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 디엔
부모님 집에서 나와 독립을 했어.
집들이를 해볼까 고등학교 때부터 친한 친구들을 초대했어.
고기에 휴지, 엉뚱하게도 참기름까지.
집들이 선물이라며 이것저것 사온 친구들은 마치 제 집인양 고기를 굽더니
아직 정리를 끝내지 못한 짐 속을 뒤적거려 졸업앨범을 찾아냈어.
그러더니 하나 둘 추억을 끄집어내기 시작했지.
친구들이 네 사진이 있는 페이지를 펼쳤을때,
난 시선을 바닥으로 떨어뜨리곤 가만히 있었어.
"어, 얘다. 얘는 동창회도 안나오더라. 요즘 뭐하고 사려나?"
김원식의 한마디로 대화의 주제가 너로 바뀌었어.
"걔네 아빠 회사 망하고 외국갔다던데?"
"에이, 뭔 소리야. 얘 대학원 다닌댔는데. 엘리트 중에서도 엘리트래."
"대박. 우리랑 다른 세계 사람이네?"
"고기나 먹어."
잠자코 고기만 굽던 택운이가 아직 익지도 않은 고기를
한상혁과 차학연의 입에 물려주는 걸 보고 어찌나 고맙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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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이 모두 떠나고, 바닥에 놓인 졸업앨범을 말없이 바라보다
마치 고등학교 2학년때로 돌아간 듯 설레는 마음으로 네 사진을 찾았어.
8년 전.
나는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걸 좋아하는, 그냥 평범한 소년이었어.
그저 예쁜 여자라면 헤헤거리며 좋아하는 철없는 남자아이.
2학년 학기 첫 날이던 그 날도 점심시간 종이 치자마자 친구들과 식당을 향해 달렸어.
"야야, 오늘 메뉴 뭔데?"
"갈비찜이래, 매운 갈비찜."
점심을 서둘러 먹고 빨리가자는 친구의 재촉에 뛰어가다 누군가와 부딪혔어.
덕분에 내 와이셔츠는 갈비찜국물로 붉게 물들었지.
"아...!!미안해!! 이거 어떡하지..아..."
그게 너와 나의 첫 대화.
동글동글한 얼굴형에 질끈 묶은 단발머리.
어쩔 줄 모르며 내 와이셔츠를 문지르던 넌 어떡하냐는 듯이 날 바라보았어.
난 어깨를 으쓱거리며 괜찮다고 말하곤 친구들을 쫒아 뛰었어.
정신없이 축구를 끝내고 세수를 하고 있는데, 누군가가 뒤에서 톡톡 두드렸어.
친군가, 하고 뒤를 돌아보니 어색하게 미소짓는 너였지.
"와이셔츠는 괜찮아? 이거, 먹어. 미안해서.."
음료수를 건네며 환히 웃는 네 얼굴을 나도 모르게 빤히 바라봤어.
"너 우리반이지? 이재환. 맞지?"
"아...응."
"와이셔츠는 어때, 지워져?"
"..으응."
"난 교무실 들렸다 가야해서, 너 먼저 가."
"..어."
참 이상하지.
수업 중에도 네 뒷모습만 보이고, 자꾸만 아까 네 웃음만 떠오르는게.
그 다음주 자리를 바꾸는데, 너와 짝이 됐어.
어찌나 기분이 좋던지, 친구들에게 빵을 쐈지.
"이재환 나 이거 다 먹는다 진짜?"
"먹어먹어, 다 먹어. 이게 다 네가 빨리 축구하러 가자고 조른 덕분이다."
"어? 이재환!!"
네가 해맑게 웃으며 다가왔어.
"빵 먹어? 이번 교시 끝나고 밥먹는데?"
"아, 배고파서. 한 입 먹을래?"
넌 고개를 저으며 장난끼 가득한 눈으로 날 바라봤어.
"아니, 밥먹어야지. 이재환 너, 그러다 살 찐다."
"하, 너나 신경 써. 어디서 ㅇ별빛 살찌는 소리 안 들리냐?"
"참나, 이재환 진짜...아. 곧 종치겠다. 나 먼저 가있을게. 다음 시간 한문이다? 늦으면 벌 받아."
흐뭇한 눈으로 네 뒷모습을 쫒고 있는데, 조용히 빵만 먹던 택운이가 슥 다가왔어.
"너 쟤 좋아하지?"
이상하다.
음악은 5교신데.
왜 택운이의 그 물음에 피아노가, 탬버린이, 트라이앵글이 귓가에 울리는 건지.
