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날 퉁퉁 부어버린 내 눈을 보며 걱정하던 지훈이에게 잠을 못 자서 그렇다고 둘러댔다.
지훈이가 내게 직접 말해주길 바라며 나는 그렇게 속으로 지훈이의 짐을 삼켜야 했다.
언젠가는 지훈이가 내게 직접 말해줄 날이 올 줄만 알았다.
" 야 이지훈, 너 요새 왜 그러냐? 왜 자꾸 실수해. "
" 아 형 죄송해요, 요새 좀 피곤해서 그런가 봐요. "
" 후... 10분만 있다가 다시 하자, 지훈아 잘하자 좀 응? "
" 네 형, 죄송합니다. "
불안한 마음에 손톱 끝만 잘근잘근 씹고 있으면 한숨을 쉬며 내게 천천히 걸어오는 지훈이었다.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지훈이를 바라보자 지훈이는 내 무릎을 베고 누워 눈을 감았다.
" 지훈아... 힘들어? "
" 아니, 별로. "
" 거짓말한다, 너 이마에 다 써놨네. 나 힘들어 죽겠어요~ "
" 웃겨, 대체 어디 적혔냐. 난 모르겠는데? "
" 원래 그런 거 본인은 잘 모른댔어. "
" 아무튼 말은 잘해. "
입가를 끌어올리며 예쁘게 웃는 지훈이를 가만히 내려보다 슬며시 말을 던졌다.
" 근데 지훈아... 너 요새 별일 없지? "
" 그럼, 매일 작업만 하는데 별일은 무슨. "
" 그렇구나... "
" 근데 갑자기 왜? "
" 아 아니야, 아무것도. "
또 이렇게 지훈이는 나와 자신의 사이에 벽을 하나 또 세웠다.
그 벽이 너무 단단해서 너무 불투명해서 나는 그 안을 들여다볼 수도, 벽을 허물고 들어갈 수도 없었다.
갈수록 지훈이는 하루에 하는 일 중 대다수를 실수로 마무리했다.
같이 작업하던 선배와 겨우 작업을 마무리하고 지훈이에겐 잠시 휴식기간이 왔다.
지훈이는 일주일에 두 번 나 몰래 안과를 다녀오는 듯했다.
나는 다 알면서도 모르는 척 그렇게 지훈이를 기다렸다.
오랜만에 지훈이의 집을 들려 같이 청소를 하게 됐다.
나는 드레스룸을 위주로 청소를 해나갔고 지훈이는 그동안 밀린 집안일을 하고 있었다.
한참 청소에 열을 올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파열음이 들렸다.
놀라 밖을 나가보면 깨진 접시를 난감한 듯 쳐다보는 지훈이가 보였다.
서둘러 그곳으로 가 접시를 치우고 파편을 쓸어 담았다.
파편을 다 쓸었는데도 난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나를 미안한 듯 쳐다보는 지훈이의 시선이 느껴졌기에, 그리고 자신에게 화가 난 지훈이가 느껴졌기에.
그렇게 나는 또 지훈이 몰래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지훈이에게 조용히 질문을 던졌다.
" 왜... 안 말해줘? "
" 뭘. "
" 너 안과 다니는 거... "
용기 내 지훈이를 쳐다보면 잔뜩 굳은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 어떻게 알았어. "
" ...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지훈아. "
" ... 별거 아니야, 그냥 질병이래. 안구 건조증 같은 거. "
" ... 거짓말 하나 또 했네. "
" ... "
" 너 앞 못 보게 될 수도 있는 게 별거 아니야...? "
" 누가 그래, 나 앞 못 보게 된다고 누가 그랬어. "
" 이지훈! 지금 너한텐 그게 중요해...? "
복잡한 듯 얼굴을 손으로 쓸던 지훈이는 아무 말없이 소파에 앉아 나를 불렀다.
" 이리 와, 앉아서 얘기해. "
지훈이가 앉은 반대편에 앉아 지훈이의 입이 열릴 때까지 기다렸다.
하지만 늘 그랬듯이 지훈이의 입을 열리지 않았다.
