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너 오늘도 학원 안 갈거야? "
" ……. "
입 밖으로 떨어져나간 말은 주인을 찾지못하고, 바람에 날아갔다. 시선은 너를 좇았지만, 너는 나에게 눈길 한 번 없이 지나쳤다. 나는 아주 잠시나마 -정말 멍청하게도- 내가 유령이 아닐까 생각했다. 허탈함에 절로 헛웃음이 나왔다. 나는 바로 뒤를 돌아, 망설임없이 척척 걸어나가고 있는 네 뒷모습을 보았다. 나쁜 새끼.
" 야, 도경수! "
반대로 네가 유령은 아닐까 생각해봤다. 모든 사람들이 내 고함에 관심을 던져주었건만, 너는 아무렇지 않게 직진 중이었으니. 그러니, 저 존재가 어쩌면 내 눈에만 보이는 건 아닐까. 허탈하다 못해 이제는 억울할 지경이었다. 내가 왜 이러고 있는건데, 요즘.
도경수와 이유모를 냉전 일주일 째.
냉전과 연애사이
W.꼬밍
일주일 째 고민해봤지만, 난 이 냉전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도경수의 이유모를 삐짐인가, 심술인가. 그러다가 그 날인가, 라는 극단적인 생각까지 했다가 스스로를 병신이라 욕했다. 아무튼 이 상황이 당황스러우면서도, 이에 내가 매달리고 있는 이유는 확실히 이런 일이 처음이라 그런 것이다. 무엇보다도 도경수와 알고 지낸, 더 나아가 친하게 지낸 2년동안 이런 일이 한 번도 없었다.
2년 전, 나는 집과는 조금 거리가 있는-걸어서 40분정도의- 유명한 수학 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집에서 거리가 멀었던 만큼, 학교에서도 거리가 조금 있는 편이라 학원에서 아는 얼굴은 물론, 같은 학교 학생을 보기도 힘들었다. 꽤 많은 학생들이 빼곡히 자리를 잡은 강의실에서 우리 학교 교복을 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나는 그 때야 성적에 욕심이 생겨 열심히 공부하다가, 한달만에 한 단계 더 높은 B반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때 처음봤다. 나와 같은 학교 교복을 입은 남학생을.
「 안녕, 너 S고 다녀?」
「 어. 나 이 학교와서 S고 처음 봐. 너 몇 반이야? 」
「 나 4반. 나야말로. 나는 이 동네 살거든. 입학하고 반년동안 우리 학교 한 명도 못 봤는데. 」
「 그렇긴 하더라. 」
「 너도 이 동네 살아? 」
「 아니, 나는 **동. 」
「 헐, **동 여기서 꽤 먼데. 근데 왜 여기까지 왔어? 」
「 그냥…, 유명하잖아. 」
「 그 근처 학원가에도 유명한 곳 많지 않아?」
「 뭐, 그렇지. 아무튼 여기 오고 싶어서. 」
「 그래, 뭐 아무튼 반갑다. 내 옆에 앉을래? 아니다 내가 여기 앉을게. 」
환하게 웃으면서 자기 짐을 내 옆에 내려놓았다. 물론 같은 학교는 나 밖에 없었지만, 그렇다고 아는 사람이 나 뿐인 건 아니었다. 그 남학생 자리 주위로 친구로 보이는 아이들이 여럿 앉아있었고, 그 녀석이 자리를 옮기자 어디가냐고 다들 물었었다.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게 내 옆에 앉으며 친구들을 향해 웃으며 말했다.
「새 친구 사귀러.」
그리고 나를 그 웃음 그대로 보더니 또 입을 열었다.
난 도경수야, 라고.
그 때가 고등학교 1학년 여름이었다.
*
학원을 가는 화요일, 금요일은 야자를 빼는 날이었다. 그럼에도 학원까지의 거리가 있는 터라, 나는 석식을 챙겨먹지 못하고 오자가 끝나자 마자 학교를 나서곤 했다. 택시를 타기에는 돈이 아깝고, 그 곳까지 가는 적당한 버스는 없었기 때문에 최선은 걸어다는 것 뿐이었다. 그래서 미리 학교 매점에 사두었던 빵을 우물우물 먹어가며 걸어가면 학원에 10, 20분 여유있게 도착하곤 했다.
