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 밖에는 노을이 지고 있었다. 열린 창문 사이로 찬 바람이 들어 오고 있었지만 루한은 창문을 열어놓은 채로 그렇게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6살 루한은 엄마아빠가 매일 일을 나가시면 이렇게 혼자서 집을 보곤 한다. 엄마가 준비해 놓은 간식을 먹거나 동화책을 읽거나 하다가 이렇게 창밖을 내다보는 것이 루한의 하루였다. 6살 루한에게는 너무나 지루한 시간이지만, 원래는 이렇지 않았다. 며칠 전만 해도 루한의 곁에는 루한의 누나 루루가 있었고, 유치원을 다녀오고 나면 루한과 엄마아빠가 돌아올 때까지 같이 놀아주고 했었다. 하지만 더이상 루루는 이세상에 없다. 너무나도 끔찍한 사고로 루루는 죽어버렸고, 그때부터 이 지루하고 지루한 시간을 루한 혼자 버텨야 했으며 , 그리고 너무나도 안쓰러울 만큼 어린 루한에게서 웃음이 사라졌다.
오늘따라 더 더딘 시간을 버티고 있던 루한은 방안이 점점 어두워지고 있음에도 불을 켤 생각도 하지 않았다.
'루한, 누나 왔어!'
노을이 지기 전에 늘 돌아오던 누나가 없다는 생각에 루한은 그만 또 그 새벽처럼 이쁜 눈에서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누나 보고싶어, 작은 루한은 그렇게 중얼거리기만 할 뿐 눈물을 닦아낼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 때 ,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응?"
아주 작은 소리지만 무언가 걷는 듯한 작은 발소리 같은 것이 들려옴에 루한은 소리를 쫓아 움직였다. 그리고 그 소리가 침대 밑에서 들려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뭐지-'
루한은 조심스럽게 창문을 닫고 침대에 엎드린 채로 침대보를 살짝 들어올려 침대 밑을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거기서 아주 작고 작은 남자 아이가 서 있는 것을 발견했다. 남자 아이는 정말 엄지 손가락 만큼이나 작고 작아 루한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 아이를 보았다.
"야!"
그 작은 아이가 루한을 불렀다. 말까지 하는 작은 아이에 루한이 꽤 당황해서 대답을 하지 않자 작은 아이가 갸우뚱하더니 야-,하고 다시 한번 불러온다.
"안녕-"
작은 아이가 먼저 루한에게 인사를 했고, 조금 망설이던 루한도 안녕-하고 인사를 해주었다. 인사가 끝나자 아주 잠깐이지만 서로 바라만 본채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루한이 먼저 말을 걸었다. 너 누구니?
"나는 난쟁이 시우민이야~"
작은 아이가 대답했다. 시우민. 루한은 작게 그의 이름을 불러보았다. 그래, 내 이름은 시우민. 루한의 말을 들은 건지 방긋 웃으며 그렇게 말하는 작은 아이였다. 하지만 루한은 시우민이 갑자기 어디서 나타난건지 알 수가 없어 아이에 대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침대 밑에서 뭐해?"
" 나, 여기 살고 있어."
"여기? 침대 밑에?"
"아니, 정확히는 저 쪽 층계 밑."
저 쪽 구석에 입구가 보이지?, 시우민이 가리키는 쪽을 보자 큰 쥐구멍 같은 것이 보였다. 쥐구멍? 루한이 놀란 눈으로 다시 시우민에게 시선을 옮겼다.
"언제부터 저기에서 산거야?"
"이틀 전에 이사왔어"
시우민은 루한의 질문에 친절하게 대답해주었다. 전에는 숲속 나무 뿌리 밑에 살고 있었는데, 거기가 지겹고 힘들어서 이사를 할 생각이였고, 운 좋게 이사가는 쥐를 만나 이곳을 알게 되었다고 말했다.
"아무튼 요즘은 주택난 때문에 도시에 집을 얻기가 어려워."
'주택난'이라는 단어에 루한이 고개를 갸웃 거렸다. 무슨 의미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뒤 이어 집을 얻기 어렵다는 말에 대강 무슨 말인지 생각은 해본다.
"저 밑도 추운데, 여기도 상당히 춥구나."
