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2. 만남
윤기는 늘 그 길을 지나칠 때마다 다소 이질적으로 나 있는 골목에 호기심을 가졌었다.
8차선 대로변 옆에는 사람이 다닐 수 있도록 보도블럭이 설치된 인도가 있었고, 그 인도 옆에는 상점과 음식점이 빽빽이 들어서 있었다.
그런데 전혀 특별한 것 없어보이는 한 상점과 상점 사이, 사람 한 명이 겨우 들어갈 법한 골목이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전혀 골목이 있을 만한 곳이 아니었다.
항상 바빠서 그 길에 이질감을 느끼고도 그냥 지나쳐야 했던 윤기는, 오랜만에 일이 없어 숙소에서 혼자 쉬다 그 골목을 떠올리며 옷을 입고 도구를 챙겼다.
차를 타기는 약간 애매한 거리였다. 걸어 가기로 결정한 윤기는 20분 쯤 이어폰을 꽂고 걷다 드디어 도착한 듯 한 곳에 멈춰섰다.
"아무리 봐도 이상하단 말이지..."
윤기는 바쁜 걸음으로 지나치며 골목에는 관심조차 갖지 않는 사람들 틈에서 우뚝 서서는 골목을 주시했다.
상점과 상점 사이, 지나치게 좁은 골목. 어쩌면 아무 것도 없을 지도 모르지만, 본능이 말해주고 있었다.
들어가.
윤기는 주머니에 든 도구를 만지작거리며 골목으로 들어섰다.
골목은 길게 이어졌다.
분명 상점의 벽이 만든 골목인데, 그렇다면 길어봤잔데.
이 정도 걸었으면 끝이 나야 하는 것 아닌가 싶을 때까지 윤기는 걷고 또 걸었다.
그러면서도 긴장을 늦추지 않으려는 듯 다소 느린 걸음이었다.
"아, 걍 집에 있을 걸...."
지루함과 함께 중얼거리던 윤기는 눈앞에 흐릿하게 보이던 무언가가 점점 크게 들어오자 눈을 깜박였다.
모던하고 깔끔하게 인테리어된 작은... 카페?
"뭐야... 이런 데 왜 카페가....."
윤기는 빠르게 카페를 스캔했다.
저같은 사람이 아니고서는 아무도 찾을 수 없을 것 같은 이런 곳에 카페가 있다는 사실은 충분히 수상했다.
전체적으로 하얀 벽에 까만 색으로 꾸며진 외관이었다.
창문은 새까맸는데, 자세히 보니 자동차처럼 썬팅이 되어 있었다.
보통 카페는 창을 훤하게 뚫어놓지 않나? 밖에서는 절대 내부를 볼 수 없는 구조라.....
윤기는 주머니에 손을 넣어 위험한 도구를 익숙한 느낌으로 쥐고는 천천히 다가갔다.
작고 까만 간판에 흰 글씨로 가게 이름인 듯한 글자가 적혀 있었다.
'Rion CnalB'
"뭐 어떻게 읽는 거야... 리온... 씨날비? 존나 후져."
카페 이름치곤 특이했다. 특히 'Rion CnalB'라는 난데없는 스펠링이.
윤기는 카페 이름이 적힌 까만 간판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그렇게 몇 분간 미동 없이 간판만 바라보던 윤기가 마침내 픽 웃었다.
"그런 건가."
윤기는 고개를 설레설레 젓고는 망설임 없이 카페문을 열었다.
딸랑- 하고 종소리가 울렸다.
"어... 손님이네. 어서 오세요."
알바생?
"사장님, 손님 오셨어요!"
윤기는 진심으로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자신을 쳐다 보는 여자를 흘낏 보고는 내부를 훑어보는 데 집중했다.
역시 예상했던대로 바깥에서는 안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지만, 안에서는 바깥 풍경이 훤히 잘 보였다.
카운터에 앉아 책을 읽고 있던 여자는 몇 분 간 서 있던 윤기를 보지 못한 듯 사장을 부르러 2층으로 올라가면서도 윤기에게서 의문의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윤기는 내부를 둘러 보며 근처에 있던 의자를 빼 앉았다.
