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수는 졸업 앨범을 넘겼다, 3학년 7반이라는 문구에 페이지를 빠르게 넘기던 손은 천천히 페이지를 넘기기 시작했다. 몇 장 더 넘기니 김종인 그리고 그 옆엔 도경수가 있었다. 짙은 쌍커풀과 도톰한 입술 그리고 하얀 피부와 큰 눈. 경수는 가슴이 먹먹했다. 눈을 느리게 감았다가 떴다, 경수와 종인은 같은 고등 학교를 나왔다. 김종인 하면 도경수, 도경수 하면 김종인이라는 이야기가 돌 정도로 둘은 자주 붙어 다니고, 그만큼 친했었다. 가끔 종인이 누구와 쌈박질을 하고 학교에 오는 날이면 경수는 연고를 꺼내 종인의 얼굴에 꼼꼼히 발라주었고, 종인은 그런 경수의 손길은 나빠하지 않았다, 친구니까.
" 경수야, 오늘 나 수정이랑 같이 가야 할 것 같아. 먼저 갈 수 있겠어? "
그리고 학교에서 인기가 많던 종인에게 여자친구가 생겼었다. 그 둘은 참 잘 어울렸다, 그리고 날이 가면 갈수록 종인은 경수를 두고 여자친구와 하교를 하는 시간이 더 많아졌다. 그 날은 왜 그렇게 종인에게 심술을 부렸는지 모르겠다, 경수는 모든게 아니꼬왔다. 평소에 저렇게 묻지도 않더니, 경수는 고개를 휘저었다. 아니, 못 가. 나 너랑 집에 같이 갈래, 너 안 가면 나도 안 갈래. 경수는 종인의 가방 끝을 꾹 잡았고 종인은 어쩔 줄 몰라하는 표정으로 수정을 보았다, 저 계집애. 마음에 안 들어, 내가 더 예뻐. 경수는 수정을 쳐다보았고 수정이는 마지못해 갔다 오라는 듯이 입을 열었다, 그렇게 종인은 경수와 같이 학교 밖으로 나왔었다. 그 날은 엄청 더웠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날 정도로. 둘은 집에 가는 동안 아무 말없이 걸어갔다, 종인은 가만히 있는 경수에게 자신의 여자친구 이야기를 했다. 우리 수정이 있잖아,
" 그 놈의 니네 수정이, 수정이. 하루라도 정수정 이야기 안 하면 입에 가시가 돋히냐? "
" 어? "
종인은 당황스러웠다, 평소에 애인을 사귀어도 아무런 이야기도 안 하던 경수였는데 지금 자신에게 정수정 이야기를 한다고 짜증을 내고 있다. 경수는 아랫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나무에 달린 매미는 여전히 울고 있었고 경수는 심호흡 몇 번을 한 뒤 종인을 쳐다보았다. 종인은 자신을 쳐다보는 경수와 눈이 마주쳤다, 경수는 종인에게 조금 더 다가갔다. 위로 고개를 들면 종인의 얼굴이 보였다, 종인의 손엔 휴대폰이 들려져있었고 곧 휴대폰 액정에 전화 왔다는 표시가 떴고, 발신자는 보나마나 정수정일 것이다. 종인은 전화를 받았고, 경수는 종인이 전화를 끊고 나 가봐야겠다. 라는 말을 하고 뒤 돌아가기 전까지 그 자리에 서있었다.
" 종인아 "
" 내일 학교에서 보자, 경수 너도 일찍 들어가고. "
" 나 너 좋아한단 말이야! "
종인은 잠시 멈칫했다, 자신을 쳐다보던 경수의 눈을 피했다, 나 가볼게. 그렇게 종인은 가버렸고 경수는 그 자리에 앉았다. 아랫 입술을 꽉 깨물었다, 이게 다 방정 맞은 내 입 때문이다. 경수의 고개는 푹 숙여졌다, 내일도. 내일 모레도, 종인의 얼굴을 제대로 보지 못 할 것이다. 작은 손으로 눈가를 비볐다, 경수는 종인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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