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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 프롤로그 

 

 

 

씨발. 누가 여름보다 겨울이 좋다고 했냐. 존나 춥다. 라고 정국이 뇌까렸다. 자신을 포함해 이런 직업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수트를 입어야 했었는데, 그 미친 생각은 자신이 모시는 남자가 생각해낸 좆같은 것이었다. 돈을 많이 준다고는 하지만 일을 하다보면 찢어지는 일도 다반사고 핏자국이 안 지워지는 일도 매번 있는 일인데, 그 때마다 수트를 새로 사야하니 깨지는 돈이 모이면 꽤 어마어마했다. 정국은 매일마다 입지만 계절마다 또는 매달마다 브랜드가 바뀌는 자신의 수트 자켓을 여미며, 곧 자신의 입으로 들어가 이 좆같은 잡생각을 멈춰줄 담배를 찾았다. 좀 됐지만, 예전과 달리 겨울은 갑작스레 찾아왔고, 여전히 정국의 몸은 그런 계절의 변화에 맞추질 못 했다. 정국은 덜덜 떨리는 입술 사이로 애꿏은 담배만 쑤셔 넣었다. 그리고 라이터를 주섬주섬 찾더니만 이내 불을 붙였다. 

 

“담배 펴? 한 개피만.” 

 

언제 찾아왔는지 옆에서 자신과 같이 수트를 입고 빨간코를 하고 있는 태형이 담배를 찾았다. 

 

“돛대예요. 병신아.” 

“아, 그래?” 

 

그럼 말고. 실실 웃는 낯짝이 재수 없었다. 

 

 

01. 김태형 

 

 

 

태형은 어렸을 때부터 소위 ‘바닥’으로 통하는 이 곳에서 낳아졌으며 길러졌다. 그의 핏줄은 살면서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아버지와 뒷골목에서 몸과 웃음을 파는 어머니였으며, 그들의 관계는 남보다도 못한 관계였다. 태형의 어머니는 자신의 아들에게 참 무심한 사람이었다. 그녀는 알코올 중독까지는 아니었지만 한 번 제대로 취하면 인사불성이었고 성격이 난폭해지는 일이 다반사였다. 제 어머니의 그런 모습을 보고있자니 태형은 자연스레 저 혼자 사는 방법을 터득했으며, 저에게 관심이 없는 어머니 대신 그녀와 같이 일하는 동료들에게 손이 타기 일수였다. 어머니가 일하는 곳은 일반인들이 발걸음을 하지 않는 곳이었다. 좀 더 어둡고, 좀 더 위험한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찾아오는 곳이었다. 예를 들면 조직원이라던가. 

 

 

10살. 태형이 그 곳에 갇혀 지낸지 꼬박 10년이 되던 해였다. 그 날도 여느 때와 같은 밤이었는데 분위기가 조금 달랐던 것도 같았다. 여전히 웃음과 간간히 들리는 신음소리로 소란스러웠지만 어딘가 어수선했다. 이런 날도 있겠지, 하고 별 일 아닌듯 생각한 태형은 채 아물지 않은 고사리 같은 손으로 익숙하게 술병을 나르는 중이었다. 불그스름한 조명으로 빛이 나는 흰 복도를 바삐 거닐던 중 태형은 누군가와 부딫혀 넘어졌다. 어렴풋이 들렸던 쨍그랑 소리에 태형은 어서 일어나 사과를 해야지, 라는 생각을 하며 넘어질 때 반사적으로 찡그려 감았던 눈을 떴다. 맨 처음에 보이는 것은 술병이 깨진 것이 맞았는지 술에 흠뻑 젖어있는 수트 바지였으며, 고개를 들어 보았던 것은 남자의 미안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그런 얼굴이 익숙치 않은 태형은 답지 않게 당황하였다. 

 

“미안하구나. 괜찮니?” 

“네? 네, 괜찮아요.” 

