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파는 가게
作 일팔이
“ 그럼... 오빠들은 몇 살인거에요? 막 중세시대 그런 사람들인가? ”
“ 우리한텐 그런게 의미가 없어, 여주야. ”
“ 우린 어떤 시대로든 갈 수 있어. 물론 미래는 약간 불안정해서 미래에 가서 당시의 일을 안다고 해도 그게 곧이 곧대로 다 이루어지는 건 아니지만. ”
여주 너는 지금 기억하지 못하지만, 우린 언젠가 다른 곳에서 만났었을 수도 있어.
승관 오빠가 눈을 찡긋거리며 말했다.
“ 에, 그게 어떻게 가능해요. 이미 지나버린 시간인데. ”
“ 그게 우리한텐 의미가 없다니까. 오늘 네가 집에 간 후에 우리가 코드를 조정해서 네가 열 살, 열 세 살, 언제였던지 널 만나러 갈 수 있어. 넌 특별한 아이니까 우리가 네 근처에 가기만 하면 넌 가게로 끌리게 될거야. 그렇게 널 만나고 다시 오늘로 돌아온다고 해도 바뀌는 미래는 없어. 그냥 네가 기억할 수 있겠지, 과거를. ”
“ ... 없던 기억이 생기는 거네요? ”
“ 뭐, 그렇게도 볼 수 있겠다. 사람들은 그냥 내가 잊어버렸던 기억이 떠올랐다, 이렇게만 생각하고 넘기니까. ”
어느순간 내가 알던 모든 지식과 상식들이 내 뱃속에서, 내 머릿속에서 베베 꼬여 또아리를 트는 느낌이었다. 이게 저 곳으로 가고, 저게 이 곳으로 왔다. 그런데, 도대체 이런 게 어떻게 가능한건데.
“ 아니 ... 그럼, 이게 어떻게 가능한건데요? ”
“ 그거라면 가볍게 설명해 줄 수 있지. ”
갑자기 경쾌해진 승관오빠는 달라진 분위기처럼 경쾌한 발걸음으로 가게의 벽장을 향해 다가갔다. 그리곤 벽장에 손을 잠시동안 대더니 망설임없이 벽장 문을 열었다.
“ 이게 다 뭐야 ... ”
“ 짠, 이게 바로 타임 코드란 거지. "
“ 타임 코드요? ”
“ 이 타이머같은 거 보여? 이게 총 열 세 개거든. ”
하나, 둘 ... 실제로 열 세 개였다. 그러자 이 오빠들이 총 열 세명이었다는 사실이 생각났다.
“ 오빠들 한명 당 한 개씩 맡는 거에요? ”
“ 딱 맞췄네. 그래서 우리는 다른 시간으로 갈 때마다 서로 의견을 나누고 조정해야 해. 번거롭지만 꽤 현명하지. ”
그런데 ... 너 진짜 학교 안가냐?
가게 내부 시계를 흘긋 거리는 승관오빠의 얼굴에 걱정이 피어올랐다. 완전 지각이야, 너.
“ 괜찮아요, 어차피 방학 보충, 다른 애들도 다 빠지는데. ”
“ 그래도 가야지, 신청했으면. ”
“ 그치만 ... ”
“ 여주는 승관이가 얼마나 학교 다니고 싶어하는 지 모르지? ”
“ 아, 깜짝이야. 놀랬잖아. 인기척 좀 내고 다니면 안돼? ”
“ 종은 분명히 울렸어, 너무 신나게 얘기하느라 못 들으셨나봐? ”
“ 종이 울리긴 뭘 울려, 그거 손님용이면서. ”
“ 됐고, 승관이 너 혼날래? ”
“ 왜, 나 뭐. ”
“ 주문서 작성을 그렇게 받으면 어떡해, 11번 고객님 주소가 그게 뭐야. 요즘 세상이 얼마나 복잡한 줄 알아? ”
“ 배달부의 재량을 믿은 것 뿐이야, 뭘. ”
“ 고오맙다. ”
“ 고마울 것 까지야. ”
투닥거리는 둘을 보고 있으니, 이건 앙숙이라고 하기엔 너무 사이가 좋아보이고 그렇다고 단짝이라고 하기엔 너무 서로 퉁퉁 대고, 참 귀여웠다. 새로 들어온 남자는 분홍색 머리의, 나와 한 뼘 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 작은 키를 가지고 있었다. 그렇지만 승관오빠에게 하는 걸 봐서, 아까의 그 실세라는 지훈이 오빠임에 분명했다.
