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아퍼"
여자아이가 밥을 한 숟갈 뜨고는 오른쪽 손으로 오른쪽 뺨을 감싸며 말했다.
"왜 그래? 어디 아파?"
맞은편에 앉아 있던 백현이 여자아이가 걱정이 되어 젓가락질을 멈추고 물었다.
"여기가 계속 아파"
"너 사랑니 나는거 아니야? 수정이 너 작년인가 사랑니 뺏었지?"
백현은 여자아이 옆에 앉아있는 수정을 보며 말하고는 고기반찬을 하나 집어 입 속으로 넣었다.
"나 작년에 사랑니 뺐었는데. 많이 아프면 나처럼 빼야돼. 일단 치과에 가봐"
"응.그래야겠다"
여자아이는 사랑니를 뺐다는 말에 걱정하며 밥을 먹었다.
"너 치과갔다 왔어?"
"사랑니 맞데"
여자아이는 우울해진 표정으로 수정에게 말했다. 옆에 있던 백현은 평소처럼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여자아이를 놀리기에 바빴다.
"너 좋아하는 사람 생겼지? 그래서 사랑니 난거 아냐? 설마 아직도 작년에 좋아했던 그 선배를…"
"야! 아니거든? 변백현 제발 입 좀 다물어"
백현은 당황하는 여자아이의 얼굴을 보고는 푸하하- 크게 웃었다.
"자 여기에서 '님'이 뜻하는 것은 세가지가 있는데 첫번째는 조국이라는 뜻이고, 두번째는…"
태생이 이과체질인 여자아이가 그토록 지겨워 하는 언어시간이었다. 한국어는 너무 어려워. 한국인인데도 시 해석을 완벽하게 못하는 걸 보면 세종대왕은 틀림없이 아이큐가 300이었을거야. 라는 쓸데없는 불평불만을 입술을 쭉 내밀어 토로했다. 그에 반해 이과인데도 언어를 유난히 잘하는 백현이가 신기했다. 선생님의 분필 소리에 맞추어 옆에 있는 백현이의 샤프도 덩달아 빨라졌다. 남자애치고는 길고 하얀 고운손에 제도샤프가 잡혀져있었다. 슥-슥- 샤프 하나만으로도 보기 좋게 필기가 된다는게 참 부러웠다. 자연스레 시선을 얼굴로 올렸다. 백현이의 습관이었다. 집중할 때만 하는. 입술을 꼭 깨물고 미간도 살짝 찌푸린 얼굴이.
괜찮았던 사랑니가 갑자기 아파왔다. 어렸을 때 뛰어 놀다 무릎이 까졌을 때 처럼, 사랑니에 심장이라도 있는 것 마냥 심장 뛰는 느낌이 들었다. 사랑니 부근 잇몸에서 두근두근. 통증에 턱까지 아려왔다. 에라모르겠다. 전날 새벽 늦게까지 공부한 탓도 있고 지금 사랑니가 아픈 것도 있고. 그냥 책상에 퍽 엎드려 잠을 청했다. 조금만 자고 나면 괜찮아 지겠지. 하며 선생님의 강의 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에 들었다.
"쉬는 시간 끝났어. 일어나"
여자아이는 저의 손을 살짝 건드리는 익숙한 백현의 목소리에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고 허리를 폈다. 한 숨 자고 나니 통증은 나아진 것 같았다. 눈을 비비며 다음 과목의 교과서를 서랍에서 꺼냈고 자연스레 옆에 앉아있는 백현을 쳐다보았다.
"아."
백현을 보자마자 또 다시 통증이 시작되었다. 손으로 오른쪽 뺨을 감싸고는 왼쪽 손으로 저를 바라보는 백현의 고개를 정면으로 돌려주었다.
"뭐야"
백현이 이상하다는 듯이 말하며 다시 여자아이를 쳐다보려했다. 여자아이는 백현의 고개가 반도 돌아가기 전에 손으로 다시 백현의 고개를 정면으로 돌려주었다.
"나 쳐다보지마. 이상하게 너만 보면 사랑니가 더 아프다니까"
"왜.어떻게 아픈데"
백현은 쳐다보지 말라는 여자아이의 말에 쳐다보고 싶은 마음을 꾹 참고는 칠판을 보며 말했다.
