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현/경수/단편] 너라는 순간에 살고 있어 | 인스티즈](http://file.instiz.net/data/cached_img/upload/a/f/1/af1e3ad591679f160887f781b3117c2b.jpg)
"도경수."
.
.
"우린 여기까진가 보더라."
"..뭐....?"
"이제 너 보면 예전처럼 가슴이 뛰지 않아. 아무 감정이 안들어. 요즘 연락 안 한것도 그 이유야.
나 이제 너 별로다. 우리 그냥 깔끔하게 헤어지자."
너라는 순간에 살고 있어. |
백현아, 기억하니?
"좋아해"
끼 사이로 삐져나온 셔츠만 만지작대는 내 머리를 너는 말없이 미소지으며 쓰다듬어 주었다. 그 해 봄은 참 설렜었다.
-너라는 순간에 살고 있어.
[만나자. 우리 맨날 갔던 그 카페로 나와.]
공강이라 평소에 부족했던 잠을 보충하려 마악 과방책상에 엎드리려던 찰나 오랜만에 너에게 연락이 왔다. 열나흘, 그러니까 꼬박 2주만의 연락이었다. 눈만 마주쳐도 웃 고, 마주 보고 있어도 보고 싶다고 속삭였던 추억은 모두 잊은걸까. 나는 여전히 백현이 너만 보면 설레고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는데, 넌 아닌걸까. 이미 우리 사이에 더 이 상 처음과 같은 설렘은 사라진걸 알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척. 반가운 척하며 그러겠노라 답을 하는 내 심장이, 내 손이 멍울진다. 백현아, 너를 놓아주어야 할 때인걸까.
자꾸만 억장이 무너져내릴 듯한 가슴을 부여잡고 너를 만나러 간다. 이미 잠은 깨버린지 오래다. 지금 너를 만나러 가는것을 나는 분명 후회할 것이다. 후회할텐데도, 오랜 만에 너를 볼 수 있단 생각에 약속장소에 가기 전 집에 들러 너가 선물했던 옷으로 갈아입고 머리도 다시 다듬었다. 조금이라도 예쁜 모습으로 너를 마주보고 싶다는 생각 에 나를 단장하느라 시간이 좀 지체되었길래 밥먹을거냐고 묻는 엄마의 말에 밖에서 먹는다며 대충 답하고는 운동화 뒷축을 바로하지도 못하고 달렸다. 내 심장은 분명 두 근대고 있었는데, 너가 있을 카페로 다가갈 수록 발걸음이 무거워진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바깥은 초여름에 들어섰는데, 이 곳은 겨울이다. 과하다 싶은 에어컨바람에 드 러난 팔을 괜히 부르르 떨고 있는데, 입구 근처의 창가자리에 네가 보인다. 다가간다.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
"으아, 백현아 미안! 집에 들렀다 오느라 많이 늦었다.. 많이 기다렸어? 진짜 미안, 내가..."
"아니, 나도 방금 왔어. 앉아. 할 얘기 있으니까."
내가 늦었으니까 커피산다는 말을 하려는데, 너는 내 말을 자르곤 줄곧 탁자 위의 휴대전화만 뚫어져라 보던 눈을 내게 맞춰온다. 춥다. 너의 눈이. 나에 대해 더 이상 아무 감정도 담고 있지 않은 너의 말간 눈동자가. 나는 춥다. 맞은 편에 앉자 눈치 빠르게 종업원이 다가온다.
"주문하시겠어요?"
"아, 저는 아메리카노 주시고요, 쟨 캬라멜마끼아또..."
"저도 같은거요"
늘 너가 먹던 달달한 마끼아또를 주문하려는데, 너는 나와 같은 아메리카노를 주문한다. 예전에 내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마시고는 이런 거 왜 먹냐고 말하던 네가 아직 눈 에 선한데, 쓴 걸 못먹는 네가, 나와 같은, 커피를 주문했다. 아무렇지 않은 척, 웃고 있던 얼굴에 점점 웃음기가 걷히려는 느낌이 든다. 억지로 웃고 있는 나를 잠시 아무 것도 담지 않은 말간 눈으로 쳐다보다가 이내 다시 휴대전화만 본다. 미묘하게 가라앉는 분위기에 서둘러 나는 입을 연다.
"백현아, 오늘 수업은 끝났지? 나두 끝났어. 아, 맞다. 나 바본가봐. 너랑 같은 시간푠데, 헤헤.."
"....."
"아, 백현아 곧 있으면 여름이래. 으아, 나 더운거 못 참는데 어쩌지? 너는 더위 많이 안타서 좋겠다-"
"백현아, 곧 있음 시험인데 공부 많이 했어?"
"백현아, 백현아..."
눈치라고는 쥐뿔도 없는 팔푼이처럼, 내 말에 맞장구를 쳐 주지도 않는 백현이에게 계속 말을 걸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어두운 색의 테이블 밑으로 주먹을 쥔 손 에 손톱이 박혀가고 있을 무렵. 커피가 나왔다. 애기 입맛의 네가 주문한 아메리카노가. 와플류를 주문하지 않았기에 종업원이 들고온 쟁반에는 유리컵에 든 차갑고 까만 아메리카노 두 잔 뿐이다. 맛있게 드시라는 말에 감사하다며 미소지어 보이는 내게 종업원이 살풋 웃어보이고는 빈 쟁반을 들고 다시 카운터 쪽으로 간다.
