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끌벅적한 분위기 속에서 훈훈한 기운이 묻어나오고 있었다. 찬 에어컨 바람과 사람들 저마다의 숨이 섞여들었다. TV소리를 배경으로 우리 것인지 아닌지 구분도 안되는 취객들의 소음들이 술집을 가득 메웠다. 우리 테이블을 중심으로는 하하하, 같은 웃음소리와 높아진 목소리들이 오가고 있었다. 나 역시 온 몸에 열이 오르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즐거움에 하나되어 사람들과 하하하 웃었다. 조금 어색했던 동료들과도 술 힘을 빌려서 농담 따먹기를 했으며, 제대로 싸웠던 경험이 있는 PD님과는 또 하하하 웃으면서 서로를 칭찬하고, 수고했다는 말을 주고받았다. 그 때, 그 소란스러움 속에서도 눈에 띄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 으아, 민석이 형 또 시작해요. "
멤버들 중 누군가가 웃음을 가득담은 목소리로 소리쳤다. 응? 뭘 시작한다고? 내가 혼잣말하 듯 말했더니, 옆에 있던 또 다른 작가가 말해준다. 왜왜, 그거 있잖아요. 시우민 술버릇. 나는 자연스럽게 미간을 찌푸리고 되물었다. 응? 술버릇? 그렇게 말하고나자, 갑자기 스치듯이 떠올랐다. 아아. 내가 깨달은 듯한 감탄사를 내뱉자, 작가는 더 설명해주려던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우리는 함께 시선을 옮겼다. 소란스러움의 근원지로. 정확히는 멤버들의 앞머리를 올리고, 개구진 표정을 짓고있는 김민석에게로.
" 지금 뭐하는 거래요? "
" …딱밤, 아닐까요? "
" …그렇죠? 제가 봐도, "
우리의 대화가 끝나기도 전에, 김민석은 멤버들의 이마에 딱밤을 놓았다. 주변 소음에 묻혀서 잘 들리지는 않았지만, 여기서 봐도 '딱'소리가 날 정도의 센 딱밤이었다는 건 알 수 있었다. 방금 전 딱밤을 맞은 멤버는 악- 소리를 내며, 이마를 부여잡았다. 누군가했더니 도경수구만. 쯧쯧. 나는 혀를 끌끌차면서, 희생자가 늘어나는 모습을 보고있었다.
한 행동을 계속해서 한다. 김민석의 술버릇에 대해서는 우리 팀에게서 소문도 들었었고, 몇 번씩 술자리를 함께하면서 맛보기로 본 적은 있었다. 그 때 마다 술이 많이 안 올라서, 보통은 가볍게 끝나고 했지만 이번은 그렇지 않은 모양이었다. 마지막 촬영 후, 단체 회식. 흥이 오를 수 밖에 없는 자리였다. 다음날 스케쥴에 지장이 있을거라고, 과음 하지 않던 촬영팀 전체와 EXO 멤버들이었는데. 오늘 만큼은 잔을 계속 받고, 마시고 했다. 슈밍도 그 중에 하나겠지.
오늘 하는 행동은 마지막 촬영 회식에 참 어울리는 것이었다. 그 동안의 괴로움, 서운함을 딱밤으로 해결 그 다음 일일이 고마워, 고맙습니다, 감사해요, 제가 많이 좋아해요 같은 애정어린 말하기. 애정어린 말이라니, 술은 역시 사람을 많이 바꾸는 모양이다.
아무튼, 훈훈하고 재미있는 장면이라 모두가 이를 웃으며 지켜봤다. 누구하나 말리는 사람은 없었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딱밤 때리기는 큰 이벤트였고, 그에 따르는 고맙다는 말은 우리의 분위기를 좀 더 따뜻하게 만들었다. 오늘만큼은 더 재밌고, 좋은 술버릇이네. 그렇게 생각하다가, 나는 잠시 멈칫했다. 엑소 멤버들을 한 명씩 다 돌고난 뒤, 매니저에게 가고, 그 다음에 촬영팀으로, PD, 음향감독, 카메라 감독들을 쫙 돌고 있는 중이었다. 옆에 있던 작가가 물었다. 이러다 작가 쪽으로도 오는 거 아니에요? 아니나 다를까, 김민석은 어느 새 우리 작가들 쪽으로도 오는 것이었다. -물론 거의 다 섞여 앉아있었으나, 나를 포함한 작가 몇명이 모여 앉아있었다- 그리고 내 옆에 앉은 작가가 또 희생양이 되었다. 여자라고 배려한 건지, 다른 사람들 보다는 살살 때리는 것 같았다. 때리고 난 뒤, *작가님 고생많으셨어요 작게 말한다. 진짜 귀엽네, 하는 짓. 그렇게 생각하고보니 어느새 내 차례였다. 그런데,
" 어? 민석아, 왜 ○작가는 지나쳐? "
" ○○○은 왜 안 맞아? "
김민석은 날 지나쳤다. 주위 사람들이 야유하면서-특히 엑소 멤버들이 제일 심했다-, 김민석을 불렀지만 술에 취해서 귀가 막힌건지 그는 표정 하나 안 변하고 다음 사람을 때릴 준비하고 있었다. 진짜 아무 것도 안 들리는 사람 같았다. 이 딱밤을 때려야한다는 것에 집중하는 사람 같았다. 결국 나한테 시선 한 번 돌리지 않았다. 뭐지? 이 오빠가 왜 이러지. 안 맞아도 되니까 다행이라는 생각은 아주 잠깐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서운했다. 나만 무시하나. 나는 그런 생각을 하는데, 분위기가 무르익기 시작했다. 나는 모두에게 아이스크림이라도 하나씩 사야할 것 같아서 밖으로 나왔다. 마지막 촬영이었으니 이 정도는 꼭 하고 싶었다.
EXO를 메인으로 하는 리얼리티 예능 프로그램이 오늘로 마지막 촬영이었다. EXO는 안정기를 달리는 아이돌이었다. 어느새 더 많은 팬층을 형성한, '중견'이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은 아이돌이었다. EXO 데뷔 후에도 아이돌은 꾸준히 많이 쏟아졌으니, 전체적으로 봤을 때 그들은 중견 아이돌이 맞았다. 그렇게 생각하니 신기했다. 내가 엑소를 신인이라고 불릴 때 좋아했었는데, 그들과 같은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그들과 아는 사이가 되고, 친해지고, 또 어느새 마지막 촬영이라니.
'리얼리티'라는 말이 붙은 만큼, 숙소도, 연습실도 자주 방문했고 그들을 따라 스케쥴을 함께 향한 적도 많았다. 멤버 개인 스케쥴에도 따라나선 적이 또 여러번. 게다가 그들과 차이도 얼마 안나는 또래여서 몇 명과는 시간을 두고 혹은 금방 친해지기도 했었다.
" 어디 갔다와? "
그 중에서도 가장 오빠인 김민석은 나한테 좀 특별하다.
" 오빠, 왜 나와계세요? "
" 여기 좀 앉아 봐. "
지나가는 사람들이 없는 가게 골목에 그가 앉아있었다. 그러더니 나를 보면서, 자기 옆에 앉으라고 바닥을 툭툭 친다. 아이스크림 녹는데. 그런 사정을 아는 지 모르는 지, 김민석은 자기 옆을 툭툭 치며 앉으라고 또 한 번 나를 불렀다. 네, 갑니다, 가요. 그의 옆에 앉고, 아이스크림을 담아온 봉투를 옆에 내려놓았다. 그가 시키는대로 앉기는 했는데, 정작 별 말이 없었다. 고개를 돌려봤더니 아무 것도 없는 앞쪽만 보고 있었다. 그래도 얼굴을 보니 다행히 술이 좀 깬 모양이었다. 속이 안 좋다거나, 취해서 밖으로 나온 건 아닌 듯 했다.