"...내가? 내가 쟤 좋아하는거 같아 보여?"
"응. 눈치없는 김원식이 봐도 알겠다 그건."
점심시간 내내 축구도 포기하곤 생각에 빠졌어.
어딜가나 네 뒷모습만 쫒는 날 발견하고 드디어 깨달았지.
어떡해, 나 너 좋아하나봐.
수업시간 내내 난 너와 눈을 마주칠 수 없었어.
"너 단소불줄 알아?"
"...어?아...조금?"
"어..부럽다..나 진짜 못해. 들어봐."
휙휙 바람 소리만 내던 넌 숨이 차는지 살짝 붉게 물든 얼굴로 머쓱하다는 듯 웃어보여.
"그치, 진짜 못불지?"
"아..니. 잘부네 뭘."
좋아한다고 말해버릴까봐.
"정말? 흠...거짓말아냐?"
"이재환, ㅇ별빛. 복도로 나가. 누가 선생님 수업하는데 맘대로 단소불고 떠들래!!"
벌 서는건 한 두번도 아니고, 아무래도 좋았어.
근데 너와 단 둘이서라니, 세상에.
"저 쌤 진짜 치사하다. 그치?"
"어..그러게."
"뭐 얼마나 떠들었다고 내쫓냐."
"맞아."
벌서는 동안에도 난 네 물음에 짤막한 대답만 내뱉었어.
결국엔 대화가 끊기고, 정적만이 흘렀지.
이해해줘, 난 네가 첫 사람이고 첫 사랑이었는걸.
그 날 이후로 난 괜히 널 피했어.
좋아한다고, 넌 웃는게 참 예쁘다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네 앞에만 서면 아무말도 할 수가 없었거든.
네 앞에서 혹시라도 실수해버릴까봐, 바보같이 널 피했어.
그러다 수학여행이 다가왔어.
친구들과 마지막으로 떠나는 수학여행이라는 생각에 잔뜩 설레서는 버스에 올랐어.
친구들과 얘기하다가도 네 목소리가 신경쓰이고,
휴게소에 내려서도 네 뒷모습만 찾았어.
그러면서도 난 너와 마주치지 않으려 노력했지.
눈으로는 네 뒷모습만 쫒은 주제에.
수학여행 마지막 날, 친구들과 숙소를 탈출할 계획을 세웠어.
그러다 한 아이의 말로 여자애들 방에 찾아가 함께 놀기로 했어.
난 바로 네 얼굴이 떠올라 싫다며 거절했지.
"아 뭐야 이재환, 같이가자. 응?"
"싫어 안가. 재미없게 그게뭐냐 차학연."
"에이 치사한 놈."
그 날밤, 친구들이 모두 방을 나서고, 막상 혼자있자니 심심했던 난 숙소 앞 바다로 향했어.
그 곳이라면, 아무도 없을 것 같았거든.
멈칫.
웬걸, 그 곳엔 누군가가 벌써 있었어.
네가, 서있었어.
옷은 얇게 입고, 바닷바람 추운데.
당황해선 숙소로 돌아가려는데,
"이재환."
네가 날 불렀어.
"너 왜 나 피해?"
"...어?"
"맞잖아. 나랑 눈마주치면 도망가고."
"...아닌데..
"..내가 뭐 잘못했어?"
"...아니야. 그냥 요즘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한창 그럴 때잖아.
네가 무슨 잘못을 해.."
그러자 단순한 넌 또다시 해맑게 웃어보여.
"아 뭐야, 난 또 나 싫어하는 줄 알았잖아."
네 그 웃음을 보고 도망가고 싶었어.
나한테 자꾸 그렇게 웃어주면 어떡해.
"아, 나 너한테 할 얘기 있어!"
나 너 좋아하...
"나 남자친구 생겼어!"
...어..?
"너도 아는 애야!!"
....
"이홍빈! 나...홍빈이랑 사귄다?"
"아...응."
"응? 너 홍빈이 몰라? 3반 이홍빈."
"응."
"이상하다. 홍빈이가 네 친구라던..."
"언제부터?"
"응?"
"언제부터...사겼는데."
"아아..사실 방금. 홍빈이 방금까지 여기 있다가 걔네 반 담임한테 나온 거 들켜서 먼저 들어갔어."
있잖아, 드라마같은 걸 보면 말이야.
좋아하는 여자한테 남자친구가 생기면 서럽게 울거나,
의지를 불태우며 빼앗아오리라 결심하는 경우가 많더라구.