갑자기 갈증이 나 내 앞의 유리잔을 들어 씁쓸한 그 것을 삼켜낸다. 컵을 내려놓는 작은 소리에 너가 날 잠시 쳐다 본다. 나는 또다시 팔푼이의 가면을 쓴다.
"백현아, 왠일로 아메리카노를 시킨거야? 너 원래 마끼아또 먹잖어."
"...경수야."
"아, 이제 드디어 백현이가 인생의 쓴 맛을 알아가는 걸까? 헤헤, 아무렴 어때, 난 백현이 네가..."
"도경수."
아무렴 어때, 난 백현이 네가 여전히 좋아. 이 말을 해 주고 싶었다. 그가 내 이름을 부르기 전까지는. 연극은 끝났다. 아무도 봐 주지 않아 불이 꺼진 무대 위에서 오직 변 백현만을 위해 재주를 부리던 도경수광대의 연극은. 끝이 났다. 이름을 불러놓고 너는 너의 앞에 쓰디 쓴 커피를 한 모금 삼킨다. 살짝 인상을 쓰는 너였다. 방금 전까지 헤 헤거리며 웃어대던 나의 표정은 언제 그랬나 싶을 정도로 굳어간다. 왜...냐고 묻는 내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린다.
"우린 여기까진가 보더라."
"..뭐....?"
"이제 너 보면 예전처럼 가슴이 뛰지 않아. 아무 감정이 안들어. 요즘 연락 안 한것도 그 이유야. 나 이제 너 별로다. 우리 그냥 깔끔하게 헤어지자."
기어코 너의 예쁜 입에서 나온 미운 이별의 말. 어느새 너는 줄곧 보던 휴대전화를 손에 잡더니 일어선다. 일어서는 너를 따라 올라가는 내 시선을 피하는듯 너는 고개를 돌린다.
"커피값은 내가 계산할게. 너 마음 정리되는대로 그냥 전처럼 친구로 돌아가자. 오늘은 먼저 간다."
너를 간절히 쳐다보는 내 눈을 보지 않고, 너는 계속 내게 상처가 되는 말들만을 늘어놓고 먼저 자리를 뜬다. 뒤를 돌면 카운터에서 계산하는 너를 볼 수 있겠지만 미련한 나는 너에게 부담이 될까봐 가만히 앉아 있었다. 눈물은 나지 않는다. 너가 떠난 내 맞은편 자리를 하염없이 보다 이내 주인을 잃은 아메리카노가 보인다. 얼음이 녹아 다 시 원래의 양대로 돌아온 너의 아메리카노.
"쓴거 못 먹으면서...바보.."
너는 없는데, 너의 자리에 쓸쓸히 남아있는 너의 아메리카노. 멍하니 너의 컵을 가져와 내 컵의 옆에 둔다. 너와 나의 커피는 함께 있는데, 너와 나는 함께일 수가 없구나. 친구...로 돌아갈 자신은 없다. 너의 사랑은 끝났지만 나의 사랑은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밝은 햇살이 싫어 눈을 감는다. 어느새 고여있던 눈물이 눈꺼풀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투둑-흘러내린다. 모든게..꿈이었으면 좋겠다.
얼마나 앉아있었을까... 이제는 얼음이 녹아버려 밍숭맹숭한 커피 두 잔을 버리고 카페를 나섰다. 햇빛은 맑다. 내 마음은 내가 삼킨 눈물들로 홍수가 나서 바깥으로 나오 려 발버둥치는데, 그래서 울어버리고 싶은데. 빌어먹게도 하늘은 너무 맑다. 집에나 가야지.
슬쩍 커플목걸이를 건넸던 너.. 세걸음.. 대학교 합격자발표를 함께 확인한 너와 나. 그리고 나란히 입학한 우리... 네걸음... 다섯걸음... 그리고...
"변백현..."
갈라진 우리.
나는 언제고 너를 기다릴 것이다. 변백현... 너라는 순간에 살고 있어.
終. |
어휴. 비오는날에 갑자기 엄청 감상적이게 되더니. 결국 쓰고 말았네요.
원래는 담담하게 이별을 받아들이려 노력하는,
하지만 그 맘 속 깊은 곳에는 백현이를 여전히 좋아하기 때문에 언제고 기다릴거라는.
그런 지고지순한 사랑을 하는 경수를 표현하고 싶었는데...이건 뭐.
미저리..?^^.............그래서 배경음악도 저번이랑 같은 노래를 하려고 했는데ㅠㅠㅠ
다 쓰고보니...헐. 노래랑 전혀 안어울려서...다른 노래를 선택하였지요.
...(소근) 이거 외전도 있어요. (소근)
오늘 글잡엔 본편만 올리고. 오늘에서 내일로 넘어가는 새벽에 블로그에 외전 올릴거에영ㅋㅋ
글잡엔 내일 외전을 올릴게요 ! 댓글을 달아주시는 소수정예님께는 제 사랑 드려요.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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