" 오빠, 괜찮아요? "
" 어. 아, 맞다. "
그제야 뭔가가 생각났다는 듯, 몸을 틀어 내 쪽을 본다. 생각해보니 조금 가깝다. 평소에는 이런 생각 잘 못하는데, 단둘이 있으니까 이런 거리가 보이기 시작한다. 그런 의미에서 김민석은 나한테 특별하다. 그는 내가 팬이었을 때 TV를 통해 봤을 때보다, 실제로 봤을 때 더 멋졌다. '귀엽다'라는 표현을 많이 생각했었는데, 막상 만나고 난 뒤에는 그게 그한테 조금은 어색한 단어가 아닐까 생각했다. 생각했던 성격과 많이 달라서 놀랐던 사람 중 하나였다. 그리고,
" 너도. "
내 생각과는 달리 자꾸만 더더 마음이 가는 사람이다. 김민석은 갑자기 손을 올려 내 이마에 얹었다. 뭐지, 싶은데 그가 내 앞머리를 살짝 올린다. 아니, 이 인간이. 그러면서 남은 손을 내 시선이 맞닿는 곳으로 올렸다. 이건 아무리 봐도 딱밤 때리기 준비 자세였다. 아무래도 아직 술이 완전히 깬 건 아닌가 보다. 이렇게 내 딱밤을 챙기려고 하는 걸 보면 말이다. 그의 술버릇은 말리라면 말릴 수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원래 힘이 좀 센 편이라 그렇게 쉽게만 말려지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그의 이런 고집을 안다. 그래서 나는 순순히 맞아주기로 결심했다. 다들 맞은 건데, 나라고 못 맞을까. 그리고 이 딱밤을 맞고 나면, 애정어린 말을 하는 그의 드문 모습도 보게 될테니 말이다.
" 자, 때려요. "
그리고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원체 딱밤 때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딱밤을 맞을 바에는 등을 한대 세게 맞거나, 손목을 차라리 맞겠다고 하는 나였다. 하지만 김민석이 때리겠다는데 어쩌겠어. 나는 이마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긴장하지 않으려고 하는데, 온 신경이 그 쪽으로 가있었다. 그런데, 그 이마에 부딪히는 촉각이 내가 생각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나는 그 미묘한 촉감에 눈을 떴다. 방금, 쪽- 이라는 말도 안되는 소리를 들은 것 같기도 하다. 놀란 내가 그를 쳐다보았다. 그도 내 눈을 똑바로 보고 있었다. 순서가 맞다면 딱밤 그 다음에는 애정어린 말인데.
" ○○아. "
김민석은 지금 취하지 않았다.
" 나랑 만날래. "
근데 분명히 내게 말하고 있다. 그가 하고 있는 말 자체는 물음표가 붙어야 옳은 질문인데, 그 말을 하고 있는 그의 목소리와 태도는 이미 확고했다. 저거 지금 나랑 만나줄래? 가 아니라 나랑 만나자 맞지? 아, 날씨가 너무 더운데 아이스크림 녹겠다. 아, 아니다. 녹고 있는 건 지금 난가?
비현실적인 연애소설
W.꼬밍
" 너, 뭐야? "
" ……. "
" 넌 여기가 집이야? "
" 누구, "
" ○○○. "
" …아, 오빠, "
" 변명하지마. 너는 할 말 없어. "
김민석은 단단히 화가난게 분명했다. 하긴, 내가 그의 입장이었어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러니 여기서 나는 죄인이 맞다. 그가 시키는대로 입을 꾹 다물고 있을 수 밖에 없다.
어디냐고 묻는 그의 카톡에 '집이요!' 라고 당당히 답한 것 부터가 잘못이었다. 그 때는 이미 모든 준비를 마치고 친구들과 클럽으로 향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리고 클럽에 들어오고 난 뒤, 그의 카톡이 온 것을 확인했다. 어쩌나 고민하다가, 그냥 잠들어버린 척하고 확인도, 답장도 하지 않았다. 오늘도, 내일도 쉬는 날이라는 것을 그가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 시간에 밖이라고 하면, 그 것도 클럽이라고 하면 그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뻔했으니까. 그런데 그의 스케쥴을 제대로 확인하지 못한게 문제였다. 설마 오늘 스케쥴 때문에 클럽에 올 줄을, 그 것도 내가 갈 클럽을 올 줄은 전혀 몰랐다. 아, 그래도 스케쥴이라서 다행인가? 스케쥴 때문에 온 게 아니었으면, 오빠도 나도 아무말도 못할 상황이었을테니. 한 한 시간쯤 놀고있었을까, 맙소사 화장실로 가는 문 쪽 근처에서 김민석을 딱 마주치고 말았다. 눈이 마주치고 재빨리 모르는 척 지나가려했지만, 김민석의 눈과 손이 더 빨랐다. 고개를 재빠르게 돌린다고 돌리고, 태연한 척 한다고 하기는 했는데, 그가 더 빨랐다. 이미 내가 누군지 알아봤고, 억세게 나를 붙잡았다.
" 뭐? 집? "
" ……. "
" 답이 없었던 걸 보면, 네가 여기서 노느라 정신이 없었거나 보고도 무시했다는 거 둘 중 하나인데. "
" 오빠…. "
" 너 지금 이 시간에, 그 것도 클럽? 게다가 나한테 거짓말까지. 아니 여자애가 혼자, 위험하게 진짜. "
" 친구들이랑 왔어요, 오빠님…. "
" 친구들은 다 여자 아니야? 너 정말. "
" 그럼 남자 동료들이나 친구들은…. "
" 야, 너! "
" …미안. "
" 그리고 너, 옷차림. "
" 사람은 때와 장소에 맞는 옷차림을…. "
" 얘가 진짜 아직 잘못한 줄도 모르고? "
아마, 그는 내 이런 옷차림을 처음 봤을 것이다. 방송하면서 내가 잘 입고 다니는 모습은 물론 못 봤을 것이고, 평소 그와 만날 때에도 적당히 꾸미기만 했으니. 그리고 그 꾸밈은 여성 이나 예쁨, 가끔 청순에 스타일이 맞았기 때문에 더 그럴 것이다. 뭐 방송일 할 때는 내가 밤낮 못자고 작업하는거 아니까, 초췌한 상태라도 늘 이해해줬었지. 심지어는 그것도 '괜찮아' 라고 슬쩍 웃으며 말해주는 사람이 아닌가. 얼굴을 한 번 들여다봐주고, 어깨를 툭툭 두드려주고,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수고했어, 고생했어." 토닥여주고 웃어주고, 사람들 없을 때는 꼭 껴안아주는 사람. 아무튼, 내 그런 모습만 보다가 드러나지 않던 곳까지 살색이 두드러지니 그가 지적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다. 내가 생각해도 조금 오버한 것 같기도 하다. 평소의 나같지 않게.
" 나 공연 끝날 때까지 어디 갈 생각하지마. "
" 응? 나 친구들이랑 왔다니까, 오빠. "
" 너 진짜, "
" 어디서 기다릴까? "
" 매니저 형 옆에 딱 붙어서 기다려. "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제야 잡힌 손을 놓아준다. 다녀올게. 그러면서 가던 사람이 갑자기 다시 돌아와서 내 앞에 선다. 왜 그래?