“ 저기 ... ”
“ 아, 손님을 앞에 두고 뭐하는 짓이야. 여주 오랜만이다? ”
“ 네, 오빠도 오랜만이에요. ”
“ 어, 너 나 기억해? 기억 못 할줄 알았는데? ”
“ 오빠가 저보고 쉬었다 가라고 했던 거 기억나요. 그때도 분홍색 머리였고, 안경 끼고. ”
“ 오, 그럼 내가 마지막 타자인가 보다. ”
“ 네? ”
너 , 우리가 열 세명이라는 건 기억나지?
네.
근데 우리 얼굴 다 기억해? 기억나는 사람 나랑 얘, 그리고 순영이밖에 없지 않아?
하드오빠 이름이 순영이라고 짐작했다.
그러고 보니, 열 셋이었던 분명 기억하는데 얼굴은 정작 세 명 밖에 기억이 안났다.
“ ... 기억이 왜 안나지? ”
고개를 갸웃, 하며 나머지 열 명의 얼굴을 기억해내려고 온 머리를 쥐어짰지만 아무런 얼굴도 떠오르는 게 없었다.
“ 애써 기억하려고 하지마, 기억 안나는게 당연하니까. ”
“ 예에? 왜요? ”
그 때, 너 사실 우리랑 같이 한번 이동했었거든. 이런 저런 얘기하다 보니깐 11시가 훌쩍 넘어서, 어린 너는 혼날까봐 훌쩍훌쩍 울고. 지금 집까지 데려다주면 네가 곤란해할 것 같아서 너한테 영향 안가는 선으로 최대한 앞으로 돌렸었어, 시간을.
“ 근데 그게 왜요? ”
“ 아무리 너라고 해도, 인정받지 못한 사람이 이동을 하면 약간의 기억 상실 증세가 나타나거든. 그니까, 예를 들면 너가 백지 한 장을 가득 채웠는데 한시간이 흘렀어. 근데 넌 30분 전으로 돌아가고 싶어. 그럼 30분 만큼의 기억은 잊혀지는 거야. ”
“ 아, 그래서 ... ”
“ 그래서 네가 기억을 못했던거고. 그런데 이렇게 우리가 공공연하게 기억을 상기시켜주고 있으니, 조만간 돌아오겠네. ”
“ 돌아오기도 해요? ”
“ 기억은 절대 사라지지 않아. 잊혀지는 거지. ”
잠시동안 거실에 침묵이 흘렀다. 서로가 다른 생각에 빠진 탓이었다.
“ 그런데 왜 형만 와, 다른 애들은? ”
“ 저기 막 오네. ”
지훈오빠가 손짓한 것은 한 낡은 그림이었다. 끝없이 이어진 복도와 방들을 그린 그림이었는데, 도대체 저 그림이 다른 오빠들이 오는 거랑 무슨 상관인가, 해서 눈을 가느다랗게 뜨고 자세히 살펴보았더니 복도 뒤쪽 멀리서 어떤 남자들이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었다. 해리포터를 보는 기분이었다.
“ 아, 여주다! ”
“ 헐 , 진짜 여주네? ”
“ 너 많이 컸다, 야! ”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그 몇 시간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나는 한순간 팬미팅을 개최한 아이돌이 된 기분이었다.
“ 뭐야, 진짜 기억이 안나? 여주 너 어렸을 때 나랑 결혼한다고 막 그랬었잖아~ ”
진짜 기억에 없다. 그런데 그랬던 것 같기도 하다. 이게 기억이 돌아온다는 건가, 뭔가 슬슬 올라올 듯 , 말 듯 했다.