그런 생활을 반복해오던 어느 금요일, 나는 또 다시 오자가 끝나자마자 나와서 신발을 갈아신고 나가려던 참이었다. 1층으로 내려가려던 복도에서 도경수를 딱 마주쳤다. B반으로 들어간지 이제 2주째. 도경수와 학원에서 만난 횟수 고작 3번. 학교에서는 마주친 적도 없었던 사이. 물론 경수가 옆자리에 계속 앉아주고, 가끔 말을 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조금은 어색한 사이였다. 아무튼 도경수는 그런 나와는 다르게 또 환히 웃으며 손 인사를 하고, 책가방부터 운동화까지 다 신고있는 모습을 의아하게 쳐다봤다.
「 어? ○○, 어디가? 」
「 나 학원. 」
「 어? 학원? 왜 지금 가, 밥도 안 먹고. 」
「 나 밥 먹고 가면 늦어. 여기서 학원 멀잖아. …응? 너 밥 먹고가? 」
「 왜 밥도 안 먹고가. 가자, 석식 먹으러.」
그러면서 도경수는 내 팔을 잡아 끌었다. 어? 야야! 내가 당황해도 별 반응없이 식당 쪽으로 가는 것이었다. 그 녀석의 옆에 있던 친구들은 당황하더니, 도경수에게 물었다. 야, 너 어디가?
「 새 친구 밥 먹이러. 오늘은 너희끼리 먹어! 」
그리고 난 그의 대답에 당황해서 잠시 힘주어 멈춰섰다. 그제야, 녀석도 발걸음을 멈추고 나를 돌아봤다. 얼굴엔 순진무구 표정을 배경으로 왜? 라고 써있었다.
「 야, 나 학원 늦어. 」
「 나랑 가면 안 늦어. 」
「 뭐? 」
「 에이, 믿고 따라와. 」
그러면서 다시 나를 데리고 가기 시작했다.
「 아, 잠시만 잠시만! 나 식권없어. 오늘 밥 안 먹는 날이라고 친구 주고 왔단 말이야.」
「 괜찮아, 나한테 두 개 있어. 」
식권 나눠주기 당번이었던 도경수는 자연스럽게 남은 식권을 내 눈 앞에 보여줬고, 나는 어색하게 그 녀석과 마주 앉아 밥을 먹었다. 하지만 어색한 건 잠시였다. 학원에서도 느꼈지만, 녀석은 정말 붙임성 좋은 놈이었고 학원 이야기를 하고, 반 이야기를 하면서 조금씩 마음이 풀어지는 것이 스스로 느껴졌다. 같은 학교, 같은 학원. 공통점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우리의 대화는 편안하게 흘러갔다. 밥을 먹고 나오니 걸어가기에는 많이 촉박한 시간이었다. 우리가 밥을 천천히 먹었던 건 아닌데.
「 뛰어가도 아슬아슬해. 걸어가면 더 늦고. 어떻게 할거야? 」
「 잠시만 기다려봐. 」
3분 쯤 있다가, 도경수가 두 손에 꽉 잡고 끌어온 것은 다름아닌 자전거였다. 아, 얘 자전거타고 통학다니는 애였구나. …그런데?
「 나는? 」
「 응? 」
「 나는 자전거 없는데? 」
「 응, 뒤에 타. 」
「 어? 」
「 뒤에 타라니까? 나 이제 출발할거야, 빨리 앉아서 꽉 잡아. 」
「 어? 야, 도경수! 」
「 뭐? 왜 불러? ○○○.」
내가 당황해서 이름을 부르자, 도경수는 웃으면서 맞받아쳤다. 그리고 멍하게 서 있는 나를 보더니 더 웃으며, 이번엔 내 손을 끌어 뒤에 앉혔다. 꽉 잡아, 말하는 동시에 페달을 밟자, 나는 놀라 녀석의 교복을 꽉 붙잡았다. 와, 진짜 친화력 좋구나 얘. 진짜 웃기는 놈이네.
그런 일이 가끔씩 반복되다가, 가끔이 자주로 바뀌고, 자주가 항상으로 바뀌었다. 이게 도경수와 친해질 수 밖에 없는 이유였다. 여름부터, 겨울까지 그리고 또 봄까지, 가을까지. 1학년에서 2학년으로 올라가고, 2학년에서 3학년으로 올라왔다. 우리는 서로를 놀리고, 때리고, 장난치는 정말 속 편한 친구관계가 되어있었다.
적어도 일주일전까지는 말이다.
