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살의 나이로 소과를 합격하고, 13살의 나이에 성균관에 입학하였으며 18의 나이로 대과에 합격한 사람이었다. 조선 팔도의 사람들 중 김남준, 대사간을 모르는 이는 없었다. 그는 냉철하고 대담했으며 왕에게 제대로 된 충언을 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모든 사람들이 전하께 고개를 숙이고 몸을 바닥에 붙여 천세 천세 천천세를 외칠 때 유일히 왕 옆에서 모든 걸 내려다보던 사람이었다. 그게 바로 김남준이었다.
나와 남준이는 유년기 때 친구 사이였다. 친구. 그래, 친구였다. 나의 아버님과 남준이의 아버님은 서로 둘도 없는 친구셨다. 허나, 김남준의 아버님은 우리 나이 7살. 역적으로 몰려 처참히 살해 당하셨지. 지금의 왕 앞에서. 남준이는 그때 아버님을 잃고, 나의 아버님의 양자로 들어오게 되었다. 아마도 그때부터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증오심을 키워왔을 것이다. 그랬기에 이 어린 나이에 지금의 대사간이라는 자리까지 올라올 수 있었던 것이겠지.
나는 언제나 김남준의 편이었다. 뒷골목에서도, 아버지 앞에서도, 하늘에 맹세하고도. 하지만 하늘은 나를 가만두지 않았다. 내 나이 열여덟, 잔뜩 늙어버린 왕의 부인이 되었고, 그 날은 남준이의 대과 합격이 발표된 날이었다. 그 날, 먼 곳에서 나와 마주친 남준이의 두 눈동자를 본 그 순간을 잊을 수가 없었다. 억지로 입꼬리를 올려 미소를 지어봤지만, 간신히 올라간 입꼬리는 부들부들 떨렸으며 남준이의 두 눈동자도 마찬가지로 길을 잃은 아이마냥 가만히 있지 못하였다. 남준이의 두 눈동자가, 울고 있었다. 나도 울고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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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거사를 치룰 것입니다."
거사를 치른다고 했다. 남준이가, 거사를 치룬다. 남준이가 말하는 거사와 내가 생각하는 거사의 의미가 같은 걸까. 늙은 왕을 몰아내고, 새로운 왕조가 시작되는 것. 아무 말도 않고 남준이를 바라보았다. 견고한 그의 눈동자가 많이 힘들어보였다. 7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내가 늙은 왕의 부인이 된 것이, 남준이가 대과에 합격한 것이. 그 7년이라는 시간동안 나는 홀로 궁에서 지냈으며 남준이는 천재가 나타났음이 분명하다며 칭송 받았다. 그리고 민심을 휘어잡았으며 조정을 휘어잡았다. 모든 신하들이 남준이의 아래에서 남준이를 받들기 시작했고, 언젠가 저 늙은 왕을 몰아낼 것이라는 생각은 당연히 했었다.
"몸 조심히 하십시오."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는 남준이에 마음이 따뜻해졌다. 바쁜 일정에도 늘 나를 찾아왔다. 아무도 발걸음 하지 않는 이 궁 안에서 홀로 있는 나를 위해, 늘 나를 보러 왔고 늘 따뜻한 말을 건내었다. 내가 7년이라는 시간동안 이 곳에서 버틸 수 있던 이유였다. 이 더럽고도 추잡한 궁 안에서, 남준이와 함께 있으면 어릴 적으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해맑게 웃으며 손을 잡고 장터를 거닐던, 서당을 몰래 빠지고서 나와 꽃밭에 가던, 혼나고서 회초리를 맞고 서로에게 약을 발라주던, 아주 맑았던 때로.
가끔 어릴 적 이야기를 꺼내며 수줍게 웃는 남준이의 모습이 보기 좋았다. 우리 둘의 추억을 그리며 미소를 띄우는 남준이의 모습이 좋았다. 또한 백성들을 걱정하며 진지한 표정을 짓는 남준이의 모습도 좋았다. 아니, 그냥 남준이가 좋았다. 단 한 번도 입 밖으로 꺼내보지도, 누구에게 털어보지도 못하였지만. 나는 남준이에게 친구 그 이상의 감정을 가지고 있었음이 분명했다. 아주 오래 전부터, 어쩌면 서로 쭈뼛거리며 인사도 못하였던 첫만남 때부터. 나는 너를 연모하고 있었음이 분명했다.
"염려 마십시오. 그 누가 감히 저를 해하겠습니까."
남준이 네가 내 뒤에 있는데. 무서울 것이 없었다. 다 늙어버려 이빨 빠진 호랑이가 되어버린 왕도, 왕의 편에 서서 도끼눈을 뜨고 바라보는 늙은 신하들도 아니었다. 오로지 내가 무서운 것은 남준이를 잃는 것이었다. 혹시라도 거사가 잘못 될까봐. 남준이를 내게서 앗아갈까봐, 그것이 가장 두려웠다. 내가 이 생을 살지 못하게 되는 것도 두렵지 않았다. 아, 남준이를 보지 못하고, 만지지 못하는 것이 아쉽긴 하네.
