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만의 시간
2부
5-2.
사각사각. 등 뒤로 연필 소리가 들린다. 조금만 공부할 것 같았는데 벌써 두 시간째 이러고 앉아 있다. 들리는 소음이라곤, 숨소리와 사각거리는 글 쓰는 소리 밖에 없어서 말을 걸지도 못하겠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개념원리만 보고 있었다. 머리가 아파 누가 나를 좀 살려주세요. 두 시간째 수학 공부를 하다니.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김종인이 아니었다면 절대 볼 수 없는 광경이라 이거거든. 풀다가 모르는 문제가 있으면 가르쳐주겠다고 했지만, 내가 풀 수 있는 문제가 못 푸는 문제보다 적었기에 한숨이 푹 나온다. 가르쳐 줘야 될 게 산더미야 종인아. 나 가르쳐주려면 너 공부 못해. 못하니까 싫어하고, 싫어하니까 더 멀리하게 되더니만 결국 이 지경까지 와버렸다. 수학이랑 이렇게 멀어지면 안 되는데. 김종인 말마따나 내년엔 수능도 쳐야되는데, 수리가 필요 없는 것도 아니고. 그 생각만 하면 또 가슴이 막막하다. 수학 꼭 잘 해야 돼? 돈 계산만 할 수 있으면 되는 거 아냐? 아, 진짜 머리 아파. 시발 망할 놈의 극한! 극한이 나를 고통스럽게 한다. 숨이 막힌다. 숨이 막혀. 아무리 들여다봐도 모르겠어서 책을 들고 바닥에 앉아있는 김종인에게로 갔다.
“모르는 거 있어?”
쥐고 있던 펜을 놓고 나를 본다. 김종인이 뭘 하기에 그렇게 집중을 하고 있었는지 궁금해서 내려다 봤더니 그 앞에 펼쳐져 있는 건 나랑 똑같은 개념원리. 나보다 더 앞서 나가고 있긴 하지만 빨간색으로 칠해진 동그라미가 빽빽해. 난 틀릴까봐 답을 맞춰보지도 않는데. 그걸 보니까 괜히 심술이 난다. 넌 니가 좋아하고 잘하는 수학 하면서, 왜 난 언어 못하게 해? 내가 수학을 좀 못해서 그렇지 딴 건 그래도 어느 정도 한다, 뭐. 대답 대신 손으로 문제를 짚었다. 김종인이 ‘잠깐만….’ 하면서 내 책을 들고 가 혼자 풀어본다. 그걸 가만히 지켜보고 있자니 갑자기 걱정이 되는 거다. 만약에, 내가 물어 본 문제가 존나 쉬운 거면 어떡하지? 진짜 기본 중의 기본이면 어떡하냔 말이야. 다른 사람도 아니고 좋아하는 사람에게 내 약점을 들키고 싶지 않은 마음. 더 완벽해 보이고 싶은 그런 마음이 든다. 좋은 모습만 보여줘도 모자랄 판국에 약점을 들키게 생겼다. 그래서 더 초조해졌다. 꽤 집중해서 문제를 풀고 있는 그 아이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나도 모르게 손을 입으로 가져갔다.
“물지 마.”
문제 푼다고 정신없는 줄 알았는데 멀티도 가능한 모양이다. 김종인이 손으로 입에 물려진 내 손을 잡아 내린다. 그러면서 책 밑에 두고 있던 연습장을 꺼내서 펼치면서 나를 본다. 응? 왜 날 봐? 나를 보고 있는 그 까만 눈을 마주봤더니 옆 자리를 손으로 탕탕 내리친다.
“이리와, 가르쳐 줄게.”
아, 마주보고 있으면 가르쳐 주기 힘들지, 참. 일어나기 귀찮아서 엉덩이를 조금 옮겨 앉았다. 김종인의 얼굴이 더 가까이 있다. 아, 어떡해. 설명이고 뭐고 하나도 안 들릴 것 같아. 가까이서 보니까 더 좋아서 넋을 빼고 쳐다보고 있었더니, 그 애가 나를 보고 웃는다.
“자, 여기 봐.”