근데 참 이상하지, 너와 홍빈이가 사귄다는 말에 왜 웃음부터 났는지 모르겠어.
"뭐야, 이재환. 왜 웃냐?"
"그냥."
"뭐야. 안어울린다 이거야?"
"응. 이홍빈이 아깝다. 걔 엄청 잘생겼잖아. 암튼 뭐, 오래가던지."
마음에도 없는 말을 내뱉고 뒤돌아섰어.
숙소에 돌아와서도 실없는 웃음만 베실베실 흘러나왔지.
"뭐야, 쟤 이상해!!"
"..뭐야."
"나갔다오더니 저래. 귀신봤나."
친구들이 그런 내 모습을 보며 한마디씩 던져도 하나 들리지 않았어.
그 때, 담임에게 붙잡혀있던 이홍빈이 들어왔어.
그리곤 내게 다가와 소근소근 얘기를 꺼냈지.
"야, 이재환. 고맙다."
"뭐가?"
"나 별빛이랑 사귀거든."
"...그래?"
"응. 네 얘기하면서 친해졌어. 땡큐.
아, 피곤해. 나 먼저 잔다."
홍빈이가 방으로 들어간 후, 택운이가 다가왔어.
"이재환."
"왜."
"쟤 ㅇ별빛이랑 사귄대지?"
"응. 너도 가서 축하해주던가."
"너는?"
"...나?"
"너 ㅇ별빛 좋아하잖아."
"..아니..아닌데? 아니야...진짜 아닌데.."
자신없는 대답을 듣던 택운이는 내 얼굴을 무표정하게 한참을 바라보다 말을 이었어.
"아님 말고."
서울로 돌아와 일상으로 돌아온 나는, 널 피하지 않았어.
좋아한다는 말을 하면 안되는 진짜 이유가 생겼으니까.
그런 실수 따위 하지 않을거라 생각했어.
나도, 너도 홍빈이도 모두를 곤란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거든.
"이재환!!!!!!이재화아아아아안!!!!!"
"왜 그렇게 애타게 불러, 이 아줌마야."
"아저씨, 홍빈이 뭐 좋아해?"
...또 홍빈이.
"내일이 홍빈이 생일이잖아. 좋아하는거 선물로 주고싶어서.
넌 친구니까 잘알잖아. 아니야?"
"걔..락음악 좋아해. 빠르면 빠를수록 좋아하고 소리 크면 클수록 좋아해."
"아 진짜? 의외네. 암튼 고마워 이재환."
뛰어가는 네 뒷모습을 바라보며 생각했어.
아닌데. 홍빈이 락음악 안좋아해.
이홍빈 음악은 무조건 박효신인데.
박효신 노래 중에서도 특히 잔잔한 발라드 좋아하는데.
고작 질투심에 이러는 내 자신이 너무나도 유치하게 느껴졌어.
그 다음날, 아니나다를까 네가 울상을 지으며 내게 다가왔어.
"야 이재환...너 홍빈이랑 친구 맞아?
걔 락 안좋아한대..고맙다고는 하는데...싫어하면 어떡하지?"
다른 사람이 보기엔 남자친구의 기분을 걱정하는 사랑스러운 여자친구였겠지만,
난 그런 네 모습을 보고 화가 치밀어올랐어.
"..그런데?"
"그런데라니, 락 좋아한다고 네가 얘기해준 거잖.."
"그 말을 철썩같이 믿은 네 잘못이지."
"야..이재환.."
"네 남자친구에 대해서 궁금한건 네 남자친구한테나 가서 물어봐.
왜 나한테 물어봐놓고 아니라니까 괜히 짜증이야?
남자친구 좋아하는거 하나 모르는 네 잘못이라곤 생각 안해봤어?"
"야 그건 우리가 사귀고 얼마 안지났으니까.."
"아는 것도 하나 없으면서 사귄다고? 좋아하는건 맞아?"
"너 말이 심하다?"
"네 남자친구 얘기 나한테 그만해. 하나도 안 궁금해, 오히려 지겨워.
남의 연애사에 관심없다고."
정신을 차리니 넌 내게 뒷모습을 보이며 멀어지고 있었어.
난 바로 후회했지.
네가 날 싫어하면 어떡하지, 나 때문에 홍빈이랑 사이가 틀어지는 건 아닐까,
내 말에 상처받아 우는 건 아닐까.
얼굴을 감싸고 복도에 털썩 주저앉았어.
"미쳤지 미쳤어...왜 걔한테 화풀이를 해 바보같은 놈아.."