그 말을 한 후로부터 남준이를 보기가 힘들어졌다. 거사는 그 누구도 모르게, 치밀하게 진행되었어야 하니까. 늘 찾아왔던 남준이었지만 일주일에 한 번 정도로 남준이를 볼 수 있었으며, 나는 늘 남준이와 함께 갔던 정원에 가서 남준이를 그렸다. 남준이가 나에게 주었던 노리개를 만지며 남준이를 생각했다. 거사는 잘 준비되고 있는 것인지, 혹여 누가 남준이에게 해코지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 것인지. 온갖 걱정이 난무했지만, 가끔 찾아와 웃어주는 남준이의 얼굴에 안도를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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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세 천세 천천세!"
남준이를 만구칭송하는 백성들의 목소리가 한양에 가득 울려퍼졌고, 엎드려 절을 하는 신하들이 궁에 꽉 찼다. 걱정과는 다르게 거사는 조용하고, 빠르게 성공하였고 남준이가 드디어, 드디어 왕이 되었다. 그 날, 나는 남준이의 품에 안겨 엉엉 울었다. 아주 오래 전, 우리가 어렸을 적처럼, 아이처럼. 너무나도 기뻐서, 너무나도 다행이어서. 한참이나 그리 울었다. 아무 말 않고 나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나의 등을 토닥여주는 남준이의 손길이 너무나도 반가워서, 너무나도 따뜻해서 더 울음이 나왔다.
사실 나는 지금 이 자리에 없는 것이 맞았다. 본래 중전인 나를 사형에 처하거나, 유배를 가는 것이 맞으나 남준이는 나를 곁에 두려 하였다. 그것도 중전으로, 자신의 부인으로서. 많은 신하들이 반대 하였다. 전왕의 부인이었다며, 새카만 마음을 품고 있을지도 모를 것이라며. 하지만 남준이는 아무 말도 않고 굳건히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 내가, 남준이의 옆에 있을 수 있는 것이겠지. 나는 아마 그 때에도 눈물을 쏟아내었던 것 같다. 남준이는 언제나 그렇듯, 다정한 손길로 나를 달래주었고 나는 더 울음을 내뱉었었지.
"전하."
"......"
"남준아."
"응, 탄소야."
꿈은 아닐까, 너와 내가 이리 웃고 있는 것이. 너와 내가 이리 마주보고 한 공간에 있는 것이. 너와 내가 혼인을 하였다는 사실이. 너무나 행복해서 꿈은 아닐지 의심이 되었다. '꿈일까, 남준아.' 내 앞에 남준이는 여전히 예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아마도 꿈이 아닐 거야, 탄소야.' 꿈이 아니라 하였다. 그래, 똑똑한 네가 꿈이 아니라 하면 그것은 꿈이 아니지. 너의 말은 곧 이 세상의 법과도 같다.
그 어린 날에 너를 만나 맑은 웃음을 지을 수 있었다는 것은 내게 큰 행운이었다. 그 어린 날부터 너를 마음에 품을 수 있었다는 것도 내게 큰 행운이었다. 어두컴컴한 궁 안에서 너를 잠깐이라도 볼 수 있었다는 것 또한 내게 큰 행운이었다. 그리고 평생 가지지 못할 것 같았던 너의 옆자리를, 감히 내가 가질 수 있게 되었다는 것도 내게 크나 큰 행운이다. 전하, 나의 전하. 남준아, 나의 친구야, 나의 정인아. 너를 연모할 수 있어 참 다행이다. 내가 지금 너의 옆에서 이리 웃고 있는 것도 참 다행이다. 믿기지가 않는구나. 꼭 구름 위를 둥둥 떠다니는 것만 같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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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보자면에서 처음으로 행복하게 끝나는 글을 썼네요! 무언가 남준이는 조용하고, 잔잔한 게 어울려서 최대한 그렇게 쓰려고 노력했어요. 사실상 전왕의 부인을 자신의 부인으로 삼는 것은 불가능했겠지만(?) 이것은 소설이기에 가능한 이야기입니다^ㅁ^
내일부터 연휴가 시작되는데요, 가능하다면 글을 많이 올릴게요! 그런데 할 것들이 너무나도 많아 가능할지는 모르겠다만 반역자는 조각글이니 가능할 것이어요. 가능해야만 합니다...ㅎ 그리구 조회수 보고 정말 깜짜악 놀랐어요. 윤기글은 조회수가 1000이 넘었더라구요. 자축!(짝짝짝) 많은 분들이 제 글을 읽어주신다는 사실에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너무너무 고마워요♥ 그럼 이만 뿅♥
내 사람, 암호닉♥
설빛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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