"응, 추워. 방금까지 창문을 열고 있었거든."
이제 창문을 닫았으니 따뜻해질거라고 말하는 루한의 대답이 끝나기도 전에 시우민은 추위를 이기려는 듯 팔다리를 오므렸다 폈다 하면서 체조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루한을 보며 매일 무엇을 하냐고 물었다. 루루누나가 죽고 나서 루한은 거의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책을 읽다가도 자기에게 책을 읽어주던 누나가 생각났고, 혼자 노는건 너무나 지루해서 거의 창밖만 보고 있었다.
"특별히 하는 건 없어."
"나도 그래. 하지만 혼자라서 정말 지루해."
루한은 그말에 동의했다. 누나가 없으니까 너무나 지루한 하루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루한을 가만히 바라보던 아이는 루한의 눈에서 자신과 같은 외로움이 느껴진다고 느꼈다. 아니 자신보다 더 큰 외로움이 느껴졌고 그 큰눈에서는 곧 눈물이 떨어질 것만 같았다.
"잠깐 나 있는 곳에 와 보지 않을래?"
시우민의 물음에 루한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저 구멍에 자신이 들어갈 수 있을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저기 쥐구멍으로 내가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하니?"
"문제 없어. 저기 못이 보이니? 그걸 살짝 만지고 '시레비펜'하고 말하면 돼."
그러면 나만큼 작아져. 아이의 말에 루한은 또다시 놀라고 말았다. 정말이니?, 하고 묻는 루한에 시우민은 고개를 끄덕끄덕 거렸다. 정말이야, 이리로 들어와봐. 시우민은 손짓을 하며 자신이 먼저 쥐구멍 앞으로 걸어갔다. 루한도 빠르게 몸을 일으켜 침대 밑으로 기어 들어갔다. 그리고 정말로 쥐구멍 옆에 있는 못을 만지며 '시레비펜'이라고 말하자 시우민과 같은 크기로 작아져 버린 루한이였다.
"우와~!"
루한이 크게 탄성을 뱉었다. 6살 루한에게는 자신의 몸이 작아진다는 건 꿈만 같은 일이였다. 이리저리 자신의 몸을 돌아보는 루한에게 가까이 다가온 시우민은 손을 내밀며 자신을 그냥 슈밍이라고 부르라고 말했다. 루한은 지금부터 무슨 일이 일어날까하는 생각에 가슴이 두근 거렸다. 당장이라도 뛰어 가보고 싶었지만 겨우 참고 슈밍의 손을 잡았다.
"층계가 있으니 조심해. 난간이 흔들리는 데가 있거든"
루한과 슈밍은 손을 맞잡고 조심해서 층계를 내려갔다. 이런 곳에 층계가 있다니, 루한은 오늘따라 몇번이고 놀랄 만한 일을 겪었다. 층계를 내려가면 슈밍은 루한의 이름을 물었다. 난 루한, 새벽사슴이라는 뜻이야. 루한의 말에 슈밍은 그와 참 어울리는 이름이라고 생각했다. 층계를 다 내려가니 문이 있었고 슈밍이 불을 키자 문에는 '난쟁이 시우민'이라고 적힌 문패가 걸려 있었다. 슈밍이 먼저 문을 열고 들어가 불을 켰고, 루한도 그 뒤를 따라 들어갔다. 어때?, 하고 묻는 슈밍의 옆에 선 루한은 작은 방을 둘러 보았다. 창문 하나와 파란 난로가 놓여진 작은 방은 생각보다 좋은 방이였다. 그러나 겨우 그것 뿐이였다.
"밤에는 어디서 자?"
"바닥에서"
"춥지 않니?"
"응, 아까 말했다시피 굉장히 추워. 그래서 한시간에 한번씩 일어나 운동을 해"
슈밍의 말에 루한은 그가 무척이나 가엾다는 생각이 들었다. 파란 난로가 있는데 왜 피우지 않냐고 묻자 슈밍은 장작이 없다고 했다. 장작도 꽤 비싸다고 말하는 슈밍에 루한은 더 그가 가엾게 느껴졌다. 그러다 문득 좋은 생각이 떠올라 저도 모르게 두 손바닥을 탁-, 하고 쳤다.