웃는 것도 잠시 내 팔을 잡고 열심히 설명을 해준다. 연습장에 글씨를 써 내려가면서 낮은 목소리로 조곤조곤 설명해주는데, 간간히 들리는 거라곤 리미트, 무한대가 어쩌고저쩌고…
“최고차항 엔 제곱으로 분모, 분자를 나누면…”
목소리가 좋다. 나도 목소리 좋은데, 나도 설명해 줄 수 있는데. 종인아 넌 수학 잘하니까 언어는 못 해야 돼. 그래서 나한테 언어 물어보고 그래. 그러면 내가 친절하게 설명해 줄게. 원한다면 시를 읊어줄 수도 있어. 니 눈을 한번 보고, 참고서를 짚으면서 열심히 설명해 주면 넌 나한테 반하겠지? 내가 지금 그런 것처럼 넋을 놓고 나를 쳐다보겠지? 아, 생각만 해도 너무 기분이 좋다. 그런 생각은 잠시 접어두고 다시 열심히 가르쳐주려고 노력하는 종인이의 설명에 귀 기울였다. 내가 아무리 수학을 못한다지만 느낌이라는 게 있잖아. 왠지, 내가 물어본 문제는 굉장히 쉬운 문제인 것 같다. 워낙 깔끔하게 설명을 해줘서 대충은 알아듣긴 하겠는데, 이론이 약해서 혼자 풀려고 하면 무슨 소린지 모를 것 같다. 음, 그러니까 한 마디로 잘 모르겠다고. 나도 모르게 한숨을 푹 내 쉬었다.
“이해가 안가?”
종인이가 설명하다 말고 나를 쳐다보며 묻는다. 진짜, 미안한데 잘 모르겠어서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말하면, 두 시간째 말도 안하고 공부하던 김종인의 목소리가 되게 오랜만이라서 더 듣고 싶은 것도 있고.
“나 좀 멍청하지?”
“아냐, 잘 모를 수도 있지 뭐.”
그 아이가 연습장을 뒤로 넘기며 처음부터 다시 설명하기 시작한다.
“자, 처음부터 다시 하자.”
나는 병신인가봐. 나는 바보였어요. 나는 돌대가리야. 벌써 세 번째다. 똑같은 설명을 세 번이나 들어놓고도 이해가 잘 안 간다. 막, 세 번째 설명을 마치고 나를 돌아보는 그 애의 눈에 ‘이젠 좀 알아들었겠지?’ 라고 적혀 있는 것 같다. 왠지 모를 기대감과 뿌듯함이 섞여는 눈빛이다. 이번에도 모르겠다고 하면 날 진짜 돌대가리로 볼 것 같아서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중에, 집에 가서 혼자 답지보고 열심히 공부해야겠다. 종인아, 내가 수학 쪽으로 머리가 잘 안 돌아가서 그렇지 아예 돌대가린 아니다? 너, 그거 알아야 돼. 종인이가 나한테 꼴도 보기 싫은 개념 원리 책을 돌려준다. 그걸 돌려받고 다시 엉덩이를 조금 옮겨서 마주보는 자리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랬더니, 김종인이 책상에 올라가라고 눈짓을 한다. 모른 척하면서 바닥에 버티고 앉았다. 아니, 두 시간이면 쉴 때도 되지 않았나? 좀 쉬었다 하자고 말을 꺼내려는데 그 아이가 다시 펜을 쥔다. 아씨, 넌 도대체 언제 쉬어? 쉴 생각은 있는 거야?
“올라가서 공부 안 할 거야?”
“나 여기서 할래.”
내말에 쳐다보지도 않고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면서 지금 몇 시냐고 묻기에 핸드폰을 꺼내서 보여줬다. 아홉시 십 분이다.
“삼십분까지만 공부하자.”
오예! 이십분만 버티면 드디어 쉬겠구나! 갑자기 기뻐졌다. 얼른 고개를 끄덕이며 나도 그애를 따라서 펜을 쥐었다.
그런데, 내가 딱 하나 간과한 게 있었다. 책상 펴놓고 마주 앉아서 공부…가 될 리가 없잖아. 힐끔힐끔 쳐다보고 다시 극한값을 찾아 떠나다가 다시 고개 들어서 얼굴보고 그러기를 벌써 수십 번도 넘게 한 것 같다. 아, 집중하고 있는 남자의 모습. 멋지다. 김종인도 날 좀 멋있게 봐줬으면 좋겠는데. 공부가 안 되네요, 공부가…. 난 공부가 안 돼서 죽을 것 같은데 김종인은 좀 다른가보다. 얜 되게 공부 잘 되나봐. 나 쳐다보지도 않고 고개 숙인 채로 계속 뭔가를 끄적거려. 힐끔힐끔 계속 훔쳐보다가 집중하느라 내가 보는 것도 모르나싶어서 아예 턱을 괴고 대놓고 쳐다봤다. 시계를 보니 이제 십 분 지났을 뿐인데. 아니, 그런데 아홉시 반에 쉬는 거나 지금 쉬는 거나 뭐가 달라? 내말이 틀려, 종인아?