" 대체... 언제까지 나 모르는 척해야 해? 네가 이제 진짜 영영 앞을 못 보면...
그제야 내가 어머 지훈아 너 왜 그래? 이래야 나한테 말해줄 거야...? "
" ... 칠봉 울지 마. "
" 제발... 나 네 여자친구잖아... 네 입으로 별거 아니라며, 별거 아닌 거니까 말 좀 해주면 안 돼? 응? "
" 나 정말 괜찮아, 울지 마. "
" 왜 너 혼자만 자꾸 멋진 거 다하려고 하는데, 너 지금 하나도 안 멋져. 그러니까 네 짐 좀 나한테 나눠줘, 응? "
" ... 나중에, 내가 정말 네 도움이 필요하면. 그때... "
지훈이의 말을 끝으로 나는 고개를 숙이고 엉엉 울었고 지훈이는 복합적 의미가 담긴 한숨을 뱉었다.
울다 지쳐 잠이 든 나를 침대에 눕혀주고 소파에서 앉아있던 지훈이는 긴 밤을 홀로 많은 생각에 잠겨 밤을 보냈다.
우리의 하루하루는 그 전과 별다를 것 없이 순조롭게 흘러갔다.
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지훈이 혼자 있던 시간이 줄고 나와 함께 하는 시간이 늘었다.
잘 보이지 않는 눈으로 밤새 작업하는 지훈이 곁을 지키다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눈을 떠보니 나를 조용히 내려다보고 있던 지훈이와 눈이 마주쳤다.
" 지훈아, 뭐 해... "
"... 그냥, 너 안 잊게 많이 봐두려고. "
" 나를 왜 잊어... 그럴 일 없어... "
" 나 시력 잃으면 너 못 보잖아, 그래서 너 얼굴 잊으면 어떡해. "
" ... 내가 그런 말 하지말랬잖아. "
" 너야말로 왜 그래, 왜 자꾸 나한테 희망만 심어주냐. 나도 이제 알아 못 고치는 거. "
" 누가 그래, 설령 그런다 해도 내가 네 눈이 되어주면 되잖아 응?
" 막상 내 눈이 병신 됐는데 네가 날 버릴지 누가 알아. "
" ... 뭐라고? "
상처받은 듯 떨며 울먹이는 나를 보곤 지훈이는 자신의 두 눈을 마구 비비며 내게 외쳤다.
" 미안해, 미안하다. 봉아 내가 눈 병신 되더니 이제 머리까지 말을 안 듣는 것 같다. "
그런 지훈이의 두 손을 붙잡고 흐느껴 울었다.
제발 그만하라고 눈 다친다며 말리는 나를 가만히 안더니 이내 지훈이도 눈물을 삼키는 듯 등이 불규칙적으로 올라갔다 내려갔다 했다.
밤샘 작업과 보이지 않는 눈 때문에 피곤함이 많이 쌓였던 건지 지훈이는 작업실 한 쪽에 놓인 간이침대에 누워 잠을 청하고 있었다.
그런 지훈이의 머리카락을 조심스레 쓰다듬다 어지럽혀진 작업실을 청소하려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다.
그러다 내 눈에 들어온 것은 다름 아닌 점자책이었다.
아주 기초적인 것부터 자세히 설명돼있는...
점자책을 끌어안고 녹음 부스에 들어가 어린아이처럼 펑펑 울었다.
이래도 방음시설 때문에 곤히 잠든 그 아이에게 안 들릴 것이라 믿었기에 나는 참았던 모든 것을 토해냈다.
지훈이는 내가 더 충격받을까 봐 내가 더 불편할까 봐 자신이 믿을 수 없는 아니 믿기 싫은 사실을 인정해버리고 나를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이 아이는 도대체 왜 지금 이 순간까지 멋진 건 다 혼자 하려고 하는 것일까.
오랜만에 집을 찾았다.
지훈이가 좋아하는 반찬으로 도시락을 만들어 다시 작업실로 향했다.
힘겹게 작업 중인 지훈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천천히 다가갔다.
청각이 더 예민해진 지훈이는 까칠한 어투로 누구냐 물었다. 지훈이는 소리 나는 곳으로 쳐다보지 않았다.
