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해"
그 말에 너는 뭐라고 답했더라. 아니, 너는 볼이 빨개진 채 부끄러워했다. 가끔은 그 때가 그리워, 경수야. 너와 내가 아무런 제약도 받지 않고 순수하게 사랑만 하고 살 수 있었던 날들이.. 너와 나가 '우리'로 묶여 있었던 그 시절이... 경수야. 잘 지내니? 난...
"학생! 젊은사람이 왜 그렇게 힘을 못써! 오늘 일당도 못 받고 싶어?! 빨리 빨리 해야지!" "..죄..죄송합니다.."
"쯧...나한테 뭐가 죄송해, 난 학생 돈 안주면 그만이지. 얼른 일해!"
....난 잘 못지내는 것 같아. 공사판에서 벽돌 나르거든. 힘들긴해도 목돈은 되더라. 씨발...피도 눈물도 없는 새끼처럼 너를 매정하게 버렸는데...하. 아마 지금의 내 꼴을 본다면 너는 아마 비웃을거야. 아니, 도경수 너는, 착해빠진 병신같은 너라는 놈은, 울테지. 병신같은 내 꼴을 보며. 굵은 눈물방울을 흘려낼거야. 어쩌면.. 하지만 너는 모 르지. 너만은 내가 이렇게 살아가고 있다는 걸 몰라야 한다. 아니다. 너는 예전부터 무른 녀석이라 우리가 헤어진 이 상황에도 슬퍼하며 눈물지을테지. 울지마라 경수야. 이제 더이상은... 더이상은 너의 눈물을 내가 닦아 줄 수 없다. '우리'는 이제 더는 '우리'로 묶일 수 없어. 그러니까... 이겨내. 이겨내고 나를 욕해. 몇 달 전. 한평생 피땀흘려 번 돈을 주식으로 탕진하고 빚까지 생겨버린 아버지는 지금 사람들의-빚쟁이들의- 눈을 피해 숨어계신다더라. 지인의 사탕발림으로 아버지는 하시던 사업도 정리하고 집을 담보로 은행에 융자도 받아서 이름뿐인 유령회사에 투자하셨는데 그 회사는 공중분해되었다. 아버지가 샀던 그 주식들이 모두 휴지조각이 된거지. 처음부터 계획된거였던거야. 아버지 지인은, 그 개새끼는 아버지의 생떼같은 돈을 날름하고는 외국으로 튀었지. 믿었던 지인에 집안이 날아갔다. 집안에 온통 피 같이 붉은 차압딱지가 붙은 날부터 형과 나는 급격히 쇠약해지신 어머니를 부양하며 살아야했다. 얼마남지도 않은 세간을 챙기는데 눈물이 핑도는걸 꾹꾹 눌러담는데 형 에게 매일 협박과 갈취를 일삼던 빚쟁이들이 날 부르더라. 더럽게 웃으면서. 그런 말 들을거면 그냥 생깔걸그랬다, 경수야. 내가 그런건 진짜 잘하는데. 너 연락도 막 생까 고 그랬잖아... 근데 그 사람들이 뭐라는지 알아? '니 형은 말귀도 못 알아먹는거 같아서 똑.똑.해.보.이.는 너한테 얘기할게. 너네 아버지가 우리한테 빚진거, 그거 기한 좀 늘려줄 수 있는데.' '하고 싶은 말이 뭔데요.'