대답 없는 까만 정수리가 야속하다. 어떻게 정수리까지 잘생겼을까. 야, 김종인 그거 알아? 완전 잘생겼어 너. 이렇게 잘생기고, 공부도 잘하고, 목소리도 좋고, 성격도 좋은 애가 나랑 사귑니다, 여러분. 얘 내꺼에요. 내꺼. 내가 침 발라놨어. 내꺼? 내꺼 맞지 내꺼지 이제. 아, 그렇게 생각하니까 또 기분이 너무 좋은 거다. 하늘로 승천 할 것 같다. 누가 날개만 달아주면 대기권 뚫고 열권까지 다녀 올 수 있을 것 같다. 흐흐, 진짜 좋아.
뚫어져라 쳐다보는 내 시선을 눈치 챘는지 어쨌는지 김종인의 고개가 점점 더 아래로 숙여지는 거다. 거기에 맞춰 내 눈동자도 점점 아래로 향하고 있다. 진짜 많이 숙였다. 그러다 책상이랑 뽀뽀하겠다. 자는 것도 아니고, 새 빨개진 귀가 보인다. 아닌 척 하면서 다 느끼고 있었어. 나 때문에 숙이는 게 맞는 모양이다. 그걸 보고 있자니, 속담 하나가 떠오른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 물론, 뜻은 이 상황과 전혀 관계가 없지만 깊게 파고들지 말자구요, 우리. 종인아. 너 벼야?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는 벼냐고. 아, 어감이 좀 이상하긴 한데? 너 얼굴 완전 빨갛다 종인아. 익었어. 찌르면,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다. 아, 진짜 어떡하지? 이젠 하다못해 귀엽기까지 해….
그 모습이 못 견디게 귀여워서 소리 내어 웃었다. 김종인이 빨간 얼굴을 들었다. 그러더니 하는 수 없이 펜을 놓으며 날 본다.
“나 뚫어질 것 같아, 그만 봐.”
그걸 보니, 또 놀려주고 싶은 거다. 지금 김종인을 보아하니 공부가 될 리가 없어. 얼굴이 빨갛고, 보지 말라고 하면서도 봐줬으면 하는 눈빛으로 날 보는 걸로 봐서 이제 좀 쉬자고 말 할 것 같았다. 그래서 얼른 선수를 쳤다.
“아, 미안. 공부하자, 공부.”
그래놓고 고개 숙여 펜을 쥐는데, 이번엔 반대로 내 정수리에 닿는 시선이 따가워 미칠 것 같았다. 몰랐는데, 시선이 다 느껴진다. 아까, 김종인이 이런 기분이었을까. 괜히 민망하고 부끄러워서 얼굴이 터질 것 같다. 막 온몸에 있는 열이 얼굴로 모조리 빨려들어가는 느낌 있잖아 막. 그런 느낌이야. 처음엔 연습장에 분명 수학 공식을 풀어놓고 있었는데 이젠 점점 형태를 알 수 없는 이상한 그림으로 바뀌어 간다. 펜을 쥔 손에도 힘이 빠져…. 아이쿠야. 김종인이 내 손을 탁 하고 때린다. 놀래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봤다. 나, 설마 아직도 얼굴 빨개?
“경수야.”
“왜?”
“너 되게 귀여워.”
김종인이 한껏 풀어진 얼굴로 나를 보며 웃는다. 그 미소가, 또 말하는 게 예뻐서 나도 그냥 따라 웃게 된다. 그래서 마주보고 웃었다. 공부는 무슨. 이제 공부는 끝났어, 우리. 둘 다 펜을 놓고 가만히 바라보기만 했다. 김종인의 까만 눈동자에 비친 내가 보일 정도로 빤히 보다가 갑자기 부끄러워져서 얼른 시선을 피했다. 그 아이가 작게 웃는다. 그러면서 웃음기가 사라지고 진지해진 표정으로 조금은 느릿하게 눈을 깜빡이며 두 손으로 내 얼굴을 잡아 올리는데 분위기가 좀 이상해. 이상해졌어. 괜히 입술이 마르는 것 같아서 혀를 내어 입술을 핥았다. 내 눈을 바라보던 그 아이의 시선이 조금 아래로 내려간다. 내 입술을 쳐다보고 있는 것 같은 건, 내 착각일까. 숨이 막힐 것 같이 묘한 공기가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것만 같다. 뭔가 나른하게 눈동자가 풀리는 그런, 묘한 분위기다.