생전 처음보는 것 같은 남자애가 와서 막 내 이름을 부른다. 나보다 어릴 것 같다. 귀엽다.
“ 다시 소개하려니까 부끄러운데 ... , 나는 이 찬이고 열 일곱 살이야. ”
역시나 애기였다.(사실 나와 동갑이긴 하다)
알고보면 내가 여덟 살일때도 열 일곱이었던 오빠다. 그치만 , 그치만 ... 진짜 귀엽다 ...
친구들이 말하는 연하남, 연하의 역습 이런 게 무얼 말하려 했던 건지 이제야 조금 이해가 가기 시작한다. 비록 찬이는 내게 연하남이 아니었지만.
“ 어? 뭐야? 다른 애들은 다 어디가고 찬이만 나와서 인사하냐? ”
“ 하루에 한명 꼴로 만나자고 약속했어. 가위바위 보 했는데 내가 이겼고. ”
“ 왜 굳이 그렇게 해, 그냥 한번에 만나고 한번에 기억하게 해 버리지. ”
보기와 다르게 지훈이 오빠는 상남자적인 성격을 가진 것 같았다. 보이크러쉬.
[
“ 또 여주 시간 돌려야 하면 어떻게 해, 나는 여주를 아는데 여주가 날 기억 못하면 속상하단 말이야. ”
" 시간 돌리는 게 장난도 아니고, 또 돌릴 일이 뭐 있겠어. 이젠 여주도 열 일곱이야, 너랑 동갑. "
" 그래두 혹시 모르잖아. "
찬이가 입술을 삐죽이며 말했다. 역시 막내는 시간이 어떻든 나이가 어떻든 해도 막내다. 지훈이 오빠는 대충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물 한잔을 들곤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지훈이 오빠는 왜 이렇게 바쁘냐고 찬이에게 묻자, 지훈이 형이 꿈 배달을 총괄하고 있어서 그렇다며 웃었다. 배달에 여러 명이 끙끙 대는게 우스워 보일 수 있겠지만 은근히 어렵다고도 했다.
“ 내가 너보다 어릴 것 같았어? ”
찬이가 대뜸 뭔가 눈치챘다는 듯한 묘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아, 내 검은 속내를 읽혀버렸구나 하는 탄식이 나왔지만 그렇다고 영혼 없이 아-니- 아-닌-데 하고 대답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 응...아니 네...(머쓱) ”
" 그냥 반말 해도 돼, 어차피 우린 동갑이잖아. 괜찮지? "
" 뭐 그러지 뭐..."
이미 나는 말을 놓고 있었다. 찬이가 그런 내가 귀엽다는 듯이 씨익 웃고 시계를 가리켰다. 학교에서 점심시간이 시작 될 무렵이었다.
“ 오늘은 이렇게 땡땡이지만 내일은 꼭 가, 여주야. ”
“ 알겠어, 꼭 그럴게. ”
찬이가 시키는데 그럼, 학교 가야지, 가야지.
“ 내일도 와도 돼? ”
“ 음 ... 일단 일주일간은? 환영이야.”
“ 그럼 그 다음엔? ”
“ 그땐 승철이 형이랑 다른 형들이랑 회의를 해봐야해서. 미안, 여주야. ”
하긴 ... 나는 찬이나 지훈이 오빠, 승관이 오빠, 순영이 오빠와는 다른 사람이었다. 얼굴은 이제 형태만 슬쩍 기억나는 승철이 오빠라는 사람도 나랑 다른 사람이었다. 일주일이라도 볼 수 있으면 됐어. 이런 색다른 경험이 어딨니.
그렇게 말하며 웃자 찬이도 따라 웃었다. 그나저나 정말 병아리같고 귀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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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썼던 글을 수정해서 올리고 있는데 수정하는 것도 꽤 오래걸리네여 ...
세계관이 너무 힘들어여... 딱히 세계관이랄 것두 없지만...ㅎㅎ
읽어주셔서 정말 너무 감사드려요 /ㅅ/ (왈칵)
타 커뮤니티에서 연재 되었던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