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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가가 내 인생에 불쑥 나타난지도 어느덧 보름이 지나면서 내 일상도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어. 예컨대 아침에 일어나보면 어느새 부엌에서 식사 준비를 하고 있는 슈가의 뒷모습이 보인다던지, 외출을 하고 돌아온 저녁이면 쇼파에 길게 누워 텔레비전을 보던 그가 고갯짓으로 나를 맞아준다던지 하는, 사소하다면 사소하다고 할 수 있는 생활의 파편들.
아무리 천사니 뭐니 해도 처음에는 외간 남자가 내 집에서 밥이며 청소며 빨래를 해주며 살고 있다는 현실에 도무지 적응을 하기가 힘들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집에 돌아오자마자 소파부터 힐끔거리는 나를 보면서 새삼 깨달았어. 슈가와 함께 사는 생활이 어느덧 내게 익숙함으로 정의되고 있다는 것을.
“슈가, 나 왔어-.”
“뭐하다 이렇게 늦었냐. 저녁은 먹고 왔지?”
“아니. 나 배고파, 헤헤.”
“…야. 너 양심 졸라 없는 건 알지? 아홉시 넘어서 들어오는 주제에 저녁을 왜 안 쳐먹고 오냐? 너 내가 니 집사라고 아주 막 부려먹지, 아주?”
슈가가 처음보다 바뀐 점이 있다면 글쎄, 예의상 꼬박꼬박 붙여주던 주인 호칭을 이젠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는 점과,
“나, 너가 잘하는 그…아이스크림 파르페 먹고 싶어. 해줄거지? 응?”
“지랄. 파르페 하나 만드는 게 얼마나 귀찮은 줄 알면서, 이 카페 알바생이. 역지사지 모르셈?”
“아 그래도 파르페 먹고 싶단 말이야아. 슈가야아아-”
“시끄러. 점심에 김치찌개 해 놓은 거 남았으니까 그거-. 아 떼 좀 쓰지 마! 어린애냐?!”
화려하고 고급졌던 진수성찬들이 소박한 한식 메뉴들로 점차 바뀌어간다는 것 정도랄까.(날이 갈수록 점점 더 까칠해지는 건 기분 탓인 걸로 살포시 합리화를 해보자.)
그물망에 머리를 묶어 넣고 일을 해야 하는 카페 방침 때문에 팽팽하게 당겨진 머리를 풀어내리자, 잔뜩 헝크러진 머리카락 때문에 애를 먹었어. 안 그래도 얼굴에 기름이 올라오기 시작해서 화장을 빨리 지우고 싶은데 잔뜩 녹초가 된 몸은 화장실까지 걸어가는 것도 귀찮다고 외치고 있고.
핸드백을 현관 앞에 팽개쳐두고 머리를 잡고 낑낑대고 있자 어느새 머리 위쪽에서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들려와.
잠깐, 머리 위쪽?
“살살 빗어내려야지 그렇게 우악스럽게 잡아당기면 풀리냐.”
“야아, 내가 해도 되는ㄷ…”
“정말 귀찮은 주인님이야.”
순간이동이라도 했는지 소파에 누워있던 슈가가 어느새 내 뒤쪽에 서 있었어. 또야. 이 이상한 기분. 귓가에 가벼운 한숨이 스치는 느낌에 몸을 부르르 떨었어. 그에게서 나는 특유의 달큰하고 싸한 민트 향기가 코끝을 감쌌어.
위, 위험해… 항상 새까만 사제복을 입고 있는 주제에 슈가는 종종 이렇게 야시꾸리한 분위기를 만들어서 사람을 당혹스럽게 만들어. 처음에는 무의식적으로 하는 행동인 줄 알았는데, 요즘 들어서 유난히 내가 당황하는 모습을 즐기는 것 같다는 의심이 들었어.
온몸에서 뿜어대는 ‘야함’에 내가 얼굴이라도 붉히거나 눈을 질끈 감으면 푸하하, 비열하게 웃으면서 반했냐고 놀려대기 바쁘거든.
“이렇게 빗으면…자, 풀리잖아.”
“슈, 슈가…”
“근데 말이야, 주인님.”
“…어어?”
내 등 뒤에 선 상태로 팔을 뻗어 머리를 정리해주는 바람에 백허그라도 하는 듯한 포즈에서 1차 당황, 귓가에 가까워지는 슈가의 얼굴에 2차 당황, 겁나 야하게 가라앉은 낮은 목소리로 귓속말을 하는 것에서 3차 당황. 스트라이크를 연달아 맞으니 머리가 어질어질해지는 기분이었어. 역시 슈가는 건강에 해로운 것 같아. 잔뜩 굳어서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하는데, 맙소사, 조금 설레이…
“…머리 좀 감아라. 미친, 떡졌잖아.”
“아 꺼져!”
