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우현, 그만하자." 오랜만의 데이트날, 한껏 멋부리고 나온 우현은 거들떠 보지도 않고 성규는 이별을 고했다.
"형, 갑자기 왜 이래. 어?"
갑자기가 아니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것도 아니었다. 일주일, 그래. 일주일 전부터 성규는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었다. 자신과의 데이트를 피했고, 연락도 받질 않았다. 걱정이 되어 집까지 찾아가면 그는 집에서 새근새근 자고 있었다. 예전엔 보려고 하지 않아도 보여주던 핸드폰도, 철저하게 비밀번호를 걸어 놓았다. 자신과 함께 있을 때 전화가 오는 족족 수신 거절을 하거나 나가서 받았다. 그럴때마다 우현은 걱정스러웠다. 자신이 싫어진 것일까.
"지겨워, 너. 구질구질하게 이럴거야 정말?"
낮게 깔린 목소리, 이건 필시 자신이 알던 성규의 목소리가 아니다. 어울리지 않았다. 마치 어린아이가 아저씨의 걸쭉한 음성을 가진 것과 같은 이질감이 느껴졌다. 성규에게 그 일주일 전에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아무리 생각하고 머리를 쥐어 짜내도 생각나는건 아무것도 없었다. 단지 전처럼, 성규의 다리를 베고 누워 편히 자고 싶었다. 자신이 깨어나면 성규는 '다리에 쥐나는 줄 알았어.'라며 싱긋- 웃어주던 그 때로… 돌아가고 싶었다.
"남우현, 그냥… 가. 깨끗하게 끝내자 진짜."
"형, 무슨일 있어? 미안해… 내가 더 잘할게…. 내가 다 잘못했으니까, 제발… 제발 그 말 만은 하지마…."
우현의 애원하는 말투에도 불구하고 성규는 뾰족하게 가시돋힌 말로 우현을 마구 쏘아댔다. 그말을 하는 성규도, 듣는 우현도 가슴이 찢어졌다.
"지겹다고 진짜!! 곱게 헤어지자니까 왜 이래? 나 이제 여자 만날거야. 그니까, 헤어지자고. 나를 니 머릿속에서 없던것 처럼, 지워내버려."
그리고 성규는, 마지막 쐐기로 우현에게서 돌아서 버렸다. 뒤에서 애처롭게 자신을 부르는 우현의 목소리가 들렸다.
"형… 제발… 가지마…."
애절하다 못해 서글픈 그의 목소리가 듣기 싫었다. 차라리 귀가 멀었으면 좋겠다고도 생각했다. 그렇지 않으면, 지금이라도 뒤돌아서 우현에게 뛰어가 안길것만 같았다. 아니, 안돼… 우현아. 제발 날 그녕 보내줘… 이게 다, 너를 위한 일이야. 자신의 발목을 잡는 듯한 애절한 목소리 때문에 차올랐던 눈물이 결국은 톡. 하고 눈꼬리에서 떨어져 볼을 타고 주르륵- 흘러 내렸다. 성규는 발걸음을 빨리했다. 뒤에서 우현이 자신을 보았을 때, 절대 아파보이지 않도록, 작아보이지 않도록 허리를 걷게 펴고 당당히 우현이 있는 그곳을 벗어났다.
성규가 떠나갔다. 믿기지 않았다. 이 상황을, 믿을 수 없었다. 꿈이겠지, 하며 자신의 허벅지를 꼬집어보기도 하고, 세차게 뺨을 내리치기도 했다. 아팠다. 꿈이 아니었다. 돌아와… 제발. 우현은 눈시울이 붉어지며 눈물이 차올랐다. 그리고 끝내 그 눈물은 땅으로 추락하고야 말았다. 마치 자신의 마음처럼. 형, 지워버리라고? 형을? 아니, 형은 내 머릿속에 있는 뇌용량 중 한 구석이라 시간이 지나면 잊혀지고 지워 질 수 있는 것이 아니야. 형은, 내 심장에 각인되어 있어. 우현은 성규가 지나간 자리에서 차마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성규는 골목길에 들어서자 마자 주저 앉아 버렸다. 더는 걸을 힘이 나질 않았다.
"흐읍… 흑… 우현…아. 형이, 형이 미안해…."
우현아…. 글자 하나하나가 마음속 깊이, 심장에 아려왔다. 성규는 우현을 모질게 내쳐버린 자신이 증오스러웠다. 자신에게 이런 일을 시킨 그사람을 할 수만 있다면 죽여버리고 싶었다. 지금의 내 마음과 같이 갈기갈기 찢어서. 끔찍히도 아려오는 그 고통을… 느끼게 해 주고 싶었다.
그리고 곧 그의 울음은 오열이 되었고, 어두운 골목길의 사방을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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