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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현아, 나 결혼해."
"…응. 그렇구나."
축하해. 차마 입 밖으로 나오지 못한 말이 머릿속을 맴돈다. 너와 나의 8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이 순식간에 물거품이 되어버리는 순간이었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란 것쯤은 나도 잘 알고 있다. 남들은 다 결혼하고 제 짝을 찾아가는 시기에 혼자 남아 쓸쓸히 서 있다는 것, 남들은 자식자랑 할 시간에 나는 그저 동성인 애인과 다투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초라하고 부질없는 짓인 줄은 잘 안다. '우현아, 나 아기 키우고 싶어.' 이런 말들이 너의 입에서 종종 나온다는 것도, 너도 남들처럼 평범한 가정을 꾸리고 살아가고 싶어 한다는 것도, 평범한 연애를 하는 남들을 부러워한다는 것도, 나는 그 모든 것들을 너무나 잘 알아서 그저 너의 행복을 빌어주는 방법밖에는 없다. 너를 꼭 빼다 박은 귀여운 아기를 낳고, 그 아기가 너에게 '아빠.'라고 부르는 날이 오고, 세월이 지나 너의 머릿속에서 내가 다 잊혀 갈 즈음엔, 그때는 어쩌면 너의 얼굴을 웃음 지으며 마주 볼 수 있지 않을까. 손에서 팔랑거리는 얇은 청첩장을 꼭 쥐고 침대에 몸을 뉘었다. 아마 오늘은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할 것만 같다.
***
아침임을 알리는 알람이 귀 옆에서 시끄럽게 울렸다. 너의 결혼식에 갈까, 말까 밤새 고민하다 결국엔 침대 옆에 놓인 청첩장을 보고 너의 식에 맞춰 알람을 맞춰놓은 나였다. 그래도 너의 마지막 모습은 두 눈동자 안에 담아두어야 하지 않겠느냐, 는 내 생각이었다. 이불을 걷어내고 침대 모퉁이에 걸쳐 앉아서도 온통 너의 생각뿐이었다. 너는 지금쯤 잠에서 깼을까, 혹시 늦잠은 자지 않았을까, 아니면 벌써 준비를 마치고 너의 부인이 될 사람을 기다리고 있을까. 온통 너에 대한 생각들로만 머릿속을 꽉꽉 채우고도 남았다. 애써 너의 생각을 떨구어 내고, 자리에서 일어났지만, 여전히 머릿속은 너뿐이었다. 무슨 옷을 입고 갈까, 네가 준 옷을 입으면 네가 싫어할까. 온통 그 생각들만 하다가는 결국 고개를 떨구고 말았다. 활짝 연 옷장은 너와 나의 8년이 차마 사라지지 못하고 여전히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네가 준 티며, 우리의 커플티며, 벨트며. 온통 너로 가득한 옷장에 그대로 자리에 주저앉았다. 전에는 뭘 입을까 고민하던 옷장이 하루 만에 입을 것이 없는 옷장으로 변했다. 결국엔 네가 선물해준 와이셔츠를 입고 그 위로 검은 정장을 입어 와이셔츠를 꼭꼭 숨겼다. 그럼에도 네가 와이셔츠를 주며 하던 말이 머릿속에 선명히 떠올라 자꾸만 눈시울이 붉어졌다. 아마 너와의 추억을 하루에 하나씩 버린다고 해도 결국엔 다시 너의 생각으로 가득 차서 난 너를 평생 못 잊지 않을까, 난 평생 혼자서 너를 안고 살아가야 할까, 성규야.
평소보다 밥을 느리게 먹고, 택시를 두 번이나 놓치고, 결혼식장 주위를 한참 헤매었어도 식 시작까지는 아직도 30분이 넘게 남아있었다. 어딜 가야 할까 한참을 서 있다가 결국 발길이 향한 곳은 '신부 대기실'이었다. 자리에 앉아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여자는 무척이나 예뻤다. 나와 눈이 마주친 여자는 드레스를 입어 일어나기 힘들었음에도 자리에서 일어나 나에게 예의를 갖춰 인사했다. 정말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그야말로 너에게 딱 어울리는 여자였다. 괜히 씁쓸해지는 속에 침을 목 뒤로 넘겼다.
"안녕하세요. 성규 친구예요."
"아, 우현씨죠? 성규가 자주 이야기하더라고요."
"아……."
내 이야기를 자주 했다는 말에 기분이 좋으면서도 너무 편하게 '성규가'라고 말하는 모습에 내심 속이 섭섭했다. 그리고는 의자를 끌고 와 여자의 옆에 앉아서는 약 10분가량 이야기를 나누었다. 성규는 뭘 좋아한다느니, 평소 버릇은 이렇다느니, 성규가 안 그래 보여도 속은 여리다느니, 성규에 대한 것이라면 한 치도 빠짐없이 말해주었다. 이게 너에게 마지막으로 하는 배려랄까. 부디 네가 원하는 그 아름다운 가정을 이루었으면 하는 바람. 아니, 그냥 네가 행복했으면 하는 바람. 그게 내가 너에게 바라는 딱 한 가지다.
