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O/백현] 욕심나 上 | 인스티즈](http://file.instiz.net/data/cached_img/upload/a/f/5/af5a95a15b525bd6f9edf03256c8f7a8.jpg)
크게 보면 더 좋을 백현이..ㅎㅎㅎ
[EXO/백현] 욕심나
새벽같은 저녁 길을 걸었다. 공원을 거쳐서 집으로 가는길은 한적했고, 쓸쓸했고, 외로웠다.
길을 걷는 내내 떠오르는건,
많이 달라진 모습의 백현이었다.
백현과 징어는 고등학교 연합동아리에서 만났다. 직계멤버가 되어서, 연락도 자주하고 자주 만나고. 그러다가 먼저 마음이 생긴건 백현이었다. 징어가 눈치가 빨랐던 탓인지, 아니면 변백현이 티를 너무 많이 낸 탓인지 그 사실을 징어가 아는것은 얼마 안 걸렸지만, 징어는 그런 변백현의 마음을 모른체했다.
비평준화 지역에서 1등을 하는 남고에서도 백현의 성적은 상위권이었다. 생긴건 순하게 생겨서 공부할 때는 눈에 불이 난다고, 뭘해도 성공할 놈이라며 남고의 동아리 담당 선생님은 입버릇처럼 말씀하시곤 했다.
하지만 징어는 달랐다. 중학교 2학년, 무슨 바람인지 스스로 자처해 입시 학원을 다니며 1년을 바짝 공부한 징어는 전교 5등으로 중학교생활을 마무리하며, 지역에서 백현의 학교 다음으로 공부를 잘 한다는 여고에 들어갔다. 성적으로 난다긴다하는 아이들이 모인 만큼 징어의 성적은 기대를 따라주지 못했다.
공부는 뒷전, 고등학교 생활을 즐기는데 치중하던 징어는 동아리에 들어갔고 그곳에서 만난 사람 중에, 단연 눈에 띄는 것은 백현이었다. 순한 강아지상에, 생긴거랑은 다르게 은근 여자들에게는 철벽남이었고, 예상과는 다르게 성적도 우수하고, 게다가 자신 앞에서만 철벽남 무장해제가 되는 백현을 보며 징어는 의아했다.
왜, 나를?
하지만 그런 생각도 잠시였다. 징어는 자신에게 과분한 백현에게 욕심이 났다. 백현이 자신만의 강아지였으면 좋겠다고, 고등학교 2학년이던 징어는 그런 발칙한 생각을 했다. 변백현의 관심이 오롯이 자신에게만 있었으면, 변백현의 모든 것이 다 자기만의 것이었으면. 결국은, 변백현이 자신에게 절절 맸으면.
나 너 좋아해.
동아리 연극을 하던 날, 백현은 징어에게 고백을 했다. 나 너 좋아해, 하는 고등학생다운 풋풋한 고백.
우리 수능 끝나면, 그 때 다시 멋있게 고백할게. 지금은 그냥 내 마음 알아주기나 하라고.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징어는 끝까지 몰랐다는 척을 하며 기뻐했다. 아니, 사실은 그냥 기쁜 척을 했다. 수능이라는게 현실로 다가오자 징어는 조급해졌다.
변백현은 분명 인서울, 게다가 이름만 대면 다 아는 학교를 갈게 분명했다. 대학생이 된 백현이 그 때까지 자신을 좋아할 것이라는건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하지만 징어는 다른 문제가 있었다. 자신의 대학, 막말로 친구들과 비아냥거리던 그런 학교를 가게 된다면, 백현 딴에는 자랑이라고 자신을 동기들에게 소개한다면. 그 동기들이 자신을 깔본다면.
생각만으로도 끔찍했다. 자존심이 상했고 자신에게도 화가 났으며 결국엔 그 욕심나던 변백현이 질렸다. 지금이야 잘난 변백현이 자기를 좋아하고, 친구들이 그 모습을 보면서 부러워하는게 다라지만 성인이 된 후에는 달랐다. 남자 덕 보며 사는 여자는 싫었고, 그 남자가 자신에게 절절하게 매달리는 변백현이라는건 더 싫었다. 결국 자신에게 모든 면에 있어서 져주던 변백현은 자신만의 착각이었으며, 자신이 그냥 뭐 하나 잘하는거 없이 겉 멋만 든 사람이었다는게 들키는 것 같아서 싫었다.
오징어. 나 기다려 줄거지?
징어는 백현에게 기다려주겠다는 말을 끝끝내 하지 않았다. 고3에게 사랑은 쓸데없는 시간팔이었다. 고삐풀린 망아지처럼 공부에는 담을 쌓았던 징어의 머릿속에는 오직, 백현보다 좋은 대학. 아니, 못해도 백현이 갈 수준의 대학이 욕심났다.
