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인이 날 두고 학원에 갔다. 망할, 학원. 오늘은 무슨 일이 있어도 꼭! 같이 집에 가고 싶어서 독서실로 출근했다. 좀 전에 독서실 입구에서 김종인과 손을 흔들고 올라와선 가방을 내려놓고 멍하니 앉아만 있었다. 누누이 얘기하는 거지만 그놈의 학원 안 다녔으면 좋겠다. 아니면 나랑 같이 다니던가. 점심시간 이후부턴 계속 실실 웃고 있었다. 15초 동안 웃으면 수명이 늘어난다고 하던데 기분도 좋고, 건강도 챙기고. 일석이조다, 일석이조. 음, 그래서 결국 공부는 거의 못했다. 이러다 성적 떨어지면 또 후회하고 자책할거면서 정신을 빼놓고 있네. 평소에도 공부를 계획적으로 열심히 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걱정은 하고 있었는데 요즘은 걱정도 안하고 있다. 내가 지금 이럴 때가 아니다. 학생의 본분은 공부랬어. 어차피 마치고 같이 집에 가기로 했으니까 조금만 기다리자. 공부를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참고서와 연습장을 꺼냈다. 근데 왜 자꾸 웃음이 나지? 1초 전에 공부 하겠다고 마음먹은 채 펜을 쥐어놓곤 연습장에 끄적거려 놓은 건, 다름 아닌 ‘1 하트’ 그리고 그 옆에 작게 내 이름과 김종인의 이름. 그걸 보고 있는데 또 웃음이 멈추지가 않아. 내가 언제부터 이렇게 바보가 됐지? 불판위에 구워지는 오징어처럼 몸을 베베 꼬다가 노트를 품에 끌어안고, 킥킥 아주 작은 소리로 웃었다. 커튼에 가려져 아무도 이 모습을 보지 못하는 게 천만 다행이다.
[공부 하고 있어?]
책상위에 올려놓은 핸드폰이 진동하며 떨리기에 깜짝 놀라서 봤더니 김종인의 문자다. 고작 문자 하나일뿐인데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응, 나 지금 완전 열심히 하고 있어!]
얼른 답장을 보냈다. 또 진동이 울리면 옆 사람이 시끄럽다고 눈치 줄까봐 얼른 무음으로 바꿨다. 답장을 보낸 지 10초도 안 됐는데 왜 이렇게 떨려? 빨리 답장해주라. 핸드폰만 붙잡고 있었다.
[거짓말. 너 너무 답장이 빨라.]
아, 들켰네. 쓸데없이 이럴 때만 눈치 빨라요, 아무튼.
[ㅎㅎㅎ지금부터 하려고 했어!]
내용을 확인하자마자 답장 써놓고 또, 빨리 보내면 답장이 빠르다고 뭐라고 할까봐 마음속으로 딱 10초만 셌다. 1분은 너무 길고, 10초가 적당한 것 같아서. 1분은 내가 못 기다리지, 암. 하나, 둘, 셋, 다섯, 여섯, 아홉, 열! 끝났어. 보내야지. 전송버튼을 눌렀다. 그런데, 이번엔 보내자마자 바로 김종인에게서 답장이 온다. 칼답이네, 칼답이야. 근데 넌 공부 안 해? 수업하고 있을 텐데.
[응. 마치고 전화 할게.]
진짜, 별말 아니고 딱 저 말뿐이었는데도 기분이 좋다. 내용과는 상관없이 그 아이와 문자를 하고 있는 지금이 신기하면서도 좋아. 좋아 죽을 것 같아. 김종인이 보고 있는 것도 아닌데 그 문자를 보며 마구 고개를 끄덕였다. 응, 기다리고 있을게! 답장을 보내려다가 말았다. 혹시나, 공부하는 데 방해가 될까봐서. 에잇, 이젠 나도 공부해야지. 눈 깜빡이면 마칠 시간이어라. 빨리 시간이 갔으면 좋겠다.
너와 나만의 시간
2부
5.
