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 둘 셋 위아원, 안녕하세요 엑소입니다." 엑소? 익숙한 이름과 목소리에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어 소리가 나는 쪽을 쳐다봤어. 그 많은 얼굴들 속에 익숙한 얼굴이 하나 보였어. 진지한 표정으로 스텝들에게 인사하는 변백현을 보고 내 심장은 쿵쿵 거리기 시작했어. 내 본분도 망각한 채 입 벌리고 쳐다보니까 옆에서 선배님이 살포시 내 입을 닫아주셨어. "너 연예인 처음 보는것도 아니면서 왜그래, 팬이야?" "아뇨! 팬은 무슨! 하하, 선배님 농담도 참." 선배님 말에 내가 너무 크게 반응을 했는지 피디님이 나를 쳐다보시더라. 황급히 눈을 대본으로 내리깔고 선배님께 되도 않는 질문을 했어. 대본이 구겨질 정도로 손에 꼭 쥐고 말이야. "선배님, 그래서 여기 어떻, 어떻게 된다고 하셨죠? 수정이 필요하겠죠? 예 그런것 같습니다. 저는 그럼 수정하러 가겠습니다." 나는 빠르게 뛰쳐 나갈 준비를 했고 그런 나를 선배님은 이상하게 쳐다보면서 얼른 갔다 오라고 했어. 덕분에 그 자리를 뜰 수 있게 됐어. 빠르게 사무실로 들어가니까 그제서야 숨이 트이더라. 내가 너무 꼭 쥐어서 구겨진 대본을 살살 피면서 절규를 했지 "미쳤어, 미쳤어.. 어쩌자고..."
슈퍼스타 엑소 백현 × 막내작가 너징01
아까부터 세차게 울리는 휴대폰을 애써 무시하고 책상에 널부러지듯 엎드렸어. 보나마나 변백현이겠지. 나랑 변백현은 이제 1년차가 다 되어가는 커플이야. 근데 아깐 왜 그렇게 놀랐냐고? 엑소가 우리 프로 고정이 된다잖아! 나는 엑소가 고정인것도 방금 알았단 말이야. 오늘 회의 시간에 고정 게스트가 올 거라고 했었어. 그 소식을 듣고 내가 챙겨야 할 분량이 더 많아지겠구나 하는 생각 뿐이였어. 마침 게스트가 왔대. 그래서 모든 스텝들이 촬영장으로 갔지. 아니 근데, 왜 저기에 엑소가 있냐고. 모든 사람이 알다시피 변백현은 최고로 잘 나가는 아이돌 스타 엑소였고 나는 최근에 들었던 백현이와의 거리감을 느끼면서 이별을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었어. 진부한 이유겠지만 내가 백현이한테 피해가 가진 않을까, 백현이는 나보다 예쁜 여자들을 더 많이 볼 텐데 내가 예뻐 보이긴 할까 이런 생각들 말이야. 그래서 요즘 연락도 잘 안 하고-평소에도 바빠서 연락을 잘 하지 못해 백현이는 못 느꼈을 수도 있지만- 나름 생각 정리 중이였어. 아마 백현이도 느꼈을거야. 느꼈을껄..... 느꼈을...... 사실 나 혼자서만 피하는거였어. 백현이는 여전히 애정 담긴 메시지를 보내왔고 그 바쁜 시간 쪼개서 내게 연락을 해 왔었으니까. 그런데 자꾸만 생각을 하면 할 수록 꼬이는거야. 내가 백현이 없이 잘 살 수 있을까, 내가 괜히 이런 생각을 하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 또 한 쪽에선 그래도 걸리면 백현이 이미지에 타격이 엄청 날 텐데 괜찮을까, 나도 평범하게 다른 연인들처럼 데이트도 하고 싶다. 이런 생각이 들었어. 좀 힘든 하루를 보내고 있었는데 이런 와중에 백현이가 우리 프로 고정이 된다는게 좋은건지 나쁜건지 잘 모르겠어. "여기서 뭐하냐." 누가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어. 재빠르게 몸을 일으키는데 그 목소리가 더 빨랐어. 어젯밤에도 전화기 넘어로 들었던 목소리가 나를 쿡쿡 찌르고 있었어. "어..., 안녕." 정말 어이 없고 어색하게 인사를 했어. 아씨, 망했다. 이렇게 어색하게 인사하려고 한 게 아니였는데. 백현이의 표정을 보려 고개를 들어보니 이상하게 웃고 있어. "너 우리 팬 아니였어? 애들이 듣고 되게 실망하던데." 아까 크게 소리 냈던게 엑소에게도 들렸나봐. 요즘 한강물 따뜻하니.. 내가 냉탕엔 잘 못 들어가는데.. 아까 그 상황이 생각 나 얼굴이 화끈거렸어.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하하, 아깐 너무 당황스러워서.. 