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내린다. 네 발걸음이 향했을 곳이 너무도 빤해서, 우산을 들었다. 발걸음이 닿는 곳마다 물이 고여 찰박이고, 세상 어두운 것이 비 때문인지, 시간 때문인지도 모를 참이다. 달마저 밝지 못해 멍한 밤, 익숙한 뒷모습이 보인다. 축축히 젖는 것도 모르는 채 작은 머리통이 향한 하늘이 흔들대 네 머리 위로 무너질 것만 같아 겁이 난다. 하얀 운동화를 신고 나온 것이 무색하게, 불빛 잃은 길 위를 빠르게 걸었다. 하늘이 무너지기 전에 천장을 만들어 주고 싶었다. 꼭 너를 닮아 더 서러운 노란 우산이 네 위로 그림자를 드리운다. 조그만 시선이 향한 곳이 저 멀리 창문임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시선을 떼지 못할 것이 분명해, 작게 이름을 되뇌었다. - ... 부승관. 두어 번 눈을 깜박이더니 천천히 고갤 돌린다. 네 얼굴 위로 어린 물기가 눈물이 아니었으면 하는 바람. 눈꼬리가 슬픔 담고 휘어진다. 우산을 꼭 잡은 손이 아닌 다른 손으로 떨리는 어깨를 끌어안았다. 대신하고 싶었다. 너를 대신하고 싶었는지, 그를 대신하고 싶었는지 도통 알 길이 없다. - 한솔아. 형 언제 와? 네 무너진 천장만은 지켜 주고 싶었다. 내 천장이, 내 세상이, 내 온 우주가 무너져 내리더라도 지켜 주고 싶었다. 승관아, 형은 안 와. 네 그 사람은, 그 사랑은 죽었어. 아프게 수백 번 맴도는 말을 삼키고 철저히 제 마음을 부인하는 마디를 내어 놓는다. 울망이는 눈이 향하는 창문, 혹여 네 위로 내가 무너져 내릴까 무섭다. 두렵다. - 다섯 밤만 자면 올 거야. 형은... 너한테 올 거야. 첫사랑이 무너진 내 첫사랑을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어 사랑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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