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일하게 자신있는 영역인 언어 비문학 지문을 풀었다. 채점까지 다 하고서 책을 가지러 사물함에 갔다가 다시 자리로 왔는데 옆자리에 자리잡은 녀석이 내 비문학 문제집을 뚫어져라 보고있었다. 세문제 중에 맨 마지막 3점짜리 문제를 틀렸는데 녀석이 내 문제집에 몇글자 끄적였다. 나도 이거 방금 풀었는데 너 왜 따라해? 녀석을 째려보니 슬며시 웃더니 다시 샤프를 고쳐잡았다. 나도 이거 틀렸는데 알려줄까? 괜찮아, 해설 보면 되. 입모양으로 말하며 답안지를 꺼내 흔들었다. 그러자 녀석이 입가를 씰룩이더니 답안지를 채갔다. 벙찐 나를 보더니 손을 휘저으며 대뜸 하는 말이 어이없어서 웃음이 나왔다. 안돼! 모른다고 해설보고 그럼 너 망해! 녀석의 극단적인 ‘망한다’는 이 한마디가 왜이렇게 웃긴지 끅끅거리며 웃었다. 그러자 녀석도 웃으며 내 손에 들려있던 샤프마저 채갔다. 내가 설명해줄게. 그래. 못이기는 척 녀석 쪽으로 의자를 붙였다.
LOVE TRAFFIC中
WEEZLE
난 학원 버스에서 조용하다 못해 아예 말이 없는 편이다. 학교에서도 같은 반, 학원에서도 같은 반, 심지어 집 방향까지 같은 친구와는 항상 버스를 같이 탄다. 오늘도 별 다를 건 없었다.
“xx, 너 걔랑 좀 친해진 듯?”
“누구? 아, 이대훈?”
“어어. 자습실에서 둘이 엄청 붙어있던데.”
친구가 이대훈 얘기를 꺼내자 내가 생각해도 참, 그때 왜그랬지 싶을 정도로 신나서 한참을 혼자 나불댄 것 같았다. 솔직히 말해서 그때의 난 누가보더라도 걔를 무척이나 좋아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라 장담할 만큼 들떴다.
있지, 너 걔랑 같은 단지 사는 거 알았어? 나 거의 맨날 지각하잖아. 근데 그저께 기억 나? 응, 왜? 나 진짜 그날 지각하면 담임이 퇴학시킬 거 같은거야, 진심! 그래서 머리도 다 안말리고 집 나와서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앞머리 휘날리면서 교문까지 뛰었어. 근데 오즈 앞에 신호등 알지, 거기서 누구 만났게. 이대훈? 어어! 걔도 학교가는 길이였나봐, 자전거 타고 신호등 기다리던데. 무튼 나도 첨에 걘 줄 몰랐는데 뭔가 날 보는 시선이 느껴지는 거야. 알지? 누가 나 보면 시선 느껴지는 거. 아, 뭔지 알 것 같아. 그래서 뛰다가 슬쩍 봤는데 걔랑 눈 마주쳤어. 근데 걘 나 기억 못하는 것 같더라. 그래? 응, 근데 걔 좀 웃겼던게 고개는 신호등 쪽 보면서 눈만 돌려서 본 거 있지? 솔직히 눈 마주쳤을 때 좀 당황했다. 올~ xxx~ 왜 당황해? 너 걔 좋아해? 참나, 얘기가 왜 그쪽으로 가냐? 에이, 아님 아닌 거지. 왜 정색하고 지랄? 정색 안했어. 알았어, 참! 너 걔랑 문자도 했다매. 그럼 혹시 걔가 너 좋아하는 거 아냐? 야, 누가 들을까 무섭다. 말 조심해. 이년아! 걔 원래 다른 애들이랑도 친하게 지내고 그렇잖아. 그리고 문자한다고 좋아하냐? 으휴, 모태솔로 티내요. 이년이. 말이 그렇단 거지…. 아, 나 내려야 된다. 낼 학교에서 봐! 빠이!