"장작이라면 내가 가져다 줄 수 있어!"
루한의 말에 슈밍이 눈을 크게 뜨며 정말이냐고 물어왔다. 루한은 물론이지, 라고 대답하며 내려왔던 층계를 뛰어 올라갔다.
"아-"
"왜 그러니?"
쥐구멍으로 다시 올라온 루한은 저도 모르게 우뚝 서버렸다. 이 작아진 상태로는 자신이 생각했던 장작을 구해올 수도 없었을 뿐더러 어떻게 커질 수 있는 방법도 몰랐다. 설마 다시 커지지 않는건 아니겠지?. 루한을 따라 뛰어 올라온 슈밍에게 다시 커지는 방법을 물었다.
"똑같아. 못을 만지며 '시레비펜'을 다시 외치면 돼."
슈밍의 설명이 끝나자 루한은 바로 못에 손을 대고 '시레비펜'을 외쳤다. 정말로 6살 루한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너는 커질 수가 없는거니?"
"안타깝게도 나는 원래 난쟁이여서 너처럼 커질 수가 없어."
본래의 크기로 돌아간 루한은 슈밍을 내려다보며 물었다. 자신은 커질 수 없다며 고개를 젓는 슈밍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급히 침대 밑에서 기어나와 거실에 있는 난로로 뛰어갔다. 난로 옆 선반에는 타다 남은 성냥개비가 많이 있었다. 루한은 타다 남은 성냥개비를 탁탁 부러뜨려 쥐구멍 앞에 쌓았다. 그리고 다시 한번 주문을 외웠다.
'시레비펜'
"슈밍, 장작 나르는 것을 좀 도와줘."
이미 쥐구멍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슈밍은 루한과 성냥개비를 나누어 들어 힘들게 방 안까지 끌고 왔다. 슈밍은 바로 장작 몇개를 난로에 넣었고 루한에게 잘 보라고 말한 뒤 불을 후후 불었다. 곧 탁탁 소리를 내며 난로 속 장작이 타기 시작했다. 타오르는 난로를 보며 슈밍은 아주 환하게 웃음 지었고, 그런 슈밍의 모습을 본 루한 역시 정말 오랜만에 미소를 지었다.
"고마워, 루한"
"더 필요하면 더 가져다 줄 수 있어"
"괜찮아, 올 겨울은 이 정도면 잘 보낼 수 있을 것 같아."
두 아이는 불꽃이 타오르는 난로 앞의 마룻바닥에 앉았다. 따뜻한 난로 앞에서 차가워진 손과 몸을 녹였다. 루한은 자신보다 더 작은 슈밍의 손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아까 맞잡았을 때도 느꼈지만 보니까 더 작다. 더 신기한건 슈밍의 손 끝이 분홍빛이였다는 것이다. 귀여워. 루한은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잠시 후에 루한은 배고픔을 느껴 슈밍을 바라봤다.
"넌 무얼 먹고 살아?"
루한의 질문에 슈밍의 얼굴이 빨개져 버렸다. 사실 따로 먹는 게 정해져 있지 않았고, 손에 들어오면 아무것이나 먹었던 것이다. 게다가 오늘은 하루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고개를 숙인채 들어가는 목소리로 오늘은 아무것도 먹지 못했어, 라고 대답하는 슈밍에 루한은 배안고파? 라고 소리쳤다.
"사실은 굉장히 배가 고파."
"왜 말을 안했어? 내가 곧 갖다 줄게. 기다려."
"루한."
얼마나 배가 고팠던건지 눈물까지 글썽이며 말하는 슈밍을 뒤로하고 루한은 벌써 층계를 다 올라가 급히 '시레비펜'한 다음, 서둘러 식품을 두는 선반으로 달려갔다. 그곳에서 작은 치즈 조각과 빵 조각을 집었다. 빵 조각에는 버터를 발랐으며, 고기 완자 한 개와와 건포도 두 알도 집어 왔다. 그것을 모두 쥐구멍 옆에 쌓아 놓고 다시 작게 모습을 바꾸고는 슈밍을 불렀다. 또다시 반을 나눠 음식을 방으로 옮긴 루한과 슈밍.
"고기 완자부터 먹자."