다음날 교과서를 꺼내려 책상에 손을 집어넣자 새하얀 쪽지가 툭 떨어졌어.
아무 생각 없이 펼치자
[이재환에게]
라는 글씨가 보였지.
또박또박 눌러쓴 글씨의 주인공은, 너였어.
한달동안 네 짝하면서 네 글씨체를 얼마나 많이 봤는데.
종이를 마저 펼쳤어.
[이재환에게.]
[안녕, ㅇ별빛이다.]
[아빠빼고 남자에게 쓰는 첫 편지를 네게 뺏기다니...]
[암튼, 음...어젠 미안.]
[역할 바꿔 생각해서 네가 여자친구 생겼다고 하루종일 내 옆에서 자랑하면, 없던 짜증도 나겠더라고.]
[그래도, 조금만 조근조근 말해줬음 좋았을걸...]
[많이 미안해. 다시 좋은 친구 해줄거지, 그치?]
[추신: 오늘 급식 갈비찜이다!! 우리 처음 만난 날 급식메뉴ㅋㅋㅋ ]
[별빛이가]
갈비찜.
기억하고 있었네.
네가 내 와이셔츠에 국물을 잔뜩 엎질렀었잖아.
사실 내가 뛰어다니는 바람에 그런건데, 자꾸만 꾸벅꾸벅 인사하는 네 모습이 너무 웃겼어.
근데 그거 알아?
내 와이셔츠에 붉은 얼굴이 점점 번져가듯,
그 날 이후로 내 머릿속에서 자꾸만 네 생각이 번져갔다는 거.
그렇게 번지다가 결국 오늘에 와선 내 생각 가득 네가 차버렸다는 거.
네가 첫 사람이라는 핑계로 고백을 미루고, 또 미루고.
그렇게 미루기만 하다가 결국엔 네 좋은 친구가 되어버렸네.
왕바보네 이재환. 진짜 바보다.
네 편지를 보고 뭔가 마음이 후련해졌어.
넌 날 친구로만 보는데, 이왕 친구인거 정말 좋은 친구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
그렇게 남은 2학년을 너와 좋은 친구인척, 지냈어.
그리고 고등학교 3학년.
너와 난 서로 다른 반이 되어 만날 틈도 없었어.
라고 생각했겠지 넌.
나는 밥먹다가도 네 목소리가 들리면 벌떡 일어나 널 찾았고,
수업을 듣다가도 운동장에서 네 웃음소리가 들리면 서둘러서
똑같은 체육복 사이에서 널 찾았어.
친구라는 이름으로 홍빈이를 통해 군것질거리도 전해줬고,
네가 어딘가 아파보이는 날엔 홍빈이에게 슬쩍 귀띔해주곤 했어.
그리곤 홍빈이가 가져다준 약을 먹고 차츰 나아진 네 모습을 보며 흐뭇해했지.
그렇게 정신없는 고3생활이 끝나고,
눈 깜짝할 새에 졸업식이 다가왔어.
"이야..벌써 졸업."
"난 이제 뭐해먹고 사나."
"엄청 허무하다, 이게 뭐람."
교실에서 친구들과 이렇게 떠드는 것도 마지막이구나 싶어 알수없는 기분을 느끼고 있을때,
네가 찾아왔어.
"이재환!!!!"
항상 묶고다니던 머리를 풀고 옅은 화장까지 한 널 보고,
난 굳어버렸어.
오늘 예쁘네.
안 예쁜 날은 없었지만, 뭐.
"이재환, 너 찾잖아."
"..아...?..어,어."
친구들의 재촉에 난 허둥지둥 밖으로 나갔어.
네 앞에 도착한 난, 애꿎은 바닥만 노려보고 있었지.
이게 얼마만에 마주서는 건지.
"이재환 오랜만이다?"
"어..그러게. 진짜 오랜만이네."
"졸업 축하해."
"...응..너도."
어색한 정적만이 흐르다, 갑자기 네가 눈물을 뚝뚝 흘리기 시작했어.
"아 진짜... 마지막이니까..다 아쉬워...이럴..줄..알았으면 너 자주..찾아와서..얘기하고..아.."
난 어색하게 네 어깨를 토닥거렸어.
"야..야야. 울지마. 더 못생겨진다?"
"하여간....이재환."
"퉁퉁붓겠네 우리 못난이."
"씨..아, 대학은 서로 달라도 맨날 만나서 나 놀아주기다?"
"그래그래, 알았으니까 이제 그만 울어."