김종인이 쉬는 시간 마다 꼬박꼬박 우리 반에 출근하고 있다. 아침에도 같이 학교 와놓고선 내가 그렇게 보고 싶은가, 종 치자마자 아닌 척 하면서 앞문으로 들어와선 백현이랑 몇 마디 나누다가 내 자리로 걸어온다. 앞자리가 비어있으면 거기에 거꾸로 앉아서 계속 멀뚱멀뚱 날 쳐다본다. 수업시간에 꾸준히 문자도 하고 있고, 그래서 딱히 할 말이 없는데…. 얘기는 거의 안하고 그렇게 쳐다보다가 그냥 간다. 내가 웃으면 저도 따라 웃고. 김종인이 웃으면 나도 따라 웃으면서. 지금이 3교시 쉬는 시간인데, 오늘 하루 종일 그랬다. 수업을 알리는 종소리에 하는 수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서 ‘안녕.’ 손을 흔들며 멀어지는 뒷모습이 왜 이렇게 아쉬운 건지. 다음 쉬는 시간에 또 올 테지만, 10분이 1분 같다. 가지 마, 안 갔으면 좋겠다. 김종인이 우리 반이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아쉬운 마음에 괜히 인상을 찌푸리면서 옆에 앉은 짝을 쳐다봤다. 오늘도 이어폰을 끼고 혼자 중얼거리고 있다. 아, 내 짝이 니가 아니라 종인이었으면 참 좋았을 텐데. 내 시선을 느꼈는지 짝이 이어폰 한 쪽을 빼면서 나를 쳐다본다.
“왜?”
“아무것도 아니야.”
고개를 반대편으로 돌렸다. 방금까지 김종인 얼굴을 보고 있어서 그런지 짝지가 특별히 못나보여. 미안해, 미안. 내가 외모로 사람 판단하는 그런 애는 아닌데, 나도 모르게 그렇게 되네. 한숨을 쉬면서 서랍에 손을 넣어 다음 시간 교과서를 꺼냈다. 그러고 있는데, 뭔가가 내 팔을 쿡쿡 찌른다. 뭐야, 하면서 보니까 좀 전에 박찬열에게 빌려줬던 근현대사 노트다. 2교시 내내 졸더니 결국 나한테서 필기를 빌려갔다. 1교시가 국사였는데, 2교시마저 근현대사였으니 완전 지옥이지. 이건, 자라고 짜놓은 시간표야. 안자는 게 용해. 그래도, 나는 종인이랑 문자하면서 버텼는데 1교시를 무사히 넘긴 박찬열은 2교시에 무너지고 말았다. 아무튼, 그래서 쉬는 시간 내도록 그걸 베끼고 있더니 이제 다 베꼈나보다. 양이 많긴 많았지. 그런데 노트를 돌려주는 박찬열의 표정이 썩어있는 거다. 그래서 그걸 받으며 물었다.
“왜?”
“한번 펴봐.”
고갯짓으로 노트를 가리키며 펴보라기에 폈다. 내가 뭐 잘못이라도 했나? 오늘 한 필기를 천천히 훑었다. 6.10 만세운동, 광주학생 항일운동… 깔끔하게 필기만 잘 해놨는데? 왜, 뭐. 뭐가 문젠데? 모르겠어서, 노트를 보다가 박찬열을 쳐다봤다. 그랬더니, 탐탁지 않은 표정 그대로 노트 한 부분을 손가락으로 집어준다. 그래서 봤더니,
‘의열단(1919, 김종인, 윤세주, 길림)’
이렇게 써놓은 거다. 헐?
…난 진짜 몰랐는데. 김종인이라니! 김씨만 나오면 무조건 김종인이야? 김종인이 의열단을 만들었어? 김종인이?? 아, 미쳤나봐. 진짜 미친게 분명해. 난 김종인한테 미쳤어요! 넋을 빼놓고 문자하다가 필기를 했나보다. 아, 부끄럽다. 숨고 싶어. 펼쳐놓은 노트를 탁 접으며 박찬열을 봤다. 나를 보더니 팔을 벅벅 긁으며 몸을 부르르 떤다.
“미친놈. 진짜, 못 봐주겠으니까 정도껏해라.”
아무렴 어때. 내가 이만큼 김종인을 많이 생각하고 있다는 거 아니겠어? 조금 부끄럽긴 한데, 그래도 노트를 본 게 그 애가 아니라 박찬열이라서 다행이다. 아, 나중에 이거 보여주면 귀여워하려나? 보여줘야겠다. 껌딱지가 되고 싶다. 김종인한테 달라붙어서 하루 종일 안 떨어지게.
“야, 찬열아.”
“뭐!!”
“너 김종인이랑 반 바꾸면 안 돼?”