“더, 덥다. 그치?”
나를 바라보는 그 아이의 표정이, 또 그런 분위기가 너무 민망해서 참지 못하고 침묵을 깼다. 생각하고 꺼낸 말은 아니었는데, 막상 던져놓고 보니 또 그런 것도 같다. 참 이상한 일이다. 여전히 그 아이의 손에 얼굴이 잡힌 채 멀뚱멀뚱 눈을 깜빡였다.
“더워?”
종인이가 얼굴을 잡고 있던 손을 풀고서 손 부채질을 해준다. 아, 진짜 다정해. 녹아내릴 것 같다. 나도 모르게 또 웃음이 난다. 얼굴 옆에서 팔랑이는 손이 너무 귀엽다.
“괜찮아.”
그래서, 괜찮다고 말하며 그 손을 잡아 내렸다. 따뜻하다. 그 애의 손이 닿자마자 손끝이 갑자기 뜨거워지는 느낌이라 얼른 잡고 있던 손을 놓았다. 그랬는데, 언제 떨어졌냐는 듯 다시 그 애가 내 손을 잡아온다. 그것도 빠져나가지 못하게 깍지를 끼면서. 내가 손이 좀 작은 편이라 김종인의 손 안에 쏙 들어간다. 아빠 손에 잡힌 애기 손 같다.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맥박소리가 쿵쾅쿵쾅 난리도 아니다. 그 아이도 나처럼 긴장하고 있을까. 올려다봤는데, 전혀 그런 표정이 아니다. 되게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내 손을 잡고 장난을 친다. 전에, 소파에서 그랬던 것처럼. 뭐야…, 김빠져. 나만 이렇게 떨리나? 내가 이상한 거야? 벅차올랐던 마음이 조금 김샜다. 살짝 섭섭한 마음에 입을 쭉 내밀고 보면, 그 애는 내 손가락을 가지고 놀면서 내게 말한다.
“너랑 공부 같이하면 안 될 것 같아.”
“왜?”
“공부가 안 돼.”
그러면서 그냥 웃는다. 근데, 그 웃음이 의미하는 바를 알 것 같아서 묻지 않았다. 이번엔 그냥 넘어가줘야겠다. 왠지, 그 애의 입에서 나오는 말을 들으면 내가 더 부끄러워질 것 같아서.
“왜냐고 안 물어봐?”
“…….”
나도 알 것 같다니까, 글쎄.
“…떨려서.”
“…….”
“그래서, 공부가 하나도 안 돼.”
부끄러워서 일부러 묻지 않은 거였는데 먼저 말한다. 말만 놓고 보면 되게 느끼할 수도 있는 데 김종인이 너무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말해서 별로 오그라들지도 않는다. 아, 나 또 알았어. 김종인은, 연기를 잘한다. 뭐랄까, 되게 아무렇지 않은 척? 그런 걸 잘하는 것 같다. 방금도 봐, 공부 열심히 하는 것 같았는데 결국엔 하나도 못했대. 거기에 깜빡 속았잖아, 나는. 이제 알았으니까 안 속아야지. 아, 기분 좋다. 나만 안달내고 있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역시, 김종인도 속으론 부끄러워하고 있었던 거야. 웃는 얼굴로 잡고 있는 그 애의 손을 더 세게 쥐었다. 근데, 왠지 분위기가 좀 전보다 더 이상야릇해졌다고 느끼는 건 나뿐인가. 종인이의 대사 때문인지 한층 더 묘해졌다. 좋아서 잡고 있는 손이 이상하게 끈적거린다. 여전히 손은 맞잡고 있으면서 둘 다 은근슬쩍 서로의 시선을 피했다. 너도 나랑 같은 생각을 하는 거구나.
“…….”
“…….”
계속 피하다가, 딱 한번 눈이 마주쳤다. 그 아이의 얼굴이 점점 가까워진다. 올 것이 왔나. 김종인이 눈을 감는다.
“…….”
나도, 눈을 감았다.
“…….”
