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당탕탕!
하루도 바람 잘 날 없는 일곱 명의 무한지구대 이야기
<응답하라112>
- 미스터몽룡
*
☞ 「ㅇㄷ」
☜ 「ㅈㅈ」
☞ 「ㅁㅎ」
☜ 「ㄱㅁ」
☞ 「ㅋㅋㅋㅅㅂㅋㅋ」
"업무 중 스마트폰 사용 금지-"
힉!!!! 불시에 등 뒤에서 낭랑하게 울려 퍼지는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 눈이 땡그래지는 성열이었다. 어찌나 놀랬는지 이티처럼 검지로 답장을 쓰다가 손가락이 다 굳어버렸다. 한가득 두려운 마음으로 뒤를 돌아보자 아니나 다를까, 울림경찰서 무한지'규'대장 되시는 분께서 떡하니 버티고 서계신다. 게다가 서늘한 감이 있는 무표정으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다. 아이고야…. 좆됐다…….
"저 이제 막 만진 건데…!"
허둥지둥 손사래를 치면서 되도 않는 거짓말을 했지만 어색한 표정은 감출래야 감출 수가 없는 노릇이었다. 게다가 이놈의 몹쓸 발연기가 빛을 발했는지, 김경위의 얼굴에서 썩은 미소가 잔잔히 퍼지는 게 보인다. 하아…. 역시 그냥은 안 넘어가는구나. 그 순간, 서류 파일을 들고 있던 손을 위로 들어 올리는 김경위의 모습이 스친다.
소…손찌검? 뭐야!!! 이게 바로 말로만 듣던 직장 내 폭행인가!!!!! 난 이제 죽었다!!!! 죽음의 그림자가 코앞까지 바짝 다가왔음을 느끼자, 어깨를 움츠림과 동시에 겁에 질려 두 눈을 꽉 감아버렸다. 이건 권력 남용이야!!! 최후의 발악처럼 속으로 항의성 짙은 절규를 해댔지만, 성규에게 들릴 리 만무하다.
똑똑.
"알았으니까 잘하라고."
응?
이게 무슨 상황인가 싶어서 슬며시 눈을 뜨니, '저거 이상한 놈일세.'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우뚱 거리면서 자리를 뜨는 김경위가 보였다. 한 손에는 아까 그 서류 파일을 들고 말이다. 뭐지? 저걸로 내 정모를 두들긴 건가? 정신 차리라는 의미로? 으어, 뭐지? 갑작스럽게 밀려온 정신적인 충격으로 인해 영혼이 스르륵 빠져나갈 것만 같지만 간신히 정신을 붙들고는 조심스럽게 생각해본다. 그럼 나는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지? 라고 말이다.
바로 그 때였다.
"저 이제 막 만진 건데에~"
어느 자식이야? 소리 나는 곳으로 재빨리 시선을 옮기니 그 끝엔 김의경이 서있었다. 한 손에는 종이컵을 든 채 삐딱한 자세로 정수기 옆에 기대있다. 흡사 정수기 CF를 찍는 모델과 비슷한 자세다. 어디서 개똥폼이야.
김명수 제 딴에는 꼬투리 하나 잡았다는 느낌이 드는지, 아주 통쾌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마치 일주일 만에 응가와 다시 조우한 우리 엄마의 가슴 벅찬 표정처럼 말이다. 하지 말라는 식으로 노려보자, 이 순간을 기다렸단 듯이 놀란 표정을 한껏 지어보이면서 두 눈을 꾹 감아 보인다. 하아…. 어디서 귀여운 척이야. 그리고 내가 언제 저랬어. 이마에 손을 얹으며 속으로 최대한 삭혔다. 근데 생각해보니, 저게 자꾸 슬슬 약 올리네. 아주 그냥 귀신 들린 것 마냥 재미 들렸나보다. 내 성질을 박박 긁어대는 게 그거로는 모자랐는지, 제자리에서 발을 동동거리기까지 한다. 으악, 내가 언제 저랬어!!!! 저 자식이 아주 신났네, 신났어!!!!!
