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한테선 향기가 나, 짜증날 정도로 달콤한 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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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교시를 그렇게 흘려보냈다. 수업시간에 누군가와 그렇게 신나게 웃고 떠들긴 오랜만이었다. 그것도 교실이 아닌 복도에서. 권순영은 오늘따라 듣기 좋은 말을 많이 했으며, 그게 내 향기를 맡기 위한 개수작이었다면 꽤 성공적이었다. 나도 모르게 마음을 열어 가고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안된다. 권순영은, 선을 그어야만 하는 대상이었다. 난 그때처럼 또 다시 상처 입고 싶지 않았으므로.
딩동댕동-
종이 울리고 잔뜩 긴장한듯한 얼굴의 국어 선생님이 앞문을 열고 나오셨다. 권순영은 밝게 웃고있던 얼굴을 살며시 굳혔다.
"순영아. 너 무슨..."
권순영은 끝까지 잇지 못한 말에 의문을 표하듯 눈가를 살짝 찡그렸다. 그럼 선생도 사람인데, 놀라시는게 당연하지.
"너희 둘 다...벌점 5점씩이다."
내가 이럴줄 알았지. 권순영을 살짝 흘겨 보려다 관둔다. 나도 같이 떠든거 맞는데, 뭐 어때.
"선생님. 벌점 저만 주시면 안 될까요?"
권순영의 목소리가 불쑥 끼어든다.
"여주는 공부하려고 했어요. 제가 계속 말건거 뿐이지."
권순영은 장난스럽게 말하며 선생님을 바라본다. 쟤는 갑자기 어쩌겠다고. 선생님은 권순영이 이렇게 말하는 모습을 처음 보신 것이 분명하다. 눈이 평소보다 두배는 커지신걸 보니.
"일단 순영이는 교무실로 좀 따라 와 보렴"
선생님은 책을 품에 안고 몸을 돌려 먼저 걸어 가신다. 권순영은 나를 슬쩍 보고 한쪽 눈을 찡긋거린다. 그래봤자 하나도 안 멋있다. 고마우라고 한거면, 조금 고맙긴 하고.
멀어지는 권순영의 뒷모습을 지켜 보다가 문득 애들의 시선이 이쪽으로 쏠려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래. 점심 쉬는시간이었다. 다시 어지러워지는 머리. 고개를 숙이고 나를 향한 시선들에게서 벗어나려 교실 속으로 향한다.
내 책상에 이르러 생각을 정리하려 털썩 주저 앉는데, 친구가 조심스럽게 다가온다. 그래. 어제 나 친구한테 화내고 나갔었지.
"김여주..."
고개를 들어 친구를 바라 본다. 친구는 진심으로 미안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어제는 진짜 미안. 내가 왜 그런 말을 해가지고...생각이 짧았어."
친구는 걱정하고 있었다. 혹시라도 내 상처를 건드렸을까 조심스러웠던거다. 화났던 마음이 스르륵 풀린다. 그래, 그때 유일하게 나를 믿어주던 친구였는데. 나 또한 작은 일에 있어선 믿어 줬어야 하는건데. 어제는 내가 너무 예민했다. 날 둘러싼 말들을 들으니 다시 머리가 아파 와서. 그 때의 나를 기억하면서 똑같이 감싸 주지 않는 친구한테 순간 속상한 마음이 들어서.
"됐어. 앞으로 안 그러면 되지."
친구에게 미소를 지어 보인다. 친구는 밝게 웃음을 터뜨린다. 친구는 내 감정이 상하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하자 금새 전처럼 편한사이로 돌아간다. 이런 좋은 친구에게 화를 냈다는 사실이 살짝은 미안해진다.
"사실 어제 너 나가자마자 바로 따라 나갔었는데."
친구는 옆자리에 앉아 입을 연다. 무슨 말할거라도 있는듯 목소리가 약간 상기되어 있었다.
"복도에서 너 찾았을땐 권순영이 오른 팔로 너 감싸 안고 있더라고. 나도 처음엔 상황 파악 안돼서 옆에 있던 친구한테 들었어."
어제의 기억이 떠오른다. 제 3자의 입장에서 듣는건 처음이다. 친구는 처음부터 끝까지 봤다는 거다. 그때의 권순영이 어땠는지.
"응응. 그래서?"
"그때 멀리 있어서 자세히는 못 들었지만 권순영이 갑자기 뭐라고 욕하더니 어떤 애한테 화를 냈어."
정신이 멍해진다. 내 기억에 그런 장면은 없었다. 그렇다면 내가 그 전에 쓰러졌다는 거다. 권순영이 어떤애한테 화를 냈다고? 난 친구를 보며 고개를 기울인다.
"되게 격하게 말하는 것 같았는데. 아무튼 잠깐 기다리라고 하고는 너 부축해서 교실로 갔는데."