“시발, 뭐라는 거야 진짜….”
…흐흐. 소리 내어 웃으니 찬열이 보기 싫다고 고개를 반대편으로 돌려버린다.
一
수학시간에 엉덩이를 맞았다. 완전 아파. 아, 불난다. 여느 시간과 다름없이 그 애와 열심히 문자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는데 따가운 눈초리가 느껴져서 고개를 들어보니 수학이 날 주시하고 있는 거다. 깜짝 놀라서 얼른 서랍 속으로 핸드폰을 숨기고 책으로 꽁꽁 막아 놨다. 다행히, 핸드폰은 안 걸렸는데 대신 내가 찍혔다. 수업시간에 딴 짓한다고 수학을 얼마나 잘하면 저러겠냐면서 공개적으로 망신을 주는데 진짜 쪽팔려서 죽고 싶었다고. 나와서 문제를 풀어보라고 앞으로 불러내는데 하는 수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앞으로 걸어가는데 박찬열이 고개를 저으며 아주 작은 소리로 쯧쯧, 혀를 차고 저기 앞자리에서 백현이가 불쌍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는 게 보였다. 친구들의 무시와 동정이라니…. 하, 이럴 수가. 칠판 앞에 서서 분필까지 쥐었지만 결국 문제를 풀지 못했다. 그러곤 된통 혼이 났지, 뭐. 이 쉬운 문제 하나 못 푸는 놈이 딴 짓이나 하고 있고, 어쩌고저쩌고…. 이제 큰일 났다. 수학의 타깃이 변백현에서 나로 바뀌었다. 나 이제 수학시간마다 불려나가서 칠판 앞에 서있게 생겼어. 망했어, 망했다고!
오늘은 종인이가 학원에 안가는 날이다. 같이 집에 가는 길에 별 생각 없이 수학한테 맞아서 아프다고 말했다가 더 혼날 뻔했다. 난 걱정해줄 거라고 생각했는데 표정이 딱 굳어지면서 이렇게 말하는 거다. ‘앞으로 수업 시간에 문자 하지말자.’ 아, 싫은데…. 좀, 맘에 안 들어서 대답 없이 버티고 있었더니 인상을 딱 쓰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무서웠다. 그런 김종인은 또 처음 봤어. 아무튼, 그렇게 같이 걸어와선 각자의 집 앞에서 들어가지는 않고 멀뚱히 서 있다가, 김종인이 그러는 거다. ‘오늘 우리 집에서 같이 공부하자, 공부할 거 챙겨서 와.’ 그 말에 알겠다고 대답하곤, 집에 들어서자마자 교복부터 갈아입고 가방을 그대로 들고 옆집으로 향했다. 초인종을 누르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문이 열렸다. 오늘도 누나가 서 있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김종인이 서 있다. 나, 기다린 건가?
“빨리 왔네?”
“응. 빨리 왔지.”
김종인을 따라 들어간 그 애의 집이 이젠 너무 익숙하다. 이 시간이면 항상 집에서 혼자 있었는데, 앞으로는 자주 놀러와야겠다. 그나저나 오늘은 누나가 없는 모양이라고, 집이 꽤 조용하다고 생각하는데 소파에 누워있는 인영이 보인다. 아, 있구나. 얼굴에 오이를 잔뜩 붙인 채 누워있던 누나가 고개만 돌려 나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좀 무섭다.
“경수 왔어? 오늘은 누나 못 본 걸로 해라. 꼴이 이래서, 좀 부끄럽다 야.”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하려는데 김종인이 내 팔을 잡아 이끈다.
“우리 공부할 거니까 방해하지마라.”
우리? 우리…방금 우리라고 그랬나? 내가 잘못들은 건가? 기분이 이상하다. 귀가 간지럽고, 또 괜히 그 애에게 잡힌 팔이 간지럽다. 김종인에게 잡힌 채 그 아이의 방으로 끌려가다시피 하는데 자꾸 웃음이 난다. 실없이 웃었다. 문을 열고 종인이를 따라 들어간 방. 두 번째다. 전에 왔을 땐 향기에 심취해서 몰랐는데 방이 온통 파란색으로 도배가 되어있다. 파랑파랑 열매라도 먹었나. 새삼 새롭다. 문을 닫으며 고개를 돌려가며 구경을 하니, 그 아이가 다시 팔을 잡아당기며 책상 앞에다 끌어 앉힌다.
