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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탄소년단/김태형] 블랙홀(Black Hole) P | 인스티즈











스티븐 호킹은 말했다. 삶은 웃기지 않다면 비극이었을 것이라고. 그래서 내 삶은 희극인가? 수백 번 고민하다 용기 내어 처음으로 이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꺼내기로 했다. 오랜 시간이 흘러 까마득한 내 기억 속에 묻혀져 있던 이 이야기의 첫 시발점은 아마 김태형이었을 것이다.







홀 (Black Hole)




W.수학의 정석







약 몇 년 전, 아니 몇십 년 전 나는 서울에서 중학교 시절을 보냈었다. 중3 졸업식 날, 위태롭게 운영되던 아버지 회사의 부도로 우리 가족은 쫓기듯 시골로 내려왔었다. 시골 동네에는 낡은 초등학교 건물과 중학교 건물, 고등학교 건물이 있었는데 엄마가 고등학교 빼고 전부 폐교 되었다고 흘리듯이 말했었던 기억이 난다.






이사 첫 날에는 아버지는 말 없이 담배만 빽빽이 펴 댔고, 엄마는 동네 슈퍼에서 산 소주를 마셨었다. 나는 먼지로 가득한 집에 있는 게 싫어 동네 구경한다는 핑계로 집을 나왔었다. 동네 이름은 햇빛 마을이었다. 원래 이사 오면 떡을 돌려야 했을텐데 우리 집은 그럴 여유도 없었다. 계속 걸어도 밭만 펼쳐져 있었다. 아무 논 밭에 들어가서 앉으니 처음 보는 남자아이가 밭을 일구고 있던 기억이 난다.






“ 처음 보는디 니는 누구고? “


“ 뭐…? “


“ 니 누구냐고. “


“ 아, 이사 왔어. 서울에서. 


“ 서울에서? ...근디 서울서 촌에 왜왔디야? “






알아듣기 힘든 사투리가 말에 잔뜩 섞여져 있던 남자아이는 김태형이었다. 또래에 비해 앳된 얼굴과 땀으로 젖은 앞머리가 꽤 인상 깊었다. 지금이야 사투리를 알아듣지, 그 당시에는 의사소통도 힘들 정도었다. 항상 김태형은 같은 말을 두어 번에서 세 번 정도 반복했고, 못 알아듣는 날 답답해 했었다. 그게 18살의 나와 18살의 김태형과의 첫 만남이었다.







설마가 사람 잡는다 하더니 김태형과 나는 같은 학교었다. 학생 수가 적은 탓에 나이와 상관없이 전교생이 모두 같은 반이었는데 나와 김태형을 포함하여 10명도 채 안되었다. 김태형과는 논에서 만난 이후부터 급격하게 친해졌었는데 집도 가까웠다. 그래서 우리는 고등학교 졸업할 때 까지 같이 등교했었다.






“ 가시나 빨리 안오제. 니 몇시에 일어나믄 이케 늦게나오노. “


“ 어? “


“ 옘병! 말을 말자 가시나야. “






김태형은 참 ‘옘병’ 이라는 단어를 좋아했었다. 기쁠 때도 ‘옘병’, 화가 났을 때도 ‘옘병’, 슬플 때도 ‘옘병’. 항상 ‘옘병’ 이라는 단어가 입에 붙어있었다. 김태형은 등교할 때 마다 팔자 좋은 웃음을 지으며 어릴 적에 할머니가 자신한테 해주었던 이야기를 해주었는데, 사실 전부 못 알아들었지만 고개를 끄덕여줬다. 말하다가 웃으면 나도 따라 웃었고, 우울한 목소리면 나도 덩달아 우울해져선 말끝을 늘렸었다.






“ 아 맞다! 어제 할매가 니보고 저녁 같이 먹자드라. 핵교 끝나고 같이 가믄 된다. “


“ ...음 다시 말해줘. “


“ 아! 답답시럽고로. 할매가 니캉 저녁 같이 묵자고 했다고! “


“ 저녁 같이 먹자고 했다고? “


“ 어! 그캐서 핵교 끝나고 울집 가면 된다고. “






늦게 일어난 바람에 말리지도 못해 축축하게 젖은 머리카락이 매서운 바람에 휘날리면 김태형은 ‘옘병! 좀 일찍 자라고 했제. 뭐하면 만날 머리 안 말리고 온디야. 내일은 좀 일찍 일나라.’ 하고 잔소리를 하곤 했었다. 나는 듣는둥 마는둥 했었지만 김태형은 내가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일 때 까지 계속 말했었다.






학교와 우리집은 멀었다. 나는 집이 싫었다. 엄마와 아빠가 새벽까지 싸우는 소리를 들을 땐 이불 안으로 몸을 웅크려 말고는 눈을 억지로 감았었다. 예민한 탓에 매일 엄마와 아빠의 싸움이 끝 날 때까지 나는 자지 못했었다. 아침에 퀭한 눈으로 일어나 피곤에 찌들어 있었지만 김태형과 학교를 갈 때면 행복했었다. 그래서 난 집에 있는 것 보다 학교에 있는 게 더 좋았다.






“ 마! 오늘은 지각 안했네. 맨날 늦더니. “


“ 누가 들으면 매일 지각하는 줄 알겠다. “


“ 맞다아이가! 저 가시나 때문에 맨날 지각하고. 굼벵이처럼 느려 터져서는 답답해 죽겠다. “






학교에 도착하면 박지민이 김태형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희한하게 인사를 했었다. 그리고는 일찍 오면 ‘오늘은 지각 안하고야. 가시나 해가 서쪽에서 뜨나보제?’ 라고 했었고, 지각하면 ‘또 늦었네 또 늦었어. 매엔날- 늦고 가시나가! 니가 일찍온게 손에 꼽는다.’ 했었다. 귀에 딱지가 앉을 만큼 들었는데. 나는 아직도 눈을 감으면 그 목소리와 말투가 떠오른다. 그땐 참 어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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