'새끼가...눈 똑바로 치뜨는거 봐라? 하, 추잡한 게이새끼. 너 같은거 달린 새끼랑 배맞은 사이래매? 그래서 조사 좀 했는데...니 [이거]- 우리한테 넘겨. 우리가 좋-은 가게 알거든...' 씨발. 지 새끼 손가락을 나한테 보이면서 빙글 돌리면서 묻는데, 그 손가락 잘라버리려다 참았어. 인생 더이상 불쌍해지긴 싫었거든. 물어뜯어버리면 쇠고랑 차잖아. 남자 랑 붙어먹으면 어떻냐더니 종내는 너를 창부로 만들어버리겠다고 하더라. 내 아버지 빚을, 아버지 아들인 나의 연인이란 이유만으로 너에게서 받겠다더라. 기분 진짜 좆같 더라고. 그 자리에서 그 말을 내뱉은 새끼한테 달려들어서 피떡이 되도록 때렸어. 참으려고 했는데 개새끼가 자꾸 성질 건들잖아. 그냥 큰집 한 번 다녀오리라 맘먹고 때렸 는데, 미친놈이 비웃더라... 것도 엄청 기분 나쁘게. 와, 이 야무지게 미친 새끼는 널 진짜 내가 모를 홍등가에 팔아버릴거 같아서 너를 지켜야한다는 생각밖에는 안들더라. 분이 덜풀려서 한참을 씩씩대면서 나는 그 새끼한테 돈 버는 족족 갚아나갈거라고 했다. 실제로 형과 나는 뼈가 시리도록 일한 돈 꼬박꼬박 조금씩이라도 갚아나갔다. 학교... 너와 같은 공간에 있을 수 있다는 것이 미치도록 기뻤던 그 학교가, 이제는 치가 떨리더라. 속편하게 학교 다닐 여유도 없었거든. 등록금을 내놨으니까 일단 학교수 업은 나갔지만, 그만큼 벌지 못한 돈은 밤을 새어가며 갚아나갔다. 내 이런 모습을 들키기 싫어 날마다 너를 만나면서도 너를 무시하고, 연락은 점점 뜸해졌는데. 어느날 문득 너무..너무 미안하더라. 상호간의 사랑으로 시작했던 그런 예쁜 관계에서 나홀로 내쳐져 기약없이 시들어가는 너의 모습이 너무 가여웠어. 나 하나 편하자고 널 붙잡 고 있었어. 널 놓아주어야겠단 생각이 들더라... 2주간 정말 많은 고민 했는데. 답은 하나더라. 널 놔 줘야한다는. 고민끝에 어렵게 너한테 연락해서 약속장소로 가는데 눈 물이 핑돌더라구.. 너무도 섬세하고 다정다감한 너는 나의 분위기에 이상함을 알았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너도..어렴풋이 느꼈을까.... 너무 예쁜 너를, 오랜만에 만나는거라 더 신경썼을 너 를 울리려는 나를. 불안한 마음을 쉴 새 없는 재잘거림으로 감추는 너는 내가 너에게 너무 어울릴 것같아 사놓고는 줄 타이밍을 못찾아 백일날 불쑥 내밀었던 옷을 입고 있 었다. 너의 눈을 바라보고 있자니 울어버릴까 두려워 빚독촉만이 오는 휴대전화를 뚫어져라 응시했다. 말을 해야 했다. 너는 좋아하지만 나는 잘 먹지 못하는 커피는 썼다. 마치 너에게 모진말을 하려는 나를 벌하는듯이.. 너의 말을 매몰차게 끊어버리고 나는 이별을 고하며 카페를 나왔다. 너는 나 없이도...나 없이도 잘 살아야되, 도경수. 내가 널 놔주니까.. 이제 나 같은 거 잊고 잘 살아. 난 너한테 죄진 마음 평생 안고 속죄하며 살게... "....하....." 카페를 나와 도경수가 앉아있는 창가쪽에선 보이지 않을 방향으로 걸어가는데 여태 조용하던 휴대전화에 문자가 왔다. 빚쟁이. 죽여버리고픈 빚쟁이의 협박... 경수야. 소중한 나의 경수. 소중하고 소중해서 떠나보내야만 했던.. 나의 연인이었던...도경수. 나같은 새끼는 그냥 잊어버리고.. 더 좋은 사람 만나. 이왕이면 여자였으면
해. 너도 정상적인 연애를 해 봐야지. 그 꽃다운 나이에 나 같은 놈을 만나 항상 숨어서 데이트 했으니까. 그리곤 군대도 다녀오고.. 제대 후엔..제대 후엔 그 때면 너를 친 구로 바라볼 수 있을거야. 너는 정상적인 삶을 살아야 되. 그러니까, 그러니까 나는.. 너라는 순간에 살고 싶었다. 행복해. 행복하게 잘 살아. 終. - 너라는 순간에 살고 싶어. 백현 side stor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