" 너 혹시 다른 남자가 옆에 자꾸 붙었다거나, 작업을 건다거나, 번호를 딴다거나…. "
" 몰라. 없었을 걸? 오빠는 내가 그런거 때문에 오는 거 아니라는 거 알면서. "
" 자기는 거짓말 해놓고? …아니, 내가 그런 거에 너를 못 믿는 게 아니라 네 옆에 있는 사람들을 못 믿는거지. "
" 글쎄. "
" 글쎄? 몰라? 뭐뭐 했을 걸, 이라고? "
" 아니야, 오빠. 나 진짜 춤만 췄어, 아무 일도 없었어. "
" 진짜? "
" 응, 진짜. 확실! "
" 어떻게 그냥 뒀대, 널. "
간지러운 말인데, 그가 하면 간지럽지가 않다. 그 말을 하면서 전혀 능글맞은 표정도 아니고, 느끼한 표정도 아니다. 심지어 나한테 직접적으로 한 말도 아니었다. 그건 그의 중얼거림에 가까웠다. 그의 혼잣말. 대신 무의식 중에 크게 튀어나온 말 같았다. 그의 이런 아무렇지 않은 표현들이 나를 설레게 한다. 귀엽다는 표현이 실제로는 잘 안 맞는 사람이라는 건 변함이 없는데, 어쩌지 그런데도 그가 귀엽다. 애교부리고, 귀여운 표정을 짓고, 나한테 그렇게 예쁘게 표현해줘서 귀여운 게 아니라, 이 어긋나는 듯한 그의 설렘이, 심지어는 그의 무뚝뚝함 마저도 귀엽다. 그건 내가 그를 좋아하기 때문이고, 또 그가 나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매니저 형 옆에 꼭 붙어있어. 그가 말하곤 급하게 무대가 있는 쪽으로 향했다. 나는 그의 뒷모습을 보다가, 휴대폰 진동이 울리고 있음을 알았다. 확인해봤더니, 같이 온 친구들 중 하나의 카톡이었다.
- [ 야 오늘 클럽물 대박임ㅋㅋㅋㅋ ]
[ 나 방금 카이닮은사람봄 ]
[ 진심정말레알임 ]
[ 종이니랑판박이였슴 ]
병신아, 진짜 김종인이야. 스케쥴이 있다고 하더니, 아무래도 다 같이 온 모양이었다. 다른 멤버들도 근처 어딘가에 있겠구만.
- [ 멍청아 진짜 카이 맞음 ]
[ 방금 오빠랑 마주쳤어..... 화장실가다가걸렸어 ]
- [ 헐? 오늘 이 클럽에 엑소 옴? ]
[ 어쩐지 물이 좋다고 느낌... ]
[ 멋진남자들이 여기 급수를 다르게 만들었나봐 ]
- [ 엑소가 무슨 티백이야ㅋㅋㅋ ]
[ ㅋㅋ 아무튼 난 먼저 가볼게 ]
- [ 잡혀살지마 불쌍해ㅠㅠ ]
- [ 잡혀사는거아니얔ㅋㅋㅋ 너도 적당히 놀다 들어가 ]
- [ ㅎㅎ 남자친구출장감 ]
- [ ㅋㅋㅋㅋㅋㅋㅋ ]
[ 어쩐지ㅋㅋㅋㅋㅋㅋ ]
[ 아무튼 다른애들한테도 인사전해줘 ]
[ 담에 제대로 더 놀자 ]
친구와의 카톡을 그만두고, 나는 내가 가야할 곳을 찾아야 했다. 매니저 오빠 옆에 가있으라고 했었지. 같은 방송을 하면서, 또 김민석과 만나면서 자연스럽게 연락을 자주하게된 매니저 오빠에게 연락을 했다. 김민석에게 미리 무슨 말을 전해들은건지, 매니저 오빠는 바로 내게 어디어디 쪽으로 오라고 말했다. 가보니 매니저 오빠가 나를 보면서 혀를 끌끌 찬다. 나는 그 표정만 보고도 이미 모든 잘못을 알아서, 자연스럽게 작아질 수 밖에 없었다. 히히, 오빠 오랜만이네요.
" 난 갑자기 너 잘 붙잡고 있으라는 말이 무슨 말인가 했다. "
" 하하, 놀러왔는데 마주쳤어요. "
" 네 꼴을 보니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알겠네. "
나는 어색하게 웃었다. 매니저 오빠는 그런 내 모습을 보고 장난스럽게 웃었다. 내가 오빠와 서 있는 곳은 클럽 한 구석, 적당한 크기로 만들어진 무대가 보이는 옆 구석이었다. 음향 기기들이 있는 쪽이라서 그런지, 사람들도 없었다. 거의 관계자외출입금지 구역 같은 곳이었다. 만약 김민석한테 안 들켰다면, 난 저 무대 멀리 어딘가에서 그를 보면서 서서히 굳어갔겠지. 그리고 주위 친구들한테 말했을 것이다. 나 먼저 가볼게, 하하. 아, 어쩌면 멀리서 그의 무대를 멍하게 지켜봤을 수도 있겠다. 다 끝날 때 까지. 그 이유를 묻는다면, 보고싶었으니까.
무대에 그들이 오르자, 사람들이 -특히 여자들의 목소리가 주로 이루어진 - 크게 호응하기 시작했다. 나 역시 매니저 오빠와 함께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래도 신났다. 비록 그에게 걸려서, 저 앞에서 무대를 지켜보지 못하고 이런 꼴이기는 하지만. 어디에서든지 그들의 모습을, 무대를 볼 수 있다는 것은 즐겁다. 나는 이런 일들이 익숙한 것 같으면서도, 가끔은 참 낯설다. 나는 이런 느낌들을 '행복'이라는 감정선 안에서 다 표현한다.
참 묘한 것이었다. 나는 내가 지금 꿈꾸던 일을 하고있다. 그리고 꿈으로만, 혼자만 알고있던 사람들과 아는 사이가 되고, 함께 일하게 되었으며, 친해지기도 했다. 게다가 나는 지금 꿈꾸던 연애를 하고있다. 내가 지금보다 더 풋풋했을 때, TV에서 보던 사람과. 내가 팬이었던 사람과. 그들의 무대를 보는 것은 아직도 즐겁다. 무대에 있는 그들의 모습을, 오빠의 모습은 빛이 난다. 정말로, 반짝반짝 빛이 난다. 나는 그 때부터, 지금까지 여전히 무대에 있는 그들이 좋다.
내가 신기한 것은 무대에서 내려온, 카메라가 없을 때의 모습을 이제는 안다는 것이다. 물론 사람이 나빠진다거나 하는 사람은 없다. 생각했던 성격과 조금, 아주 조금 다른 사람들만 몇명 있을 뿐. 이미 몇년 째 TV에 나오면서 그들의 평소 모습과 방송 모습은 거의 비슷해졌다. 그런데도 나는 김민석이 조금은 어색하고 귀엽다. 그래도 방송을 할 때는 톤이 높아지고 밝아지는, 그 방송용이라는 것이 있는데. 사람들이 귀여운 모습을 보여달라고하면 보여주는 애교도 많이 늘었고, 귀여운 표정도 많이 보여주는데 실제로는 아직은. 방송용 톤이 없는 것은 물론, 아직도 내 앞에서 애교를 잘 보여주지는 못한다, 귀여운 표정은 굳이 짓지 않는다.-하지만 자연스럽게, 아무래도 그도 모르게 나오는 경우는 있다- 시크하지만, 무뚝뚝할테도 있지만, 표현하는 감정선이 좁아보이는 것 같기도 하지만. 그래도,
" 올 ○○○! 웬일이야, 진짜 ○○○이네. "
" 늘 잠도 못자고 죽어있는 줄 알았는데, 이렇게 꾸미고 이런 곳 올 줄도 알아? "
" 헐, 야. 헐, 너. …누구세요? "
" 와, 다들 그런 반응이니까. 왜 나 혼나고 있는 것 같지? "
" 혼날만 하지. "
그러면서 김민석이 내 이마를 손바닥으로 톡 때린다. 아야. 옆에 있는 멤버들은 실실 웃고있었다. 나를 보고 놀라움과 장난을 섞어가면서 인사를 해주는 멤버들 앞에서, 나는 부끄러움에 자꾸 접혀져가고 있는 기분이었다. 평소 내 모습이 어땠는지, 너무 잘 알고있기 때문에 부끄러운거다. 멤버들이 인사를 하면서, 나를 놀려대는 것이 반복되고 있었다. 그 때, 무언가가 내 드러난 어깨위에 걸쳐진다. 김민석이 제 무대의상을 벗어서는 나한테 말없이 걸치고는, 다시 다른 것들을 정리하러 갔다.