끼이익. 순간적으로 울컥해서 한 대 때려주려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자, 요란하게 의자 끌리는 소리가 지구대 안을 가득 매웠다. 김경위를 포함한 동료들이 잠깐 나를 쳐다봤다가 하던 일을 마저 한다. 그 소리 덕분에 감고 있던 눈을 번쩍 뜬 김의경이 나와 시선을 마주했다. 오냐, 네 이놈. 검지 끝으로 그를 지목하면서 '너 거기 딱 기다려.'라는 식으로 손가락을 까딱까딱 거렸다. 그리고는 바로, 사냥을 나서는 굶주린 치타 마냥 김명수를 향해 재빠르게 쓩 튀어나가자, 엄청 깜짝 놀랐는지 종이컵을 정수기 위에 허겁지겁 올려놓고는 뒤돌아 볼 틈도 없이 지구대 뒷문으로 쏜살같이 도망친다. 아니, 저 어린놈의 자식이!!!!!!
"야, 이 새끼야!!!!! 거기 안서!!!!!!!!!!"
네 놈이 그런다고 내가 못 잡을쏘냐!!!!!
*
난데없이 큰소리가 나길래 고개를 들어보니, 우당탕탕 거리면서 뒷문으로 시끄럽게 빠져나가는 이성열 순경의 뒷모습이 보인다. 왜 저래? 서서히 닫히고 있는 뒷문에서 시선을 뗀 뒤, 장동우 경장 옆에 서있는 이호원 순경을 바라보자, 자기도 도통 모르겠다는 식으로 두 어깨를 으쓱여 보인다. 그리고는 상체를 숙여 책상에 얹어놓은 서류를 손가락으로 찬찬히 짚어가며 장경장에게 무언가를 열심히 설명한다. 그래, 너도 알 리가 없겠지….
후…. 이러면 안 되는데 자꾸 무의식적으로 한숨이 나온다. 5개월 째 이곳에서 근무를 하고 있지만, 어딘가 모르게 정신이 없고 굉장히 산만한 분위기인 것 같다. 안되겠다 싶어서 분위기를 새로 잡아보려고 무던히 노력하고 있지만, 매번 헛수고다. 그 덕분에 쓸데없이 까칠하다는 둥 악마라는 둥 뒷구멍으로 온갖 욕이나 먹고 있어서 굉장히 배가 부르다. 아마 나는 장수할 운명인가 보다. 이렇게 살갑게 안 챙겨줘도 되는데…. 나는 원래 눈물이 없는 사람인데 너무 고마워서 눈물이 날 지경이네.
이렇듯 결코 한숨이 안 나올래야 안 나올 수가 없는 구조다. 이게 모든 게 다 트러블메이커 핵심 인사 이성열 순경 때문인가? 아니야, 가만 보면 의경 나부랭이도 단단히 제 한 몫하는 것 같은데…. 이러다보니 통제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느낌이 드는 건 당연하다. 3월 말에 은퇴하신 무한지구대장 오원준 경사님은 이런 정신없는 분위기 속에서 어떻게 하루하루를 근무하셨는지 내 머리로는 도통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다.
아니, 근데 생각해보니 점심 먹은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부터 또 야단법석이야? 업무 중에는 스마트폰 쓰지 말라니까 이젠 아예 대놓고 열심히 뛰어놀기로 작정했구나, 이성열. 이곳도 엄연히 회사나 다름없는데 툭하면 스마트폰으로 게임하거나 모바일 메신저를 두들기고 앉아있다. 참나, 어이가 없어서…. 그렇다고 내 멋대로 월급을 깎아버릴 수도 없는 노릇이고…. 대학 축제의 하이라이트인 불꽃놀이처럼 선량한 울림구민들의 피 같은 세금이 허공으로 흩뿌려져 증발하는 소리가 어디선가 들려오는 것만 같다. 사실 아까 때리려다가 말았는데, 그냥 세게 한 대 쥐어박아줄 걸 그랬나보다. 어휴….
고개를 숙인 채 깍지 낀 두 손을 이마에 대고 고단한 듯 한숨을 내뱉는 성규였다.
*
난 억울해. 억울하다고. 고작 다리 길이 때문에 얼마 버티지 못하고 이렇게 허무하게 잡혀버리다니…. 굉장히 억울하다는 눈빛을 잔뜩 품은 채, 지구대 건물 벽에 오른쪽 뺨을 대고 거칠게 숨을 고르고 있는 김의경이었다.
"네가, 제 아무리, 하아…, 뛰어봤자, 벼룩…이지."
추격전 끝에 범인을 제압하듯이 김의경의 한쪽 팔을 뒤로 꺾은 채, 가까이 밀착하여 그의 왼쪽 귓가에 대고 말하는 이순경이었다. 숨이 찬 이순경이 헐떡이며 말하는 바람에, 김의경은 아찔한 듯 두 눈을 꾹 감으며 목을 왼쪽으로 움츠렸다.
