파랗게 어린 애가 담배를 사려고 하는 거야."
"......."
"그냥 넘어가도 되는데 애가 보니까 노는 애 같지는 않더라고. 그래서 막 뭐라고 그랬어."
"......."
"알바 끝났더니 걔가 기다리고 있더라? 그러면서 자기랑 얘기 좀 해줄 수 있냐고 그랬어. 뭐 안될 건 없으니까 알겠다고 그랬지."
"......"
"중학교 3학년이래. 그냥 집에서 형이랑 맨날 비교당하니까 스트레스 받았었다고. 그래서 그 해부터 담배 배웠대. 걔가 그 말을 하는데 너무 안쓰러운 거야, 그냥.... 그냥 왠지는 모르겠는데 너무 안쓰러웠어. 형 얘기를 하는데 많이 치여서 사는 것 같더라구. 나도 오빠가 워낙에 공부 잘했어서.... 많이 비교 당하고 혼나고 그랬었는데 이해가 되더라. 그래서 걔한테 뭐라고 할 건 없지만 조언 좀 해 줬더니 고맙다고 하고.... 그리고 걔가 편의점 나 알바할 때마다 오기 시작했었는데, 나보고 이제 나쁜 거 안 할 거라고.... 그랬었어. 걔 얘기 들어주면서 애들 지도해 주고, 나름 좋은 길로 선도해주고. 그런 일이 보람이 있구나, 해서 그냥 그대로 진로 정한 거였어."
"그렇구나."
"응."
얘기를 다 끝내자, 계속 나를 보고 웃으면서 이야길 듣던 전정국이 건성으로 그렇구나, 라고 대답한 뒤에 여자들 다 홀릴 법한 눈웃음을 지으면서 계속 나를 빤히 바라봤다. 왜! 이게 놀림 거리는 전혀 아니거든?
"근데 그 누나가 말하는 애 있잖아요."
"응."
"걔 나랑 좀 닮지 않았어요?"
"어...? 어?"
"누나 때문에 아마 걔 담배 끊었을 거에요."
"......."
"아마 누나가 첫사랑일걸?"
"......."
"그리고 아마 누나 옆집 살 걸요."
나랑 좀 닮지 않았어요? 하며 대뜸 물어오는 전정국에 무슨 소리야, 하고 그냥 넘기려고 했다. 그런데 전정국을 보면 볼 수록 그 애랑 너무 닮았다는 생각이 점점 들었다. 웃을 때 휘어지는 눈이나, 토끼 닮은 것도 그렇고.... 코 큰 것도 그렇고. 너무 신기하잖아.... 이게 뭐야. 그리고 마지막에 전정국이 한 말이 결정타였다. 아마 누나 옆 집 살 걸요. 그게 너였어? 이제 거의 열 두시도 다 돼 가서 맥주를 사려고 일어나서 걷는데, 전정국이 계속 서글서글 웃으며 나를 따라오기 시작했다. 나는.... 그게 넌 줄 몰랐어.
"너 왜 말 안 했어?"
"누나가 나 까먹은 것 같은데 거기서 말을 어떻게 해요."
"......."
"진짜 말하고 싶어서 죽는 줄 알았어."
어쩐지 구면인 사람 대하듯이 대하더라.... 그 때 키가 작은 건 아니었지만 되게 앳됐었는데, 4년 만에 그렇게 남자가 됐단 말이야? 캔맥주 두 개를 계산하고 나서 원래 앉았던 자리에 털썩 앉았다. 진짜 이게 말이 되긴 하나? 세상이 진짜 좁긴 좁구나.... 그리고 그 때 나는 전정국이 나를 엄청 귀찮아 하는 줄 알았다. 몇 번 편의점에 왔었을 때도 저 이제 담배 안 피려고요. 도도하게 말하고는 그냥 나가 버려서 씽긋도 안 하는 줄 알았는데.... 나를 기억한다고? 진짜?
"알바하는데 누나 있더라고요. 하나도 안 변해서 엄청 놀랐어요."
"스무 살 넘으면 하나도 안 변해."
"근데 옆에 남자가 있더라고. 그것도 엄청 똥차."
"시끄러워."
"지금 11시 43분이다."
"진짜?"
"대기 타야지. 열두시 땡 치면 캔 따려고."
"...아주 그냥, 술은 그 때 안 마시셨어요?"
"담배만 폈는데."
"자랑이다, 아주."
누군가의 첫사랑이 됐다는 사실을 아는 건 참 생소한 경험이다. 그리고 그냥 우연일 줄 알았던 사람이, 인연이었다는 것도. 그 때의 질풍노도 사춘기 소년이 이렇게 남자가 돼서 올 줄 누가 알았겠어. 소름이야, 소름. 내 손에 들려 있던 맥주캔을 가져간 전정국이 담배만 폈는데, 하고 씩 웃었다. 담배 폈다고 말하는 게 이렇게 귀여울 일인가요?
"딴 데 그만 보고 나 좀 봐요."
"왜, 왜."
"어때요. 전정국 첫사랑이 된 기분이."
"...조, 좋...네..요."
"얼굴에 티 다 나네, 벌써."
"......내가 원래 그래."
"좋으면 그게 좋은 거지. 숨겨서 뭐 하게."
그게 맞지. 아마 내가 계속 숨기느라 좋은 사람들을 많이 놓쳤었는지도 몰라. 근데 놓친 결과 너를 만난 거야. 결론은 나는 행운아다? 점점 시계가 열두시를 향해 갈 수록, 내 심장이 괜히 더 뛰는 것 같았다.
"누나."
"응?"
"나랑 만나요."
"......."
"내일도 만나고, 모레도 만나고. 낮에도 보고, 밤에도 보고...."
"......."
"내년에도 보고, 그냥 평생 나 만나요."
"......."
"좋아해요, 진심으로. 설명 못할 만큼."
"......."
"얼굴 빨게진 거 봐. 귀여워 죽겠다."
"......."
"뽀뽀하고 싶다."
"......"
"해도 돼?"
드디어 정 ☆ 국 ☆ 이 미자 탈 ★ 출 ☆....
갓 미자탈출 하려는 미자의 고백은 저렇습니다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아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미ㅣ친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정국아 사랑해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사귀자ㅠㅠㅠㅠㅠㅠㅠㅠㅠ
그리고 뭐 해도 돼냐니;;;; 그런 걸 왜 물어봐 정국아? 당연히 예;;;;;;;;;지;;;;;;;;;;;;;
사실 이건 소설...이라기 보다는 그냥 단순한 제 욕망 분출글에 가까운 것 같아요...허허
공대 정국이라니.... 저 문관데 당장 이과로 전과하겠습니다. 그 공대 ㅇㅓ디죠~?ㅎ
그리고 암호닉 신청해주신 분들 ㅜㅜㅜ너무 감사드려요 흐허ㅓ허... 누락된 분 없게끔 확인 많이 했는데
만약 생기시면 ㅠㅠㅠ저를 매우 치시고 다시 댓글에 [암호닉] 이렇게 달아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ㅜㅜ
늘 읽어주셔서 감사해여ㅠㅠㅠ사랑합니다 그리고 여주랑 정국이는 다음화부터 또 깨를 볶겠죠 짜증나네
정국이는 내건데
태태 홈매트 망고 철컹철컹 광대승천 슙디 알라 솜사탕 9596
소금 영창피아노 꾸기쿠키 영창 커몽 눈부신 들국화
뀨뀨 젤리 씨걸새우깡 짐그래 요를레히 밍뿌 거기정국없소
콜라 전정국 인사이드아웃 디즈니 핑슙 포세이돈 감자깡 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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