"교실로?"
"응. 애들보고 다 비키라고 하면서 엄청 화나 보였어."
"그럼 어제 권순영이 나 데려다 준거였어?"
"응응."
머리속이 복잡해진다. 권순영이 데려다 준거였구나. 근데 왜 이유없이 화를. 잠깐 지켜본 것 뿐이지만. 걔가 그럴 애가 아니라는건 알것 같았다. 친구는 아직 말이 끝나지 않았는지 입을 다시 뗀다.
"그러고는 다시 교실 나와서 그 남자애랑 같이 밖으로 나갔는데. 그 다음은 모르겠어."
밖으로 나갔었다고...남자애...아무것도 짐작가는 것이 없었다. 마지막으로 생각나는 것이라곤. 나를 무너지게 했던 어떤애의 목소리. 내 몸매에 대해 지껄이고 있었던 것 같다. 정신을 잃는 순간. 권순영이 내 어깨를 붙잡고.
'시발, 너 방금 뭐라 그랬어'
뭔가 번쩍 떠올랐다. 손등의 상처. 평소보다 날카롭던 권순영의 눈빛. 그럼 그게 다. 머리속은 복잡해지다가 한순간에 하얗게 비어버린다. 가슴속이 뜨거워진다. 권순영은 왜이렇게 나한테. 내가 어떤 애일지도 모르면서. 나는 뭐 하나 보여준 것도 없는데. 마음을 제대로 열어준적도 없는데 대체 뭘 믿고. 친구는 조용히 나를 바라보다가 말한다.
"이건 진심으로 말하는건데."
"..."
"권순영은 너한테 진심인것 같아."
"..."
"너한테 들은 것 밖엔 모르지만. 뭔가 느껴져."
친구를 향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진심이라는 말은 오랜만이었다. 그때 다 짓밟혀 사라진 줄 알았던 나를 향한 진심이란 말이. 친구의 입에서 나와 심장을 간지럽힌다. 진심. 가장 쉬운것 같지만 가장 사람을 아프게도 하는. 많이 아팠었던 그 감정.
과연 너는 나에게 진심일까. 예쁜 말로 나를 노래하다가, 돌아서 심장을 짓밟진 않을까. 다시 나를 괴롭히는 기억에 인상을 찌푸리자 친구가 말 없이 내 등을 두드려 준다.
권순영은 괜찮을까. 나를 감싸줄 수 있을까. 나한테, 얼마만큼 진심일까.
그렇게 친구에게 한참 위로를 받다 천천히 급식소로 향한다. 복도를 걷고 있는데 저 멀리 익숙한 노란색 머리가 보인다. 권순영은 주머니에 손을 넣고. 우리가 처음 만났을때처럼 무심한 표정을 하고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다.
처음 만났을 때와 같다. 하지만 지금은 처음과 다르다. 친구는 나를 보며 생긋 웃더니 손을 떼고 슬쩍 물러나 준다.
"오늘은 권순영이랑 먹어. 나 다른 친구들이랑 먹을게."
권순영은 이제 나를 보고. 그냥 지나치지 않았으므로. 나를 마주치더니, 세상이 무너지도록 환하게 웃었으므로.
나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뭔가가 내 마음을 간지럽혔으므로. 우리는 이제 처음과 다르므로. 난 권순영을 마주 보고 환하게 웃고는. 다가가 말한다.
"우리 밥 먹으러 갈래?"
권순영은 예상치 못했다는 듯 작게 웃음을 터트리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가온다.
"그런 말도 먼저 할줄 알고."
"..."
"예쁘네."
머리를 감싸는 손. 권순영은 나를 따뜻하게 바라본다. 불안했던 마음은 권순영을 마주치는 순간 눈 녹듯이 사라져 버린다. 이제는 해 봐도 될까. 내가 너를, 한번 믿어 봐도 될까.
꼭 읽어주세요♡ |
여러분!새봉이가 또다시 한밤중에 왔네유...제가 이번주 월요일부터 바쁠것 같다고 생각하긴 했는데 제 예상보다 몇배는 훨씬 바쁘고 피곤하네요ㅠㅠㅠ하지만 사랑하는 독자님들의 댓글 하나하나 읽고 진짜 많이 감동해서 시간 쪼개가며 글 열심히 썼숨니다!!!그래서 이시간에라도 헐레벌떡 들고 왔숨니다....!암호닉을 그렇게 많이 신청해 주시고 정성스러운 댓글들도....♡진짜진짜 감사드립니다 제가 다 답글 달아드리지 못해도 매일 읽으며 진심으로 힘내고 있다는 사실 알아 주셨으면 좋겠어요!짧든 길든 저한텐 다 너무 소중한 댓글들입니다ㅎㅎㅎㅎ진짜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제 글 읽어주시는 모든 분들께 너무 감사드린다는거!!진짜 사랑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