*
반 년전, 이 놈과 크리스마스 이브를 보내고 크리스마스를 맞이한 적이 있었다. 크리스마스 이브는 학교를 가야하는 날이었고, 학원을 가야하는 날이었다. 크리스마스만 공휴일이지, 이브는 공휴일이 아니란다. 우리는 늘 평소와 같이 학원에서 잡담을 나누기도 하고, 수업을 들었는데 그만 그날 쪽지 시험을 내가 망쳐버리는 바람에 선생님의 화를 불러일으켰고, 결국 이런저런 이유로 나는 수학 풀이를 다 하고 가야하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원래 학원이 마치는 시간이 밤 늦은 시간 쯤인데다가, 고 3 예비반이라는 이유로 추가 수업으로 더 늦게 마치는 건 물론인데, 수학 문제 풀이까지하고 가면 더 늦은 시간에나 집에 돌아갈 수 있을 판이었다.-유명한 학원이라 재수생들도 많아서 늦은 시간까지 열려있다-
학원 친구들의 위로를 받으며, 메리 크리스마스 인사와 작별인사를 동시에 나누고, 나는 풀이에 집중하려고 했다. 그런데, 모두가 나가고 난 뒤에 문이 다시 열리고 도경수가 들어오는 것이었다.
「 오, 뭐야? 뭐 놓고 감? 」
「 아니, 집에 오늘 가족들 늦게온다고해서, 너랑 더 놀다가려고. 」
「 복에 겨운 놈. 문제 풀이 좀 대신해줄래? 」
「 너랑 나랑 글씨체 달라서 샘이 알아차릴 걸. 하면서 공부해. 」
「 으, 집에가면 진짜 늦겠다. 그래도 오늘은 아빠가 데리러 오신다니까, 뭐. 」
「 그러니까, 왜 이렇게 먼 학원을 다녀. 」
도경수가 웃으면서 한 말이지만, 어쩐지 나는 그 말에 공감하며 우울해졌다. 겨울도 겨울이고, 크리스마스도 크리스마스라 기분이 괜스레 예민해졌기 때문이었다. 나는 문제풀이하던 샤프를 놓고, 두 손으로 기지개를 켰다
「 으, 공부하기 싫다. 바보 같다, 나. 진짜 왜 여기 다니기 시작했을까. 진짜 바보. 」
「 왜 갑자기 자책하고 그래. 웃기게. 」
「 그냥, 여기 다니기 시작한 이유가 지금 생각해보니 한심해서. 」
「 이유가 뭔데? 」
그리고 그 질문을 듣고 순간 나는 멈칫했다. 부모님도 이해못하고, 왜 이 학원을 고집하냐는 질문을 던지셨을 때, 유명한 강사 핑계를 대고 솔직하게 말하지 못했는데. 나는 가만히 경수의 얼굴을 쳐다봤다. 왜 갑자기 그래? 도경수가 물었다. 나는 그냥 웃고 말하기로 마음 먹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도경수인데. 1년 넘게 친하게 지낸 놈인데. 그리고 다 지난 일이니까.
「 좋아하는 사람 때문에. 」
「 …어? 」
「 정확히는 좋아하던 사람 때문인데. 그 사람이 이 학원 다녔었거든. 지금은 좋은 대학갔고. 그 때는 마냥, 그래 마냥 정말 좋아서 정말 따라가고 싶었어. 그 사람이 간 학교에 가고 싶고, 그 사람이 간 학과에 가고 싶고, 그래서 그 사람이 열심히 다녔다는 학원에 다니고 싶었고. 」
「 좋아했던 사람 때문에? 」
「 내가 1학년 때 1학기 끝날 때, 우리 문과, 이과 선택하는 거 있잖아. 나 원래 문과였거든. 중학교 다니던 순간부터 '아, 나는 문과다.' 생각하고 있었단 말이야. 그래서 문과 선택했지. 난 수학을 더럽게 못하고, 사회나 역사를 좋아했으니까. 」
「 근데 그 사람이 간 학과가 이공계열이야? 」
「 응. 그 소식을 그 때 들었어. 잘 모르고 있었는데. 그래서 미친듯이 수학 붙잡으려고 했지. 」
「 지금은? 」
「 어? 」
「 지금은 안 좋아해? 」
「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데, 그럼. 뭐 아무튼 잘된 것 같아, 이과 선택한 것도, 이 학원 다닌 것도. 지금은 내가 가고싶은 학교랑 과가 생겼으니까. 또 이 학원 다니면서 성적도 많이 올랐고. 수포자는 아니게 됐고. 」
「 또 나도 만났고, 그렇지? 」
「 미친 놈, 적당히 해라.」
결국 또 장난으로 넘어가서 환하게 웃고있는데, 그 녀석이 갑자기 벽 쪽을 바라보더니 자기 휴대폰을 한 번 꺼내서 뭘 확인하는 것이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주머니에서 작은 막대사탕 하나, 포장지를 벗기더니 내 입안에 쑥 넣었다.
