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발, 좆같은 하루였다. 고대하고 고대하던 면접은 떨어졌고, 계속해서 그런 날 기다려 주던 3년 사귄 남자친구도 이별을 고했다. 뭐, 나같아도 그랬을 거 같으니 딱히 남자친구를 욕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냥 계속 솔로로 썩으면 좋겠다 이 정도? 예전같았으면 남자친구가 다니는 회사에 가서 깽판을 치든 뭐든 복수하고 싶어 길길이 뛰었을 텐데, 나이가 드니 성질도 참 많이 죽었다. 별 생각이 안 드는 걸 보니. 어쩌면 그냥 남자친구에 대한 애정이 식은 걸 수도.
그래도 기분이 꿀꿀한 건 별 수 없다. 편의점에서 소주를 사서 병나발을 불어댔다. 편의점 알바생이 나를 힐끔힐끔 쳐다보는 게 느껴졌지만, 뭐 괜찮다. 전 나쁜 사람 아니에요! 저도 편순이 해봐서 안답니다! 헹 그래도 내가 손님인데 지가 뭐라 할 수 가 있나. 더러운 자본주의 같으니라고. 에이씨, 기분 더럽다. 술 마시니까 잠이 온다. 여기서 잠들면 존나 추울텐데. 1월이란 말이다. 정신차리자 000!!! 생각해보니까 편의점 알바생도 있고 깨워주든가 하겠지 뭐.
깡만 셌던 나는 그냥 거기서 자기로 결심했다. 으 추워라.. 아 근데 잠와.. 잠이... 잠....
****
눈을 뜨니까 앞이 다 깜깜하다. 불길한 기운이 스멀스멀 피어올랐지만 애써 우리 집이라서 깜깜한 걸 거라고 생각하며 내 자신을 안도시켰다. 일어나려고 발을 움직이려고 했는데, 왠열. 발이 밧줄로 묶여있었다. 그러고 보니까 움직일 때마다 사락사락 소리가 들리는 게 옷도 한복이다. 도대체 이게 뭔 상황이지??
갑작스레 문이 열리더니 빛이 들어왔다. 아, 눈 따가워라. 문이 열린 곳을 보니 교과서에서 봤던 기생차림의 여자가 있었다. 나를 째려보는 거 같기도 하고...?
"야,너. 일어났어?"
목소리가 딱 나 짜증났어요 하는 목소리다. 난 왜 여깄는거지. 인신매매로 끌려온 건가? 내 죶같던 인생은 이제 안녕인가요????
"이제 대답도 안 하네? 야!"
"아 예예 일어났어요"
"갑자기 안 하던 존댓말은 왜 하고 그래 적응 안 되게. 맞고나니까 정신이 훼까닥했냐? 내가 존심 좀 그만 세우라고 했잖아."
???이건 또 무슨 시츄에이션이죠 말하는 게 나랑 자기랑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거 같았다. 분명히 처음 보는 얼굴이였는데.
그러고 보니 온 몸이 욱신욱신 거렸다. 입에서 피비린내도 나는 게, 미친 입안이 찢어진 거 같다.
"저기, 야 나 거울 좀 갖다 줘"
"너 니 얼굴 보면 진짜 충격먹는다"
그 애가 거울 가지러 방을 나선 후 혼자서 내가 있던 방을 둘러봤다. 서서 둘러볼 수는 없었지만 어차피 방이 작아서 앉아서만 봐도 다 훑기에 충분했다. 내가 알 수 있는 건 여기가 존나게 옛날 방이라는 거다. 요즘도 황토벽인 집이 있나? 아무래도 엄청 시골로 내려온 게 틀림없다. 아 나 진짜 화장실 수세식아니면 못 쓰는데.
"아 깜짝아!!"
쓰윽, 거울을 들이미는 손길에 순간적으로 정말 놀랐다. 뭔 놈의 여자애가 인기척이 이렇게 없어?
많이도 맞았네. 오른쪽 볼이 푸른 게 멍이 든 거 같기도 하고 입옆에도 찢어졌어. 어라? 근데 잠깐만. 내가 원래 이렇게 생겼던가?? 분명히 코도 좀 더 높아지고 눈도 커지고 얼굴선도 좀 더 갸름해 진게 옥수수수염차가 광고하는 브이라인 싸다구친다. 옛날부터 내가 바라던 얼굴이긴 한데, 이건 진짜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됬다고 해도 믿을 만한거 같...에?????
방금 그 여자애가 날 보는 시선이 아니꼽다. 그래도 밧줄을 조심스레 풀어주는 걸 보니 좋은 여자애 같기도.