" 넌 왜 이런 곳까지 와서 들키고 그래? "
" 그러게 말이야. 요즘 모처럼의 휴가인데. "
" 쯧쯧, 네가 그러니까 안돼. 다음에는 더 외진 곳에서 놀아봐. "
" 올, 그럴까? "
" 올은 무슨 올. 모처럼의 휴가를 이런 곳에서 왜 써. 맨날 잠 못자서 쓰러질 것 처럼 굴지말고, 이럴 때라도 푹 쉬란 말이야. "
" 자,잘못했어요. "
" 와, ○○(이) 꽉 잡혀사네. "
" 얘가 나한테 잡혀사는 건지, 내가 얘한테 휘둘리는 건지 모르겠다. "
박찬열과 내 대화에 끼어들어서 또 핀잔주는 김민석. 우리 둘의 대화 흘러가는 꼴이 어이없었는지, 헛웃음을 짓는다. 아무튼 그의 말도 일리가 있다. 평소 자주 마주치는 방송국에서는 내 꼴이 피곤에 엉망이고, 매일 약 먹고, 정말 가끔은 링거도 맞았다고 하니. 같은 일은 아니지만, 어쨌든 비슷한 업종에 일하는 사람들이라 우리는 서로를 안다. 평소에 우리가 어떤 일을 하고, 얼마나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많은 고생을 하는지. 우리에게 쪽잠이라는 것이 어떤 의미이고, 진짜 쉰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서로 바쁜 그 와중에 데이트 한 번이, 사실은 둘 다 금 같은 시간인데, 편히 잠 잘 수도 쉴 수도 있을 시간인데 서로를 만나기 위해 쓴다는 걸.
나에게 모처럼의 짧은 휴가가 생겼다. 김민석은 그 동안 내가 마음 편히, 몸 편히 쉬기를 바랐을 것이다. 하지만 휴가라도 마냥 쉬는 것에만 보내면 그것도 그것나름대로 허무하고 지루하다. 솔직히 말하면 심심했다. 더 정확히는, 그를 볼 수 없었던 시간이라 더 심심했다.
옷 좀 갈아입고 올게. 그러면서 김민석이 사라진 사이, 나는 짧게 한숨을 쉬었다. 좋긴 한데, 진짜 자꾸 혼나는 기분이라 긴장이 됐었나보다. 그런 나를 보면서 몇 명이 웃는다. 뭐뭐, 왜 웃어?
" 저렇게 혼내는 것 같아보여도, 너 엄청 걱정한다? "
" 어? "
" 크게 우리한테 드러내지는 않는데, 다 드러나. 아까도 혼자 뭐 생각하는 표정이라서 왜 그래 물었었는데, '아, 아까 ○○(이) 만났어.' 이러길래 내가 막 웃었거든. "
" 왜 웃어? 그게 뭐가 웃기다고, 이 사람아. "
" 여기서 너 만났다는 건, 네가 클럽와서 걸렸다는 얘기니까. 상황이 웃기잖아. 아무튼 그런가보다 했는데, 막 혼자 웅얼거려. 그럴 성격 아닌데. "
" 뭐라고? "
" '아니, 근데 걔 오늘 모습, 아.' 이런 식으로? 왜 그러나 했는데 지금 네 모습보니까 알겠다. "
" 허허. "
" 얼굴 새빨개졌음. 귀여웠지. "
아, 귀엽다. 진짜 귀여워 김민석. 지금 팬의 입장이라면 막 댓글창에다가 'ㅠㅠㅠㅠ' 도배하면서 울고싶은 심정이었다. 너무 귀여워서.
참 귀엽다는 말이 안 맞는 사람인데, 안 맞아서 더 귀여워. 자기가 귀여운 척을 하지도, 귀엽게 행동하지 않는데도 보는 사람 눈에는 귀여워. 같이 웃으면서 대화하고 있는데 때마침 김민석이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김민석은 매니저 오빠한테 가더니, 저 갔다올게요라고 말한다. 그리고는 나에게로 온다.
" 뭐해? "
" 혼나고 있었어. 그나저나, 다 끝났어? 나 그럼 이제 가도 돼? "
" 가기는 어딜가. "
" 잘못했어. 나 안 놀고 바로 집으로 갈게. 지금 이러고 있는게 더 피곤해. "
" 혼자 왜 가. 같이 가. "
" 응? "
" 데려다주려고 기다리라고 한거지, 그냥 기다리라고 한 거 아니야. "
" 오빠 내일 스케쥴은? "
" 내일은 없어. 아직 바로 방송 시작 아니라서. "
아아, 그렇구나. 나는 걸치고 있던 옷을 매니저 오빠에게 돌려줬다. 그리고 멤버들한테 인사를 했다. 다음에 또 봐. 활동 열심히 하고, 이번에 멋있더라. 그러니까 다들 웃으면서 조심히가라 일러준다. 도경수는 다음에 클럽 갈 일 있으면, 자신이 스케쥴을 알려준다고 연락하라 했다. 나는 은혜로운 사람이라면서 그를 찬양해줬다. 그런 장난스러운 대화가 오가자 김민석이 뭐하냐면서 빨리 나오라고 한다. 모자를 푹 눌러쓴 그의 뒤를 따라나섰다. 밖도 사람이 있기는 있지만, 안 보다는 확실히 조용했다. 그리고 적당히 스산한 공기가 우리를 휘감고 지나갔다. 진짜 가을이네. 여름과 가을의 애매한 경계선에서, 이제 겨우 가을로 넘어가는 시점인 것 같았다. 그가 나를 돌아본다. 안 추워? 그렇게 묻는 그의 목소리가 다정하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괜찮다고 답했다.
그와 사귄지 2년이 조금 지났다. 하지만 제대로 연애를 한 건 겨우 1년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만큼 서로를 자주 못봤다. 나는 거의 내 프로그램에 매달려있어야 했고, 그는 여러 방송을 해야만 했으니까. 지난 2년동안, 그는 중국 활동을 많이 했고-오랫동안 살다시피 했다- 새 앨범을 준비했고, 한국에 와서도 콘서트 준비로 바쁘고 정말 정신이 없었다. 이렇게 보면 오빠가 더 피곤한 것 같기도 하다. 이리저리 왔다갔다. 방송국에서는 그나마 자주 마주쳤다고 해도, 내가 거의 잠이 부족한 상태였고 그도 스케쥴 때문에 바쁜 상태여서 함께 오래 있지는 못했다. 사람들 보는 눈도 있고. 우리는 사람들의 눈을 피해서 탁자 하나를 두고 주로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눴다. 못 본 사이에는 어떻게 지냈는지, 요즘 몸은 어떤지 그런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서로가 보고있는 중에 탁자에 상체를 얹고 잠깐의 쪽잠을 즐길 때도 있었다. 물론 카톡은 거의 매일 주고 받았지만, 전화는 서로의 스케쥴, 시차 때문에 안 맞는 날도 많았다.
" 오빠, 차 가지고 왔어? "
" 아니, 오늘 스케쥴 때문에 다 같이 온 거라서. "
" 어? 그럼 같이 들어가서 쉬지. 나 택시타고 가면 되는데. "
" 너 혼자 택시를 어떻게 태워보내. "
" 그럼 같이 탈까? "
" 걸어갈래? "
" 어? "
" 별로 안 멀잖아. 여기서 네 집. "
" 그건 그렇지만, 오빠 피곤하잖아. "
" 싫어? "
" 아니, 좋아. "
그래서 이렇게 그를 만나 함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안다. 걸을까? 라고 말해주는 그의 말이 듣기 좋았다. 그가 피곤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기적인 생각으로는 말이다. 그래, 솔직하게 그가 함께 걸어준다는 것이 좋았다. 차를 타고가면 짧으니까. 또 택시를 타도 우리 둘만이 아니니까. 금방 또 헤어져야하고, 그러다 오랫동안 못볼 것 같아서.