「 ○○○, Merry Christmas. 」
뭐야, 갑자기. 하면서 벽에 시계를 봤더니 정확히 12:00 AM. 똑같은 사탕을 어느새 물고있는 도경수를 보고 나는 또 한 번 웃어버렸다.
「 Merry Christmas, 도경수. 」
*
그리고 사건의 발단은 일주일 전.
나는 내가 좋아했던 사람의 페이스북에서 '연애 중'을 보게된다.
'좋아했던 사람'이라는 단어의 정의는 불분명하다. 확실한 단절의 의미부터 커다란 미련까지 그 속에 수 많은 뜻이 있다. 사람의 감정에도 분명하게 정의를 내릴 수 없듯이, 감정을 담고 있는 단어 역시 어떠한 정의를 내릴 수 없다. 그러므로, 좋아했던 사람의 과거형이지만 그 것이 온전한 과거는 아니라는 것이다.
스스로에게도, 친한 친구들한테도 분명히 '예전 일이야, 다 잊었어. 그 사람한테 미련 없어.' 라고 말은 했지만, 막상 그의 옆자리가 다른 누군가로 채워졌다는 말을 들으니 감정적으로 기분이 상할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고민했다. 나도 내 감정을 몰라서. 내가 이 사람을 아직 좋아하는 걸까? 라는 생각도 들었다.
때 마침, 이 시기는 자신이 수시로 가고 싶은 학교, 학과를 조사하는 기간이었다. 그리고 나는 내가 가고 싶다고 말했던 학교, 학과들을 적고, 또 한 번 그 사람이 갔던 학교와 학과를 옆에 작게 써놓고 쓸까말까 고민하던 때였다. 그 사람을 떠올리던 그 시기, 그 사람이 연애를 시작한 시기가 맞물렸다.
「 ○○○, 너 오늘 왜 그래? 어디 아파? 」
「 경수야, 나 모르겠어. 」
「 뭐? 뭘 모르겠는데. 아까 샘이 풀어준 기출이 안 풀려? 」
「 그 사람, 연애하더라. 」
「 ……, 누구.」
「 내가 좋아했던 사람. 」
「 …근데? 」
「 그냥, 그렇다고. 그냥, 진짜 모르겠어. 」
「 그래서? 」
「 어? 」
「 좋아했던 사람이야, 아니면 아직도 좋아하는 사람이야? 뭐냐고, 지금 네 태도. 」
「 야, 너는 왜 화를…, 」
「 울거야? 」
「 뭐? 」
「 울거냐고. 」
「 야, 너 진짜 아까부터, 」
「 근데 왜 울려고 하냐고, 진짜. 」
「 …도경수.」
「 진짜, 너보면 짜증나고 답답해서 이제 같이 못 다니겠다. 」
「 야, 너 말 다 했어? 너 갑자기 왜 이러는데. 」
그리고 시작된 도경수의 무단으로 학원 빠지기, 내 연락 무시, 내 말 무시, 나 무시 일주일 째.
*
" 도경수, 얘기 좀 해. "
" ……. "
도경수 교실 앞까지 왔는데, 돌아오는 건 또 무시와 대놓고 날 지나쳐나가는 나쁜 놈. 와, 이 새끼 진짜.
" 야, 너 오늘도 학원 안 가? "
또 다시 내 말은 목적지를 잃고 바닥으로 뒹굴었다. 저 나쁜 새끼.
휴대폰을 열어보니, 학원을 가야하는 시간이었다. 도경수와 냉전 상태 때문에, 녀석의 자전거로 함께 학원을 가는 일은 없다. 나는 또 다시 걸어서 학원으로 가게 되었다. 하지만, 오늘은 도경수를 꼭 만나야겠다. 또 싸우게 되도, 듣는게 욕 밖에 없을지라도 오늘은 저 녀석의 목소리를 들어야만 하겠다. 제 갈 길 가는 도경수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나는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일단은 작전상 후퇴.
도대체, 내가 이 바쁜 고3 시기에 이러고 있어야 해. 내가 왜 너 때문에 일주일을 망쳐야했냐고, 도경수 이 나쁜 놈아. 네가 뭐라고.
