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하."
"뭣 하십니까, 중전마마. 어서 짐을 챙기시라 당부 드리지 않았습니까."
"저하,"
"저하라는 호칭은 넣어두십시오."
"......"
"저는 이미 이 나라의 왕이 되었습니다. 저하는 가당찮은 말씀이시지요."
탐욕에 젖은 저하의 눈빛이 낯설었다. 내가 이 궁에 처음 들어왔을 적, 분명 저하는 말간 웃음을 지었었는데. 더 이상 '중전마마가 이제부터 제 어마마마가 되는 것이옵니까?'하며 말간 웃음을 보이던 세자저하는 없었다. 탐욕에 젖고, 소유욕에 흠뻑 빠져버린 세자저하의 눈은 보기 껄끄러울 정도였다. 왕이 죽어버리고 저하가 즉위식을 한 날, 나는 그 모든 걸 지켜봐야했다. 세자빈을 맞지 않았기에 비어있는 옆자리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기운을 내뿜는 세자의 뒷모습은 듬직했다. 허나 눈동자는 그렇지 아니하였다.
즉위식 다음 날, 나는 교태전을 떠나야했다. 이 넓디 넓은 궁들 중 가장 구석에 있는 이름 없는 곳으로 쫓겨났다. 그래, 목숨을 부지한 것만으로도 감사해야하지. 이기적일지도 모르겠으나 그리 생각하니 마음이 편했다. 이 살벌한 싸움 속, 생명줄이라도 붙잡고 있다는 사실이 다행으로 느껴졌다. 허나 저하는. 아니, 전하는 나를 가만히 두지 않으셨다. 하루가 멀다하고 찾아와 한참동안 얼굴만 보다가 돌아가시었다. 할 말씀이 있으시다면 하시지, 죽으라 말씀하고 싶으시다면 그리 말씀 하시지. 가시방석이 따로 없었다. 아무 말씀도 않고 나를 내리 보시는 전하의 눈빛을 받아낸다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었다.
도대체 내게 왜 그러시는 걸까. 도대체 무슨 말씀이 하고 싶으신 걸까. 궁금하였지만, 차마 여쭤볼 수가 없었다. 애초에 전하와 독대를 할 때에는 고개조차 들지 못하였으며 전하 또한, 아무런 말씀도 하지 아니하셨으니. 그런 길고 긴 정적 속에서 목소리를 낸다는 것은 상상하기도 싫었다. 그럴 땐 눈을 감고 전하가 저하였을 적을 그렸다. 마치 화선지처럼 하얗디 하얀 웃음을 내보이시던, 활 시위마냥 입꼬리를 올리시던, 비단결처럼 고운 손으로 꽃반지를 엮어주시던, 맑디 맑은 저하의 모습을. 이제는 다시 볼 수 없을 것 같은 전하의 옛모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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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어제와 다를 바가 없었다. 같은 시각, 전하는 나를 찾아오셨으며 그 캄캄한 눈동자로 나를 한참이나 바라보셨다. 분명 저하의 눈동자는 투명하시었는데, 언제부터 이리 탁해지신 걸까. 마음 한 켠이 쓰라렸다. 저하를 이리 만든 것이 내 탓인 것 같아서. 아니, 내 탓이기에. 만약 내가 중전의 자리에 오르지 않았더라면, 만약 내가 저하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저하가 이리 변하지 않으셨을지도 모른다. 저하가 탐욕에 눈을 뜨지 않으셨을지도 모른다.
매일, 같은 시각에 전하와 독대를 한다는 것은 내게 정말 고통스러운 벌과 다름 없었다. 나 때문에 망가져 버린 사람을 지켜보고 있는 것은 사약을 들이키는 것보다도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전하가 찾아오시는 그 시각을 알고 있었지만, 발걸음을 옮겼다. 후에 어떠한 일이 일어날지 감조차도 잡히지 않았지만, 나는 이미 다른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김상궁까지 물리고서 발걸음을 내딘 곳은 향원정이었다. 언제나 향원지의 풍경을 바라보고 있자면 답답했던 마음이 천천히 내려가는 느낌이었다.