두 아이의 얼굴만한 고기 완자를 , 양쪽 가장자리부터 마주 보고 먹기 시작하여, 누가 빨리 가운데까지 먹나 내기까지 했다. 작은 빵 조각을 먹고, 치즈 조각을 먹으며 둘은 꺄르륵 소리를 내며 웃었다. 루한은 오랜만에 외로움도 잊은 채 슈밍과 놀았다.
"어때? 이제 좀 배부르니?"
"응,배부르니까 졸리다~"
오늘은 난로앞에서 따뜻하게 잘 수 있어서 좋아.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는 슈밍을 보다가 루한은 좋은 생각이 떠올랐는지 어디가냐고 묻는 슈밍을 뒤로 한채 또다시 층계를 뛰어 올라갔다. 조금 놀란 슈밍이 그를 따라 층계를 올라갔다. 쥐구멍에 기대서 루한을 기다리고 있자 이번에는 작은 침대를 가지고 온 루한이였다. 슈밍은 자신의 앞에 내려진 작은 침대를 보다가 작아진 루한이 다가오자 그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이건 뭐야?"
"보면 모르니? 침대야."
"루한..어디서 가지고 온거야?"
"일단 침대부터 나르고 얘기하면 안될까?"
루한이 침대 머리쪽을 잡았고, 그 모습을 본 슈밍도 조심스럽게 침대 맞은편을 잡아 들었다. 그리고 두 아이는 침대까지 슈밍의 방으로 옮겼다. 루한은 침대 위의 융조각을 정리해서 깔아 주었고, 그 밑에서 잠옷으로 보이는 옷을 빼내어 슈밍에게 건네 주었다.
"이거 인형의 잠옷인데, 신경 쓰지 말고 입어 주겠니?"
오리가 그려진 핑크색 잠옷은 누가 봐도 여자아이의 것이였다. 하지만 슈밍은 너무나 좋아서 루한의 손에서 잠옷을 받아들며 함성을 질렀다.
"여자 아이 것이라-"
"상관 없어. 어쨌든 입으면 엄청 편할거야!"
만족스러운 듯한 슈밍의 표정에 루한도 다행이라며 기쁜 듯 웃었다. 슈밍은 루한이 있는데서 잠옷으로 갈아 입었다. 처음 봤을 때도 여자 아이인가 싶을 정도로 새하얗고 예쁜 슈밍이여서 그런지 잠옷이 꽤나 잘 어울렸다. 예쁘다, 잘 어울려-, 루한의 말에 슈밍은 한번 더 소리를 지르며 침대에 걸터 앉았다. 그를 따라 침대에 앉은 루한은 붕 뜬 두다리를 흔들거리고 있는 슈밍을 보다가 너무 귀여워 그의 머리를 천천히 쓰다듬었다. 루한이 제 옆에 앉자 짐짓 웃음기가 사라진 슈밍이 물어왔다.
"근데 이거 어디서 가지고 왔어?"
"우리 누나거야."
"누나?"
"정확히는 누나 소꿉놀이 장난감이야."
"근데 이렇게 가져와도 상관없니? 누나가 찾으실거야."
"우리 누나는 이제 없어."
또다시 루한의 눈이 빨갛게 젖어들어갔다. 확실히 누나가 있더라면 그런 외로운 눈으로 저를 보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한 슈밍이다. 무슨 사연이 있는건지 모르겠지만 이번에는 슈밍이 루한의 머리를 천천히 쓰다듬어 주었다. 눈물이 날 것만 같은걸 겨우 참은 루한은, 침대에서 내려왔다.
"이제 그만 자. 난 엄마하고 아빠가 돌아오실 때가 되어서 아무래도 돌아가 봐야겠어"
"그래, 루한.
슈밍은 그대로 침대로 올라가 융 조각으로 몸을 덮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야아'하고 소리쳤다.
"아주 따뜻해. 기분도 좋고-, 졸려."
"그럼, 잘자. 내일 또 올게."
하품을 크게 하는 슈밍에게 손을 흔들며 루한이 말했으나 그새 잠이 들어버린 슈밍에게 들리지 않았다. 루한은 그런 슈밍을 뒤로 한채 방의 불을 끄고는 다시 자신의 방으로 올라왔다. 뭔가 재미난 일이 생긴 것 같다.
