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CK UP
W.파괴본능
잠에서 깬 여주가 손을 옆으로 뻗어 온기를 확인했다. 차갑다. 여주는 한숨을 한번 쉬며 침대에서 일어나 바닥에 떨어져있는 옷가지들을 주워 입었다. 부엌, 거실 너나할것 없이 사람이 사는 집인가 싶을 정도로 차갑게,외롭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여주는 한발짝을 내딛을때마다 발끝을 타고 올라오는 서늘한 기운을 즐기며 부엌으로 가 냉장고를 열어 대충 보이는 반찬을 밥위에 얹어 지하실로 내려갔다.
승철은 여주와 밤을 보낸다 해도 항상 지하실로 내려와 잠을 청했다. 그래서 그날도 다시 지하실로 돌아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날의 기억 또한 승철은 억지로 지웠다. 그날의 기억은 승철을 괴롭게했고, 다시 떠올릴 필요 조차 없었다.
승철은 어제 자신을 괴롭혔던 꿈때문인지 오랜만의 여주와 보낸 밤때문인지 눈을 뜨는것이 힘들었다. 그저 끙끙 거리며 침대 위에서 뒤척일뿐. 승철은 여주가 내려오는 발소리를 듣고나서야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끼익- 언제나 문을 열때면 소름끼치는 소리가 조용한 지하실을 울린다. 여주가 승철에게 그릇을 건넸다. 승철은 입맛이 없었고, 그래서 여주가 건넨 국그릇을 물끄러미 쳐다 보기만했다.
"먹어, 나 오늘 집 안들어올거야."
승철이 여주를 올려다본다. 여주는 승철을 흘깃 내려 보며말한다.
"출장이야."
승철은 여주가 밥을 챙겨주지 않으면 밥을 먹지 않았다. 여주가 저녁 늦게 들어오는 날이면 승철은 여주가 챙겨준 아침만 먹고 다음날을 기다려야했다. 어제도 늦게온 여주 때문에 승철은 한끼만 먹은 상태로, 지금 이 밥을 먹지 않으면 이틀을 굶어야 하는것을 승철은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승철에게 밥이란 그냥 허기를 달래는 용도이다. 따라서 무슨 반찬이든, 그런것 따윈 신경쓰지 않았다. 승철은 억지로 밥을 꾸역꾸역 위로 밀어넣었다. 식도에서 거부를 하며 다시 올려 보내면 억지로 다시 삼키면 그만이였다.
여주가 나갈 채비를 했다. 나가기전 지하실로 내려가는 문은 바람 한점 불지 않는 실내에서 삐그덕 거리며 여주를 배웅했다. 마치 승철이 손을 흔들고 있는 것만 같았다.
여주는 집앞에서 자신 기다리고있는 태주의 차를 탔다. 차태주, 그는 여주와 같은 화사를 다니는 젊은 팀장이였다. 그는 여주에게 다른 마음을 품고있는듯 했다. 여주가 실수를 하면 이불마냥 그녀를 덮었고 품으려 했으며 그녀와 밥을 먹으려고 했고 주말이면 그녀와의 약속을 만들려고 애썼다. 여주는 그의 마음을 너무 잘 알아서, 그는 멍청한 바보라서 그의 마음 따윈 쉽게 이용 할 수 있었다. 그는 나름 여주에게 좋은 방패였고 창이였다. 그래서 여주는 그 이불을 걷어낼 생각이 없었다.
애가 타는건 승철이였다. 태주가 여주에게 본격적으로 어필을 시도한 후로 여주는 집에 들어오는 시간이 늦어지고 출장도 잦아졌다. 승철은 처음에 이유를 알지 못했다. 어느날부터 혼자인 시간이 많아진 승철은 그저 여주의 충실한 개 마냥 주인을 기다리는것 말곤 할수있는게 없다. 그저 배를 까고 기다리다 한 번 이라도 쓰다듬어주면 헥헥 꼬리를 흔드는것 뿐.
승철아, 아직 엄마 보고싶어?
또 꿈을 꾸었다. 생각하기 싫은 징글징글한 꿈. 승철은 기억과 멀어지려 걷고 걸었으나 뫼비우스의 띠를 걷는것 마냥 다시 그 기억 한가운데로 도착한다. 그러면 승철은 다시 걷는다.