식 시작을 20분 남겨두고 신부 대기실을 나왔다. 막 나와서 로비 안을 서성이다가 다른 사람들에게 인사를 나누고 있는 너와 시선이 마주쳤다. 아니, 마주쳤다기보다는 네가 내 가슴팍 부근을 뚫어지라 쳐다봤다고 해야 하나. 너의 시선을 따라 움직이자 곧 내가 입고 있던 와이셔츠에 닿았다. 아, 그렇게 숨긴다고 했는데 아니구나. 너는 그렇게 다른 사람이 너를 부르는 소리조차도 듣지 못하고 계속 보더니만 결국 그 사람이 너의 어깨를 두어 번 두들기고 나서야 시선을 뗐다. 그제야 나도 발걸음을 뗄 수 있었다. 겨우 뗀 발로 도착한 곳은 결혼사진 앞이었다. 오늘과 같이 멋있는 정장을 차려입은 너의 모습에 자그마한 탄식이 터져 나왔다. 가슴이 내려앉을 뻔하던 것을 겨우 붙잡고 사진을 넘겼다. 그래, 솔직히 말하자면 너무 잘 어울렸고, 너무나 아름다웠다. 내가 그 작은 질투조차 못 하게 하려고 하는 듯 두 사람은 너무나 예뻤다. 사진을 보고 나니 조금 전까지만 해도 실감 나지 않던 너의 결혼이 성큼 앞으로 다가왔다. 나도 너의 결혼은 축하해주는 사람들 사이에서 또한 너의 결혼을 축하해주어야겠지. 두 사람의 어여쁜 모습이 계속되기를 빌어줘야겠지. 괜히 메이는 목에 헛기침을 두어 번 해댔다.
식이 시작되고 너의 신부를 향해 걸어가야 할 너인데 자꾸만 뒤를 돌아 나를 쳐다보는 모습에 결국 참지 못하고 식장을 빠져나왔다. 대충 아무 곳이나 앉아 자꾸만 철렁이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한 번 마주친 너의 눈빛이 자꾸만 떠올라서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마지막으로 행복한 너의 모습을 담고자 온 것인데, 행복하긴커녕 간절해 보이는 너의 눈빛에 터지려던 눈물을 참아냈다. 너는 어째서 그렇게 미련한지. 마른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그렇게 한참을 가지 못하고 앉아있다가 바지를 털고 일어나 가려고 하던 참이었다.
"남우현!"
뒤에서 나를 부르는 목소리에 냅다 뛰어 귀퉁이를 돌아 모습을 감췄다.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자, 휴대폰을 쥐고 있던 손에 진동이 울렸다. 굳이 확인해 보지 않아도 너라는 것쯤은 쉽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렇기에 휴대폰을 계속 잡은 채로 놓지를 않았다. 혹여나 액정에 뜨는 너의 이름을 보면 나도 모르게 전화를 받을까 더 세게 쥐었다. 한 번 진동이 끊기자, 얼마 후에 다시 진동이 울렸다. 다시 끊기고, 다시 울리고, 몇 번을 그렇게 했는지 모른다. 내 앞에는 오지 못하고 자꾸 전화만 하는 걸 보니 너도 차마 나를 마주 볼 자신은 없는 것이다. 너도 나처럼, 서로 보면 눈물이 터질까 봐. 여태껏 꾹 참아온 눈물이 한순간에 터져버릴까 봐. 끊임없이 울리는 진동에 한숨을 내쉬고는 받아 들었다.
"……."
-남우현, 남우현!
"……."
-듣고 있어?
휴대폰 너머로 너의 떨리는 한숨 소리가 들려온다. 울고 있을까, 너는. 달래줘야 하는데 무거운 발걸음은 차마 떨어질 생각을 못 한다.
-…남우현…
"……."
-…사랑해.
"……."
-정말…. 정말로, 정말.
"……."
-정말로 사랑해.
"축하해, 결혼."
같은 곳을 바라보면서도 같은 곳을 걸을 수는 없는 우리 둘이었다.
'v' |
이번 일주일이 너무 정신이 없어서 열여덟을 아직 다 쓰지 못 해서 대신 전에 써두었던 것을 올려요. 스폰서 메일링을 마쳤으니 모두 확인 부탁드려요 :) 그리고 열여덟도 메일링 할까요? 곧 끝날 것 같은데...☆★ 아무튼 모두들 사랑해요 ♥3♥ 내 뽀뽀 머겅. 두 번 머겅. 영원히 머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