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들어요
[쑨환]나랑 놀지마
"지금 당장 생각나는 사람을 그려와라. 다음주까지."
듣자말자 부모님보다 너가 생각나는 내가 너무 미웠다.
*
"...그래서 얘랑 밥을 먹고 왔다고..?"
"응. 미안 기다려야 하는데 우리부 후배이기도 하고.. 혼자 밥먹는다잖아.. "
"...나는 찾지고 않고..?"
"미안...!"
다른반이라 점심시간이 되면 항상 만나서 밥을 같이 먹는게 암묵적인 규칙이였다. 누가 그러자고 한 것도 아니고 그냥 아무말 없이 맺어진 규칙이였다. 약속이였다. 그게 당연한 거였고 지금까지도 그래왔다. 상실감이 커졌다. 그것도 여자를 상대로. 태환은 실망감이 가득 담겨진 눈으로 쑨양을 쳐다보면서도 머리속에는 이게 아닌데. 계집애가 아니고서야 항상 같이 밥을 먹던 애가 다른 애랑 먹는다고 이렇게 큰 실망감과 슬픔이 닥치진 않는다. 나는 왜 이런거지. 왜 이런거야.
쑨양의 옆에 달라붙어 나를 겁먹은 듯이 쳐다보는 여자아이를 노려보다가 몸을 돌려 걸어갔다. 당황한 듯이 내 이름은 부르는 녀석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나는 꽤나 큰 고민에 빠졌기 때문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야! 박태환! 고작 이것때문에 삐질꺼냐? 넌?"
"안삐졌어"
"내가 미안해 이젠 꼭 같이 밥 먹을께"
"안삐졌다고..! 아 팔목아파!"
사실은 너가 날 잡아와주길 바랬던 마음을 마주하게 되어서. 거칠게 나를 잡아오는 이 힘이 싫지는 않다. 나는 왜 이런거지. 소리가 점점 커져서 어느새 사람들은 우리를 주목하고 있었다. 사람들의 시선에 당황한 쑨양의 팔힘이 없어지자 나는 급히 뛰어갔다. 너에게서 도망가고 싶어. 너하고 가까이 있으면 내가 미친놈이 되어 버린것만 같아. 미쳐버린것만 같아. 인정하기 싫어... 이상해 마음이 이상해 내가 왜이런거야. 너하고만 있으면 내가 구역질이 나.
나는 미술. 그자식은 수영.
내가 가만히 앉아 너를 생각하며 너를 그리면, 너는 파란 수영장 안에서 물살을 가르며 어딘가로 헤엄쳐 가지. 그곳이 어디인지 몰라서 내가 더욱 불안해. 나는 그저 앉아서 너를 바라 볼 뿐인데. 너는 계속 헤엄을 치려고만 해. 이런게 친구인걸까?
잘 다듬은 연필을 쥐고 눈을 감아 보았다. 검은 배경 위에 하나씩 너가 떠오른다. 굵은 눈썹. 독수리 부리처럼 이상하게 휜 너의 입술. 조금 어리광과 장난기를 머금은 눈. 가지런히 옆으로 뉘여 있는 앞머리이지만 뒷머리는 삐죽 튀어나와 있어. 맨날 그렇게 삐죽 튀어 나와 있어서 내가 좀 다듬으려고 머리에 손을 대면 너는 내 손에 부비적 거리잖아. 그거 사실 엄청 귀여운거 아는지 모르겠다. 눈을 감은 태환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 있었다. 그리곤 말없이 하얀 종이 위로 그리기 시작했다. 너가 이렇게 생겼었던가. 휴대폰을 열어서 사진을 잠깐 보다가. 다시 그리다. 잠시 생각하다가. 얼굴의 점 수를 세어보다가.. 너를 생각 해 보다가. 다시 전부 지우고.. 그리고.. 가슴에 담아 보고... 이상하다는걸 깨닫고..