-
다음날, 루한은 엄마와 아빠가 나가기만을 기다렸다.
"루한, 오늘도 혼자 잘 있을 수 있지?"
"엄마 다녀올게, 루한."
"응응! 조심히 다녀와!"
루한은 손까지 흔들어가며 엄마아빠를 배웅했다. 최근 들어 힘이 없던 아이가 갑자기 손까지 흔들며 인사를 해주자 루한의 엄마아빠는 조금 놀랬다. 하지만 금방 루한을 따라 웃으며 루한의 볼에 입을 맞춘 후 두사람 역시 손을 흔들어 주었다. 현관 문이 닫히자 루한은 서둘러 슈밍이 있는 곳으로 뛰어 갔다. 슈밍은 벌써 일어나서 난로에 붙을 붙이고 있었다. 루한 안녕~, 슈밍은 문을 열고 들어오는 루한을 향해 방긋 웃으며 인사해 주었다. 루한도 슈밍에게 인사를 건네며 그의 옆으로 다가섰다.
"루한, 불을 피워도 괜찮았어?"
"괜찮아. 언제든 피워도 돼."
아무래도 루한의 침대 아래에서 불을 피웠던 것이 신경이 쓰였던지 슈밍이 루한에게 물었다. 괜찮다니 다행이다, 덕분에 정말 따뜻한 밤이였어. 슈밍의 말에 루한은 꽤 기뻤다. 자신이 준 장작과 침대가 슈밍을 따뜻하게 해 주었다는 기쁨이였다. 루한은 뿌듯한 마음으로 방을 둘러보다가 슈밍에게 말했다.
"그런데 여기 좀 깨끗이 하는 게 좋지 않을까?"
"그러고보니 바닥은 한번도 닦은 적이 없어."
"좋아. 우리 오늘은 바닥을 청소하자!"
어느새 루한은 층계를 올라가 있었다. 바닥을 닦는 솔과 물통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슈밍은 그런 루한에게 너무나 고마웠다. 자신의 작은 집을 위하여 무언가를 구해다주는 루한이. 루한이 오기 전에 자신은 쥐구멍까지 마중나가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미안하기까지 했다. 얼른 올라가자, 루한이 부르기 전에. 잠시 뒤 루한은 또 한손가득 무언가 들고 돌아왔다. 칫솔 자루가 없는 칫솔과 물이 가득 담긴 작은 그릇과 누더기 조각이였다. 오늘도 루한과 슈밍은 서로를 도와 방으로 그것들을 운반했다.
"와아, 굉장히 큰 솔이야!"
" 이 정도로 커도 괜찮을 거야."
루한과 슈밍은 마룻바닥을 닦기 시작했다. 루한이 칫솔로 바닥을 닦으면, 슈밍이 그 뒤를 따라 누더기 조각을 걸레 삼아 닦아냈다. 작은 그릇 안의 물은 잠깐 사이에 더러워졌지만 바닥은 아주 깨끗해 졌다. 루한과 슈밍은 흐르는 땀을 닦아내며 뿌듯한 듯 웃어 보였다.
"슈밍, 층계 옆에 앉아서 눈을 감고 그대로 기다려봐. 눈을 뜨면 안돼!"
루한이 말했다. 또다시 어디론가 향하는 루한의 말대로 슈밍은 눈을 감고 그를 기다렸다. 이윽고 무엇을 잡아 끄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려 온다.
"자, 이제 눈을 떠봐!"
"..우와~!!"
루한의 말에 슈밍은 눈을 떴다. 그리고 자신의 눈 앞에 펼쳐진 것을 보고는 두 손을 입으로 가져가며 크게 놀랐다. 바로 눈앞에는 진짜 식타과 구석에 놓는 삼각장, 작은 안락 의자 두 개, 그리고 나무로 만든 발판이 놓여져 있었기 때문이다.
"근사해, 루한! 너는 요술을 부리는 거니?"
