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심장한 제목이랄까
[EXO] 5년의 경계선 W.백라잇 |
술잔을 기울이는 정수의 손이 살짝 떨려왔다. 재빠르게 그 모습을 캐치한 준면이 정수의 손목을 잡으며 넘어가는 술잔을 막았다. 말리는 준면도, 제지당한 정수도 아무 말을 할 수 없었다. 그대로 두 사람만 시간이 멎은 듯, 너나할 것 없이 시끄럽게 떠드는 술집 안의 사람들 목소리가 스피커를 줄인 것처럼 작아졌다. 깊어지는 정수의 한숨과 떨리는 어깨가 준면의 심정을 대변해주는 것만 같았다. 지난 세월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묻어있는 정수의 모든 모습들이 준면에게 하고 싶은 말을 대신 전해주고 있었다. 그에 맞춰 준면의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잡고있는 손이,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는 말들이 준면에게 어렴풋이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한참이 지나서야 준면이 계속 잡고있던 정수의 손목을 겨우 놓자 그대로 정수가 테이블 위로 무너지며 흐느꼈다. 지칠 대로 지친 정수의 어깨와 처음보는 작아진 모습에 결국 준면도 흐트러지고 말았다. 소파 깊숙히 몸을 뉘이며 마른 세수만 연신 반복하던 준면의 손이 정수의 한 마디에 결국 힘 없이 떨어졌다.
"………." "네가 모든걸 감당할 필요는 없어." "형ㅡ." "결국," "………." "너도 멤버들이랑 똑같은 사람일 뿐이야."
* * *
- 찬열이 아까 지인 만나러 간다고 해놓고 연락이 안돼. 숙소에도 없고 "다른 애들은?" - 좀 늦긴했는데 다 도착했어 "찬열이 주변 사람들한테 연락해봤어?" - 진작에 했지. 아무도 모른대 "…알겠어. 형 금방 도착할거야"
핸들을 꺾는 준면의 손놀림이 꽤 거칠어졌다. 백현과의 통화가 끝나자마자 조수석으로 던진 핸드폰을 슬쩍 바라 본 준면이 다시 한숨을 쉬며 핸즈프리로 통화를 돌렸다. 준면의 핸드폰 액정에 뜨는 찬열의 이름은 여태껏 다를 바가 없었지만, 상대방은 그렇지 않은 듯 싶었다. 길어지는 연결음에 괜히 클랙션을 누르며 짜증을 풀던 준면이 기어이 음성으로 넘어간 딱딱한 여자의 목소리에 갓길에 차를 세우고 핸들에 머리를 박았다.
몇 주 전, 찬열이 여자친구와 헤어졌다. 그 철 없던 녀석이 그녀를 만난 뒤, 전 보다 철도 들고 조금씩 달라지는 모습에 처음 연애 사실을 알리던 찬열에게 딱딱하게 굴었던 것이 내심 미안했던 준면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1년을 채우지 못하고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기 시작한 찬열 때문에 뿌듯했던 준면의 마음도 원 상태로 돌아가버렸다. 결국 헤어졌다며 담담하게 말하던 찬열에게 알겠다며 어깨를 두드려주는 것으로 준면은 모든 말을 삼키고 아무렇지 않은 척 마무리했다. 그 편이 12명의 멤버가 다같이 평화롭게 생활하기에 가장 편하고 합리적인 방안이었다. 아무리 오랜 시간을 함께해서 가족같은 동료여도 사생활은 사생활이었다. 다 큰 성인 남자를 데려다가 사춘기 자녀를 둔 부모처럼 일일히 연애 사업까지 훈계하는 것도 우습다고 생각했다. 여전히 철 없고 아이같은-말이 좋아 아이같았지, 어떻게보면 생각이 부족하다고도 할 수 있다고 준면은 생각했다-찬열이었어도 자신에게 소중한 동생임은 분명했다. 꿈을 함께 하며 같은 공간에서 땀을 흘려 왔기에, 걱정이 되는 것도 당연했고.
하지만 괜찮아질 거라 믿었던 준면의 마음가짐을 매몰차게 배신한건 찬열이었다. 서서히 망가지며 옛 버릇을 버리지 못했던 행동들이 드러나기 시작하더니 결국 찬열이, 사고를 치고 말았다. 어제부터 연락이 안되던 찬열은 연습실에 나오지 않았고, 하필 오늘은 준면과 민석의 군 입대 전 마지막 정규 앨범 타이틀 곡을 녹음하는 날이었다.