갑자기 차오르는 짜쯩남에 태환은 연필로 종이를 북북 그어 버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이상해져 버렸어. 너와의 첫만남은 그저 평범한 만남이였는데. 나의 감정이 너에게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져 버린것만 같다. 쌍커풀진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마음이 너무 답답하고 울컥거렸다. 이런 마음은 커져 버리면 안된다는걸 잘 안다.
어느새 어두워진 미술실에 태환은 늘어지듯이 담겨있다.
"태환..! 태환.. 기다려 태환"
"...왜.."
"미안해.. 많이 화났어?"
"아니"
계속 마주쳐 오려는 눈때문에 얼굴이 뜨거웠다. 그러다 한번 본 쑨양의 얼굴은 퉁퉁 부어있다. 깜짝 놀란 태환은 오히려 쑨양의 얼굴을 붙잡고 물어왔다.
"야! 너 얼굴 왜이래"
"...니가 계속 화나있잖아.."
"그것때문에 왜 울냐고"
"싫단 말이야.."
마음속 뭉친 모래들이 살살 풀어졌다. 모래들은 차갑게 녹아들어 가벼워 졌다. 입꼬리가 살살 올라가는걸 느끼면서 나는 일부러 녀석에게 더 못된 소리를 해 댄다. 바보야 니가 이러니까 바보소리를 듣는거야. 내가 너한테 화낸다고 너가 왜 울어 바보같이 이 바보야 너진짜 바보야 흐흐 그거가지고 왜 울고 그러냐 이 바보야. 바보가 바보소리 들으니 더 좋지 이 바보야
연필을 쥐고 잠시 생각에 빠졌다. 나는. 그럼 녀석을 좋아하는 것일까? 그렇다고 치자. 그러면 그 뒤는 어쩔껀데? 녀석의 옆에서 녀석이 나에게 하는 행동때문에 마음을 졸이고 슬퍼하고 기뻐하고 기대하고. 그러다 갑자기 실망하고 혼자서 마음을 아파야 하나..? 나도 분명 사랑받고 싶어 할텐데. 분명 그러다 갑자기 키스하고 싶어질때도 있을테고. 또 그걸 참아내고. 밤마다 떠올리기 싫어도 녀석이 항상 눈앞에 생생히 그려지겠지. 근데 그건 지금도 그렇잖아..?
나는 잠시 멍해졌다. 무언가 인정해버린 기분이 들었다.
밖이 소란스러웠다. 미술실 창문 밖으로 쳐다보니 수영부들이 훈련하는 수영장이 보였다. 넘실거리는 커다란 수영장 가운데에 유달리 키가 큰 녀석이 보였다. 그리고 녀석의 품안에 안겨있는 얼마전 여자후배가 보였다. 여자는 부끄럽다는 듯이 녀석의 어깨에 얼굴을 파묻고 꼭 껴안았다. 주위는 사귀라며 소리를 질러대고 나는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다 쑨양이 고개를 올렸다. 나와 눈이 마주쳤다.
나는 급히 몸을 돌려 다시 의자에 앉았다. 스케치북에 전부 그려진 녀석의 얼굴이 너무나 얄미워 보였다.
"야"
"태환..! 아까는...!"
"이거 가져"
방금 수영장에서 나온 탓인지 몸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는 쑨양의 가슴에 퍽 하고 때리듯이 종이를 건넸다. 놀란 기색이 가득찬 채로 종이를 받았다. 완전히 꾸깃꾸깃해져 내용이 보이지 않았다.
"이게 뭐.."
"너 이제 ... 나랑 놀지마"
쑨양은 아무 말 없이 태환을 바라 볼 뿐이였다. 그 이유는 태환이 눈물을 방울방울 흘린채 얼굴이 종이처럼 잔뜩 꾸겨져 있었기 때문이였다. 그리곤 저멀리 사라져 버렸다. 말없이 사라진 그 자리를 바라보던 쑨양은 자신의 손에 들려있는 종이가 생각났다. 그리곤 조심히 펼쳤다.
잔뜩 구겨져 있는 종이위엔 자신의 얼굴이 그려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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