"야 나 얼굴이 왜 이러냐"
"너가 어제 행수님한테 손님 안 받는다고 깝치다가 그렇게 된 거잖아. 내가 작작하라니까. 그래도 행수님이 너 때린 담에 후회 많이 하시는 거 같더라. 물론 너 걱정하는 건 아니고, 가게매상 떨어질까봐."
행수는 뭔 행수? 여기 완전 조선시대 같다. 방도 그렇고 쟤 차림도 그렇고..? 그저께 밤에 혼자서 보던 여주가 과거로 가서 존나 잘생긴 방탄이들 만나는 팬픽이 생각났다. ㅋ..설마 아니겠지. 완전 망붕이 됬다. 미쳤냐고 등짝맞을 걸 각오하고 조심스레 저 여자애한테 물어봤다. 그러고 보니까 이름도 모르네.
"야 저기.."
"야 말고 아라. 이름 불러 완전 먼 사이같잖아."
"어 그래 아라야 지금이 무슨 시대냐?"
"이건 또 뭔 개떡같은 소리래"
그럼 그렇지. 요새 내가 너무 팬픽에 빠져있었나보다. 그러니까 면접도 떨어지지 아 나란 년..
"조선시대잖아."
? 내 망상이 현실이 되는 순간?
****
아라의 말을 들으니 나는 원래 양반이였는데 집안이 망하면서 기생이 됬다고 한다. 그래서 똥고집때문에 손님상대 안 하려다가 행수한테 얻어터졌다고 한다. ㅅㅂ.. 이건 또 뭔 똥같은 상황이야. 눈떠보니까 막 다 꿈이고 그런 거 아냐? 이제 부모님얼굴도 못 보는 건가.. 갑자기 급 우울해진다.
계속 우울모드로 찌그러진 나를 보던 아라는 부모님 생각나냐면서 다과를 가져다 줬다. 역시 우울할 땐 달달한 걸 먹어야 하는 거였어! 얼굴도 예뻐졌겠다 그냥 즐겨보기로 했다. 이 시대 남자들 모두 뽀려주겠다는 결심을 하고 아라가 해주는 몸단장을 받았다. 엄.. 역시 미의 기준은 다른 건가 뭔 놈의 화장이 이래.. 그래도 쌩얼보단 낳은 거 같아 자신감 상승한 채로 손님들이 있다던 방에 아라와 다른 여러 기생들과 들어갔다. 행수는 귀한 손님들이라며 나를 못 미더워 했지만 전 그전의 사람이 아니랍니다! 걱정마세요!
내가 예전부터 생각해온 그런 기방 문화는 아니였다. 막 기생들이 돌아가면서 자기소개를 했다. 오글거리고로.. 무슨 소개팅 온 거 같다. 난 왜 여기 앉아가지고 차례가 마지막이였다. 아으 심심해
"아 거기, 맨 끝에 앉은 너! 너는 이름이 무엇이더냐"
심심하다 심심하다 언제 내 차례오지 심심하다
"...거기! 너!"
"?? 아 예! 아 저 00라고 합니다, 나리."
ㅅㅂ.. 첫인상부터 꽝이 됬겠구만 이번 생도 망한건가?
"잘하는 거라도 있느냐?"
"아 예, 춤을 잘 춥니다."
"춤? 그래 한 수 보여 주거라."
나 000 그래도 클럽에서 좀 노가리 까던 여자라 이거야. 시대는 달라졌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뭐 다르겠어? 한복을 입어서 좀 불편하긴 했지만 그 때 췄던 춤 고대로 열심히 췄다. 아, 이런 춤은 자고로 짝 달라붙는 옷을 입어야 맛깔나는데.
"....."
....? 정적이 맴돌았다. 역시 아직은 이런 춤을 받아들이기엔 너무 빠른 거였나. 존나 후회된다. 이럴 줄 알았으면 티비에서 국악춤 볼 때 누구보다도 빠르게 채널 돌리지 말고 조금이라도 봐둘걸. 아 또 왤캐 조용한거야 존나 민망하다.
![[방탄소년단/태형석진윤기정국] 술 마시고 눈 떠보니까 조선시대 01 | 인스티즈](http://file2.instiz.net/data/file2/2016/01/14/d/b/b/dbb99cf25eeb3c055998b11385a9ed2d.gif)
"푸하하하하하하"
정적이 흘렀던 상황에서 어떤 남자가 웃었다. 눈물나게 고마워서 어떤 얼굴인지 볼라 그랬더니.. 헐 세상에... 태태랑 똑같이 생겼잖아.
난 그냥 여기서 살아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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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진웅 "제발 그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