*
" 하이, 경수야. "
" ……. "
" 야, 너 진짜 오래 공부한다. 내가 너 야자만 하고 나올 줄 알고 그 때부터 기다렸는데, 심자하고 거기서 조금 더 하고 나오더라? "
" ……. "
" 내가 이 더운데 밖에서 두 시간을 기다렸다. 도경수, 말 좀 해봐. 네 목소리 일주일 못 들었다. 혹시 말을 못하게 된거야? 어? "
" 비켜, 집에 가야해. "
" 나쁜 새끼, 말 할 줄 알면서. "
일주일 째 너와의 만남은 허탈하고 억울함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일주일 동안 처음으로 네 목소리를 듣는 지금, 나는 감격을 넘어서서 정말로 화가 나기 시작했다. 그 녀석의 자전거에 딱붙어서는 지금이 되어야지만, 겨우 그 한 마디를 들을 수 있었다니. 그 것도, 비켜 집에 가야해, 를.
" 비켜? 집에 가야해? 야, 이 새끼야. 나도 집에 가야해, 나도. 너만 집에 가니? 너만 바빠? 야, 나도 바빠. 나도 고 3이야. 근데 왜 너만, 너만 그렇게 혼자 우월해 이 나쁜 놈아. 너만 말 못해? 야, 나도 말 하지 말라면 안 할 수 있어. 네 말도 무시할 수 있어. 근데, 아 진짜. 왜 나만 노력 중인데, 나만. "
" 누가 노력하래. 필요없으니까, 너도 그만 힘빼. "
" 너 진짜 학원도 안 나올거야? "
" 갈거야. "
" … 진짜, 언제? "
" 나 다음주부터 C반 들어가. 어제 학원에 전화했어. "
" 네가 왜 C반에 들어가? 너 계속 B반 성적이었잖아. "
" 1년도 전부터 C반 성적이었어. "
" 뭐? "
" 그러니까, 용건 끝났으면 비켜. "
" 왜 갑자기? 그럼, 왜 계속 B반에 있어놓고 이제와서 C반 가는건데, 왜? 대학 때문에? 야, 너 혹시 내가 너한테 공부 피해줬, "
" 굳이 있을 필요가 없으니까. "
자전거 쪽으로만 시선을 두던 도경수는, 그 말을 하면서 드디어 나를 똑바로 쳐다봤다. 그리고 그 시선이 너무 단호하고, 단단해서 나는 당황스러웠다. 단단, 무딘 그런 느낌 뿐 만이 아니라 그냥 어쩐지 거칠거칠한 느낌이었다. 나한테 오는 말투도, 시선도 다 날이 서있었다.
" 이제 굳이 너 안 봐도 되고, 너랑 얘기할 필요도 없고, 너랑 같이 갈 필요도 못 느끼니까. "
너는 냉정하게 말하지만, 들린다. 너,너,너로 이어지는 그 문장 속에 아까 말이 겹쳐들어간다. 이상한 짐작에 나는 멈칫했다. 들렸다. 순간의 착각, 그 것도 아주 단단한 착각일지도 모르지만.
B반에 굳이있을 필요가 없는 이유는, 나를 안 봐도 되기 때문. 그러니까, B반에 굳이 남아있었던 이유는.
쓸데없이, 두구두구두구두구 가슴 쪽에서 빠른 울림이 퍼지기 시작했다.
" 도경수. "
" 넌 진짜 사람 끝까지 비참하게 하는 데 뭐 있어. 어느 정도 무시를 하면 어느 정도 알아듣고, 알아서 꺼졌어야지. 왜, 자꾸 이래, 왜. "
" 야…. "
" 나 너 좋아해. "
" ……. "
아, 진짜로 들어버렸다. 직접적으로 들은 마음 때문에 가슴 쪽이 좀 더 웅웅 크게 더 빠르게 울려댔다.
" 쪽팔리니까, 그만하자. 그리고, 그냥 수능 때까지 나 아는 척 안해줬으면 좋겠다. 복잡하니까. "
도경수는 내 옆에 있던 자전거를 끌고는 정말로 인사 없이 제 갈 길을 가려고 했다. 아, 잠깐만, 그러니까, 잠깐만.