그와 함께 걸었다. 평소 발걸음이 빨랐던 내가 오늘따라 느리자, 그가 뒤를 돌아본다. 그러더니 내 전체 모습을 한 번 훑고, 내 발에 시선을 고정한다. 혀를 끌끌 차면서, 또 한 번 혼내는 듯한 그 표정으로 나를 본다. 뭐뭐, 또 왜.
" 오늘 키도 많이 컸네. "
" 오빠만 컸다 작았다 하라는 법 있나요. "
" 방송국 안에서 왔다갔다, 자료 조사한다고 왔다갔다, 작가들 집에 왔다갔다. 매일 편하게만 신고, 입고 다니더니. "
" 그래서 나도 이런 거 신고 싶었는데. "
그러면서 히 웃었더니, 김민석도 허 하면서 따라 웃는다. 그러더니 내 앞 쪽으로 온다. 아까도 느끼기는 했었지만, 내가 오늘 좀 과했나. 늘 나보다 높았던 사람인데 오늘은 시선이 비슷비슷하게 머문다. 하긴, 김민석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몰랐을 이야기다. 물론 그를 만날 때도 굽이 높은 것을 신고 싶을 때가 있었다. 이렇게 높은 건 아니었지만. 하지만 그의 말대로, 늘 편하게만 신고 입고 다니다가 그를 만났다. 굽이 높은 것을 신고 다닐 정신은 없었다. 나도 여자라서 그에게 예쁘게 보이고 싶다.
" 예뻐. "
" 어? "
그가 나를 당황시킨다. 평소 그의 시크함, 무뚝뚝함에 익숙하다고는 하지만, 갑자기 그런 말투로 툭 던지 듯, 저런 말을 던지면 난.
" 근데, 안 이러고 다녀도 예뻐. "
" 이 오빠, 말 예쁘게 하는 것 좀 봐. "
" 아, 그리고 내가 짧으니까 이런 거 안 신어도 돼. "
그의 말에 웃음이 터졌다. 아냐아냐, 오빠 나보다 크잖아. 그리고 난 오빠 키 좋아. 그렇게 말하며 웃었더니 그도 미소 짓는다. 그러다 그가 다시 나에게 묻는다.
" 다리 아프지? "
" 아니야, 괜찮아. "
" 너 아까부터 발 아픈거 뻔히 보여. … 그 놈의 클럽이 뭐라고, "
" 하하, 와 오빠 빨리 가자. 너무 늦겠다. "
" 업혀. "
" …네? "
나는 당황했다. 어어? 이건 그 어떤 경우의 수에도 없던 전개다. 왜 이래, 됐어. 일어나. 내가 놀라서 그렇게 말해도, 그는 꿈쩍하지 않는다. 그저 단호하게 나한테 한 번 더 말했을 뿐이다. 업혀, 빨리. 신발 벗어서 나한테 주고 업혀.
" 아, 오빠. 나 치마 입었어. 어떻게 업혀. "
그 말이 끝나자마자, 그가 다시 내 옷차림을 살피더니 휴- 짧게 한숨을 내뱉는다. 그러더니 그가 입고있던 후드 집업을 벗더니 나에게 입힌다. 그리고 나서 지퍼를 잠그는데, 그의 후드 집업이 내 옷차림을 다 가려버린다. 치마가 안 보여. 오늘 내 옷차림이 정말 과하긴 했구나. 스스로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그가 눈살을 찌푸리며 이 모습을 본다. 아, 진짜, 너. 그가 다시 짜증이 난 것 같길래, 바로 그를 돌려버렸다. 그가 얼떨결에 내게 등을 보였다. 업히라며! 그렇게 큰소리로 말했더니 그가 자세를 낮춰준다. 으아, 진짜 업힐 생각은 아니었는데. 내가 망설이고 있자, 그가 단호하게 또 말한다. 업히라니까. 그래서 그냥 힐을 내 두 손에 들고 그에게 업혔다.
" 오빠, 나 무거워. 힘들면 말해, 절대로, 꼭꼭 말해. "
그는 말 없이 나를 업고 일어난다. 그리고 나를 살짝 들려서 자세를 고친다. 그는 힘들다는 말이 없다. 사실 힘들어도 말 못할 성격이기는 했다. 대신 김민석은 나에게 말했다. 꽉 잡아.
" 안 무거워. "
" …바보. "
그에게 업혀 걸어가면서 생각했다. 아, 오늘이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여기서 집까지 가는 길이, 그에게는 짧고 나에게는 정말로 정말로 길었으면 좋겠다. 나를 업고 있는 김민석이 힘들지 않게, 나는 그와 오래있게.
*
집 근처에 도착해서 그가 나를 내려주었다. 나는 신발을 신고, 그와 두 손을 잡고 집에 있는 쪽까지 더 걸었다. 살며시 잡고 있던 손을 그가 고친다. 어느새 깍지를 껴서는 내 손을 꽉 붙잡는다. 나는 이 상황에 그저 속으로 웃었다. 맞닿은 두 손바닥이, 그 느낌이 정말 좋아. 그가 이렇게 손을 잡아줄 때마다 좋은 기분이다. 단순히 손을 잡아서 좋은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전해 받는 느낌이 있다. 이러면 꼭 오빠가 나를 놓지 않고, 끝까지 잡아주고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우리가 계속 함께 있을 것만 같다.
" 다 왔네. 차로 왔으면 그래도 더 빨리 왔을텐데, 피곤했지? "
" 피곤은 오빠가 했지. 공연 끝나자마자, 계속 걷고, 나 업고 했는데. "
" 넌 그래도, 클럽에서 더 노는게 좋았지? "
" 아니거든요. 그럴리가 있어, 이게 얼마만의 데이트였는데. "
정말 순간적으로 침묵이 돌았다. 그 순간, 나는 내가 했던 말을 떠올리며 아차 싶었다. 그를 봤더니, 그가 웃음 없이 나를 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가 내 손을 살며시 놓았다. 김민석은 화가 난게 아니었다. 그의 눈 속에, 표정에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는 미안함이 흘렀다. 이게 얼마만의 데이트라는 말은 하면 안됐는데.
" 미안. "
" 에이, 또 뭐가 미안해. "
" 그냥, 다. 바빠서 제대로 만나지도 못하고, 너 힘도 못되주고, 연락도 제대로 못하고, 데이트도 못하고. 다른 사람들한테 당당하게 연애한다고 알리지도 못하고 다 미안해, 다. "
그래서 이런 말은 하면 안됐다. 그가 얼마나 속이 깊고,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라는 것을 내가 얼마나 잘 아는데. 어떤 일들이 생각한 만큼 안 풀리면, 스스로의 잘못이라고 생각하고 이에 대해 나한테 미안함을 느낀다는 걸. 자존심도 강하고, 나에게 제대로 해주고 싶어하는 마음도 내가 너무 잘 아는데. 괜히 그런 말을 하면 그가 나에게 어떤 태도를 보일지 내가 잘 아는데.