지나치게 평범해서 의심스럽다. 1층과 2층, 복층으로 구성되어 있는 듯 했고, 아마 2층은 가게가 아니라 가정집인 것 같았다.
역시 손님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임대라면 집주인은 대체 누굴까... 사장이 집주인인가. 윤기는 사장을 기다리며 실없는 생각을 했다.
"아, 뭔 손님이 온다고, 어... 뭐야. 진짜네."
부스스한 머리를 털며 계단에서 내려 오던 남자의 눈이 윤기에게 닿자마자 멈췄다.
큰 키에 쭉 째진 눈, 자신과 비슷한 샛노란 금발... 아무리 쳐 줘도 20대 후반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외모였다.
"손님이 오는 게 이상하다니, 평범한 카페는 아닌가 보네요."
"……."
"알바생은 주문을 받지도 않고 사장을 부르러 가질 않나..."
윤기의 말에 알바생으로 보이는 여자가 멈칫 했다. 여자는 초조함이 깃든 눈으로 사장으로 보이는 남자를 바라 봤다.
"들어가 있어, 정은지. 진짜 손님인가보다."
"낮에는 안 찾아오는 거 아니었…"
"나중에 얘기해."
강압적인 남자의 말에 은지는 네... 하고 대답하고는 불안한 듯 윤기 쪽을 돌아보며 2층으로 올라갔다.
은지가 2층으로 올라가 문을 닫은 것을 확인한 남자는 윤기에게 말했다.
"저쪽으로 가시죠."
윤기는 말없이 남자가 이끄는 곳으로 따랐다. 주머니에서 손을 빼지 않은 채였다.
*****
"소개? 연락받은 데는 없었는데."
남자가 윤기를 이끌고 도착한 곳은 바(Bar)였다.
아마도 낮에는 카페, 밤에는 바를 운영하는 듯 했다. 돈이 될 지는 모르겠지만.
"누가 봐도 수상한 골목이라 들어와 봤더니 누가 봐도 수상한 카페에 누가 봐도 수상한 이름이길래.
보니까 카페 이름 거꾸로 하면 리온 씨날비가(Rion CnalB)가 브랑누아(Blanc Noir)가 되더라구요."
"오…. 소개도 아닌데 거기까지 캐치한 사람은 잘 없는데."
윤기의 말에 사장이 의외라는 듯 눈썹을 치켜올리고는 씩 웃었다.
"우지호라고 해요.
여기는 미디에이션 포인트(Mediation Point. 중개소), 보통 미디포인트라 그래요.
물건 받고 팔기도 하고, 보관해 주기도 하고, 의뢰도 대신 받아주고 그래요. 알죠?"
역시. 상대가 미디포인트 주인이라는 것을 알게 된 윤기가 긴장을 풀고 편하게 대화를 이어갔다.
"예상은 했는데 의외긴 하네요. 혹시 와이드락이라고 알아요?"
"거기 쫄딱 망했잖아요. 금고 털려서."
"팀 만들 때부터 거기만 썼었거든요.
하도 브랑누아, 브랑누아 해서 궁금하긴 했는데 이런 데 있는 줄은 몰랐네요. 사장님이 이렇게 젊은 분일 줄도 몰랐고."
"그래도 아는 사람들은 또 알고 찾아 오더라구요, 윤기 씨처럼."
웃던 윤기가 순간 숨을 멈췄다.
"제 이름을…… 어떻게 알죠."
"와, 찍어 봤는데 진짜네."
"장난 치지 말고 말해요."
"그럼 비오브? 우와, 돈벼락 맞게 생겼네."
윤기는 대답하지 않고 경계심 품은 눈으로 지호를 바라봤다.
지호는 쭉 찢어진 눈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경계 풀어요.
확실히 비오브에 대해 대외적으로 알려진 거라곤 겁 없이 중앙은행도 털 만큼 치밀한 팀이라는 거랑, 리더 예명이 RM이라는 것밖에 없긴 하죠.
근데 뭐… 일이 일인 만큼 이것저것 잘 주워들어요."
"…멤버 본명까지 아는 사람 거의 없어요."
"알아요. 워낙 철통 보안으로 유명하잖아요."
지호는 빙글빙글 시종일관 웃는 얼굴로 윤기를 대했다. 윤기는 그 얼굴 안에 숨겨진 진짜 의도를 찾기 위해 노력했다.