컴컴한 어둠 속으로 친구의 뒷모습이 흐려졌고 그제서야 정신이 든 것 같았다. 그때 버스에 수능을 코앞에 두고 인강 듣느라 정신없는 고3 오빠 한명밖에 없었단 사실이 얼마나 다행인지 싶었다. 비가 세차게 내리는 창밖을 보다가 창문에 머리를 쿵쿵 박았다. 아, 존나!! 이번 건 일주일짜리다. 내일 학원 가면 아마 친구년들이 미친듯이 놀려댈게 분명했다. 짙게 썬팅 된 창에 이대훈 얼굴이 둥둥 떠다니는 것 같았다. 이 상황에 떠오르는 넌 대체 뭔지.
오랜만에 집중해서 정석에 파묻혀 있다가 문득 든 생각에 옆자리를 돌아봤다. 녀석의 빈자리가 눈에 띄었다. 그 길다란 애가 움직이면 눈에 안 띌리가 없는데. 그렇게까지 집중했나, 내가? 괜한 뿌듯함에 히죽거리다가 정석을 들고 교무실로 갔다. 오랜만에 질문이나 좀 할까. 학원이 새벽 두시까지 운영 가능한 이유가 표면상으로는 독서실 때문이지만 그건 보기좋은 명분이자 핑계였다. 그 뒤에서 질문 받아주고 수업하는 일은 비일비재했다. 사실 모든게 불법이지만 대학가려면 어쩔 수 없다는 원장쌤 말에 모두 한마음으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원장쌤 담당 부분이여서 원장실까지 왔더니 자리가 비어있었다. 아마 수능을 코앞에 두고있는 고3 수업 중인듯 가장 큰 강의실에 불이 켜져 훤했다. 진짜 오랜만에 질문 좀 하려고 했더니. 정석을 고쳐들고 다시 자습실로 몸을 돌렸다. 그리고 그 때였다.
“xx!”
“어? 너 왜 거기서 나와?”
“잠깐 쉬다가 왔어.”
“쉬었다고? 야, 너 그럼 망해!”
녀석의 한마디가 떠올라 그대로 따라했더니 자기도 웃긴지 큭큭댄다. 그리고 별말없이 나란히 걸어 자습실에 다다를 때 쯔음 이대훈이 다시 말을 붙였다.
“너 모르는거 있지?”
“응.”
“가져와봐. 뭔데?”
어젠 내가 알려줬는데 오늘은 이대훈이 알려줬다. 공부 잘한다더니, 말을 더듬는 것 같긴 했지만 이해하는 데에는 별 문제 없었다.
열한시 반이었다. 20분을 남겨두고 결국 졸음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꾸벅꾸벅 조는데 녀석이 옆에서 어깰 흔들었다. 깜짝 놀란 난 눈을 번쩍 뜨며 녀석을 쳐다봤다. 문득 내 모습이 얼마나 추할 지 상상이 되는 바람에 쪽팔렸지만 이대훈은 딱히 신경쓰지 않는 눈치였다. 야, 너 엄청 피곤해보여. 그래도 졸면 안되.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인 후에 다시 책으로 눈을 돌렸다. 어디까지 했더라. 그리고 그 책 위로 녀석의 손이 불쑥 들어왔다.
몇시에 가? 나 12시. 미쳤어. 대학 안갈 거야? 2시는 넘 피곤해서 못하겠어. 넌 2시? 너도 2시까지 하자. 왜 12시에 가? 피곤하잖아. 그리고 나도 여자야...ㅎㅎ
녀석은 내 말에 풉! 하고 웃더니 손가락으로 책 여백을 가리켰다. 그리고 내가 그 곳을 보자 끄적거리며 친히 잘보라는 말까지 했다. 알겠다며 녀석이 손을 치우기만을 기다렸다. 이대훈은 가리고있던 손을 치우며 끅끅대고 웃었다. ㅗㅗ. 녀석의 옆구리를 꼬집었다. 야!!