김종인이랑 뽀..뽀하면 어떤 느낌일까. 좋아하는 사람이랑 뽀..뽀하면 되게 좋을 것 같은데. 이 순간 모든 과거는 없는 거다. 나는 처음 뽀..뽀하는 거야. 너랑. 눈을 감으니 더 생생하게 느껴진다. 시간이 더디게 가는 것 같다. 1초가 이렇게 길었던가. 마음이 닿는 게 힘들었으니 입술이 닿는 것도 이렇게 힘이 드나. 아, 떨려. 키스도 아니고 뽀..뽀 한번 하는데 그게 이렇게 어렵다. 그 아이의 숨소리가 더 크게 들려온다. 온기가 더 가까운 곳에서 느껴진다. 다가온다. 다가온다. 다가온…
“너네 뭐해?”
갑자기 문이 벌컥 열리며 들려오는 누나의 목소리에 눈을 번쩍 떴다. 그리고 눈앞에 있는 김종인의 얼굴을 그대로 밀어버렸다.
“…….”
내 힘 때문에 저 멀리로 밀쳐진 김종인이 오만상을 찌푸린 채 눈을 뜬다. 시선이 마주칠까 무서워 얼른 고개를 돌려 누나를 봤다. 헐. 누나가 설마 그걸 다 보고 있었던 건 아니겠지? 이마에 땀이 난다.
“공부한다더니 장난이나 치고 있고, 쯧쯧. 김종인 정신 차려라?”
“아, 왜 왔는데?”
종인이를 쳐다보지도 못하고 얼어서 누나만 빤히 보고 있는데, 누나를 향한 목소리가 짜증이 섞인 목소리다. 그것도 아주, 많이.
“경수야, 이리 나와서 누나랑 치킨먹자. 먹고 해, 먹고. 금강산도 식후경이라잖아? 빨리 나와.”
인상 쓰고 있는 김종인이 무서워서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애기 오리가 엄마오리 뒤를 따르는 것처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뒤도 돌아보지 않고 누나 뒤를 졸졸 쫓아갔다. 문을 열고 거실로 나가니 치킨냄새가 진동을 한다. 아, 십분만 아니, 오 분만 더 늦게 오지! 망할 치킨. 치킨이 뭐라고 그 중요한 순간을 방해해? 조금만 더 가까이 오면 됐는데, 진짜 조금만 더! 김종인이 침 꼴깍 삼키는 소리도 들었다고요, 난. 그럼 뭐해. 그러면 뭐하냐고. 이 손으로 김종인 얼굴을 밀어버렸어. 그것도 존나 세게. 진심으로 울고 싶다. 아, 진짜 나 여기 드러누워서 울 거야. 김종인이랑 뽀..뽀. 아무튼 그래 그 뽀..뽀 할 수 있었는데!! 억장이 무너지는 느낌이라는 게 바로 이런 거구나. 아, 가슴이 답답하다. 주먹을 쥐고 가슴을 쾅쾅 내리쳤다. 그런 내게 누나가 닭다리를 하나 쥐어 준다.
“많이 먹어, 경수야.”
누나. 이 순간 난 누나가 너무 미워요. 엉엉.
一
입술이 다 번들거린다. 이 모든 건 다 닭 때문이야. 완전히 김샜다. 종인이는 자꾸 누나한테 짜증을 내고, 나는 너무 미안해서 고개를 숙이고 닭만 뜯다가 가방을 들고 나왔다. 가보겠다고 인사를 하는데 김종인이 웬일로 자리에서 일어나 나를 따라나선다. 아니, 엎어지면 코 닿을 데 사는 데 뭘 굳이 배웅을 하고 그래? 어이가 없는 상황이지만 일단 그렇게 해주면 나야 좋지. 문을 열고 나와 놓곤 잠시만 기다리라더니 다시 들어가선 책을 하나 들고 나온다. 뭐야? 쳐다봤더니 수학 교과서다. 받을 생각은 안 하고 멀뚱멀뚱 쳐다봤다. 김종인이 어색한 표정으로 그걸 내 손에 쥐어준다.
“내일은 맞지 말라고.”
“그럼 넌?”
“난 내일 수학 안 들었어.”
아, 완전 감동이다. 무한 감동이야. 괜히 코끝이 찡해진다. 아까 내가 그렇게 세게 밀었는데 내일은 엉덩이 맞지 말라고, 수학책까지 빌려주고….
“고마워.”