징어는 중 2때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공부에 흥이 떨어지고 몸이 지칠때면 어김없이 백현의 이야기가 들렸다. 야, 또 모의고사 1등이라며. 대단하다 변백현. 백현을 함께 아는 동아리 친구들이 징어에게 간간히 백현의 소식을 전했다. 오징어는 좋겠네. 변백현 검사님 되면 꼭 잡았다가 시집이나 가. 모든 말들이 징어의 귀에는 그저 남자 잘만나서 시집이나 가라, 하는 소리처럼 들렸다. 징어는 오기로 공부를 했다. 문과에서 100등 밖을 나돌던 징어의 성적은 46등, 27등, 12등, 5등. 중3 마지막 시험처럼 5등을 찍고, 수능에서도 올 1등급을 받으며 원하던 대학보다 조금 낮지만, 그래도 나름 공립여고 1등이라는 학교의 체면을 세울 만큼은 했다.
하지만 백현은 조금 달랐다. 징어는, 너무 욕심이 났다. 자신이 좋아서 절절매던 변백현이, 막말로 정말 서울대라도 가면 어떡하나. 생각만해도 자존심이 상하는 징어였다. 징어는 유치하고 치사한, 욕심많은 여고생이었다. 수능이 50일정도 남았을 즈음, 조급하고 답답한 마음에 백현에게 문자를 보냈다.
변백현. 난 너 못 기다려줘. 미안해.
나쁜년. 동아리 내에서 징어를 알던 남자애들은 징어를 욕했다. 그도 그럴게, 백현이 실연을 당한건 성적에 직격타를 날렸다. 징어는 동아리 아이들과 일절 연락을 하지 않았고, 그 이후로 백현에게도 아무런 연락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알게 모르게, 징어는 자신의 욕심으로 한 사람의 인생을 망친듯한 죄책감에 아무 남자도 만나지 못했다. 대학 때, 자신에게 호감을 보이는 모든 남자가 백현의 얼굴과 겹쳐보이며, 혹은 왜 그랬어, 하는 백현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리는듯 하여서. 또, 열등감에 휩싸이기 전, 백현을 좋아했던 순수한 마음이 이제는 생기지 않을듯 하여.
옆자리에 앉은 영어과 신 선생님이 오 쌤은 연애 안 해? 하고 물으면, 저 같은 사람이 연애하는건 죄예요. 하고 대답하곤 했다. 이제와서 뉘우쳐봐야 징어는 여전히 나쁜년이었고, 백현의 대학은 바뀌지 않았으며, 사과할 용기가 생기는것도 아니었다.
백현을 잊고 산 적은 없었다. 하지만 오늘처럼 내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은 적도 없었다. 그냥, 살면서 남자를 만날 기회가 생기면 문득문득 생각나던 백현을, 징어는 예고도 없이 대면하게 되었다.
모교에서 국어 선생님을 하는 징어였다. 요즘엔 전국적으로 학교 폭력이니뭐니하며 난리도 아니었고, 교육청에서는 학교폭력 방지 교육을 강조했다. 징어의 학교도 매주 학교폭력 예방 방송을 틀거나, 법조인들을 불러 특강을 하곤 했다. 징어는 방송반을 담당하고 있었고, 오늘도 특강 준비로 강당에 방송 장치를 설치해야했기 때문에 분주했다.
여고에서 강의하는건 처음이라, 떨리네요.
익숙한 목소리. 그 목소리를 들은 징어는 잠깐 흠칫했지만, 아니겠지 하며 마이크 테스트를 했다.
아아. 마이크 시험중입니다. 하나둘.
목소리가 자꾸 떨렸다. 얼핏 남자 검사와 여자 검사가 교장실에서 교장선생님과 얘기하는 걸 봤는데, 그 검사가 옆에 남고 출신이라던데, 하던 수학과 이 선생님의 말이 떠오르는 순간 징어는 단상 아래를 바라봤다.
백현이었다.
옆에는 같이 온 여자검사가 서 있었다. 자신을 바라보는 백현의 옆 모습을 사랑스럽게 바라보는 여자. 방송반 아이가 마이크 거치대를 설치하다가 징어에게로 쪼르르 달려와서는
쌤, 저 여자 검사님이 남자 검사님 되게 좋아하는거 같죠?
징어는 그저 대충 대답할 수 밖에 없었다. 방송 준비를 하며 선생님들이 하시는 말씀을 다 들었는지 여자 검사님이 물도 건네주고 옷깃도 만져주고 말투에 애교가 뚝뚝 묻어나더라며 재잘거리는 학생에게 쪼끄만게 까불고 있어, 하며 핀잔을 준 징어지만, 사실 그 모든 말들이 마음에 와서 박혔다. 좋은 여자를 만났구나.