백현씨 뭐 필요한 거 있어요? 여긴 왜 왔어요?" "필요한거 너요. 그렇게 귀여운 행동 하고선 도망가기 있냐." 문이 활짝 열려 있었고 누가 우리 얘기를 들을까봐 나도 모르게 존댓말이 나왔어. 그런 나를 보고 변백현이 씩 웃더니 문을 쾅 닫고 내 옆에 앉는거 있지. 허, 귀여운 행동은 무슨. 쪽팔려 죽을것 같구만. "야 말조심해라 너. 여기 방송국이다. 귀엽긴 뭐가 귀여워! 창피하니까 얘기 하지 마." "싫은데? 아뇨! 팬은 무슨~ 그냥 팬이라고 하지 그랬어. 그럼 내가 싸인이라도 줄 수 있는데." "따라하지 마라. 싸인은 무슨. 싸인 하고 싶으면 카드결제하고 거기다가 싸인 해. 근데 너 우리 프로 고정이야? 진짜?" 변백현이 들고 온 아메리카노를 한 입 쭉 마시더니 빨대를 내 입에 물려주곤 말했어. "어. 내가 너 프로 꼭 해야한다고 우겨서 됐다. 어때, 오빠 좀 멋있냐. 너 어제도 밤 샜지. 대본 쓴다고. 내가 일찍 자라고 했어, 안 했어. 작가님한테 잘 보이려는 뇌물이니까 이거 먹고 졸지 마." 백현이가 물려 준 아메리카노를 한 입 쭉 마셨어. 진짜 말 하는거 하난 최고다 변백현. 아메리카노인데 시럽을 얼마나 탄 건지 달달함이 입에서 맴도는 기분이 좋아 내 얼굴에도 웃음이 번졌어. 아메리카노에 시럽 한 방울도 안 넣는 애가 나 준다고 시럽 왕창 넣은거 보니까 귀엽기도 하고. "너랑 전화 끊고 몇 분 더 쓰다가 그냥 잤어. 그리고 저는 청렴한 작가라 뇌물 같은건 안 받는데요. 원래 커피 달게 안 드시면서 왜 이건 달아요, 엑소 백현씨?" "어후 야 그거 하지마. 진짜 안 어울려. 아 제가 거기에 제 마음 조금 넣는다는게 너무 많이 넣어서 그런가 봐요. 그래서 좀 달달합니까, 작가님?" "으, 변백현 느끼해. 완전 달아. 완전 내 스타일! 아 근데 너 어떻게 빠져 나왔어?" "화장실 간다하고 왔지. 나 이러다가 감독님한테 찍히는거 아니야? 혼자만 빠졌다고." "화장실이 뭐냐, 화장실이. 얼른 가. 진짜 찍히기 전에. 우리 감독님 지각 진짜 싫어하셔. 나 대본 고쳐야 해." "우리 감독님? 우-리 감독님? 너 지금 우리 감독님이라고 한 거야? 그럼 난! 난 뭐야. 난 엑소 백현씨고 감독님은 우리 감독님이야?" 꼬투리 잡는 변백현이 귀엽기도 하고 어이도 없어서 피식 웃음이 나왔어. 그래, 내가 백현이 없이 어떻게 살아. 나는 이미 결과가 나와있는 문제로 전전긍긍 했을지도 몰라. 가정의 상황이 현실이 되면 어쩔까 하는 우려 때문에 불안해하고 무서웠었던거 같아. 몇 날 며칠을 고민했던 문제가 어느날 갑자기 허무없이 결론이 내려 졌을 때, 내가 두려워 했던 결과가 아니라 다행이란 생각과 그동안의 내 행동 때문에 백현이에게 미안해 졌어. 항상 힘든건 같이 하자고 말 했던 나인데 정작 나는 혼자 끙끙 앓고 있었던거니까. 만약, 정말 그럴일은 없겠지만 잘못된 선택으로 백현이와 헤어지게 됐을 땐. 어우, 생각만 해도 싫다. 헤어지기엔 내 생각만 해 주는 변백현이 너무 좋으니까. 그동안 백현이 속 썩인-백현이는 모를 수도 있지만-게 미안해 주위를 휙휙 둘러보고 백현이 볼에 빠르게 입술을 갖다 댔가가 뗐어. 그리곤 얼굴을 푹 숙이곤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대본을 봤어. 옆에서 강한 시선이 느껴지지만 애써 모른척 하고 대본만 읽고 있었어. "뭐야 우리 감독님이라고 한거 봐달라고 이런거야? 근데 방금 방송국이라고 존칭까지 쓴 사람이 누구더라. 언제 이렇게 대담해 졌어. 귀여워서 봐준다." 백현이 말에 아무 말도 못하고 고개를 더 푹 숙였어. 목이 좀 아파오지만 그래도 고개를 들 순 없었어. 옆에서 변백현이 끈덕지게 쳐다보고 있었거든. "그러다가 머리로 책상 뚫겠다. 들어오지도 않는 대본 보지 말고 나 좀 봐봐. 나 이제 진짜 가야 돼." 백현이 말에 조심스레 고개를 드니까 그 동시에 입술에 뭔가 따뜻한게 닿고 떨어졌어. 당황해서 눈만 크게 뜨고 있었더니 나 보고 픽 웃곤 문을 열고 나갔어. "기습을 하려면 이정돈 돼야지. 이따 촬영장에서 봐요. 예쁜 작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