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cm - 쓰담쓰담
{여보세요.}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에 움직이던 발걸음을 우뚝 멈추고 말았다.
그는 전화를 건 사람이 나라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핸드폰에 이름이 뜰테니까. 내가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있어도 그는 재촉하지 않았다.
그의 목소리가 고운 숨소리로 바뀔 때 즈음 나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내 옆을 쌩 하고 지나가는 차소리도 그에게 들릴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조용한 목소리로.
"나 지금 연습실 밖이에요."
{...}
"술 마시고 싶은데 같이 마실 사람이 없어요."
{무슨 일 있어요?}
"시간... 괜찮아요?"
무명 아이돌도 연애한다
06
w. 복숭아 향기
그와 만나기로 한 곳은 한적한 곳이었다.
지나가다가 이런 곳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면 그냥 못보고 지나가버릴 정도로 그런 작은 곳이기도 했다.
금요일 저녁임에도 불구하고 이정도로 사람이 없다는 것은... 정호석은 이런 가게를 어떻게 알았던 거지?
잠시 의문을 가질 때 즈음 그가 들어왔다.
그는 고개를 두리번거리다 나와 마주치자 천천히 내가 있는 자리로 다가왔다.
혹시나 누가 알아볼까봐 그를 배려하기 위해 가장 구석진 곳에 자리를 잡았던 나였다.
정호석은 입고 있던 코트를 벗으며 자신의 옆자리에 가지런히 올려놓았다. 그리고는 고개를 들어 나와 눈을 마주치며 살풋 웃어보였다.
"주문했어요?"
"기다렸는데..."
"원래 마시고 싶다고 한 사람이 주문하는 건데."
"그런게 어디있어요."
여기.
그는 장난스레 대꾸를 하며 서비스로 나온 마카로니 과자를 손가락을 만지작거렸다.
먹지는 않았다. 그냥 손장난을 하듯 계속 만지작거리기만 했다.
그는 능숙하게 우리 쪽으로 다가온 종업원을 불러 주문을 하기도 했다. 종업원이 그다지 놀라거나 그러지 않은 것을 보아 이 곳에 꽤나 자주 온 모양이었다.
그래서 알고 있었구나. 잠시나마 들었던 의구심이 좀 풀렸다.
무슨 말을 해야할까. 나는 테이블 아래로 숨긴 내 손가락을 만지작거리며 입술을 깨물었다.
그냥 혼자 마실 걸 그랬나. 바르고 나왔던 립밤이 거의 사라질 정도로 입술을 깨물어서일까. 그가 손을 내밀어 내 입술을 손가락으로 톡 건드렸다.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를 바라보았다. 역시나 정호석은 아무일 없다는 듯이 살풋 웃어보이고 있었다.
"볼 때마다 깨물고 있네요."
"..."
"지난번에는 손톱이더니."
"..."
"좋을 거 하나도 없는데. 나도 그거 고치는데 되게 오래 걸렸어요."
주문하신 음식들 나왔습니다.
내가 뭐라고 대꾸도 하기 전에 종업원이 와서 방금 전 그가 주문했던 술과 이런저런 안주거리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소주? 맥주?
그가 잔을 들어보이며 묻자 나는 머리를 쓸어넘기며 대답했다.
이왕 마시기로 한 거 마실 수 있을 때 까지 마셔야지. 숙소에만 두 다리로 걸어들어가면 나에게 뭐라 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섞죠."
내 대답에 그는 푸스스 웃으며 맥주잔에 소주를 따랐다.
이 역시 꽤나 능숙한 손놀림이었다. 주량이 센가?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그는 적당히 맥주를 따른 컵에 숟가락을 쾅하고 찔러넣으며 말했다.
"그 말 후회하지 마요."
-
여기가 어디지...
숙소 침대에서 나는 특유의 이불냄새가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미간을 찌푸리며 손을 뻗어 내가 평소 안고 자는 인형을 찾으려 팔을 휘적거렸다.
어라. 인형이 잡히지 않았다. 우리 숙소 침대가 이렇게 크지는 않은데... 뭐지... 나는 그제야 부스스 눈을 떴다.
미쳤어.
눈 앞에 보이는 것은 내 침대 위에 가지런히 올려놓았던 베개들이 아니었다.