"그럴리라 없잖아~"
슈밍의 말에 루한이 웃음이 터졌다. 요술이라니. 루한이 요술을 부린 것이 아니였다. 모두 루루 누나의 소꿉놀이 장난감이였고, 양탄자도 루루누나가 장난감 베틀로 짠 것이였다. 슈밍의 기뻐하는 표정을 보며 루한은 누나에게 고마워 했다. 누나의 소꿉놀이 장난감이 이 아이에게 도움이 된다는 생각 떄문이였다. 누나가 죽고 난 후, 이 장난감을 보면 누나가 보고 싶은 마음에 슬프면서도 누나꺼라고 절대 버리지 말라고 우겼던 루한이였다. 그게 이렇게 쓰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우선 두 아이는 양탄자를 깨끗해진 바닥에 깔고, 삼각장을 방 구석에 놓았으며, 방 한가운데에는 식탁과 안락 의자를 놓았다. 그리고 난로 앞에 두 발판을 놓으니까 정말로 아늑하고 편안한 방이 되었다. 루한은 자신의 방보다 여기가 훨씬 더 멋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멋진 방에서 살다니 꿈만 같아."
"내 방보다 더 멋진 것 같아."
"이런 멋진방에서 살려면 사는 사람도 좀 멋지게 돼야 어울리겠지?"
"우리 목욕탕에 들어가자."
슈밍은 자신의 차림새를 내려다보며 말하자, 루한이 얼른 대답했다. 이윽고 아까 그 작은 그릇에 깨끗한 물이 새로 채워졌다. 작은 그릇과 물통을 운반하면서 층계에 꽤 많은 물을 엎질렀지만, 그래도 목욕하기 충분한 물이 남아 있었다. 루한과 슈밍은 앞다투어 옷을 벗고 탕 속에 들어갔다. 작은 그릇이라고 했지만 자그마한 두아이가 들어가도 남을 정도로 그릇은 컸다. 서로에게 물을 끼얹거나 등을 닦아주며 두 아이는 신나게 놀았다. 많은 양의 물이 바닥에 엎질러졌지만, 양탄자는 미리 걷어 놓았으므로 바닥을 닦기만 하면 되었다. 다 씻은 루한과 슈밍은 한 장의 목욕 수건에 몸을 감싼 채로 난로 앞 발판에 앉아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루한은 자신의 누나의 이야기를 슈밍에게 해주었다. 교통사고, 유치원에서 돌아오던 길 누나는 교통사고를 당했다. 항상 누나가 돌아오는 모습을 창밖으로 보던 루한은 그 날따라 보이지 않는 누나의 모습에 울적해 하고 있었다. 게다가 엄마도 평소보다 늦었고, 아빠가 들어와 루한에게 외투를 입힐 때서야 무언가 이상하다는 걸 느꼈다.
'아빠, 누나 왜 안와?'
'루한, 아빠말 듣고 놀라면 안돼...'
'응응!'
'루한... 루루는... 누나는... 이제 루한 곁에 있을 수 없어...'
'응?'
'루한아....흑..흑흑...'
'아빠 울어?'
처음에는 아빠가 자신에게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몰랐다. 누나가 곁에 없다니... 6살 루한에게는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 이야기였다. 누나는 죽었어... , 흐느낌 속에서 나온 그 말에도 6살 루한은 눈만 꿈벅꿈벅 했던 것 같다. 장례식 끝날 때까지는 할머니랑 같이 있어, 라며 할머니 댁으로 자신을 데리고 가는 아빠차에 타서야 누나를 더이상 볼 수 없다는 생각에 펑펑 울었던 것 같다. 너무 어린 루한은 누나의 마지막 모습도 볼 수 없었다. 그저 누나 다녀올게, 라며 노란색 원피스를 입고 인사하던 누나의 모습밖에 없다.
루한의 이야기가 끝나자 슈밍은 어느새 루한의 등을 토닥이고 있었다. 어느새 또 눈물을 흘리고 있던 루한이였다.
"슈밍 너는 ? 가족이 없니?"
겨우 눈물을 그친 루한이 슈밍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러고보니 전에 숲에서 살았다고 했는데, 그 때도 가족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나는 가족이 없어."
"...."
"난쟁이는 말이야, 태어나자마자 가족과 떨어져서 살게 돼."