이미 해는 저물어가고 있었다. 곧 하늘이 캄캄해지고 달이 뜨겠지. 오늘이 보름이라는데, 꽈악 찬 둥근달을 볼 수 있을 것이다. 하늘을 바라보다 연못을 다시 내다보았다. 가득한 연꽃들이 너무나도 어여뻤다. 저하도 저리 어여쁘셨는데. 연꽃이 내 손에 닿기를 바랐다. 한 걸음, 두 걸음, 세 걸음. 연꽃을 만지기 위해 발을 내딛었다. 저 아리따운 연꽃을 내가 만져볼 수 있었으면, 저하를 닮아 어여쁜 저 연꽃잎들을 내가 품을 수 있었으면. 닿을 듯한 연꽃을 향해 손을 뻗었지만 닿지 못하였다. 다시 발걸음을 내 딛었다. 그 순간이었다, 내 몸이 가라앉게 된 것이.
몸이 저 밑으로 가라앉을 수록, 나의 마음도 가라앉았다. 편안해졌다. 가라앉는 나의 몸과 함께, 이 세상과의 실도 놓을 수 있을 것만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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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을...뜨십, 시오."
아, 꿈이 시작된 것일까. 어디선가 익숙한 소리가 들려왔다.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 했다. 눈이 살며시 떠졌다. 갑자기 내 눈으로 빨려들어오는 환한 빛들에 눈을 제대로 뜰 수가 없었다. 한참이나 눈을 찌푸리고 꿈뻑꿈뻑, 감았다 떴다를 반복하였다. 그리고 점차 귀가 열리며 분주한 목소리들이 들려왔다. '어서, 어서 의원을 데리고 오너라! 어서!' 이 목소리는, 이 목소리는 저하의 목소리임이 틀림 없었다. 분명, 저하였다. 그러하다는 것은 내가 지금, 꿈을 꾸는 게 아니라는 건가.
빛에 적응을 한 눈을 굴렸다. 그리고 내가 처음 본 것은, 저하의 두 눈동자였다. 맑았다. 탐욕과 소유욕이 가득 담기었던 저하의 눈동자들은 다 사라지고, 다시 맑은 눈동자가 보였다. '저하-.' 나의 목소리가 아닌 듯한 목소리로 저하를 불러보았다. 아, 저하라는 소리를 싫어하시는데. 전하라고 불러드려야 하는데. 다시 전하를 불러드리기 위해 입을 떼려 하였다. '전하-,'
"부르지 마십시오, 마마. 소자가 잘못했사옵니다. 엄한 곳에 힘 빼지 마시고, 조금만.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곧 의원이 올 것입니다. 그때까지만, 그때까지만 마마..."
저하의 목소리에는 울음이 잔뜩 서려있었다. 뭐가 그리도 슬프신 겝니까. 뭐가 그리도 저하를 슬프게 만든 겝니까. 저하의 두 눈에서 옥루가 흘러나왔다. 이런, 누가 감히 저하를 울린 겝니까. 귀한 저하의 옥루를 흘리게 한 이가 누구인 겝니까. 손을 올리어 저하의 옥루를 닦아드리고 싶었다. 한 번 흘러내린 옥루는 멈출 줄을 몰랐고, 저하는 옥루를 닦아낼 생각이 없어보이셨다. 손을 올리려 하였지만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내 몸이 내 몸 같지가 않았다.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도 벅차게 느껴졌다. 저하, 죄를 받았나 봅니다. 저하를 괴롭게 하여, 큰 죄를 받는 것인가 봅니다.
눈이 무거웠다. 꿈뻑, 꿈뻑. 눈을 감았다가 뜨는 것이 힘들었다. 저하, 눈이 너무 무겁사옵니다. 혹여 제 두 눈에 추라도 달아놓은 것이옵니까. 앞으로 평생 저하를 보지 못하도록 추를 달아놓은 것이옵니까. 다시 힘을 주어 저하를 바라보았다. 용안이 옥루로 잔뜩 젖어 있었다. '저하-.' 아주 작은 목소리임에도 들으시어 나를 바라보시는 저하께 감사했다. 저하, 불쌍한 우리 저하. '마마, 소자 여기 있사옵니다. 그러니 조금만, 조금만 버텨 주십시오. 조금만, 제발요, 마마.' 그만 옥루를 멈추시어요. 더 이상 아이가 아니지 않사옵니까.