" 보고싶었어, 오빠. "
나는 김민석이 정말로 보고싶었다. 이제 다시 한국에서 컴백한다는 이야기를 그에게 들었다. 하지만 그 때문에 바빠서 또 만나지 못했다는 것도 사실. 나한테 모처럼의 휴가가 주어졌지만, 그 시간동안 그를 볼 가능성이 없다는 것을 스스로 깨닫고 있었다. 그들의 새 앨범은 당연히 구매했고, 음원도 다 다운받았다. 사실 아까 클럽에서 마주쳤을 때, 큰일났다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그를 봐서 기뻤다. 오랜만에 보는 거라 기뻤다. 그를 껴안고 오빠! 반갑게 소리치고 싶었다. 새 앨범 좋더라, 새 타이틀 좋더라. 이번에 오빠 왜 이렇게 멋있어? 그러고보니 머리 바꼈네. 그렇게 그를 붙잡고 떠들고 싶었다.
" 그러니까, 우리 이런 얘기하지말자. 나 오빠봐서 엄청 좋단말이야. "
그러고는 그를 껴안았다. 그도 손을 올려 내 등을 토닥거려 주었다. 그래도 중국에 있을 때 보다는 많이 보겠네. 그렇게 말하자, 그제야 그가 웃는 소리가 들렸다. 시간 날 때 마다 보자. 너 있는 방송국 올 때 마다 보자. 그가 그렇게 말했다. 바보, 컴백이나 신경써. 이번에 오빠보다 멋있는 사람들도 많더라. 내 말이 끝나자마자, 그가 품 속에서 날 빼내 본다.
" 너 엑소에서 누가 제일 좋아? "
" 원래는 세훈이가 진짜 멋있었는데, 이번엔 루한 오빠가 진짜 괜찮더라. 아, 경수도 좋던데, 근데 아직도 너무 귀여워. "
" 원래는 세훈, 이번에는 루한, 경수. 너 진짜 자연스럽게 좋다고 답 잘한다. "
" 응? "
" 나는? "
" 어? …오빠는 당연히, "
" 좋아하는게 아니라 사랑하는거지, 라는 웃긴 말 하기만 해 봐. "
잘못했어요.
내가 입을 삐죽 내 밀고 눈을 피했자, 그가 으이구 소리를 뱉는다. 그러다, 입에 쪽. 놀라 다시 김민석을 보니, 그가 웃고있다.
" 그래도 키가 맞으니까, 뽀뽀하기는 편하네. "
그러다 그가 다시 분위기 잡고, 다가오려는데 이번에는 그의 모자가 걸렸다. 진지한 분위기에서 모자 한 방이, 우리의 웃음을 터뜨려줬다. 아, 지금 다 자는 시간이지. 그 걸 깨닫고 쉿쉿, 오빠에게 주의를 줬다. 하지만 주의를 주는 쪽도, 받는 쪽도 둘다 참고있지만 웃음이 새어나왔다. 그가 웃고있는 나를 다시 똑바로 보며 말했다.
" 내일도 쉬는 날이지? "
" 응. "
" 데이트하자. "
" 어, 진짜? 오빠 안 피곤해? "
" 안 피곤해. "
" 어디서 만날까? 요즘 해 일찍 지니까, 저번보다는 빨리 만나도 되겠다. "
" 야구보러 가고 싶다고 했지? "
" 어? "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익숙한 것인데도 낯설고 당황스러웠다. 방금 뭐라고 한거야. 야구?
" 오빠, 야구 경기는 밝을 때 시작해. 게다가 어두워져도 경기장이 밝아. 영화관도 아니고 야구는 무슨 야구야. "
" 네가 제약없이 하고 싶은 일 중에 야구장 데이트도 있었잖아. "
" 그건 그렇지만 오빠가, "
" 난 괜찮아. "
그가 정말 괜찮다는 듯이 웃는다. 그는 괜찮다고 하는데, 나는 불안하다. 아니, 평범한 사람도 아니고 유명한 연예인인데. 이런 사람은 수 많은 사람들 틈에 있어도 결국에는 드러나기 마련이다. 나는 그를 걱정스럽게 봤지만, 그는 아직도 웃고있다. 진짜 괜찮은데. 그는 그렇게 말하는데 나는 아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인거야.
*
" 오빠 혹시 회사에서 쫓겨나? 아님, 회사에 엄청 불만있어? "
" 무슨 말이야, 그게. "
" 그게 아니고서야, 오빠가 제정신이 아니라는 말로 밖에 이 상황이 설명이 안되서 그래. "
어제 집 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그에게 받았던 후드 집업을 돌려주려고 했었다. 그런데 그가 받아들지 않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네 거야. 그러면서, 내일 데이트할 때 입고 나오라고 했다. 뭔가 싶었지만 그가 시키는 대로 했다. 약속한 장소에서 그의 차를 발견하고 탔는데, 그의 옷차림에 눈길이 갔다. 분명히 똑같은 디자인의 옷인데, 색이 달랐다. 그리고 그는 내가 들어오자마자, 내 머리 위에 모자를 씌어줬다. 확인해보니 그가 지금 쓰고 있는 것과 같은 모자였다. 뭐지, 이 커플룩의 뻔한 정석같은 의상 스타일은?
" 커플룩 하고 싶다며. "
" 들키려고 환장했어? "
" 안 들키면 돼. "
" 이러면 더 눈에 띄잖아. "
그와 커플로 하는 물품들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옷도 있기는 있고, 악세사리도 있다. 나는 방송에 노출되지 않는 사람이고, 그는 노출되는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크게 들킬 일은 없다. 방송국 안에서도 똑같은 것을 착용하고 만나지만 않으면 안 들킬 수 있다. 커플로 산 것들을 자주 입고 다니고, 그도 입고 다니기는 하지만 우리가 붙어있지 않는 이상 커플이라고 들킬 일은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대놓고 우리 커플이에요를 하자는 것이 아닌가.
" 괜찮아, 이것도 있어. "
그러면서 선글라스와 마스크를 쓴다.
아, 누가봐도 '저 연예인이에요'잖아, 걱정이다.
*
마스크와 선글라스를 하면 더 과한 느낌이라는 판단에, 우리는 모자만 푹 눌러쓰고 야구장으로 들어갔다. 최대한 사람들 눈에 안 들어올 것 같은 곳에 그가 자리를 잡았놔서 그나마 안심이었다. 그리고 모자까지 함께 쓰면, 너무 커플이라는 느낌이 강해서 후에 나는 모자를 벗기로 했다. 그냥 쓰지, 라고 그가 말했지만 내 고집으로 거절했다. 그래서 그는 모자에 후드를 뒤집어 쓴 모양, 나는 그냥 있는 모습이었다. 이게 마음 편하게 야구를 즐기러 온 건지, 아니면 들킬까 말까 쓰릴넘치는 게임을 하러 온 건지 모르겠다. 오랜만에하는 정식 데이트라서 김민석이 감을 잃었나보다. 이 오빠한테 다시 가르쳐줘야겠다. 데이트의 정의를.
처음에는 들킬까 조마조마 했지만 다행히 사람들이 알아보지 않은 것 같았다. 사람이 많은 경기고, 큰 경기이다 보니 모두 경기 내용에만 집중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우리보다 더 우리 커플이에요, 광고하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아서 크게 들킬 위험이 없는 것 같았다. 그래서 긴장이 풀려서, 우리는 적당히 응원도 하고 서로를 보고 웃기도 하고, 경기에 집중했다. 그리고 시작된 전광판 키스타임. 풋풋한 학생 커플부터, 나이가 있으신 부부의 키스타임까지. 보면서 괜히 우리가 훈훈해지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 어? "
저 전광판에 보이는 익숙한 옷차림, 익숙한 사람 둘. 설마 …, 저거 우리 아니지?
하지만 아무리봐도, 우리 두 사람의 모습이 확실했다. 카메라가 우리보다 위에서 잡고 있는 건지, 다행히 내 얼굴은 몰라도 그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상황 파악을 빨리하고, 판단을 빨리 내려야 했다. 지금 상태로는 괜찮지만, 우리가 전광판에 잡혀서 우리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시선이 이쪽으로 몰리고 있었다. 이러다가, 김민석이 엑소라는 것을 들켜버린다면. 그래서 나는 두 손을 흔들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전광판에는 당연히 들리지 않겠지만,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들을 수 있을 소리로 말했다. 저희 커플 아니에요, 라고.