그랬더니, 김종인이 내 눈을 못 마주치면서 고개를 푹 숙여버린다. 뭐야, 부끄럽나? 아깐 이보다 더 한 것도 할 뻔 했는데 이제 와서 이게 부끄러워? 이해는 안 가는데 귀엽다. 그러니까 봐줘야겠다. 혼자 웃으며 우리 집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집이 가까운 게 원망스럽긴 처음이다, 내가 또. 한 걸음을 열 걸음이라도 되는 것처럼 느릿느릿 걸었다. 그런데도 김종인이 자꾸 졸졸 쫓아온다. 금세 우리 집 앞에 다다랐다. 나도, 그 아이도 말이 없다. 아까 괜히 그러는 바람에 이상하게 어색해졌어. 울고 싶다. 망할. 아니, 경수야.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얼굴을 그렇게 밀어버리면 어떡해? 내 손이 다 원망스럽다. 내 뒤에서 여전히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그 애를 돌아보는데, 발걸음이 영 떨어지질 않는다. 그래도 오늘 많이 봤고, 내일은 더 많이 볼 거니까 괜찮다고 오늘 못한 뽀..뽀는 다음에 하면 된다고 위로하며 집 앞에 섰다.
“나 들어갈게. 내일 보자.”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김종인에게 팔랑팔랑 손을 흔드는데 그 애가 내 팔을 턱하니 잡는다. 잡힌 팔을 한번 쳐다보고, 그 아이를 봤다. 오호라, 내가 집에 들어가는 게 싫은 모양이구나. 알면서 괜히 되물었다. 확인하고 싶어서.
“왜?”
내 물음에 입술을 달싹이면서도 말을 못한다. 오랜만에 보는 수줍은 김종인이다. 아, 귀여워.
“…왜?”
놀려주고 싶은 마음에 또 한 번 물었다. 그 애가 한 번 더 입술을 달싹이다가 아주 작은 목소리로 대답한다.
“…조금만 있다가 가.”
그게 너무 귀여워서 좀 더 놀려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애가 고개를 들어 나를 보는데 잠시 마주친 그 눈빛 때문에 결국 포기해버리고 말았다. 까만 두 눈동자엔 오롯이 나만 담겨있었다. 때문에 얼굴에 있던 웃음기가 지워졌다. 뭐랄까, 눈만 봐도 그 애가 어떤 마음을 가지고 내 앞에 서 있는지 알 것 같아서.
“…….”
약속 한 것처럼 서로 말이 없었다. 그저 귀엽게만 봤는데, 눈을 마주하고 나니까 그러면 안 될 것 같아서 나까지 진지해지고 만다. 솔직히 말하면, 예전의 나에게 상처받았을 그 아이를 잠시간 잊고 지냈다. 지금은 내 마음이 김종인의 마음보다 더 크다고 생각했으니까. 조금 전 마주한 눈에는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고 깊은 그 아이의 과거까지 담겨있었다. 내가 건드릴 수 없는 모든 마음까지. 내가 조금 더 어릴 때, 혼자 나를 바라보며 이 순간을 꿈꿔왔을 그 아이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
해가 지고 어두운 거리엔 인기척이라곤 느껴지지 않는다. 가로등 불빛에 비쳐서 유난히 그 얼굴에 더 빛이 나는 것 같다. 그 아이는 무언가 내게 할 말이 있는 듯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고 있다. 자꾸 내 시선을 피하며 주먹을 쥐었다 놓았다 한다. 그걸 보는데 뭐랄까,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아득해졌다. 시간이 멈춘 것처럼 주위의 소음이 하나도 들리지 않는다. 느릿하게 눈을 깜빡여 여전히 말이 없는 그 아이를 바라보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심장이 쿵쾅쿵쾅 빨리 뛴다. 그 소리가 점점 커지는 것만 같다. 나도 모르게 그 소리에 집중해가고 있을 때쯤, 갑자기 김종인이 내 얼굴을 잡아 왔다. 바로 코앞에 있는 그 얼굴이 보인다. 코가 스쳤다. 바로 지금, 뜨고 있던 눈을 감아야 할 것 같은 느낌에 살포시 눈꺼풀이 아래로 내려와 눈을 덮으면 조심스럽게 맞닿아오는 입술이 있다. 말랑말랑한 그 느낌이 너무도 생생하다. 닿은 입술 끝에서 떨림이 느껴진다.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
여러분 제가 뭐랬어욬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음편은 길고 빠르게 데리고 온다 그랬잖아요? 흐헣
약속지켰습니당 ^0^
그나저나 아그대는 그냥... 그래요...
네.. 좀 그래요.....
암튼, 오늘도 너무 감사합니다
사랑해요 하트!!!!!!!
몽글몽글 쏘쏘 낑깡 백토끼 라면 파리채 민트색 순백흑백현 찌롱 까꿍
링세 아이엠벱 블슈 다이트 아가 마가렛됴 긍긍 춥파춥스 일초 딘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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