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들어 유독 꽃이 많이 나온다.
기침을하면 양귀비가 한송이씩 나오는 정도였는데, 요즘에는 목에 들어찬 양귀비를 게워내는 수준이다.
평소처럼 구역질을 해보지만 꽃이 목에걸려서 나오지 않는다.
목에서 꾹꾹 메워지는 꽃때문에 숨이 막히고 정신이 아득하다.
양귀비-내가 이 양귀비때문에 결국은 뒤지는구나, 그렇게 좋아하면 안되는거였는데.
좋아한 내 잘못이지.
운 좋게 마침 원우가 들어온다.
아, 8시.
감기는 눈을 꿈벅거리며 뜨려고 애쓰고 있었다.
이렇게 정신 잃으면 안되는데, 얼굴 보고싶은데..
저를 발견한 원우가 놀라서 뛰어와 어깨를 흔들었다.
겨우겨우 바라본 원우는 거의 울 지경이다.
"야! 너 왜그래, 정신차려!!!"
물기어린 뭉뚝한 고함만 귀를 때렸다.
어,울어요..? 하고 묻고싶은데 입안가득 꽃이 차올라서 말을 할수가 없어서, 입만 어물거리다가 정신을 놓았다.
머리가 깨어질 것 같은 통증에 눈을 뜨자 하얀 병실 안이었고 원우는 하얀 병원이불을 베고 잠들어 있었다.
울것만 같았던 얼굴이 생각났다.
생각을 하니까, 콜록- 또 꽃이 나왔다.
기침소리에 원우가 일어나 느릿하게 눈을 깜박거리다가 이내 다시 이불에 얼굴을 파묻는다.
너는 진짜...
뭐라고 하는지 이불에 묻혀 잘 들리지 않았다.
나는 한참동안, 엎드린 원우의 머리카락이 바람에 살랑거리는 것을 보았다.
별 일이 아니었기에 정신이 들고난 뒤 얼마되지 않아 퇴원을 했다.
집으로 가는길 원우의 차 안에서는 둘 다 아무 말도 하지않았다.
원우는 조금 상기되었지만 언제나처럼 침착한 표정으로 묵묵히 운전만 했고,
나는 오랜만의 바깥공기를 들이마시며 빠르게 지나치는 풍경을 바라보았다.
집에 들어가자마자 습관처럼 기침을 했다.
어...?
꽃이 나오지 않는다.
아까 병실에서만 해도 분명 꽃이 나왔는데,
당황스러운 와중에 깨만 애꿎은 바짓단을 물고 늘어졌다.
이게 무슨 일인가, 뭐지?
아직도 뻐근한 머리를 굴리며 생각해 보아도 결론이 나지 않는다.
다시 기침을 해도 꽃은 나오지 않았다.
가슴은 여전히 답답한데도 말이다.
깨야, 어떡하지?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이 신나서 꼬리를 흔드는 깨를 바라보고 있는데 마음이 너무 심란하다.
이제 나는 어떻게 되는거지?
조금은 무뎌진 생각들이 다시 떠올랐다.
몸을 파는 것 따위의 개 같은 상황 말이다.
뭐라고 말을 해야할지 생각하느라 잠을 이루지 못했다.
저-이제 꽃이 나오지 않아요.
죄송해요, 꽃이...
어떤 말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동안 뱉어낸 양귀비는 얼마나 할까,
남은 돈을 갚을 때까지 시간을 조금만 더 달라고 애원해볼까.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졌다.
일곱시 오십오분, 오십육분.
침대에 쭈그려 앉아 손톱을 깨물며 시계만 바라본다.
8시를 향하는 바늘.
아침 8시가 오지 않기를 밤새 기도했는데.
8시
오늘도 어김없이 원우가 찾아왔다.
늘 벌떡 일어나서 원우를 기다렸는데, 오늘은 사형을 기다리는 죄인마냥 방안에 숨어서 곧 들려올 원우의 목소리를 기다리고있다.
늘 양귀비가 놓여있던 자리가 텅 비어있자 원우의 표정은 굳어졌다.
점점 커지는 발소리에 제 심장소리도 점점 빨라졌다.
"이게 무슨 상황이야? 꽃들은..."
"저..그게 안 나와요, 제가 기침도 해보고 그랬는데 더이상..꽃이,꽃이 안나와요.."
연습한 것 보다도 훨씬 멍청한 대답이었다.
예상치 못했던 눈물까지 차올라서 고개를 떨궜다가, 원우 눈치를 슬쩍 보았다가 했다.
"더이상, 나를 좋아하지 않는거야?"
저를 바라보는 새까만 눈동자가 어딘가 처연하다.
좋아하지 않는거냐는 질문,
여전히 원우를 보면 가슴이 답답하고 간질거린다.
"그건 아닌 것 같은데요.."
"그런게 아니라면 도대체 ㅇ..."
원우는 문득 드는 생각에 말을 채 잇지 못 했다.
늘 양귀비가 가지런히 놓여있던 식탁이 텅 비어있는 것을 보았을때 원우는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애초에 생각해 보지 못한 상황이었고, 이제 너봉이를 어떻게 해야되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몸을 판다는, 그런 생각을 하자 소름이 끼치도록 기분이 나빠서 고개를 휘휘 저었다.
차라리 도망을 갔으면 좋았을 껄, 하는 생각.
멍청하게 가만히 집에서 기다렸을 너봉.
지금도 눈물을 참으며 어쩔줄 몰라하는, 어제는 그 꽃때문에 죽을 뻔 했던 너봉을 본다.
자꾸 드는 생각은 멍청하게도
이제 나를 좋아하지 않는건가? 였다.
그런 생각이 들때마다 원우는 자꾸 안절부절 했다.
그리고 가슴이 답답했다.
아.
짝사랑이 끝나면 꽃은 더이상 나오지 않는다.
퍼뜩 드는 생각에 너봉을 바라보았다.
사춘기 소년처럼 가슴이 동당거렸다.
너봉이는 원우를 빤히 바라다 보았다.
뭔가 들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저기,"
너봉이의 말이 잘 들리지 않았다.
원우는 그냥 오물거리는 입을 바라만 보았다.
"저..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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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망상에서 시작된 이야기가 끝이 났네요! 어휴ㅠㅜ 어찌됐든 중간에 그만두지 않고 완결을 볼 수있었던 것은 독자분들 덕분이고요...! 미흡한 글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합니다(하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