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AST : G
"...."
"한솔아."
- 제 3세계, 슬럼가
어머니는 나를 형이 있는 곳으로 데려가셨다. 왜 내가 그 곳으로 가는지, 이유는 말해주지 않았다. 하지만 나도 어느정도 나이가 있었기에 알 수 있었다. 내가 왜 3세게 슬럼가로 가는지. 형은 진작에 3세계로 떠난지 오래였다. 친구와 함께 홀연히 떠나버린 형은 슬럼가에 있다고 했다. 2세계에 있던 난 형의 존재를 잊고 살았다. 하지만 3세계에 들어서니, 형의 냄새가 나는 것만 같아 울컥했다.
어머니가 슬럼가 입구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차마 안에까지 들어가긴 힘든거였겠지. 어머니는 3세계로 떠난 형을 붙잡지 않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우리 집은 가난했으니까. 그 좁은 집에서 한명이라도 줄어든다면 그나마 살만 했을테니까. 형은 일찌감치 그 현실을 알아챈것일지도 모른다. 너무 늦게 현실을 자각한 나는 이제서야 형을 따라간다. 그래, 엄마가. 엄마가 행복하게 살면 그걸로 된거다. 나는 여기서도 잘 지낼 수 있을거야, 나는.
"엄마."
"..."
"갈게."
"...솔아."
"아, 울지마. 나 진짜 형이랑 같이 살고 싶어."
"...엄마가, 미안해."
"뭐가 미안해."
"..."
"그 아저씨랑, 잘 살고 있어."
"...!"
"형이랑 나중에 찾아갈게. 잘 가."
어머니는 몰랐을거다. 요즘들어 자신이 새롭게 만나는 남자가 있고, 그 사실을 내가 알고 있었다는걸. 그 일을 알게 된 후로는 도저히 집에 정이 가지 않더라. 얼어 죽더라도 차라리 슬럼가에 내 발로 들어가는게 편했다. 앞에서 울고 있는 엄마를 뒤로 하고 슬럼가로 들어섰다. 벌써부터 느껴지는 한기와 악취에 울컥하고 올라왔지만, 견뎌내야했다. 내 운명이다, 모든게.
넓지도 않은, 그렇다고 해서 작지도 않은 규모의 슬럼가에서 형을 찾기란 보통 쉬운 일이 아니었다. 사람들한테 겨우 용기내어 물어봐도 다들 대답을 피할뿐이었다. 도대체 우리 형이 뭐길래? 그렇게 일주일을 형을 찾아다니며 이리저리 뛰었던것 같다. 머리카락 한올도 보이지 않는 형의 존재. 잔뜩 열이 오른 내가 이리저리 헤집고 다니니 길을 잃는건 당연한 일. 그냥 형이고 뭐고 도망치고 싶었다. 이 지옥같은 곳에서.
형이 살아있는지, 죽어있는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이 위험한 슬럼가를 계속 헤집고 다니는건 사실상 도박이었다. 해가 떴어도 슬럼가는 어두웠기 때문에 오늘이 몇일인지도 구분할 수가 없었다. 아, 이래서 슬럼가는 오지 말라고 하는거구나. 해가 뜨지 않는 구역, 어둠만이 자리잡은 이 곳은 도저히 내가 버틸만한 곳이 아니었다. 도망치고 싶다.
"같이, 갈래?"
슬럼가에 머문지 어언 한 달, 한 달동안 온 세상의 고역이란 고역은 다 맛본듯한 내가 마지막으로 발걸음을 돌린 곳은 어디었을지도 모를 좁은 골목이었다. 지친 몸을 이끌고 골목 안으로 들어섰을 때, 나의 인생의 전환점이 될 순간을 만났다.
남자와 여자아이가 있었다. 여자애는 나와 동갑이라고 했다. 함께 슬럼가에서 도망치자고 그들이 나에게 말했다. 도망쳐도 될까? 난 아직 형을 찾지 못했는데. 내가 잠시 머뭇거리자 그가 나에게 묻는다. 함께 가지 않을거야?
형을 찾지 못한것도 벌써 한 달이다. 형을 찾을 수가 없다. 어쩌면, 형은 다른 곳으로 이미 떠났을지도 몰라.