“앉아.”
왜, 나 아직 구경 덜했는데. 저번보단 상태가 좀 낫다. 전에는 책상이고 침대고 엉망이더니 오늘은 깨끗하게 정리되어있다. 내가 올 거라고 미리 정리해놨나? 귀엽기는. 씨익 웃으며 김종인을 보는데 그 아인 이미 나를 보지 않고 있었다. 뭘 하는 건지 혼자 부산스럽게 움직이기에 입을 다물고 유심히 관찰했더니 접이식 책상을 꺼내어 바닥에 펼치고 있는 게 아닌가.
“너 뭐해?”
내 물음에 열심히 책상을 조립하고 그 위에 차곡차곡 책을 올려놓던 그 애가, 그제야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본다.
“공부해.”
진짜, 공부해? 공부하자고 불러서 가방을 들춰 메고 오긴 했지만, 이건 내가 상상하던 그림이 아닌데….
“진짜 공부해?”
그래서 확인 차 다시 물었다. 뭐가 문제냐는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공부. 그래, 공부 좋지. 근데 공부는 혼자서도 할 수 있는 거 아니야? 넌 나랑 할 게 공부밖에 없어, 종인아? 한숨을 내쉬며 조금은 답답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그 애를 보는데 날 보는 둥 마는 둥 이미 책을 펴고 앉아 있다. 진짜 공부 할 생각 인가봐. 그 모습에 공부 하지 말고 놀자고는 못하겠는 거다. 그래, 공부. 조금만 하다가 놀자고 말 꺼내봐야지. 울며 겨자 먹기로 의자를 돌려 바닥에 내려놓은 가방에서 언어 책을 꺼냈다. 내 공부의 시작은 언어니까! 오늘은 왠지 언어만 하다가 끝날 것 같지만 어찌됐든 시작이 반 아니겠어? 내일은 다른 거 하면 되지, 뭐. 그러고 있는데 공부하던 김종인이 고개를 들어 나를 본다. 그러더니, 팔을 뻗어 내가 꺼내던 문제집을 잡으며 말했다. 뭐가 문제냐는 듯 쳐다보았다. 나 잘못한 거 없는데? 공부하라고 해서 꺼내고 있잖아, 지금.
“수학 책 없어?”
“나 수학 안 할 건데.”
“수능 안 볼거야?”
“그건 아니지만….”
“그럼 해.”
그러면서 내 손에 있던 언어 책을 빼앗으며 가방에 있을지 없을지도 모를 수학책을 찾으려고 애를 쓴다. 그냥 랜덤으로 챙겨오는 거라 오늘은 수학책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근데, 웬만하면 수학은 굳이 집에 가져오지 않는단 말이야. 학교에서 보는 것도 지긋지긋한데 집에까지 가져와야겠냐고. 아, 수학 얘기를 꺼내니 오늘 수학 시간에 맞은 엉덩이가 괜히 아프다. 백현이가 수학 때문에 짜증난다고 할 땐 몰랐는데 진짜 짜증난다. 뭔 놈의 수학이 매일매일 들었어? 내일 나 시킬 거 아냐?! 울고 싶다. 망할 수학! 수학 그놈의 수학! 그 생각을 하니 안 아프던 머리가 다 아파온다. 그래서 조금 인상을 쓰고 있는데 내 가방에서 그토록 찾던 걸 발견했는지 김종인이 꽤 만족스런 표정으로 내 손에 개념원리를 쥐어준다. 아, 개념원리. 니가 있었나보구나. 그립감이 좋지 않아. 내 손에 있는 게 니가 아니었어야했어.
“오늘 맞았다며. 너 찍혀서 내일도 불려나갈 거라며.”
“그렇긴 해.”
“모르는 거 있으면 물어봐, 내가 가르쳐 줄게.”
울상을 지으며 쳐다보니 작게 웃으며 힘내라고 말한다. 힘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개념원리를 펼쳐들었다. 진짜, 조금만 공부하다가 놀자고 할 거야. 아자, 도경수 파이팅!
***
오늘은 좀 짧네요 그쵸?ㅠㅠㅠㅠㅠ
대신 다음편은 길게 빠르게 데리고올게여... 미안해요 사랑해요..
몽글몽글 쏘쏘 낑깡 백토끼 라면 파리채 민트색 순백흑백현 찌롱 까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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