저하, 저하의 곁에 머물 수 있어 황홀하였사옵니다. 저하의 말간 웃음을 곁에서 지켜볼 수 있었다는 것은 하늘의 선물이 분명하였사옵니다. 물과도 같이 귀하디 귀하고, 투명하디 투명하던 저하를 제가 망치어 송구하옵니다. 저하의 옥루를 뽑아낸 소인은, 벌을 받는 것일 뿐이옵니다. 강녕하시옵소서, 부디 강녕하시옵소서. 저는 먼저 하늘에 가 지켜보고 있겠사옵니다. 혹여 누군가 저하를 해치려 한다면 그것을 막을 것이옵고, 혹여 누군가 저하를 아프게 한다면 그자를 혼낼 것이옵니다. 저하, 나의 어린 저하여. 저하의 어릴 적 모습을 두 눈으로 담을 수 있었기에 행복하였사옵니다. 부디 용서하시옵소서. 저하를 모른 척 한 것도, 저하 곁을 먼저 끝난 것도. 저하, 홍복을 누리옵소서. 태평성대를 누리옵소서.
'마마, 탄소야! 아니 된다, 눈을 떠보아라. 이리 가면 아니 된다!' 눈을 감은 그 순간 귓가에 저하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내가 이 세상을 뜨기 전, 저하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 행복하구나. 저하, 나의 어린 저하여, 부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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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독자님들^ㅁ^ 저 1일 1연재 실천했슴다. 칭찬해주시어요. 사실 해보자면이 짤막한 조각글이기에 제가 설정한 컨셉이나 이미지가 전달이 잘 되지 않을 거예요. 그런데 이 멍청한 작가는 그것도 모르고 글만 싸재끼고 올려렸슴다. 특히나 이번 편은 더욱 이해가 힘드실 것 같아서 설명을 조금 해드리려고 해요. 지민이가 세자인데 반역자라니, 여주가 중전인데 둘이...! 예, 바로 이것이 저의 한계입니다ㅎㅎ 설명이 있지만 보고 싶지 않으시다면 그냥 넘기시어요! 구구절절합니다, 아주. 그리고 아주 나중에 이 글을 다시 리메이크를 할 생각이 있어요. 아주아주 나중이지만... 음, 그냥 말씀 드리고 싶어서요^ㅁ^
| 해석이어요 |
여주는 어린 중전이어요. 지민이와 몇 차이 나지 않는. 중전이 되었을 때 왕의 나이도 그리 많지는 않았지만 스물밖에 되지 않은 소녀인 여주와 마흔이 조금 넘은 왕의 나이차이는 대략 스무살... 여주 나이 스물, 지민이 나이 열다섯이었습니다. 순수하였겠죠? 비록 중전과 세자였다만 둘은 서로에게 의지하고 친구가 되어갑니다. 하지만 여주는 아버지의 권력을 위한 꼭두각시였고 세자인 지민이는 여주 아버지 권력 반대파의 꼭두각시 신세였어요. 그랬기에 점차 지민이가 변해갔고 여주는 그걸 알면서도 차마 막지 못했어요. 그리고 지민이가 왕을 독살합니다. 그렇게 왕은 죽고 지민이가 왕의 자리에 오른 거죠. 여주는 그거에 대해서 죄책감을 가지고 있었구요. 지민이와 여주는 친구였지만 사실 서로 연모하는 사이입니다. 그저 세자와 중전이라는 타이틀에 그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을 뿐이었구요. 사실 죽어야하는 중전이 살아있던 것도 지민이의 마음 때문이어요. 신하들이 보고 있으니, 자신의 마음을 표현할 수도 없구... 그래서 매일매일 찾아갔던 거죠, 여주를 조금이라도 눈에 담으려고. 하지만 여주는 자살시도를 합니다. 마음의 병 때문이지 의도는 아니었어요. 순간적으로, 충동적으로 한 시도였고 그 자살시도는 여주를 죽음으로 내몹니다. 그래도 여주는 그 순간 행복해했다는 사실ㅜㅜ 사실 더 구체적으로 쓰고 싶지만 저는 해보자면 다음으로 쓸 시리즈를 어서 시작하고 싶기에(무책임) 허허, 윤기네를 이은 연하연상 커플이었네요. 아, 그리고 향원정은 19세기 후반에 만들어졌어요. 그 시기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그저 뜻이 예뻐서 사용하였을 뿐이어요. '향기가 멀리 퍼져나간다.'라는 뜻이더라구요. 너무 예쁘잖아요ㅜㅜ |
오늘 하루도 잘 보내세요. 그럼 이만 뿅!♥
내 사람, 암호닉♥
설빛 님♥, 오구리 님♥, 민군쥬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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