"..갈게요. 같이."
그 부드러웠던 미소에 홀렸던 이유는, 그 당시의 내가 너무 절박했기 때문이었겠지.
한솔은 자신과 몇 년만에 얼굴을 마주하는것인지도 모를 형을 보자마자 어린아이처럼 엉엉 울기 시작한다. 순영의 손자국이 하얀 목에 빨갛게 남아있다. 금방 저를 죄여오던 고통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엉엉 울기 시작한 한솔은 멈출줄을 모른다. 죽은 줄만 알았던 제 동생이 두 발로 걸어와 나타났다. 승철은 말없이 한솔을 꼭 품에 안을 뿐이다. 예전과는 많이 달라지고 커버린, 자신의 하나뿐인 동생을 안으며 승철이 눈물을 꾹 참는다.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승관이 순영을 바라봤다. 순영도 꽤 놀란 눈치. 눈물로 가득 찬 이 방에서 우두커니 서서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을 수만은 없어 승관이 먼저 방을 나간다. 그 뒤를 허겁지겁 따르는 순영이 방에 나오자마자 큰 한숨을 터트린다. 내가 지금 뭘 한거냐, B?
"보스 동생을 죽일뻔 하셨네요. Z."
"..."
둘만 남은 공간. 겨우 눈물을 그친 한솔이 형을 제대로 쳐다보지 못한다. 어릴적과는 너무 다르게 커버린 동생 탓에 지금 승철은 한솔을 살피느라 바쁘다. 비쩍 마른 동생의 하얀 팔목, 방금 Z에게 잡혀 빨간 손자국이 남은 목, 눈물로 번져버린 눈동자와 예전의 자신을 똑 닮은 갈색 금빛 머리칼. 승철은 한솔의 손을 계속 잡곤 아무 말이 없다. 조용했던 공간에서 한솔이 먼저 입을 연다.
"형."
"...응."
"왜, 여기 있있어."
"..."
"왜 형은.. CA야."
"..솔아."
"왜 형이, 왜."
잘 참고 말하던 한솔이 결국은 다시한번 울컥한 마음에 입술을 꾹 깨문다. 자신이 이제껏 찾아다녔던 유일한 형이, 자신이 몇 년간 무너뜨릴 준비를 하던 조직의 수장이었다. 아마 제가 조금 늦게 형을 찾았더라면, 이미 제 손으로 형을 죽였을지도 모른다. 끔찍한 기분에 한솔이 고개를 세차게 흔든다. 과거의 자신이 슬럼가에서 승철을 찾았더라면,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거라는 확신에 한솔이 더욱 무너진다. 그 모습을 눈치 챈것인지 승철이 큰 손으로 한솔의 머리칼을 쓰다듬으며 말한다.
"..형이, 잘못했어."
"..."
"미안해. 솔아. 형이 미안해."
"..."
"...무서웠지. 힘들었지."
"..."
"여기까지 와줘서 고마워. 솔아."
오로지 제 형만이 할 수 있는 그 말들에, 한솔이 결국은 또 한번 어린아이처럼 울기 시작한다.
- 코로나 아스트레일스, 통신본부
"..."
한바탕 큰 일을 겪고온 승관이 기진맥진한 표정으로 의자에 털썩 앉았다. 아, 맞다. K. 황급히 통신을 킨 승관이 꺼져있는 민규의 통신에 한 번 놀라고, 민규가 마지막으로 남긴 통신에 두 번 놀라며 표정이 급격히 굳는다. 빠르게 상황을 판단한 승관이 통신기를 내던지고 마이크를 잡는다.
"...비상."
승관이 다급하게 본부통신을 잡고 외쳤다.
"코드네임 K, 슬럼가 내부에서 실종 확인되었습니다. 본부 빠른 지원 부탁합니다. 지금 당장이요!"
- 코로나 보리얼리스, 본부
"버논이 오지 않았다고요?"
"네, 아직 들어오지 않으셨습니다."
"..."
분명 아까 먼저 병실을 나갔다고 했는데. 군병원을 나와 본부로 돌아온 여주와 원우가 버논의 부재를 알곤 고개를 갸웃거린다. 잠시 들릴데가 있나보지, 원우의 말에 그런가보다 생각한 여주가 엘레베이터를 타다 헉, 하며 원우를 바라본다.