내가 이렇게 노력하는 것을 안다면, 김민석도 분명히 이에 대한 노력을 보여줘야했다. 그런데, 그 때 김민석이 내가 내려둔 모자를 주워서 내 머리 위에 씌웠다. 이거 누가봐도 똑같은 모자다, 누가 봐도 커플 모자였다. 그가 이런 짓을 하지 않았다면 카메라는 자연스럽게 우리를 넘어가, 다른 커플을 비췄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지금 하는 행동은,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카메라의 시선을 더 끌어모으기에 충분했다. 이건 그냥 입 맞췄을 때 보다, 더 이목을 끄는 짓이다. 무슨 짓이야, 김민석.
" 오빠, "
그에게 물으려고 했었다. 그런데, 말이 끝까지 나오지 못하고 끊겨버렸다. 그가 내 얼굴에 두 손을 얹고 살짝 방향을 틀었다. 그리고 그의 고개 각도도 옆으로 돌아갔다. 모자끼리 부딪히지 않고 우리 두사람의 입술이 맞닿았다. 주위 사람들, 그리고 경기장에 있는 사람들의 오 감탄하는 소리와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 그 때 까지도 그의 입술은 떨어지지 않았다. 아, 모르겠다. 정신은 없고,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는데, 그가 자꾸만 말하고 있는 것 같다. 괜찮다고. 그래, 걱정하기는 했지만 그를 믿고 결국 이 곳까지 왔다. 이번에도 그를 믿어야지. 그래서 그냥 눈을 감아버렸다. 그리고 그와의 입맞춤에 집중했다.
*
- [ 형수님의 공개 연애를 축하드립니다 ]
[ 아 정확히 말하면 형수님만 공개연애 ]
- [ 축하해 커플 강제 인증ㅋㅋㅋㅋ ]
[ 클럽이제못가겠넼ㅋㅋㅋ ]
- [ 안녕 야구장모자뽀뽀녀? ]
- [ 시집도못가겠네...위로... ]
시끄러워, 이 인간들아. 하여간 이 멤버들은 카톡도 정신 없어요. 다 차단시키던가 해야지.
키스 타임이 끝나자마자, 우리는 경기를 다 지켜보지 못하고 그대로 밖으로 나와야만 했다. 그런데도, 마치 내가 그 큰 경기를 직접 뛴 것 마냥 가슴이 두근두근 뛰었다. 그와 차로 돌아오자마자, 나는 그를 봤고 다시 멍한 상태가 되었다. 우리, 방금 무슨 일들이 있었지? 오빠, 우리 방금 무슨 일을 겪은 거야. 하지만 그는 태연해보였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태연한 척 하는 것 같았다. 그도 역시 조금은 긴장한게 틀림없었다. 그래도 그는 나에게 확실하게 말했다. 정신 놓고 벌인 짓은 아니야. 그는 절대로 충동적으로 나에게 입맞춘 것은 아니었다고 차분하게 이야기했다. 나는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지나온 일은 어쩔 수 없었다. 문제는 그 것 보다, 들켰을까? 였다.
하지만, 그 정신 없는 와중에서도 절대로 엑소나 시우민, 김민석에 대한 주위 사람들의 이야기는 듣지 못한 것 같다. 그런 단어만 귀에 살짝 들어왔어도, 정신이 번쩍 들었을텐데 말이다. 다행히 그는 역시 방송 경력이 꽤 있는 연예인이었다. 그는 이미 카메라의 위치와, 어떤 각도를 이용해야지 얼굴이 안 보일지 어느정도 계산을 하고 이런 짓을 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정말 다행이지만, 걱정은 됐다. 그렇게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겨 조마조마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나한테 연락이 오는 것이었다. 처음엔 친구였다, 두번째는 방송국 동료들, 세번째는 부모님. 모두가 하는 말은, ' 너 맞지? ' 였다. 그 말을 듣자마자, 불안한 눈으로 김민석을 쳐다봤다. 그런데, 김민석은 아무런 연락도 오지 않는 듯 했다. 다만 나에게 자꾸 연락이 오니까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왜 그래? 뭐래?
상황 설명은 인터넷이 해줬다. 정확히 말하면 검색어가 해줬다. 1위에는 도달하지 못했지만, 유명한 포털사이트 9위에 눈에 띄는 검색어가 있었다. '야구장키스타임'. 맙소사, 이게 검색어에 뜨다니. 그렇다면 분명히 누군가가 영상을 풀었을테고, 그 영상에는 나와 김민석이 있겠지. 그나마 다행인건 아직 검색어에 엑소나 시우민 같은 검색어는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근데, 검색어를 클릭하자마자 바로 뜨는 뉴스들. 그리고 그 뉴스 사진은 입을 맞추고 있는 듯 보이는 두 사람. 정확히는 지금 우리와 옷 차림이 똑같은 사람. 그래, 솔직하게 우리 두 사람이 있었다. 뉴스 사진 모두, 이미지 검색결과도 다 같은 캡쳐였다. 누군가 올린 영상을 돌려봤다. 다행히, 정말로 김민석의 얼굴은 한 번도 나타나지 않았다.
" 문제는 내 얼굴은 아주 잘 나왔다는거지. "
댓글들 또한 대박이었다.
예쁜 커플. 부러운 커플. 여자는 맨 처음에 부끄러운지 아니라고 하네. 남자 멋있다. 모자로 여자 얼굴 가려주는 거 봐봐. 헐, 박력 넘쳐. 남자 분위기 잘생겼네요. 남자는 누굴까요. 저 남자 내 마음에 입주신고. 등등등. 거의 좋은 반응이었다. 입맞추는 장면은 정말 그의 계산대로, 그의 뒷모습, 내 모습만 조금 보일 뿐. 우리 두 사람의 얼굴은 완벽히 가려져 있었다. 물론 이전 영상에서 내 얼굴은 다 나왔지만.
" 그래도 이정도면 오빠 아니냐고 의심 한 번 나오지 않을까? 아무리 얼굴이 안 나왔다고 해도, 키라던가 몸이라던가, 그 느낌 같은거 사람들이 의심한 번 해볼텐데. "
내가 그렇게 말하자, 김민석이 자신의 휴대폰을 내게로 건넨다. 뭔데, 이게? 하면서 보니 다름아닌 김종대의 트위터다.
[ 요즘 방정리를좀안했더니 슈밍형한테 벌받는 비글들... ]
같이 올라온 사진은 그 유명한 비글라인이 무릎 꿇고 손 들고 벌을 받고 있었다. 그 앞에는 김민석이 있었고. 이런 모습을 옆에서 손가락질하면서 비웃는 김준면도 보인다. 보기만 해도 웃음이 나오는 트윗이였다. 내가 웃고있자, 김민석이 다음 트윗도 한 번 봐봐 하면서 웃는다. 올라온 트윗을 봤더니,
[ 그래서 청소를 깨끗하게 했어요 인증샷!! ]
그런데 사진은 김민석이 이불에 꽁꽁 싸여서 -정말 다른 사람들이 말아놓은 것 같았다, 비글라인 짓으로 추정- 자고 있는 옆모습이었다. 그리고 바로 올라온 그 다음 트윗.
[ 아이고, 인증샷을 올린다는게 시우민형 방금 잠든 사진을 올려버렸네!!^^!! ]
고의다. 누가봐도, 100% 고의다. 실수로 올린 사진이 아니다. 아무튼 이 트윗들의 포인트는 '방금'에 있다. 김민석은 이 트위터가 올라온 시간 때에 나와 함께 있었지만, 꼭 하루종일 오늘 숙소에 있었다는 것 처럼 표현되고 있다. 그러니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나보다. 이 사람들 트위터 시작하길 잘했네, 정말.
