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 슈워더 04. 포비아의 연민 종대에게 루한이 중환자실에서 일반 병실로 옮겼다는 소식을 전해들은게 바로 어제의 일이였다. 종대의 문자를 몇번이고 다시 읽으면서 병문안을 갈까 말까 고민하고 있는 이유는 단순히 내가 오늘 비번이였기 때문이였고 알게 모르게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는 묘한 죄책감과 담당 의사로서의 책임감이 느껴졌기 때문이였다. 사실 또 다른 이유로는 거슬리는것도 있었다. 나에게 자신을 싫어하지 않으면 안되겠냐고 말하던 그의 얼굴이 그냥 좀 마음에 남아서. 이왕 가기로 마음 먹은거 시간 끌것 없이 바로 차키를 챙겨들었다. 병원에 출근할때와는 다르게 편안한 복장으로 오늘은 정신과 병동이 아닌 외과 병동으로 향했다. 굳게 닫혀진 문 그리고 들어가보라는듯 턱짓으로 그 문을 가리키는 종대. 그런 종대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주곤 닫혀있던 문을 단번에 열어버렸다. 돈 많은 집 아들답게 꽤나 호화로운 1인실의 풍경을 둘러보면서 병실 안으로 들어서자 커다란 침대 위에 처음 봤을때보다 조금 더 마른듯한 그가 등을 기대고 앉아있었다. 무슨 말부터 해야할까 고민하는 사이 내 인기척을 느낀건지 루한은 고개를 들어 나를 올려다보았다. 진료실에서 그를 보았을때 느꼈던것처럼 그의 눈망울은 참 사슴처럼 맑게 반짝거렸다. 물론 지금은 그 빛을 조금 잃은듯 지쳐보였지만 여전히 묘한 감정을 끌어내는 눈동자였다. "...괜찮아요?" 얼마동안 그와 눈을 마주친채로 제자리에 서있었을까. 우습게도 내 입에서 나왔어야 할 말이 그의 입에서 먼저 꺼내어졌다. 도대체 뭐가 괜찮냐고 묻는걸까. 지금 몸이 아픈것도, 마음을 다친것도 모두 자기면서 누굴 이렇게 걱정하듯 말하는건지 도무지 이해할수가 없었다. "가까이 다가오기 힘들테니까...그냥 할말이 있으면 거기서해도 괜찮아요" "......" "어쩐일로.." 깊은 잠에 빠져있다 며칠만에 깨어나서 그런지 꽤나 가라앉은 목소리였다. 터벅터벅, 일부러 발소리까지 내가며 침대 바로 옆까지 가까이 다가가 침대 옆에 놓인 보조의자에 앉아서 그와 똑바로 눈을 마주쳤다. 그리곤 아까부터 무슨 말을 해야할까 달싹거리던 입술을 떼어냈다. "게이 아니라면서요" "......" "그 말 믿어줄게요" "네?" "대신 다시 입원해요"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손으로 쓸어올리며 나는 그가 당연히 받아들일거라 생각했던 말을 했다. 집에서 벗어나고 싶어했던 그였으니까. 어쩔수없이 도망치듯 쫓겨난거라고해도 어쨌든 병원이 그에겐 작은 도피처가 된건 사실이니까 단순하게 그렇게 생각했다. 나에게 자길 싫어하지 말아달라 말했고 또 퇴원을 하라고 권유했을때 거부했던것만 봐도 그에게 돌아가고싶은 집따위는 없어보였다. 그러니까 다시 입원하라는 내 말에 그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일줄로만 알고있었다. 그리고 이런 내 생각은 내 말이 끝남과 동시에 완전히 어긋나버렸다. "게이 아니라니까" "...알아요. 아니라는거" "게이가 아니니까 퇴원하라고 말한건 당신이에요" "......" "도대체 누굴 만나서 무슨 얘기를 들었는지는 모르겠는데 난 당신이 그런 눈으로 날 쳐다보는게 너무 싫어. 차라리 내가 게이인줄 알았을때 쳐다보던 그 눈이 더 낫다고" "우리 병원, 게이만 받는곳 아닙니다. 그 쪽 손목을 봐. 