쫄았냐? 목은 왜 움츠려, 임마. 그러면서 김의경의 뒤통수를 팍 때린다. 갑작스러운 선제공격에 눈을 부릅뜬 김의경이, 새까만 동공이 닳아서 없어질 정도로 흘겨봤다. 제 아무리 모든 업무에 꾀를 부리는 이순경이라지만, 이상하게도 김의경 앞에서는 얄짤 없었다. 사소한 것 그 어느 하나라도 결코 봐주는 법이 없었다. 봐주면 어쩐지 지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만만하다 싶으면 기어오르는 아주 못된 놈이라, 눈에 쌍심지를 켜고 더 더욱 그러는 걸지도 모르겠다.
"다리가 짧아서 범죄 저지를 위인은 못되겠다. 나 같은 경찰한테 한방에 잡힐 테니까."
그러니까 착하게 살아라, 응? 지구대 내에서와는 반대로 이순경이 통쾌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명수의 머리를 톡톡 두들긴다. 근데 그 말이 맞긴 맞는지, 김의경에 비해 상대적으로 숨을 덜 헐떡이고 있는 이순경이었다.
"이래봬도 180이거든요?"
자신을 조롱하는 발언에 울컥했는지 씩씩거리며 말하는 그런 김의경을 보며 이순경의 얼굴빛이 싹 뒤바뀌었다. 정색. 그러고는 어디서 개수작이냐며 꺾은 팔을 위로 좀 더 들어올린다. 잔뜩 인상을 쓰면서 아프다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김의경의 모습을 보아하니 어째 좀 묘하게 웃기다. 이런 모습은 처음인 것 같다. 앞으로 종종 써먹어야지!
그러고 나서 키가 몇이냐고 물어보자 돌아오는 대답은 '180'.
"뻥치지 마. 내가 183인데?"
또 한 번의 정색. 수영장에서 물안경을 쓴 것처럼 훤히 들여다보이는 거짓말에 괘씸함을 느껴 팔을 더 들어 올리는 그 순간, 짜릿짜릿한 지옥을 맛보았는지 벗어나려고 아등바등 거리기 시작한다. 얼마나 좋으면 저럴까? 후후…. 낚시꾼의 미끼를 덥석 무는 바람에 수면 위로 끌려나온 물고기가 팔딱팔딱 거리는 것 마냥, 저항의 몸짓 한 번 퍽이나 현란하게 한다. 그렇게 김의경의 처절한 몸부림을 보며 꽤나 재미를 느꼈는지 소리 없이 야비하게 웃고만 있는 성열이었다. 반면 명수의 얼굴은 고통으로 잔뜩 일그러져 있었다.
"178!!!!!!!"
도저히 못 참겠는지 항복의 의미를 담아 손바닥으로 벽을 탕탕 치면서 말하니, 성열이 그제야 팔을 쓱 풀어주고는 한 발짝 뒤로 물러선다. 사실 178도 안 되는 것 같지만 자존심 상할 테니 알아서 적당히 봐준 셈이었다. 슬쩍 바라보니, 인상을 쓴 채 꺾여있던 쪽의 어깨를 돌려가며 아픔을 달래고 있는 김의경의 모습이 보인다. 캬캬~ 이거 완전 쌤통이다. 십 년 묵은똥이 내려가는 느낌이다. 아, 십 년 묵은 몸무게였나? 그러기엔 어째 말이 좀 이상한데? 뭐더라? 난데없이 등장한 난제를 풀기 위하여 발광하고 있는 김의경을 내버려둔 채, 뒷머리를 긁적이며 지구대 안으로 들어가려고 뒤를 돌았다.
근데 이 때, 등 뒤에서 '이순경님!'하며 다급하게 부르는 소리가 들려온다. 매번 호칭은 생략하고 말하던 놈이 왜 저런대? 오호라…. 범인 대하듯이 제압하는 게 효과가 꽤나 있긴 한가보다.
"왜 이 자식아."
씰룩이는 광대를 애써 숨기려 노력하며 퉁명스런 대답을 끝내고 뒤를 도는 순간, 시야에 빼곡히 김의경의 얼굴이 가득 찼다. 힉!!!!! 이건 뭐야!!!! 거짓말을 조금 보태자면, 너무나도 놀래서 심장마비느님이 오실 뻔했다. 반사적으로 얼굴을 뒤로 빼려했지만 그럴 틈도 주지 않고, 양손으로 재빠르게 내 어깨를 감싸 쥐더니 지구대 건물 벽으로 세게 밀어붙였다.
악!!!!!!!!!! 얘가 왜 이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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