누군지 봤는데도 리액션 하지 못하면 상대방이 이상하게 생각할 것이 분명하기에.
그런 지훈이를 조심스레 안았다, 지훈이가 보지 않아도 나를 알아 봐주길 바라며 그렇게 지훈이를 꼭 껴안았다.
지훈이는 키보드를 만지던 손을 멈추고 자신의 목에 둘러진 내 팔을 가만히 토닥였다.
" 왔냐, 들어올 때부터 말 좀 하고 들어오지 바보야. "
" ... 미안... "
" 다음부턴 그렇게 해 알았지? "
" 응 그럴게 지훈아. "
잠시 작업을 중단하고 지훈이에게 약을 먹이기 위해 나는 서둘러 도시락을 폈다.
지훈이는 그저 조용히 앉아 나를 기다렸다.
" 지훈아, 이거도 먹어봐. 왜 자꾸 앞에 있는 것만 먹어? "
" 아 그거 싫어서 안 먹는 거야. "
" ... 이게 뭔 줄 알고 싫다는 거야 지훈아. "
" ... 봉아, 밥 먹자. "
" ... 네가 제일 좋아하는 거야, 햄 넣은 계란말이. "
아무 대답 없는 지훈이를 보며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으면 지훈이는 조금 남은 시력으로 나를 찾아내 내 얼굴에 흐르는 눈물을 더듬더듬 손으로 훔쳐냈다.
" 울긴 왜 울어, 먹을 거 앞에서 우는 거 아니라며. "
담담한 듯 나를 달래는 지훈이가 마냥 고마워서 그래서 나는 눈물을 그쳐야만 했다.
지금 나보다 지훈이가 더 울고 싶을 테니까.
조금 나아지는 것 같았던 지훈이의 상태는 무슨 이유인지 갑자기 급격하게 악화되었다.
잠시 음악 활동에 공백기를 선언하고 지훈이는 한적한 병원에 입원을 하게 됐다.
각막 기증을 받지 않겠다고 고집 부리는 지훈이를 어루고 달래는 일에도 점차 능숙해져갔다.
나는 날마다 기도한다, 우리 지훈이가 각막 기증을 받게 해주세요 이렇게.
그러나 하늘까지 내 기도가 닿지않은 모양이다. 한 달째 아무 소식도, 연락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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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인티가 많이 아픈가봐요... 저 어제 2번 글 날렸는데... 오늘도 날릴 뻔 했어요 헤헤...
오늘 지훈이와 봉이 너무 안쓰럽고 애잔하게 나온 것 같아요ㅠㅠ
우리 지훈이 곁을 잘 지켜주고 있는 봉이! 기특하고 사랑스워요♥
그리 길지도 짧지도 않을 이야기이지만 앞으로 남은 이야기도 많이 기대해주세요!
오늘 날ㅆ가 무척 안 좋은데 밖에 다녀오신 봉봉들 꼭 따뜻하게 있으세요ㅠㅠ 저는 이미 감기에 걸렸답니다ㅠㅠㅠ
호시십분에 올려야지 헤헤 봉봉들 사랑해요! 아참 그리고 저는 모든 독자님의 댓글에 꼭 답댓을 달아드리려 노력합니다ㅠㅠㅠ
너무 밀려버려서 답댓이 조금 늦을 수도 있으니 속상해 하지 마시고 기다려주세요!
암호닉 신청, 신알신 모두 다 감사히 받고 있습니다!
♥ 봉봉이들 명단♥
♥[뿌존뿌존/순제로/비둘기/원우야/유현/흰둥이/슈오/세하/고양이의 보은/무기/명호엔젤/수녕하트/들국화
뒷구름봉/코코팜/지유/뿌씅꽌/규애/이과민규/천상소/뿌라스/세봉아 사랑해/ 토마토/한라봉/봄나무/별/윤/경상도/지하/원우야밥먹자/아이닌/너구리
쎄봉/0526/봄지훈/가방님/바나나에몽/붐바스틱/또렝/챠밍]♥
혹시라도 빠진 봉봉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