12시가 되고 종이 치자 몇몇 아이들이 일어섰다. 개중엔 한번도 안졸고 열심히 공부한 애들도 있는가하면 푹 자다가 종소리에 깬 애도 있다. 그리고 나도 있었다. 두시까지 하는 애들도 있지만 난 도저히 못해먹겠다. 주섬주섬 가방을 챙기자 녀석이 내 쪽을 흘끔 보더니 내가 가방을 매고 나서야 고개를 돌렸다.
“가? 아, 너 열두시에 간댔지.”
“응. 열공해.”
“오냐.”
대답은 잘하더니 이대훈이 대뜸 책을 챙기기 시작했다.
“…뭐야, 너도 지금 가? 두시에 가는 거 아니였어?”
“아니, 나 독서실.”
“…엥? 너 독서실 해? 그럼 돈 아깝게 자습실에서 왜 자습해?”
“그냥.”
이대훈은 어깨를 으쓱거리며 자습실 구석에 있는 독서실로 들어가는 문 쪽으로 성큼성큼 다가섰다. 생각해보니 진짜, 쟤 독서실 하는데… 괜히 가방을 고쳐맸다. 계속 녀석의 등을 쳐다보고만 있는데 갑자기 뒤를 돌아보더니 슬리퍼를 들고있는 손을 흔든다. 안, 녕, 내, 일, 봐.
집엔 열두시에 칼같이 가지만 사실 자는 시간은 세시 쯤이었다. 개학한 지는 벌써 삼주가 지났지만 방학 때 습관이 여전히 들어있어서 문제였다. 덕분에 오늘도 학교에서 푸욱 자고 학원 수업 땐 멀쩡했다. 실은 잠만 안잤지, 다른 생각하느라 도저히 집중이 안됐다. 프린트를 빼먹고 와서 잠시 가지러 자습실에 갔었는데 이대훈 옆자리엔 어떤 여자애가 떡하니 앉아있었다. 물론 그 옆자리를 내가 전세낸 것도 아니지만은… 도대체 맘 한구석에서 꿀렁거리는 이 감정 덩어리는 뭐라고 형용해야 할지 참으로 애매모호했다.
두시간을 어영부영 보내버렸다. 수업이 끝남을 알리는 종이 치고 책더미를 안고 자습실로 가는데 이대훈과 마주쳤다. 여러 감정이 뒤섞여 그냥 눈짓으로만 인사하고 지나가려고 했는데 녀석이 내 쪽으로 다가왔다.
“야. 너 어제 답지 놓고갔어.”
“답지? 무슨 답지?”
“비문학.”
“아아…. 이따 받으러 갈게. 그때 줘.”
“어. 맞다, 나 여기서 초등학교때 동창 만났다? 진짜 신기해.”
“아, 진짜? 누군지 알거 같애.”
아까 내가 봤던 걔구나. 직감했다. 그리고 그 날부터 이대훈은 자습실 옆자리에 나 대신 그 여자애와 앉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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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즐입니다 반가워요@.@ㅋㅋ쓰고나니까 왜케 여자애가 dog찐따같지^^;;;;ㅎ헤헤헤헷 이번편은 왜케 장면이 왔다갔다할까요 똥글 죄송요........소재고갈......망할노메필력......흦흐ㅂ흫ㅂ.......왜케 달달한걸 못쓰겠죠 아마 내가 모태솔로라서?또르르....ㅁ7ㅁ8 음 아님...지금 배고파서 그런걸지도 몰라여....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무튼 늦은시간까지 읽어주신 그대들과 전편댓글 달아준 이쁘니긴들.....S2 꿈에서 봅세다 전 낼 휴교라서 늦잠잘꺼예용^.~ㅋㅋㅋ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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