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당탕탕!
하루도 바람 잘 날 없는 일곱 명의 무한지구대 이야기
<응답하라112>
- 미스터몽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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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먹으면서 뉴스를 틀어보니 태풍 볼레란이 제주와 전라도에 큰 피해를 입히고 오후 2~3시경 수도권을 강타한다고 한다. 깨진 유리며, 뜯어진 벽이며, 자료화면으로 나온 피해 현황들은 태풍 볼레란의 위력이 얼마나 강한지 잘 보여주고 있었다. 이번에는 제대로 큰일인 걸. 화면을 주시하며 밥을 한 숟가락 떠먹었다. 그러자 스튜디오와 여수에 있는 여기자가 연결됐는데, 노란 비옷을 입은 채 강풍을 버텨가며 간신히 보도하는 모습이 비춰졌다. 바람이 얼마나 거센지, 보도를 하는 여기자의 머리카락이 수평으로 올곧게 펴져 있었고, 몸은 힘이 부치는지, 바람이 부는 방향으로 점차 밀려나고 있었다. 화면 밖으로 나가버리는 방송 사고를 내지 않기 위해, 젖먹이 시절에 비축해 놓았던 힘까지 죄다 짜내서 버티고 있는 것만 같다. 기자의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았고, 마이크를 빼앗은 뒤 '안녕? 내가 바로 볼레란이야.'하고 자기소개를 하는 것 마냥 거친 바람 소리만이 들리고 있었다. 제 3자가 봐도 걱정스러울 만큼 어찌나 위태로운지, 스튜디오와의 연결이 끊기고 나면 더는 버티지 못하고 바로 날아가 버릴 것 같다.
아무래도 태풍으로부터 지구대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출근하자마자 유리창에 신문지를 붙여놔야 할 것 같다. 음식을 우물우물 씹고 있다가, 문득 고개를 들어 올려 벽시계를 확인한 성규는 서둘러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식탁에 나와 있는 반찬통에 뚜껑들을 덮어서 차곡차곡 쌓아올린 다음, 냉장고에 쑥 넣었다. 그러고는 식탁으로 돌아와서 밥그릇 안에 수저를 넣고는 물이 반쯤 담겨있는 싱크대에 퐁당 담갔다. 양치질을 하면서도 온갖 신경은 아침 뉴스에 쏠려있었다. 치카치카…. 그리고 세수를 하면서도 청각은 아침 뉴스에 꽂혀있었다. 어푸어푸….
*
"여기 물 좀 뿌려봐."
칙칙.
"야, 팍팍 좀 뿌려봐라."
이래가지고 붙겠냐? 붙겠어? 한가득 인상을 쓴 채 김의경 눈앞에다가 신경질적으로 신문을 흔들어 보이는 이성열 순경이었다. 팔락팔락. 신문이 내는 거친 소리는 이순경이 얼마나 뿔났는지 잘 표현해주고 있었다. 경찰 되시는 분의 이런 불필요한 횡포에도 김의경은 눈 하나 꿈쩍하지 않고 분무기를 손에 쥔 채 가만히 서있었다. 팔락팔락. 그의 시야는 신문으로 인해 이순경의 얼굴이 보이다가 사라지다가를 몇 번이고 반복했다. 그건 이순경 또한 마찬가지였다. 지금 자신이 흔들고 있는 신문이 김의경의 얼굴을 가리다가 보여주다가 반복했다. 그러다 문득 '얘가 왜 가만히 있지?'라는 생각이 든 이순경은 신문을 흔드는 것을 그만뒀다. 원래대로라면 아주 그냥 물어뜯을 기세로 달려들어야 할 사람인데, 잠자코 가만히 있으니까 어째 이상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불안하기도 했다. 게다가 무표정을 유지하고 있는 김의경 특유의 눈빛이 자신을 향해 그윽한 빛을 발하고 있어서 왠지 모르게 낯간지러운 기분도 들었다. 그 눈빛과 짓고 있는 표정이 일치하지 않아서 유독 더 그렇게 느끼는 걸지도 모르겠다.
반면 김의경은, 시야에서 신문이 완전히 사라지자 이순경 얼굴이 보였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빤히 쳐다보는데, 물통에 물감을 떨어트린 것 마냥 이순경 얼굴에 복잡한 표정이 점차 퍼진다. 뭐야, 이 사람 왜이래?