침대 머리맡에 가지런히 정리되어있는 그것들은 바로 다름아닌 방탄소년단 멤버. 정호석의 사진이 곱게 끼워져있는 액자였다.
...
미쳤나보다. 그니까 지금 여기는 방탄소년단 숙소라는 말이었다.
고개를 두리번거려도 내가 지금 덮고 있는 이불을 봐도 이 곳은 절대 우리 숙소가 아니었다.
그나마 다행인지 불행인지 내가 입고 있는 옷은 어제 연습실에서 나왔을 때 입고 있던 옷 그대로였다.
또 방 안에는 나 혼자 있지, 다른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다. 지금 몰래 나가야 하는 건가? 나는 조심스레 침대 아래로 내려오며 옆에 널부러져있는 겉옷을 집어들었다.
그 때 문이 열리고 누군가 들어왔다.
아니, 고개만 빼꼼 내밀어 나를 바라보았다. 정호석을 만난 뒤로 유일하게 말을 섞어보지 못했던 방탄소년단 멤버. 김석진이었다.
"일어났어요?"
"..."
"어제 진짜 많이 취하신 거 같던데... 홉이가 전화했어요."
"아, 저..."
"혹시 막 사진 찍히거나 그런 거는 걱정 안해도 괜찮아요."
"네?"
"내가 몰래 나갔거든요. 매니저 형 차 끌고. 이거 걸리면 좀 작살나기는 하는데 괜찮아요. 매니저 형들 지금 다 회사에 있으니까."
"저기..."
"오더라도 이이이따가 저녁에 오던지 할 거에요. 요즘 형들 되게 바쁘거든요. 나와서 속이라도 풀어요. 콩나물국 끓였어요."
저기... 내가 하는 말에 대답 좀 해주지...
자기 할 말만 다다다 내뱉은 김석진은 다시 문을 콩 닫고 고개만 쏙 빠져나가버렸다.
나가라니. 지금 이 방 밖으로 나가면 방탄소년단 멤버들이 다 있고 그런 거는 아니겠지? 나는 침을 꿀꺽 삼키며 대충 내가 사용한 이부자리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최대한... 늦게 나가고 싶었다.
"빨리 안나오면 밥 없어요."
안먹어도 괜찮은데... 라고 작게 웅얼거렸지만 뒤이어 또 다시 김석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먹으면 이름씨 취해있을 때 찍은 사진 인터넷에 뿌려버릴 거에요."
나가야겠다...
-
예상했던 것과 다르게 거실에서 다른 멤버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내가 고개를 두리번거리자 김석진은 콩나물 국이 담긴 그릇을 내 앞에 내려놓으며 입을 열었다.
역시나 그도 나를 잘 알고 있다는 듯이 행동했다. 이것도 민윤기가 말해준 거 때문인가?
"호석이 연습실에 있어요."
"아니... 저 그 분 찾은 거 아닌데..."
"와. 지금 홉이 없다고 말 바뀐 거에요? 아니면 술 깨서 이러는 건가..."
"네?"
"어제 기억 안나요? 막 홉이 보고 호석아. 호석아. 정호석. 이러면서 반말하고 그러시던데."
"..."
성이름. 너가 진짜 미치기는 미쳤나보다.
나는 머쩍은 웃음을 지어보이며 숟가락을 집어들었다. 그래. 사실 하나도 기억나지 않았다.
내가 어제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부분은 소맥을 한 6잔 쯤 마셨을 때 즈음이니까... 그 뒤로는 전혀 네버 기억나지 않았다.
이렇게까지 술을 마셨던 적도 없는데... 고로 나는 내 주량이 무엇인지도 알지 못했다.
성인이 된 이후는 데뷔한 이후나 마찬가지니까 그만큼 술을 마실 기회도 많지 않았던 나였다.
"저..."
"네?"
"저 어제 실수하거나 그런 거..."
"실수는 딱히 없었고요. 음... 저 보면서 진짜 크게 김석진이다! 하고 소리질러서 입 막느라 좀 고생하기는 했어요."
실수가 없었다며 웃어보이는 그의 얼굴은 절대로 평온해보이지 않았다. 망했어... 나는 울상을 지으며 콩나물 국을 조금씩 떠먹었다.