…기는 개뿔. 몰려오는 깊은 빡침에 성난 황소처럼 다리를 뒤로 뻗어 슈가의 정강이를 홱 걷어차고 씩씩대며 화장실로 걸어갔어. 괴성을 지르며 육두문자를 날리는 슈가를 애써 무시하면서.
“야!! 이 미친 여자가 진짜-. 존나 무슨 짐승이세요?! 왜 멀쩡한 사람을 걷어차고 지랄?!”
“니가 사람이냐 이 타락천사야!”
“어쭈, 이젠 막 대드신다, 이거? 아픈 건 똑같이 느끼거든?”
“어쩌라고, 어쩌라고오!”
이젠 제법 슈가에게 대드는 베짱도 생겼어. 고개를 치켜들고, 양손을 허리에 올리는 스스로가 제법 뿌듯해. 그래, 김탄소! 너는 쭈구리가 아니야! 할 말은 하고 살아야지!
“…야, 작작 해라?”
…제 아무리 슈가가 익숙해졌다고 하더라도 역시, 빡친 타락천사님의 눈빛을 당해낼 정도로 간이 커지진 않았어.
내 팔을 붙잡고 잇새로 으르렁거리는 말투에, 오늘도 나는 꼬리를 내리고 비참한 패배를 선언해.
“ㅈ,죄송합니다.”
“주인이라고 봐줬더니, 아주.”
“그러게 왜 시비를 걸어…요...”
“샤워하고 나오면 알아서 김치찌개 차려먹어라. 알겠냐?”
“…예.”
밀려오는 피로와 약간의 섭섭함에 입을 비죽 내밀고 화장실 문을 닫았어. 천사라기보다는 악마 쪽에 가까운 것 같다고 툴툴대며 샤워를 마쳤어. 내가 슈가에게 과분한 대접을 받으며 지내고 있다는 건 알지만 그래도 눈을 치뜨고 무서운 말투로 쏘아붙일 때 서운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아. 매사에 관심이 없다는 듯이 굴어도 은근하게 챙겨주던 모습이 익숙해서 그런 걸까. 티셔츠와 트레이닝 바지를 꿰어입고 수건으로 머리를 털며 화장실에서 나왔는데,
“야아, 슈가…”
“뭐.”
“내가 먹고 싶다고 해서 나 샤워하는 동안 이거 만든 거야?…”
“그럼 너 말고 또 누가 야밤에 파르페를 먹겠다고 떼를 썼겠냐.”
“헐...완전 감동이다…잘 먹을게.”
“설거지는 니가 해라, 주인.”
식탁 위에 유리그릇 한가득 슈가표 아이스크림 파르페가 놓여 있었어. 무심한 척 소파에 누워 대중가요 방송을 보던 그를 향해 눈을 초롱초롱 빛냈어. 싫다고 짜증을 내면서도 투덜투덜대며 얼음을 갈고, 아이스크림을 퍼 담았을 슈가의 뒷모습을 생각하니 웃음도 조금 났어. 하여간, 천사가 맞긴 한가봐. 파르페를 다 만들고 급하게 피웠는지 덜 닫힌 베란다 문 틈으로 새어들어오는 담배 냄새는 못 맡은 척 넘어가기로 했어. 얌전히 식탁에 앉아 숟가락을 집어드는 순간이었어.
딩동.
“어라, 이 시간에 누구지?”
초인종이 울렸어. 현관문 쪽으로 고개를 튼 슈가가 미간을 찡그렸어.
“탄소야, 김탄소! 나 민지야, 심심해서 놀러왔지롱. 문 열어줘!”
미친, 우리 과에서 가장 입이 싸기로 유명한 김민지가 밤 10시가 다 되어가는 이 시간에 우리 집에 찾아온 거였어.
늦은 밤에 내 집에서 티비를 보고 있는 슈가를 민지가 본다면…아, 무슨 소문이 날지는 상상조차 하고 싶지도 않아.
본능적으로 슈가 쪽으로 시선이 옮겨졌어.
아아, 어떡하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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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응 연재에요!
독자님들 안녕하세요! 날씨가 점점 더 추워지네요ㅠㅠ옷 따뜻하게 입고 다니시고 건강 조심하셔요ㅠㅠ
요즘 감기는 독해서 잘 낫지도 않는대요...쿨럭
이번 편 마지막에 살포시 등장한 넌씨눈 친구 김민지양이 찾아오면서ㅋㅋ다음 편에서는 슈가와 여주의 본격 대처력을 확인할 수 있을 것 같슴다!
몇가지 에피소드를 더 풀고 여주와 슈가의 동거(?)(feat.ㅇㅅㅁ)가 조금 더 익숙해지면 슈가의 과거와 벌을 받게 된 이유도 나올 것 같아여!ㅋㅋ
댓글에 일일히 답글을 달지는 못하지만 독자님들 전부 격하게 사랑해요ㅠㅠ 댓글에 질문을 남겨주시면 한꺼번에 모아 Q&A를 하겠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려요!
+)암호닉
암호닉은 가장 최근 글에 신청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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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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