" 이 사진들은? "
" 어제 찍은 거. 물론 장난으로 찍은 사진이지만. "
" 대박이네. "
" 오늘 너랑 야구장 간다고 했었거든. 다들 임기응변 대단하지. "
응, 대단하네, 다행이다, 진짜. 그제야 정말 안심하고 푹 한숨을 내 쉬었다. 길지 않은 시간동안 너무 많은 일들이 있었어. 세상에, 내 생에 정말 이런 일이 생길 줄은 몰랐다. 인터넷 화제가 되다니. 그러다가, 옆에 앉아있는 그를 봤다. 하긴. 그러자 그가 나를 보면서 왜 그렇게 보냐고 묻는다.
" 그냥, 살다보니 이런 날이 있네 싶었는데. 생각해보니까, 오빠랑 연애하는 것도 살다보니 이런 날에 속하는 일이라서. "
가끔식 느끼는 일이다. 때때로 드는 생각이다. 평범한 사람이었던 내가 정말로 이 사람들과 어울려 일 하고 있구나. 이 사람들과 잘 지내고 있구나. 내가 풋풋했을 때 좋아했던 연예인들을 보고 일하는 것이 일상이고, 그들과 자주 만나고, 연락하게 되고. 무엇보다도, 내가 팬으로 좋아했던 이 사람과는 지금, 제대로 된 사람과 사람으로 만나서 연애를 하고 있었구나.
" 그나저나, 나 얼굴 다 팔렸잖아. 어쩔거야. "
이 영상은 또 한 번 '야구장키스타임레전드'라는 제목을 가지고 인터넷에 영원히 남을 것이다. 검색하면 언제든지 등장하게. 곧 있으면 내 지인들에 의해서 영상 속에 나온 여자가 나라는 것이, 내가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도 다 알려지게 될 것이다. 벌써 기사 제목이 보이는 것 같다. ' 화제, 야구장모자녀 알고보니 방송작가 '. 그리고 그 동안 어떤 프로그램에 참여했는지, 이제 어떤 프로그램에 들어가는지까지 다 알려지게 되겠지. 방송국 사람들은 모두가 알 것이다. 지나가다가, 엘리베이어에서 마주쳐서 내가 인사하면. '어어, 맞아 ○작가 연애하더라?' 라고 답이 돌아오겠지. 아, 연예인들이 이래서 힘들구나. 그나마 평범한 사람인 내가 생각해도 깜깜한 앞길인데, 이 사람들은 어떻게 연애를 할까, 피곤해서.
" '이런 날'은 아직 앞으로도 많을 수 있잖아. "
" 응? 무슨 말이야? "
" 살다보면 이런 날이 있네, 같은 상황이 아직 더 있을 수 있다고. "
" 그야, 그렇겠지. 살다보면 이런 일 저런 일, "
" 결혼하자. "
" …뭐? "
" 당장이 아니라, 물론 진짜 프로포즈도 아니고 그냥 하는 말. 아니 그냥 말이 아니라 진심인데. "
괜히 혼자서 막 당황한다. 그의 말에 당황한 건 내 쪽인데, 오히려 그가 당황하니까 나는 이 상황이 웃겼다. 하하, 뭐하는 거야. 왜 당황해, 오빠.
" 언제야 연애 사실을 밝히고, 언제 결혼식을 할 수 있을지는 아직 완전히 감이 잡히지는 않지만. "
" 오빠도 바쁘고, 나도 바쁘고. "
" 그래. 그러니까 하고 싶은 말은, 우린 지금 결혼을 전제로 만나고 있는 사이다…인가? "
말 끝을 흐리는 그가 귀엽다. 나는 그의 말에 가볍게 웃었다. 그도 나를 보면서 웃는다.
" 방금, '살다보면 이런 날' 한 번 더 겪었어. "
" 뭔데? "
" 아, 살다보니 엑소 시우민한테 프로포즈 받는 날도 오는구나! "
그가 내 말을 듣고 귀엽다는 듯이 웃음지었다. 나는 그런 그를 보고 안전벨트를 풀고 몸을 쭉 빼서, 그의 입에 쪽- 소리 나게 입맞췄다. 그는 웃고 있었지만, 내 머리 위에 모자 챙을 툭 쳤다. 아, 왜? 인상을 쓰고 따졌다가, 인상 쓴다고 이번에는 미간을 손바닥으로 탁- 맞았다. 그러더니, 너 이거 얼마나 불편한 지 몰라? 하더니 그도 모자를 쓴 채로 나에게 다가와 입을 살짝 맞췄다. 일부러 더 그런다는 것은 느꼈지만, 그의 모자 챙이 내 이마를 툭툭 쳐댔다. 그래서 내가 모자를 뒤로 돌리고, 그의 모자는 벗겨내고 이마에 입 맞췄다. 그는 자기보다 시선이 높아진 나를 올려다보더니 말했다.
" 살다보니 이렇게 좋은 남자랑 같이 살게되는구나, 생각할 수 있게 잘할게. "
직접적으로 이렇게 간지럽게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서, 나도 그도 조금씩은 어색하고 당황스러운 느낌이다. 아, 근데 어쩌지. 이런 어색함이 정말 귀엽다. 아마, 오빠는 모르겠지. 오빠가 얼마나 귀여운지. 귀엽다고 말하면 그냥 어색하게 웃거나, 무뚝뚝하게 반응할 사람이지만.
" 밥 잘 챙겨먹고, 활동 열심히하세요. 절대로, 절대로 무리해서 쓰러지지 말고. 그럼 결혼 안 해. "
" 너도 클럽 거짓말하고 몰래가지 말고. 가면 간다고 말하고 가. "
" …이제 다시 프로그램 들어가. 좀 있으면 휴가 끝! 놀 일도 없어. 에휴. "
내 한숨을 듣고 그가 웃는다. 그리고 나를 그윽하게 바라보다가, 분위기가 미묘해지자 천천히 조심스럽게 입을 맞췄다. 잠시 시간이 흐르고, 입술이 떨어졌고 내가 눈을 뜨자, 그가 내 눈을 똑바로 보고 미소 짓고 있었다. 나는 여전히 분위기에 취해서 멍한 상태였다.
" 너도 밥은 잘 챙겨먹고, 잘 수 있을 때 쉬고, 쉴 수 있을 때 쉬고. 힘들면 눈치보지말고 연락하고. "
" ……. "
" 알았지? …여보. "
아, 설렌다. 근데 웃음이 터졌다. 스스로도 말하면서 엄청 부끄러워하는게 티났다! 그래서 내가 웃음을 억지로 참고 물었다. ㅁ,뭐라고 오빠? 하지만 웃음은 이미 틈 사이로 새어나오고 있었다. 김민석 얼굴이 점점 빨개진다. 아니, 뭐. 퉁명스럽게 말은 하는데, 다 보여서 귀여웠다. 아, 오빠 진짜 어쩔래. 나는 결혼을 정말 현실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인데, 오빠 때문에 결혼에 대한 환상이 생길 것만 같아.
아, 살다보니 정말 이런 날도 오는구나. 정말로.
으앙, 오글!!!!!!!
오늘 제목만큼 가장 현실적인 건 없겠네요.
'비현실적인 연애소설' 제목이 정말 현실적이야...ㅎㅎ
슈밍 미안해... 다른 글에 네 이름을 쓴 것도 아니고... 이런 리얼물에...이런 글에...널...(슬픔)
♥ 암호닉 ♥
롱이 / 여기있나영 / 꽃사탕 / 낑깡 / 꿀징
진리 / 라퓨타 / 뀨뀨 / 핫바
(슈밍을 추천해주셔서 데리고 왔습니당! ㅎㅎ)
감사해요!*.*
천사독자들 모두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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