"근데 좀 의외네요. 보통 미디포인트 등록같은 건 리더가 하지 않나?"
"저희 리더는 얼굴을 밖에 안 내보이는 게 원칙이라서요."
"그런 것 같네요. 사실 저도 비오브에서 본명 아는 건 윤기 씨밖에 없어서 그냥 찍어 본 거에요. 제일 바깥 활동 많이 하시잖아요."
"그렇구나……."
"뭐, 네."
"팀 등록할게요."
자연스럽게 나온 윤기의 말에 놀란 건 지호였다.
"…아, 진짜요? 저 수상하다고 생각하는 거 아니었어요?"
"이 바닥에서 제일 유명한 덴데. 믿어보죠, 뭐."
"저야 좋죠. 팀 이름이?"
"비오브."
윤기의 말에 장부 비슷한 종이 뭉치를 꺼낸 지호가 만년필로 무언가를 썼다.
"비오브..... 안 믿기네, 진짜. 걱정 마요, 잘해 줄게요. 스펠링 이거 맞아요?"
'B-aube'
"정확해서 수상하네요. 불어 할 줄 알아요?"
"뭐, 조금. 이름 잘 지었네요. 하는 일은... 도둑? 기분 나쁘시려나?"
"도둑은 말이 좀 없어 보이는데. 저희 나름 체계적이거든요. 괴도 비오브라고 해 두죠."
"풉."
"뭘 웃어요."
"아뇨. 그럼 여기 이렇게 달아놓을게요."
"오, 좋다. 팬텀 그거 제가 메이플에서도 제일 좋아하는 캐릭터거든요."
"아, 메이플..... 하세요?"
"무시하세요?"
"아니... 귀엽네요."
지호가 만년필로 종이 뭉치 위에 휘갈긴 내용이 서랍 속으로 들어갔다.
*****
그저께부터 자꾸 전화가 온다. 발신번호 표시제한으로.
나라도 정신 차리고 부모님의 재산을 노리는 사람들을 피해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 변호사 아저씨와 연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핸드폰을 끄고 있을 수도 없었고, 왠지 섬찟한 생각이 들어 받을 수도 없었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부터 생긴 편두통에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왔다.
"내가 누군지 알고 자꾸 전화야…."
그저께는 어제까지 전화가 오면 받아서 하지 말라고 해야지, 어제는 오늘까지 전화가 오면 받아서 욕을 해 버려야지 생각만 해 놓고 실천으로 옮기지는 못하고 있다.
생각하기도 싫은 부모님의 죽음 이전에는 아주 가끔 걸려오던 발신번호 표시제한 전화가 3일을 달아서 걸려오니 살짝 무서운 탓이다.
하지만 이제는 진짜 끝내야 한다. 진짜 머리가 아파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좋아. 받자. 받아서 하고 싶은 말 다 하는 거야.
큰 결심을 내리자마자 핸드폰이 기다렸다는 듯 울린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발신인을 확인해 보면 역시나 발신번호 표시제한이다.
할 수 있어, 이여주. 무서운 거 없잖아.
"여보세요."
[어... 뭐야, 받네.]
젊은 남자의 낮은 목소리가 핸드폰 너머로 들려 왔다.
순간 소름이 돋았다. 뭐야. 너무 심하게 전형적으로 스토커틱한 멘트다.
"그저께부터 계속 전화한 분 맞으시죠. 저 아세요?"
[프흐. 당연히 알지. 도와주려고 전화한 건데, 아무리 해도 안 받아서 포기할까 생각 중이었거든.]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시고, 제 번호는 어떻게 아신 건지 모르겠지만 진짜 너무너무너무 불쾌하고 기분 나쁘니까 앞으로 전화 안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발신번호 그거 안 당해 보면 모르거든요?!? 진짜 무섭다구요!!"
애써 낯선 남자와 통화한다고 쫄았다는 걸 티내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고 했는데, 온통 핸드폰으로 쏠린 신경과 약하게 떨리는 손은 감출 수가 없나 보다.
그래도 상대방은 날 못 보고 있으니까 티 안 나겠지. 나름 잘 했어. 당당했어. 그런데 핸드폰 너머로 웃음소리가 들린다. 뭐야... 왜 웃지.