징어는 10년전과는 다르게, 그를 축하해 줄 심산이었다. 물론, 변백현이 나쁜년에게 먼저 아는척을 한다는 전제하에. 백현이 니가 무슨 낯짝으로 아는척을 해, 하면 징어는 그냥, 요즘 애들 말처럼 짜져있을수도 있었다. 모든걸 마음대로 했었던 10년전 오징어는, 10년후에 그에게 모든것을 해줘야 마땅하다고 생각했고, 그러고 싶었다.
특강은 두시간동안 계속 되었지만, 학생들은 누구 하나 지루해하지 않았다. 여자 검사님은 자신을 김태연이라고 소개했고, 검사답게 말도 조리있게 잘 하고, 무엇보다 하는 짓이 밉살스럽지않고 예뻤다. 여자인 김검사님의 강연이 여고생들에게 지루하게 느껴질쯤, 김검사님은 재치있게 백현에게 바톤을 넘겼다.
마이크 선이 갑자기 빠져 강연 도중에 소리가 안나오는 상태였다. 방송부 학생들은 강당 부스안에 들어가 딴짓을 하는건지 상태를 모르는듯 했고, 백현은 서투르게 마이크 선을 연결하려다 정 안되겠는지 징어를 불렀다.
고마워요.
백현은 징어에게 들릴듯말듯 감사인사를 전했다. 저도 모르게 울컥 서러워진 징어였다. 백현이 모르는척을 한다면 당연히 모르는척 해주겠노라고 생각했지만, 현실은 달랐다. 왠지 모를 섭섭함에 징어는 후다닥 단상 아래로 내려왔다. 백현의 시선이 징어의 뒷모습에 살짝 머물다가, 이내 아무 일 없었다는듯 자연스레 강연을 이어갔다.
강연은 성공적이었다. 교장선생님은 두 검사분께 감사하다며 시간이 되시면 전 교사들과 함께 회식자리를 갖자고 하셨다. 야자 감독도 아닌 징어였지만, 친한 이 선생님께 오늘 몸이 좀 안 좋아서 회식에는 못 가겠다고 징어가 말했다. 이 선생님은 오랜만에 자린고비 교장선생님이 쏘시는 회식에 설레하며 응, 오쌤 몸조리 잘해. 하며 아무렇지 않게 가방을 챙겨 선생님들의 뒤를 따랐다. 야자 감독인 문 선생님과 신 선생님은 누가 징어에게 감독을 맡기고 따라갈까 눈치만 보다가, 영 기운이 없어 보이는 징어를 보고는 그저 회식자리에 따라가지 못하는 신세를 한탄하며 징어를 배웅했다.
징어는 걷는걸 좋아했다. 학교가 마치면 작은 강의 돌다리를 건너서, 공원을 지나서, 그리고 작은 상가들을 지나서 집에 오곤 했다. 강에서는 물소리가, 공원에서는 풀냄새가, 작은 상가에서는 아기자기한 물건들이 징어의 피로를 풀어주는 듯 했으나 오늘만큼은 달랐다.
머리속이 복잡했다. 지금이라도 회식자리에 합류해볼까, 했지만 그럴만한 용기도 낯짝도 없었다. 그저 얼른, 집에가서 씻고 잠이나 자야겠다고 생각한 징어였다.
얼마쯤 자고 일어났는지, 징어는 부스스 눈을 떴다. 열시 반. 학교가 마치고 일곱시 쯤 집에 도착했고, 기운이 없어 침대에 잠시 누워있으려던걸 세시간 넘게 잠이 들었던 징어였다. 샤워를 할 요량으로 옷을 챙기고, 무의식적으로 핸드폰을 확인했다.
잠잠할 줄 알았던 징어의핸드폰에는 이 선생님의 부재중 전화가 와 있었고, 카톡이 여러통 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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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당황스러운 징어였다. 고맙습니다, 하던 백현이 자신의 번호를 물어봤다니. 어질어질한 마음에 이 선생님에게 답장을 보낼 정신도 없이 욕실로 도망치듯 들어왔다. 오징어, 정신 차리자. 정신을 차리려고 찬물에 샤워를 했지만 머리는 더 지끈거렸고, 자꾸만 축축 쳐졌다.
변백현이 머릿속에서 떠나지를 않았다.
샤워를 하고 조금 정신을 차린 뒤 이 선생님에게 답장을 하려고 카톡을 켠 징어는, 이 선생님의 카톡에 묻혀 차마 보지 못한 하나의 메세지를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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