" 도경수! "
아는 척 안해줬으면 좋겠다는 말은 진심이었는지, 그 녀석은 뒤 한 번 돌아보지 않고 또 다시 걸어가는 것이었다. 또 본다, 또. 날 유령취급하는 저 뒷모습. 그리고 나는 저 녀석은 정말로 아는 척을 하지 않을 것 같아서, 마주보는 건 포기하고 뒷모습에 대고 소리쳤다. 지금이 아니면, 안될 것 같아서, 사실은 반은 제 정신으로 반은 제 정신이 아닌 상태로 했다.
" 말했지, 나도 고 삼이라고! 나도 엄청 바쁘고 지금 중요한 시기라고! 야, 근데 내가 이 중요한 일주일을 다 너한테 썼어. 너 좇아다니고, 너 보러다니고, 너랑 말하려고 기다리고, 너한테 연락하고, 너한테 답 없으니까 답답해서 공부도 안되고, 네 생각나고, 너랑 있었던 일 자꾸 생각나고. …너 보고싶고. "
그리고, 도경수는 발걸음을 멈췄다. 넌 뒤를 돌아봐줄까?
" 나쁜 놈아, 사람이 지난 일 가지고 조금 센치해질 수도 있지. 야, 내가 수시 대학 고민할 때, 학교 세 개 정도를 고민했는데 그 중 하나가 네가 가고 싶다고 늘 말하는 학교야, 병신아. 대학교도 너 때문에 이렇게 순간순간 고민하고, 대학 가서도 너 어떻게 볼까 생각하고 있는데, 넌 지금 그 태도가 나한테 하는 바른 태도야, 이 새끼야! "
도경수는 자전거를 고정시켜놓고, 뒤를 돌아봤다. 그리고 다시 내 앞으로 다가왔다. 와, 진짜 오랜만인 것 같다. 네가 내 얼굴 똑바로 보면서 와주는 거.
" 그러니까, 도경수, 넌 왜 사람이 좋으면 좋다고, 싫으면 싫다고 분명하게 얘기를 못하냐고. "
" 그래서. "
" 뭐가, 그래서야 그래서는. "
" 그래서 너는 뭐라고? "
" … 나도 너 좋다고, 병신아. "
" …나도, 나도 너 좋아. 엄청. "
그리고, 나는 그 말에 마음 놓고 기뻐했다. 마음 놓고 설레했고, 마음 놓고 긴장을 풀었다. 그래서 마음 놓고 훌쩍였다. 내 모든 행동과 말에 냉정했을 때는 언제고, 이제와 내가 울먹거리니 도경수는 당황하는 기색이었다. 야, 야 왜 울어, 왜 울려고 그래.
" 그러니까, 사람을 왜 이렇게 고생시켜. "
" …이해해줘, 나도 시기도 시기고, 답답한 것도 답답한 거고. 너는 진짜 오랫동안 이런 마음이었으면 몰라, 이 답답함. 특히 거의 매일보는데. "
" … 너 언제부터 나 좋아했는데? "
" 호감은 처음부터 있었는데? "
그러면서 실실 웃기 시작한다. 와, 웃는 것도 오랜 만에 본다. 거의 매일매일 환하게 웃는 모습만 보여주다가, 일주일 동안 그렇게. 살짝 맺혀있는 눈물을 쓰윽 닦아내고, 실실 웃는 녀석을 보고 따라 웃으면서 따졌다. 웃어? 어, 너 이 상황이 웃겨? 우리 둘은 이 갑작스럽고도, 당황스러운 상황을 황당해하며, 그리고 또는 저대로 행복해하며 웃었다. 그러고 있는데, 도경수가 미소를 띠고는 묻는다.
" 나 손 잡아도 돼? "
" …좀 그런 건 묻지 말고, 말하지 말고 하면 안돼? "
" 네가 분명하게 말하라며. "
" 야, 그건, "
아까 좋아한다, 싫어한다 그 상황이지 라고 말하려던 말이 턱- 막혀버렸다. 어? 아? 잠깐만, 지금 방금 뭐가 왔다간거야. 내가 말도 멈추고 멍 때리고 있으니까, 도경수는 쓰윽 웃으며 다시 한 번 다가왔다. 그리고 아주 작게 쪽 소리를 내고 입술이 금방 맞닿았다 떨어졌다.
" 말하지 말고 하라며. "
" …야, 너 선수지? "
" 예쁘다, 너. 진짜. "
아, 오늘도 공부는 물 건너갔네. 너나 나나.
으, 여기 처음 글 쓰는데 긴장긴장.ㅠ_ㅠ
다들 재미있게 읽어주셨으면 좋겠네요!ㅠ_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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