그러고도 네 정신상태가 멀쩡하다는거야 지금?" "사정 봐가면서 환자 받는곳 아니라면서요" "그래, 아니야" "지금 이러는거 내 눈엔 당신이 날 동정하는걸로 보여" 끔찍하단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그리고는 정말로 괴로운듯이 머리를 감싸안고 금방이라도 울것 같은 눈을 파르르 떨며 입술을 깨물었다. 힘들었구나. 이 사람은 정말로 마음에 상처를 입은 사람이였구나. "동정...하는거, 아닙니다.." 울음기가 서린 그의 눈동자처럼 나의 목소리도 가늘게 떨려왔다. "몰라서 미안해요. 사과할게요. 여태껏 당신이 게이일지도 모른다는 이유로 외면해와서 미안합니다. 더 오래 아프게 해서...면목이 없습니다" 그 사람에게서 연락이 왔다. 루한의 병실에 머물러있던때에 타이밍 좋게 걸려온 전화였다. 탁상 위에 올려져있던 내 핸드폰의 화면을 본 루한의 표정은 급속도로 굳어갔고 나는 애써 아무렇지 않은척 내 핸드폰을 집어들었다. 밖에 나가서 받으려 자리에서 일어섰지만 내 옷깃을 붙잡는 루한 때문에 결국 병실 안에서 통화 버튼을 누를 수 밖에 없었다. "네. 김민석입니다" -안녕하세요. 김준면입니다. "...무슨일이시죠?" 날 올려다보는 루한과 눈을 마주쳤다 다시 창밖으로 시선을 옮겨버렸다. 피 한방울 섞이지 않은 두 형제의 사이에서 묘한 신경전을 느끼고 있는 지금이 조금 짜증스러우면서도 이미 어쩔수가없었다. -그냥, 안부라도 좀 물을까해서요. "루한씨라면 다행히 회복 속도가 빨라서 내일이나 모레 안으로 퇴원이 가능할것 같다고..." -걔 말고. 내가 궁금한건 당신 안부인데? "...무슨 말씀을 하시는건지 잘모르겠군요" -차나 한잔 할까요? "이봐ㅇ...아, 잠깐...!" 별 영양가 없는 대화에 전화를 끊으려던 찰나 내 손에 들려있던 핸드폰을 뺏어간 루한이 가라앉은 표정으로 수화기에 입술을 가져다댔다. 여전히 그의 시선은 나에게 머무른채로였다. "너 쓸데없이 아무때나 연락하지마" -...같이 있었나 "그 정도 했으면 이제 그만할때 됐잖아" -무슨 말인지 모르겠군. 전화나 다시 바꿔" "내가 왜?" -...너 꽤 많이 건강해졌다던데...그것 참 유감이란 말이야. 이왕이면 조금 더 방해가 안됐으면 했는데. "...김준면" -오늘은 이만 끊는다. 앞으론 좀 더 예의있게 굴어봐, 내 동생아. 수화기 밖으로 들리는 통화 내용에 내 입술 사이로 짙은 한숨이 새어나왔다. 남의 가정사에 끼는건 정말 싫은데. 통화가 끊긴 핸드폰을 침대 위로 던지듯 내려놓은 루한이 차갑게 식은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 눈을 마주하고 있자니 뭔가 내가 잘못을 저지른 기분이 들어서 인상을 찌푸리며 그게 무엇일까 되짚어봤지만 사이가 안좋은 형제 사이에 의사로서 낀것 빼고는 별달리 짚이는 구석이 없었다. "언제부터야..?" "...뭐가요" "도대체 언제부터 니가 이 새끼랑 아는 사이였냐고!!" "당신이...손목을 그은 날부터요" "그래서, 나한테 다시 입원하라고 한거였어? 이 새끼가 시켜서? 너한테도...돈줬냐? 아니면...너...김준면이랑..." "당신이 다시 자살시도만 하지않았어도 내가 이 사람이랑 만날일도 없었을거고 당신을 다시 병원에 들일 생각도 안했을겁니다. 난 정당한 이유로 입원비를 받는거고 당신이 생각하는 그런 이유 없습니다" 그냥, 연락 안하면 안돼? 내 어깨에 이마를 기댄 루한이 어린아이가 투정을 부리듯 내 옷깃을 세게 거머쥐었다. "떨어져요" 먼저 무서운 얼굴을 지은건 자기면서 내가 살짝만 인상을 찌푸려도 금방 어쩔줄몰라하는 모습이 우스웠다. 그에게서 한걸음 뒤로 물러서 내 어깨에 기대어있던 그를 떨어뜨리고 침대 위를 굴러다니던 내 핸드폰을 집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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