"그, 그렇게 웃는 것도 무섭거든요???
자꾸 이러시면 번호도 바꿀 거니까 이제 진짜 포기하세요!!"
아, 좀 약했나... 저런 싸이코한테는 안 먹힐 말인데.
[힘든 일 있잖아. 도와 주려고 전화했다니까 왜 이렇게 사람을 못 믿어.]
웃음을 멈춘 상대방이 다소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와... 끝내주게 낮다.
남자의 말을 다 개소리라며 무시하려던 나는 뭔가를 알고 말하는 듯한 남자에 말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힘든 일이라... 이 남자 때문에 며칠 잘 몰랐는데, 맞다. 나는 힘든 일을 너무 하루아침에 겪은 사람이다.
편두통은 점점 가시고 그 대신 눈이 무거워졌다.
그렇게 잠깐의 정적이 흐르고, 나는 다시 말을 이었다.
"뭘 알고 계신 건지 모르겠지만, 아무도 못 도와주는 일이에요. 이제 진짜 아무도 안 믿어요.
그 쪽이 몰라서 그러나 본데 사람이라는 게 진짜 무섭거든요.
저도 언젠가 그렇게 되겠지만 되게 추악하고 나쁘고...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그래요.
내가 왜 이런 얘기 하는 건지 잘 모르겠-"
[안 궁금해? 누가 훔쳤는지.]
그 말을 듣자마자 숨이 턱 막혔다.
[나라면 누군지부터 찾겠어. 경찰 조사가 소득 없이 끝났든, 뭐든, 어떻게서든.]
"……대체 누구신데요."
[니가 도와주길 원한다면 도와줄 수 있어.
물론 니 앞에 나타나진 못하겠지만.. 아마 너도 내가 누군지 차차 알게 될 거야.]
아마 무표정으로 말하고 있을 것처럼 무심하고 덤덤한 목소리였다.
어느새 나는 핸드폰이 꺼져서 그와의 연결고리가 끊어질까봐 초조해졌다.
이제 더이상 사람은 믿지 않아.
그 믿음이 미약하게 흔들렸다.
내가 한동안 말이 없었는데도 남자는 전화를 끊지 않고 기다렸다.
나는 그 정적에 나도 모르게 머릿속에 있던 말을 내뱉고 말았다.
"…도와주세요."
[…진심이야?]
나는 상대방에게 보이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더이상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언제부터 난 건지 모를 눈물이 쉴새없이 흘러내렸다.
내가 우는 소리만이 핸드폰을 타고 남자에게 전달되었다.
좋아. 남자는 이 말만을 남기고 나와의 연결고리를 미련 없이 끊어 버렸다.
가슴이 너무 아팠다.
찾고 싶어. 찾을 거야. 찾아서 똑같이 만들어 줄거야.
오늘 밤도 길 것만 같았다.
-
안녕하세요, OP입니다
오늘은 뭔가 스토리가 진행된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 아직도 생각해 둔 걸 풀어 가려면 한참 남았네요 ㅠㅠ
호석이도 안 나왔고, 태형이고 안 나왔고, 멤버들 개인적인 이야기들도 안 나와서 막막해요
오늘 석진이 출소 후 이야기도 쓰고 싶었는데 분량이 생각보다 많아져서 다음 편에서 풀기로 했습니다
아, 그리고 저번 편에 댓글 남겨주신 분들 너무너무 감사드립니다 ㅠㅠㅠ 신나서 바로 쓰러 달려왔자냐요..8ㅅ8 ♥
제가 빠른 전개 진짜 못하는데 팬텀은 풀 얘기가 많은 만큼 빨리빨리 넘길게요!
한 에피소드를 너무 짧게 쓰려다 보니까 디테일은 떨어지지만 이해해 주세요 :) 늘어지는 것보다 낫지 않나요..? ㅠㅜㅜ
댓글 신경 안 쓴다고는 했지만 댓글이 달리니까 신나서 더 잘 써지는 거 같아요 ㅠㅠㅠ
다음 편도 빨리빨리 들고 오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 사실 이야기가 진행되면 무슨 소린지 다 아시겠지만 지금까지만 봐서는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분명 있을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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