"사랑니에 심장이 있는 것도 아닌데 심장 뛰는 느낌이 나면서 아프단 말이야"
백현은 갑자기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막 웃기 시작했다. 수업 준비를 끝내고 선생님이 오기를 기다리는 조용한 반에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최대한 웃음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최대한 낮게 킥킥대며 웃었다.
"변백현 미쳤어?"
백현이 참을 수 없었는지 소리를 크게 내며 웃었다. 반 아이들이 다 백현만을 쳐다봤고 죄도 없는 여자아이가 반 아이들에게 사과를 했다.
"시끄럽지? 미안. 변백현이 미쳤나봐"
여자아이가 미안한 표정을 짓자 반 아이들은 다시 자세를 고쳐앉았지만 백현의 웃음을 멈 출 수가 없었다.
드디어 사랑니를 뽑는 날이 왔다. 수정이의 말에 의하면 마취 할 때 그렇게 아프다던데. 그리고 수술 하고 나면 턱이 이만큼이나 부어오른다던데. 걱정이 이만 저만 아니었다. 하지만 아프니까 빨리 뽑아 버리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너 사랑니 안 뽑으면 안돼?"
"아파죽겠어. 빨리 뽑아버리고 싶다 진짜."
"안 뽑으면 안돼? 뽑지마. 그래 안 뽑느게 좋겠다. 그치?"
"아 무슨 소리야 변백현~ 이미 조퇴도 받아놨고. 이번시간만 끝나면 난 사랑니 빼러 갈거야. 넌 공부나 열심히 하고 있어."
"제발..뽑지마라..어? 내가 이렇게 애원하는데도 뽑을거야?"
"시끄러 변백현. 저기 선생님 오신다"
백현은 하루종일 여자아이에게 사랑니를 뽑지말라며 말도 안되는 소리를 했다. 쉬는시간에는 매일같이 옆반 찬열과 만나 이야기를 하면서 오늘은 찬열에게 가지도 않고 계속 여자아이의 옆에 붙어서 최대한 불쌍한 척을 하며 사랑니를 뽑지말라고 했다. 여자아이는 백현의 그 말에 신물이 나서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러버리는 경지에 까지 이르렀다.
"오늘은 여기까지. 반장?"
"차렷.경례. 수고하셨습니다."
평소같았으면 쉬는 시간이 다 끝날 때 까지 수업을 하시는 물리 선생님께서 왠일인지 정각에 마쳐주셨다. 백현은 물리선생님의 말에 머리를 헝끌어뜨리며 가방을 챙겨 나가려는 여자아이를 붙잡고는 거의 빌다시피 사랑니를 뽑지말라며 말했다. 여자아이는 그런 백현을 무시하고 서둘러 치과로 향했다.
백현은 교문을 나가는 여자아이의 뒷모습을 쳐다보다 헐레벌떡 교실을 나섰다.
"야 변백현!! 종 쳤는데 어디가!!!"
수정이가 목이 터져라 백현을 불렀지만 백현에게 들리지 않았다. 백현은 여자아이를 따라 잡으려 땀이 나도록 뛰었다. 교문을 나서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여자아이의 뒷 모습이 보였다.
"000!!!"
안그래도 숨이 차서 심장이 터질 것 같은데 젖먹던 힘까지 짜내어서 여자아이를 불렀다. 여자아이는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았다. 백현은 숨을 헐떡이며 여자아이에게 다가갔다.
"야 변백현. 수업 안들어?"
백현은 이마에 맺힌 땀을 닦으며 숨을 돌렸다.
"변백현. 무슨일이냐니까?"
"내가... 왜 사랑니 뽑지 말라고 했냐면. 네가 나 볼 때마다 사랑니에서 심장 뛰는 느낌이 느껴진다고 해서, 네가 잠시나마 나랑 같은 기분을 느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그래서 사랑니 뽑지 말라고 했어."
"변백현..."
"사랑니 이쁘게 빼고 오면, 내가. 진짜 네 심장. 뛰게 해줄게"
백현은 여자아이를 보며 이쁘게 웃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