 

남자는 친절하게도 손을 뻗어 태형을 일으켰다. 

 

“저, 근데...다리가 젖으셨어요...죄송합니다.” 

“아니야. 괜찮아. 너야말로 다친 곳은 없고?” 

“네. 죄송해요...” 

“괜찮다니까. 그것보다 너, 여기서 일하는 애니?” 

 

당황의 연속이었다. 이 곳에 찾아오는 사람치고 친절을 베풀지 않나, 저에게 이런 질문까지 해대지 않나. 그렇다고 대답을 안 할 수는 없어 태형은 우물쭈물대며 입을 열었다. 

 

“…네.” 

“그렇구나. 이름이 뭐야? 아저씨는 김석진이야.” 

“…김태형이요.” 

 

태형이? 이름이 멋지네. 자신의 이름이 김석진이라며 소개한 남자는 그 뒤로도 많은 질문을 했다. 의도치 않게 술병을 나르다 고역을 치르게 된 태형은 당황하면서도 질문에 대한 답을 꼬박꼬박 해주었다. 석진은 주로 시덥지 않은 것들을 물어봤다. 생일이 언제냐는 질문에는 모른다는 답변을, 여기서 지낸지 얼마나 됐냐는 질문에는 어림잡아 9년, 10년 쯤 됐을 거라는 답변을. 그렇게 그들은 어느새 복도 구석에 쭈그려 앉아 담소(사실 석진의 일방적인 질문 공세)를 나누었다. 석진은 이제 할 질문이 없는 건지, 그것도 아님 질문할 것을 생각하고 있는 건지 잠깐의 정적이 일었다. 쉬지 않고 얘기하다가 갑자기 어색해진 분위기에 태형이 눈알을 도륵도륵 굴렸다. 그 때 석진이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태형아.” 

“…네?” 

“…너,” 

“네.” 

 

태형은 석진이 이번에 또 무슨 질문을 할까 생각했다. 그러나 석진의 입에서 나온 질문은 이제껏 답 해왔던 질문과는 사뭇 다른 류의 질문이었다. 

 

“아저씨랑 같이 갈래?” 

“네?” 

 

태형이 반문하자 석진은 굳은 결심이라도 한 듯 입을 떼었다. 

 

“아저씨랑 같이 가자.” 

“…….” 

 

태형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것은 제 맘대로 되는 것이 아니었으며, 아무리 대화를 많이 나누었다고 해도 저와 석진은 오늘이 초면인 사이였다. 그런데 갑자기 같이 가자니. 석진이 누구인지 알고? 워낙에 조직원들이 많이 오는 곳이라 조직원이겠구나, 싶었어도 태형은 그 이상 석진을 알지 못했다. 태형은 또 다시 우물쭈물 거렸다. 그런 태형을 가만히 바라보던 석진이 대뜸 태형의 손을 잡으며 벌떡 일어났다. 

 

“같이 가자. 아저씨가 잘 해줄게.” 

 

그 말은 마치 오빠가 잘해줄게, 라는 말과 같아보여 쉽사리 믿기 힘들었다. 아직까지도 우물쭈물한 태도를 한 태형에 석진이 질질 끌고간 곳은 마담이 있는 카운터였다. 뭐지, 마담이랑 무슨 사이지? 하고 의문을 가진 태형을 뒤로 한 석진은 태형을 번쩍 들어 안았다. 

 

“얘 데려간다.” 

“뭐? 그게 갑자기 무슨 소리야.” 

“몰라. 데려갈 거야.” 

 

뒤이어 석진은 맘에 들었어, 라며 출구쪽으로 향했다. 그런 석진에 마담이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며 빨리 가라는 둥 손을 휘휘 저었다. 갑자기 일어난 상황에 태형만이 당황하여 발버둥 하나 못 친 채 석진과 함께 그 곳을 벗어났다. 

 

그리고, 그 일이 태형의 인생의 터닝 포인트라 말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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