나, 네가 공부를 너무 잘해서.
네가 날 만나려고 노력해도 자연스럽게 멀어지지 않을까 해서.
공부 정말 열심히 했어.
그래서, 후회는 안해.
"ㅇ별빛!!"
저 멀리서 홍빈이가 다가왔어.
넌 쪼르르 달려가선 손을 꼬옥 잡아.
난 그 손을, 보지 못했다고 내 자신에게 애써 부정했어.
"솔로 앞에선 좀 참아라, 응?"
"아, 이재환. 내가 여소해줄까?"
"..뭐?"
네가?
"너 인기 진짜 많아. 어때, 해줘?"
"...됐어. 나 먼저 간다."
무뚝뚝하게 대답하곤 뒤돌아버렸어.
아무것도 모르는 너한테, 나 상처받았나봐.
졸업식이 끝나고, 교문 앞에 멍하니 서있었어.
이렇게 끝나는건가, 우와, 나 어른이야?
그 때 누군가 다가왔어.
"후회 중?"
택운이였어.
"..뭘?"
"고백안한거."
"...누구한테."
"누구겠어, ㅇ별빛이지."
"...응?"
"좋아하잖아."
이번엔 택운이의 말을 애써 부정하지 않았어.
뭐 어때.
"많이 좋아하잖아. 틀려?
2년째 보고만 있으려니 내가 다 답답하다."
"나 어떡하지."
"뭘."
"말을 못했어.
그렇다고 지금 말하면, 모두가 곤란해지는거 아니야?
그럼 나 너무 나쁜놈 되는건데.
내가 먼저 좋아했는데..바보같은거 아는데, 그래도."
"...어쩌겠어. 고백은 이홍빈이 먼저했잖아."
택운이의 그 말에 마음 속에서 뭔가가 쿵, 하고 떨어졌어.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사실이 택운이의 입밖으로 나와버렸어.
난 그저 웃어보였지.
택운이는 그런 날 말없이 바라보았고.
그 날 이후로 난 널 볼수 없었어.
홍빈이는 고등학교 졸업 후 무슨일이 있었는지 너와 헤어지곤 유학을 갔고,
넌 연락이 끊겨버렸거든.
그렇게 7년이 흘러 지금.
졸업앨범을 덮었어.
벌써 새벽 3시네.
아직까지도.
이렇게 후회만 넘치는 걸 보면, 나 정말 후회하고 있나봐.
"치사해, 치사하다 ㅇ별빛. 머리카락 한 올 안비치냐.
...맨날 보자고 했으면서."
다음날, 오랜만에 학교엘 갔어.
2학년 7반, 우리반 동창회가 있는 날이었거든.
딱 두개의 빈자리가 있었어.
하나는 이홍빈, 다른 하나는 너.
치사하게, 지금까지 커플놀이냐.
오랜만에 학교에서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난 식당 뒤 뒷뜰엘 들렸어.
여기, 너랑 빵사들고 자주 왔었는데.
8년 전 이재환과 ㅇ별빛이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만 같은 그 곳에서,
벤치에 기대앉아 슬쩍 눈을 감았어.
바스락바스락.
사람에게 밟혀 낙엽이 부셔지는 소리.
누군가 다가오는 것 같아.
혼자라서 좋았는데.
"이재환, 오랜만이다?"
익숙한 목소리.
난 눈을 뜨지 않았어.
"진짜 치사하네. 삐졌냐? 하여간 삐돌이."
너야말로.
"이재환, 재환아."
네게서 처음 들어본 재환아, 라는 말에 눈을 뜨고 기대있던 몸을 일으켰어.
"이제야 눈뜨네, 진짜 삐돌이.
....잘 지냈어?"
졸업식 때도 한 방울 흘러나오지 않고 잘만 참아지던 눈물이,
왜 7년이 흐른 지금은 참아지지 않는걸까?
...남자가. 자존심이 있지 이게 뭐야.
"왜."
"응?"
"왜 이제야 와, 멍청아. 맨날 보자고 했으면서."
The End
이 글은 꼭 브금과 함께, 이 대사를 내뱉는 재환이의 얼굴을 상상하면서 읽어주시면 좋겠어요ㅎㅎㅎㅎ
독방에 올렸던 글인데, 맘에 들지 않는 부분은 수정해서 데려왔어요!
앞으로 한편이나 두편정도 되는 단편을 하나 둘 올릴 예정입니다
장편은 나중에 제가 능력이 된다면, 다시 도전해보려구요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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