승철이 누워있던 몸을 일으켜 침대에 앉아 무릎에 얼굴을 묻었다. 고개를 살짝 들어 올려 앞을 보면 캄캄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햇빛이 들어오지 않아 어두운 지하실은 낮인지 밤인지 구분을 할 수 없다. 전구가 있어 불을 켤 수는 있지만 밝은것이 싫어 불을 따로 켜진 않았다. 승철은 여주를 기다리는 동안 보통 잠을 자며 시간을 죽였지만 오늘의 악몽덕에 잠이 오지 않을것이다. 가만히 있던 승철이 검지 손가락을 들어 까끌한 벽에 적는다.
'김여주'
글이 남아있지는 않지만, 그러나 알수있었다. 그 모양새가 매우 삐뚤삐뚤하고 못생긴것을.
승철은 글을 쓰지 못한다. 그저 삐뚤삐뚤한 그림을 그린것이다. 손가락이 쓰라릴 정도로 몇 십번,몇 백번을 반복하며 쓴 그림은 보이지 않는다.
"최...승철"
허공을 맴도는 손가락. 승철은 정작 자기 이름은 그리지못한다.
*
밤이 되서야 승철은 지하실에서 올라왔다. 여주의 집 거실뿐아니라 부엌, 방까지 커다란 창문이 있어 낮에는 올라오고 싶지 않은 곳이였다. 승철이 걸을때마다 삐걱하고 바닥소리가 났다. 승철은 여주의 방에 들어가 침대 위로 앉자 침대가 푹 꺼졌다. 스멀스멀 올라오는 여주의 내음에 승철은 누위 이불을 감싸 안았다. 눈을 감고 여주를 찾으려 애썼다. 승철에게 여주는 잡고싶지만 잡으면 안되는, 그런 존재였다. 허공에 손을 뻗어 주먹을 쥐었다. 분명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는데 손가락 사이로 뭔가 빠져나가는 기분에 가슴이 허 했다. 결국 승철이 침대에서 일어나려는데
"뭐해."
그토록 찾던 여주였다. 여주가 벽에 몸을기대 승철을 바라보고 있었다.
"오늘 안 들어온다고..."
여주가 형광등을 켜는 바람에 어둠에 익숙해있던 승철이 다시 눈을 감았다.
"그냥."
짧게 말하는 여주. 승철이 여주를 안으려고 팔을 뻗자 여주가 그 손을 쳐낸다.
"피곤해, 내려가."
승철이 다시 한번 여주의 손을 찾았다. 승철의 행동에 여주는 한숨을 한번 쉬었다.
"누나 그거 알아요?"
"두번 말 안해, 꺼져."
승철이 여주와 눈을 맞춘다. 여주는 승철의 눈을 보다가 자신의 눈을 감았다.
"누나는 너무 많이 변했어요."
"기억은 나고 말 하는거야?"
기억나지 않는다. 그냥 어렴풋하게 자기를 향해 웃어주던 여주의 얼굴이 어른거렸고 하루종일 함께있었는지 어릴때의 자신은 외롭지 않았던것같았다. 그 흐린 안개같은, 손을 몇번 휘저으면 사라질 수 있는 추억으로 승철은 여주에게 이야기하는것이였다.
"다시한번 말 하지만,"
"..."
"모든게 기억 났을때 나를 떠나도 좋아."
승철은 고개를 숙었다. 뻐끔거리는 입이 마치 붕어 같았다. 하지만, 붕어는 말을 하지 못한다. 아니, 어쩌면 말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말은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는다. 그래서 붕어가 작은 어항속 벽에 머리를 박는것일지도 모른다. 너무 답답하니까, 내말좀 들어줘, 하고. 승철도 마찬가지다.
누나, 알잖아요.
저는 누나를 떠날수없어요
파괴본능 |
첫화가 반응이 좋아서 놀랐어요! 빨리 올릴려고 했는데 왠지 모르게 겁이 나서 계속 수정하고 친구에게 검사 받고....ㅋㅋㅋㅋㅋ 투표도 해야하는데 글쓸 시간은 없고ㅜㅜㅜㅜ이런 저런 이유때문에(핑계)늦었습니다ㅜㅜ그래도 많이 사랑해주셔요ㅠㅜㅠㅜ 암호닉 받습니다!그냥 댓글에 [ ] 라고 써주세용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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