젠장스럽게도 콩나물 국은 맛있었다.
"근데 우리 홉이랑은 어떻게 아는 사이에요?"
"네?"
"홉이 은근 낯가림 심한데..."
낯가림이 심하다니... 정호석이?
"그... 병원에서 만나가지고..."
"아. 맞아. 몸은 괜찮아요? 기사랑 다 봤었는데 진짜 심각해보이던데..."
"괜찮아요."
"그래서 어떻게 알게 된 거에요? 병원에서 만나가지고?"
김석진은 아예 내 쪽으로 고개를 들이밀며 물어왔다.
두 눈은 반짝반짝 거렸고 두 손은 곱게 그러쥔 채로 나를 빤히 바라보며.
"그 다음에 저희 이번 곡 녹음하는 걸 여기... 녹음실 빌려서 했는데..."
"응응. 했는데?"
"그 병원에서 번호 주고 받아가지고 번호 알고 있는데 녹음하다가 호... 석씨에게 전화가 와서."
"호석씨라고 하지 말고 호석아. 해요. 어차피 동갑인데."
"저... 그..."
"농담. 계속 말해요. 전화 와서?"
"그냥 놀러가면 안되냐고 물어보셔서... 상관없다고 하니까 오시고... 녹음 끝나고 같이 저녁 먹고..."
할 말이 그다지 없는데도 김석진은 계속해서 나에게 하나하나 꼬치꼬치 캐물어왔다.
그러니까 지금 이 느낌... 어디서 많이 봤던 거 같은 느낌인데...
"그럼 연습실 나와서 바로 우리 홉이한테 전화한 거야? 와. 몰랐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이름이 적극적이다."
"네, 네?"
"멋있어. 멋있어. 신여성은 그래야지."
"저기..."
"어제 술 마시고 나 보자마자 진짜 김석진이다! 이러면서 만세 불러서 내가 얼마나 놀랐는지 모르지? 홉이도 홉이야. 너 말리지도 않고 그냥 지 혼자 엄청 웃어재끼기만 하더라."
"..."
"존나 여자랑 술을 마시면 좀 매너있게 어? 적당히 멕이고 그래야지. 남자새끼가 돼가지고 그것도 못하고. 덕분에 내가 어? 새벽에 운전까지 하는 생 지랄을 한 거 아니야."
"..."
"그래도 너한테 뭐라고 그러는 건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 국 식겠다. 얼른 먹어."
아줌마... 같았다.
것도 수다 떠는 거 매우 많이 좋아하는, 그리고 자기 말 들어줄 사람이 생겨서 매우 반가워하면서 마구 수다를 떠는 그런 아줌마.
-
콩나물 국으로 속을 달래기가 무섭게 매니저 오빠에게서 호출이 떨어졌다.
연락도 없이 밖으로 나갔다가 하루동안 외박을 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김석진은 팬들에게 걸리지 않는 곳이라며 아파트 뒷문까지 나를 데려다주었다.
물론 그 때까지도 그의 입은 쉴새 없이 움직였다.
존나 시끄럽다는 민윤기의 말이 다시 한 번 떠올랐다.
"정호석 이 새끼는 지가 데리고 왔으면서 배웅 한 번 안하나..."
"..."
"물론 너한테 하는 말 아니야. 이따 홉이 오면 내가 따로 할 말이지."
"아... 네..."
"방송국에서 보겠다. 그 때 전화번호 줘. 안 주면 그냥 민윤기한테 꼬질러서 달라고 그럴 거야. 그 전에 네 사진이 인터넷에 먼저 올라가겠지만."
"어..."
"걱정하지마. 그냥 홉이 통해서 번호 주면 되는 거니까. 설마 내가 진짜 네 사진 인터넷에 뿌리고 그러겠니."
그럴 거 같아요.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말을 애써 삼키며 나는 김석진에게 꾸벅 인사를 했다.
숙소로 돌아가기 위해 택시에 올라탔을 때, 카톡 알람 소리가 들려왔다. 정호석이었다.
[정호석]
- 들어갔어요?
- 배웅도 못해주고ㅠㅠ
- 그냥 연습 좀 늦게 갈 걸
아니에요 -
어제 진짜 죄송했어요ㅠㅠ -
저 실수한 거 없었죠? -
- 그럼요!