내가 어디서 태어났는지, 어디서 살았었는지도 몰라. 기억에 없어. 루한은 슈밍을 만나고 처음으로 씁쓸한 표정의 슈밍을 만났다. 나와는 조금 다르지만 같은 외로움을 가진 아이. 이번엔 반대로 루한이 슈밍을 꼭 안아주었다. 외로워하지 말라고. 자신과 놀자고. 여기서 살며 자신과 같이 놀자고 , 그렇게 말해주고 있었다. 한참을 안고 있던 두 아이가 겨우 떨어졌다. 슈밍이 풋-, 하고 살풋이 웃었는데, 루한은 그 모습이 참 예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저도 모르게 슈밍의 볼에 쪽-, 하고 입술을 가져다 댔다. 슈밍이 조금 놀라서 얼굴이 빨개졌고, 루한도 어쩐지 수줍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 문득 시간이 많이 지났음을 깨달았다.
"앗, 엄마 아빠 오실 때가 다 된 것 같아!"
루한은 허둥지둥 옷을 입었고, 슈밍도 옷을 입었다. 다 갈아입고 서로를 마주보며 서 있던 두 아이. 먼저 말을 건건 이번에도 루한이였다.
"슈밍, 나와 같이 위에 올라가 볼래?"
내 스웨터 속에 숨어 있으면 엄마 아빠도 전혀 눈치 채지 못할거야."
슈밍은 루한의 말에 신이 났다. 가보고 싶다고 말하는 슈밍에 루한이 만족한 듯 그에게 손을 내밀었고 어제 처음 이곳에 왔던 것처럼 손을 맞잡고 층계를 올라갔다. 루한이 주문을 외워 다시 6살 루한으로 돌아온 뒤 침대 밑을 빠져 나왔다. 그를 따라 걸어 나온 슈밍에게 자신의 손을 내밀었다. 같이 작을 때는 몰랐는데, 자신의 두 손안에 쏘옥 들어올 만큼 작은 슈밍을 꼭 잡아서 자신의 스웨터 안쪽에 넣었다. 슈밍은 루한의 셔츠 주머니에 쏘옥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곧 루한은 엄마 아빠와 함께 저녁 식탁에 앉았다. 이 때, 루한의 엄마가 깜짝 놀라 물었다.
"루한, 어떻게 된거니, 머리가 젖었잖아!"
"응, 엄마, 나 목욕헀어."
"목욕? 어디서? 혼자서 했니?"
이 속에서 했어, 루한은 식탁 위에 놓여 있는 젤리가 듬뿍 담긴 작은 그릇을 가리켰다. 루한의 손끝을 따라 간 루한의 엄마는 당황한 표정으로 아빠를 보며 말했다.
"여보-"
"다행이군. 루한이 우스갯소리까지 하고."
"그런거죠? 괜찮은거죠?"
"그래, 이제 누나가 없어도 힘이 나는 것 같아. 잘됐어"
"그래요. 가여운 우리 루한-, 매일 혼자서 집을 보니..."
루한은 자신의 스웨터 속에서 무엇이 꼬물꼬물 움직이는 것을 느꼈다. 아주 따뜻하고 작고 귀여운 무언가가.
"엄마 아빠, 이제 걱정하지마, 나 혼자서도 즐거워졌어!"
그렇게 말하며, 루한은 스웨터 안에 집게손가락을 넣어 난쟁이 슈밍을 조심스럽게 어루만졌다.
--------------------------------------------------------------------------------
제가 어릴 때 본 세계명작동화집에 있던 '난쟁이 닐스 카르손'이라고 하는 동화를 모티브로 해서 쓴 단편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전개과정부터 소재는 완벽히 일치합니다 ㅎ 동화책이 아직 저희 집 책장에 있길래
그걸 보면서 적당히 제 문체로 바꿔서 써보고, 대사같은거는 같은 것도 좀 있어요 ㅎㅎ
그냥 어제 엄지민석이라는 소재를 보다가 생각난 동화라, 저도 한번 써봤네요 ㅎㅎ
개인적으로 귀여운 루민을 보고 싶었던 것 같아요 ㅎㅎ
아무래도 역시 부끄러우니 전 또 도망가요!!
아직 시리즈가 없어요
최신 글
위/아래글
공지사항

인스티즈앱
[공식] 조진웅, 직접 은퇴 선언 "질책 겸허히 수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