칙. 좀 전에 당했던 횡포에 보답할 겸 정신 차리라는 의미로 이순경 얼굴에다가 분무기를 뿌리는 김의경이었다.
"야, 이씨!!!!!!"
두 손으로 얼굴을 박박 닦아내며 이순경이 꽥 소리 질렀다. 그 모습이 재밌는지 씩 웃고 마는 김의경에게 포상으로 거친 꿀밤이 떨어졌다. '콩'하고 때리는 수준이 아니라 '빡'하는 수준이었다. 돌로 갖다가 힘껏 내려찍은 듯한 아픔이었다. 맞은 곳을 부여잡으며 아파하는 김의경을 보며 이번에는 반대로 이순경이 씩 웃었다. 고개를 들어 '너 지금 웃고 있냐?'랄 법한 날카로운 표정을 지어보인 김의경이 분무기를 들었다.
칙.
*
끼야아아아아악!!!!!!! 괴상한 비명 소리가 들리길래 소리 나는 곳을 바라보니, 이순경이 신경질적으로 얼굴을 닦아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얼굴에 뭐가 묻은 모양이다. 그 옆에는 김의경이 본인의 머리통을 부여잡고 있었다. 이 사람은 두통인가?
"둘 다 어디 아픈가?"
고개를 들어 올려 걱정스러운 듯이 말하자, 의자를 딛고 올라서서 유리창에 신문지를 묵묵히 붙이던 호원이 하던 일을 그만두고 내려왔다.
"또 티격태격하고 있나봐."
동우와는 달리 별로 대수롭지 않게 느끼는지, 전면이 유리로 이루어진 지구대 문 앞에서 난리 부르스를 하고 있는 두 사람을 보며 호원은 두 손을 탁탁 털어낸다. 그 순간, 잠시 외출했던 지구대장 김경위가 문을 열고 들어서면서 두 사람을 보고는 거품 물 듯이 크게 소리를 지르더니, 이성열 순경과 김명수 의경의 난리 부르스는 김경위의 무력 진압으로 막을 내렸다.
내일은 출근할 수 있을까. 아직 신문이 붙어있지 않은 부분으로 창밖을 내다보며 걱정스러워하는 호원이었다. 눈을 이리저리 굴려가며 조심스레 하늘의 동태를 살펴본다. 살며시 옆으로 다가온 동우도 호원처럼 하늘의 동태를 살핀다. 온종일 하늘이 시커멓다. 구름은 태풍에게 빨리다가 말았는지, 힘없이 쭉 늘어져있는 형태였다. 한바탕 거세게 몰아칠 것만 같다.
"저것들이 점심만 먹으면 힘이 남아도나…."
궁시렁거리면서 다가온 김경위가 같이 붙어있는 장경장과 이순경에게 밖에서 구해온 신문지를 던졌다. 모자라지? 이거로라도 붙여. 엉겁결에 받아든 이순경이 신문으로 시선을 내리깔았다. [교차로], [곱등이시장]이라고 큼지막한 글씨로 쓰여 있는 구인 구직 신문이었다. 뭘 이런 걸 다…. 거센 바람을 뚫고 구해온 걸 보면, 지구대 유리창이 깨질까봐 어지간히 걱정되나 보다.
장경장은 분무기를 흔들어 보더니 물이 다 떨어졌다며 화장실로 향했다. 그의 뒷모습을 보며 김경위가 나지막이 혀를 찼다. 정수기에서 받으면 되지, 굳이 거기까지 갈 필요 있나? 그러다 마침 이성열 순경이 자신의 옆을 지나쳐 정수기로 향하자, 민첩하게 팔을 뻗어 뒷덜미를 잡아채는 김경위였다. 그 바람에 이성열 순경이 금방이라도 뒤로 넘어질 듯 위태롭게 뒷걸음질을 쳤다. 왜 이러냐며 억울한 표정으로 항의를 했다.
"이순경, 너 어디가."
"에? 분무기에 물 받으러요…."
이순경이 김경위 눈앞에 분무기를 흔들어 보이자, 굉장히 못마땅한지 턱 끝으로 화장실을 가리켰다.
"신문한테 정수기 물 주게? 화장실 가서 떠와."
"????????????????????????????????????????"
얼이 빠진 얼굴로 김경위를 바라보는 이성열 순경과 '넌 특별히 미우니까.'라고 속으로 생각하는 성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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