- 별 일 없었어요
- 걱정마세요
- 이름아
???
이름아? 언제부터 내 이름 이렇게 불렀다고?
- 오늘은 반말 안해?
- ㅋㅋㅋㅋㅋㅋㅋ
- 어제 계속 호석아 호석아 이랬는데
어... -
실수 했나보네요 -
- 왜
- 그냥 말놓자
- 동갑이잖아
-그치 이름아?
나 취해있는 동안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숙취때문에도 없었던 두통이 지끈거리며 찾아오는 기분이었다. 아이고 두야...
내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기억을 해내던지 말던지 해야지. 이렇게 생각을 하는 동안에도 정호석에게서는 계속해서 카톡이 날아오고 있었다.
이름아. 이름아. 호석이라고 해봐. 응? 응?
뭐... 나름 귀엽지만 꽤나 민망한 그런 카톡들.
+) 그녀가 모르는 그와 그녀의 이야기
정호석
응, 네? 나 말하는 거에요?
그래. 정호석 너 말이야.
이제 말 놓는 거야?
뭐 어때. 어차피 동갑인데. 지금까지 내가 얼마나 귀찮았는지 알아?
그래. 나도 이제 이름 부를게. 이름아. 됐지?
응. 됐어.
근데 왜.
뭐가.
왜 불렀어.
너 진짜 짜증나.
내가 왜.
다 알고 있잖아. 내가 뭘 하는지... 내가 뭘 했는지.
그게 뭐가.
민윤기도 별 말 안해주고 너도 이렇게 말 안하고.
싫어?
싫은 건 아닌데 이상해.
뭐가 이상한데?
신경쓰여.
그럼 싫은 거야?
싫은 건 아니라니까.
그게 뭐야.
내가 비밀 하나 알려줄까?
뭔데.
나 입 진짜 무거워. 그니까 너도 무거워야 해.
그래?
응. 내가 지금 민윤기랑 김남준이랑 사귀는 것도 아무한테도 말 안했잖아. 아. 지금 말했다. 그래도 괜찮아. 너는 알고 있으니까.
알았어. 말해봐. 나도 말 안할게.
나 노래하는 거 엄청 좋아한다.
알아.
어떻게 알아? 나 이거 아무한테도 말 안했는데.
너가 말했잖아. 난 너에 대해 다 아는 거 같다고.
신기하다... 이거 민윤기도 모르는 건데.
윤기 형이 모르는 거 내가 알면 안되는 거야?
아니. 민윤기는 만날 준아 준아 하느라 내 말 듣지도 않아.
근데 이름아.
응?
너 진짜 입 무거워?
응. 아까 말했잖아.
그럼 나도 비밀 하나만 말한다.
응. 말해봐. 뭐야?
그니까... 내 비밀은...
(풀썩)
내가 너 처음 본게 병원에서가 아니라는 거야. 이 바보야.
-
[암호닉]
짐니야 짐잼쿠 망개야 낑깡 망개지미니 침맘 93 수야 청춘 호석이향기 뜌 슈민트 치즈 이구역호석맘 핑쿠몬 새벽 마녀님 요거프레소
지팔 주황색 구오즈들 밍꾸이 마늘 슈민트 태꾹망개 boice1004 삐용 카라멜마끼야또 모찜모찜해 솜블 흑슙흑슙 전국정국
세상에 샐리 쟈몽 찐슙홉몬침태꾹 0418 망개 동동
드디어 석진이가 나왔습니다.
이제는 다른 멤버들도 골고루 조금씩 나오지 않을까 싶네요.
하지만 호석이가 가장 많이 나올 거에요. 우리의 남주잖아요.ㅎㅎ
브금도 일부러 똥꼬발랄한 걸로 골랐어요. 간만에 내용이 우울한 내용 없고 밝은 내용만 가득해서요.
암호닉 신청은 공지사항 말고 본글 댓글에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리고 가장 최근에 올린 글에 댓글로 달아주셨으면 해요ㅠㅠ 점점 암호닉 신청해주시는 분들이 많아져서 저는 매우 기분이 좋습니다. :)
부족한 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하고 댓글 달아주시거나 암호닉 신청해주시는 분들 항상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