지쳐보인다는 종인의 말이 맞았다. 아니라며, 피곤해서 그런다며 손사래를 치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리더로써의 허울뿐인 거짓말이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그렇게 정해진 규칙이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왠지 준면은 그래야할 것만 같았다. 자신이 무너지면 자신을 따르고 의지하는 멤버들 또한 무너질 것만 같았다. 그래서 5년을 참고 또 참으면서 쉼 없이 달려왔다. 여태껏 준면이 스승처럼 따른 정수와 윤호, 진기 또한 그래왔기에 더 더욱 그랬다. 리더는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했고, 그 위치를 나름 잘 지키고 있었다고 느꼈지만 실상 그렇지만은 않았던 것 같다.
그런 준면을 흔들에 놓은게 정수였다. 이미 쓴 맛을 겪은 윤호는 말 없이 힘내라는 말만 전해줄 뿐이었고, 진기는 가만히 자신의 말을 들어주기만 할 뿐이었다. 하지만 정수는 달랐다. 준면 자신과 가장 비슷한 상황을 겪으며 너무나도 오랜 세월을 굳건히 지킨 정수였다. 그랬기에 더 하기 힘든 말이었지만, 그랬기에 더 해줄 수 밖에 없는 말이었다.
'김준면, 너도 결국 똑같은 사람이야.'
자꾸만 준면의 머릿 속에 너무나도 단호했던, 그러나 슬프기 그지없었던 정수의 말이 맴돌았다.
사실 준면을 여기까지 몰고 온 것이 비단 찬열 뿐만은 아니었다. 그 이유 중의 하나는 분명 자신의 탓도 있다고 생각한 준면이었다. 하지만 시간을 돌리기엔, 세월을 붙잡고 모든걸 다잡기엔 너무 늦어버린 것만 같았다. 아니라고들했지만 자신이 없었다. 요즘 준면은 너니깐, 너라서 할 수 있다는 말들에 부응할 자신이 없었다. 자신은 그럴만한 그릇이 못된다고 생각했다. 그만큼 보잘 것 없는, 못난 리더라고만 생각했다.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에 실망이 담겨있고 혹여나 준면때문에 힘들어할 멤버들을 지켜볼 수 있을 만큼 준면은 대담한 사람도 아니었다.
복잡한 머리 속때문에 머리가 지끈거려옴에 준면은 습관처럼 가방을 열어 물통과 두통약을 꺼내들었다. 처음엔 갯수와 날짜까지 세며 먹던 두통약도 이제는 없으면 불편할 정도가 되버렸다. 쓴 웃음을 지으며 가방 자크를 채우는 준면이 액정에 뜨는 찬열의 이름에 물통을 쥔 손에 더 힘을 주었다.
→ 형 내가 미안해 오후 1:09 1
왜 미안해야하는지 찬열은 알고있을까? 자연스레 미안하다는 말이 나왔을 찬열을, 준면의 손에 들린 두통약처럼 어느 정도의 습관이란것도 알았을 법했다.
준면이 두통약을 집어 삼키며 인상을 쓰곤 핸들은 잡은 채로 고개를 젖혔다. 연달에 울리는 핸드폰 진동 소리의 주인공이 멤버들일 것이라 짐작한 준면은 몇 일 전 정수처럼 떨리는 손으로 핸드폰을 쥐었다. 한참을 자판을 이리저리 두들기던 준면이 전송버튼 앞에서 잠시 망설였다. 신인상을 받았던 날처럼, 엑소라는 이름으로 대상을 거머쥐고 이름을 떨치던 지난 날들이 마치 이 순간이 마지막이라는 듯 스쳐지나갔다. 그 미련들이 지쳐버린 준면을 붙잡았다. 힘겹게 나머지 손으로 바짓춤을 세게 쥐어잡은 준면이 질끈, 눈을 감으며 결국 전송버튼을 누르고 핸드폰 배터리를 분리했다.
[얘들아 형은 이제 더 이상 모든걸 감당할 자신이 없다] |
+ 조각글을 줄이고 뭘 쓸까 고민하다가 나온 망글 껄껄
+ 반ㅇ응을 위한 프롤로그 같은 시작글이랄까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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