"오늘, 약 먹었어요?"
"..아, 아니."
"..."
자신도 깜빡한 것인지 당황함이 한가득 담긴 원우의 말에 여주가 얼른 3층을 누른다. 약 가지고 갈테니까, 방에서 기다려요. 아무 말도 없는 원우와, 빠르게 엘레베이터에서 내려 약품창고로 들어가는 여주. 원우가 잠시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닫히는 문과 함께 엘레베이터 벽에 기대 눈을 감곤 한숨을 쉰다.
"..나 그거 먹으면, 더 아픈데."
"자, 얼른 먹어요."
"..."
N이 건네주는 약 한뭉치에 원우가 입을 꾹 다물곤 N의 눈치를 본다. 이거, 꼭 먹어야 돼?
"당연하죠, 얼른."
"..."
원우가 결국은 한참을 머뭇거리다 눈을 꼭 감고 약을 입에 털어넣어버린다. 물 한 컵을 다 마신 원우의 눈이 흐릿하다. 한참을 가만히 앉아있기만 하던 원우가, 약 봉지를 치우고 있는 여주에게 조용히 묻는다.
"약, 더 안 좋아질수도 있는거야?"
"네?"
"아, 아니. 그냥 궁금해서."
"부작용이 있을수도 있긴하죠. 워낙 독한 약이니까."
"아."
"왜요, 설마 부작용이라도 있는거에요?"
아니, 그런거 없어. 원우가 N 시선을 피해 고개를 돌렸다. 묘한 기분에 N이 재차 물으니, 조금은 있는것 같다며 그제서야 실토를 한다. 경악한 여주가 얼른 원우 앞에 앉아 부작용에 대해 묻는다. 언제부터였는지, 증상은 어떤지.
"..기억이, 잘 안나."
"...네?"
"약이 바뀐것같던데, 그 이후로 자꾸 기억이 하나씩 빠져."
"약이 바뀌었다구요?"
"응."
"그럴리가 없는데."
잠시만요, N이 하나 남은 원우의 저녁 약을 챙겨 살펴본다. 원우가 하루에 먹어야 하는 복용량은 언제나 5알, 하지만 봉지에는 6알이 담겨있다. 당황한 N이 자리에서 일어나 봉지를 들고 약품창고로 달려간다. 그 모습을 본 원우가 테이블에 머리를 박는다. 아, 이래서 말 안하려고 한건데.
약품 창고로 달려가던 N이 이제 막 본부로 돌아온 도겸과 마주쳤다. 급한 마음에 쌩 지나치던 여주가 다시 뒤를 돌아 도겸을 부른다.
"D !"
"어?"
"잠시만, 잠시만요."
"왜?"
"우리 본부, CCTV 좀 확인해주세요."
"무슨 일 있어?"
"W 약에 문제가 생겼어요. 누가 약을 바꿔놨어요."
"...뭐?"
도겸의 머리에 무언가 짧게 스쳐지나간다. …하지만 버논이 그런 파렴치한 짓을 할 인물은 아니다. 지금 버논이 CA에 가있다는것을 아는건 CB 요원들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는 장치를 가지고 있는 D, 오직 자신뿐. 섣불리 판단할 수는 없다. 원우의 약에 손을 댈 수 있는건 오직 메딕팀 뿐이다. 우선 D는 CCTV를 확인해보기로 한다.
"알겠어, 확인하고 있을테니까. 알아보고 내 방으로 와."
"네."
도겸을 지나쳐 빠르게 달린 N이 약품창고에 들어선다. 항상 자신이 원우의 약을 챙길때는 이 선반을 이용하는데, 이 선반 서랍에는 그 어디에도 새로 추가된 약 한 알은 없다. 분명 누군가 중간에 몰래 집어 넣은게 분명하다. 가뜩이나 불안한 원우인데, 그 사람이 먹는 약에 몹쓸 장난을 쳐놨다. 속이 부글부글 끓은 N이 범인을 찾기 위해 약품창고 문을 닫고 D의 방으로 향한다.
"아, 진짜 들키는 줄 알았네."
"다시 시작합니다, CB 스나이퍼 암살 대작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