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운의 몸이 뒤틀린다. 여기 저기 생채기가 생겨 성치 않은 몸을 이끌고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마치 절규하듯 택운의 앞을 가로막는 검은 잔상들이 질척이며 달라붙는다. 피가 새어나오도록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바라보는 시선.
그에 택운의 까만 눈동자가 바들거리며 크게 뜨인다.
끔찍한 잔상의 커다란 입이 마치 그를 잡아먹을듯이 시뻘겋게 열린다.
누군가를 닮은 듯한 여자였다. 택운에게 소리치는 그 얼굴이, 어쩐지 낯설지 않았다.
"네 이놈..! 사내도 홀리는 것이야? 진정 네 어미를 쏙 빼 닮았구나!!"
"..."
"왜.. 왜 우리 아들을 홀린 것이야!! 왜!!"
"..."
"요물 같으니라고..."
그것은 재환을 닮기도 했고, 상혁을 닮기도 했다.
-
"흐윽..!"
촤악. 몸에 닿는 뜨거운 액체에 택운이 사경을 헤매다 말고 급히 눈을 떴다.
오래도록 감겨 있던 눈에 들어오는 환한 빛이 적응이 되지 않아 눈을 천천히 끔벅였다.
온 몸에서 모든 기운이 빠져 나가는 느낌에 제대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이대로, 땅 속으로 꺼질 것만 같다.
어쩐지 점점 더 뜨거워지는 몸.
그제서야 택운의 풀린 시선이 아래로 내려간다.
그 곳에는, 온 몸이 붉은 상처로 도배 된 자신의 하얀 몸이 벌거벗겨진 채로 커다란 나무통 안에 뉘여져 있었다.
이 곳이 어디인지, 제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지 인식 조차 하기 전에 낯선 가녀린 계집의 목소리가 조용히 울려 퍼진다.
"정신을 차리셨나이까."
"..."
머리를 하나로 높게 쪽진 어린 계집이 둥글둥글한 그릇 하나를 들고 천천히 다가온다.
택운이 반사적으로 몸을 웅크렸다. 벗은 몸을 가리고자 하는 본능이었다.
계집은 그런 택운의 모습에 살짝 고개를 숙였다.
"저의 눈이 보는 것은 보는 것이 아닙니다. 저의 귀가 들은 것은 들은 것이 아닙니다."
"..."
"저는 알지 못합니다. 당신께서 왜 이 곳으로 오게 되셨는지."
"..."
"그저, 당신을 보살피라는 주인의 말씀이 있었을 뿐."
무언가를 묻기 위해 택운이 급히 입술을 달싹였다. 그러나, 곧 무언가를 깨닫고는 다시금 벌어진 입술을 꾸욱, 다물었다.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그런 택운을 가만히 보고 있던 계집은 이내 들고 있던 그릇에 담겨 있는 끈적한 기름을 택운이 뉘여져 있는 통 안에 들이부었다.
곧 몰아치듯이 퍼지는 달콤한 향내가 택운의 후각을 자극했다. 기름의 정체는, 향유였다.
조금은 거칠한 계집의 작은 손이 택운의 몸을 스치고 지나간다. 조심스럽게 씻기는 동작에 몸을 일으키려던 택운의 행동이 잠잠해졌다.
몸을 감싸오는 뜨거운 물과 달콤한 향에 몸이 노곤해졌다. 사고 회로가 정지된 느낌이었다.
"이 향유는, 타지에서 가져다 놓은 자스민이라고 합니다."
"..."
"하얀 피부와 성질이 잘 맞다고 합니다."
이윽고 씻기던 계집의 손이 멈추고, 택운이 몸을 일으킬 수 있도록 부축한다.
일어서면 설수록 짙어지는 어지러움에 숨이 턱, 하고 막혔다. 머리 한 쪽이 움푹 패인 것 같은 고통이었다.
후들후들 떨리는 다리를 이끌고 움직였다. 어디로 향하는지 생각 조차 할 수 없었다.
호화롭고 커다란 방의 침대에 앉혀진 택운이 창백한 얼굴로 주위를 돌아보았다.
상혁이 가 있으라던 마을로 가던 와중에 절벽에서 미끄러졌다. 그리고 깨어나보니 저는 이 곳에 있었다.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몸에서 뜨거운 기운이 날아가자 서서히 오한이 느껴진다.
자신을 놔두고서 어딘가로 자리를 떠 버린 어린 계집이 다시 문을 열고 들어온다. 그녀의 손에는 풍성한 옷가지와 장신구들이 들려 있었다.
택운의 눈 앞 까지 당도한 계집이 옷가지를 펼쳐 들었다. 새빨간 색의 치맛자락이 너울거린다.
택운의 눈이 초점을 잃고 멍하니 그것을 바라 보았다.
서서히 수면 위로 떠오르는 기억의 한 조각.
어디선가 입었던 새하얀 치마.
그리고, 한상혁.
계집이 택운의 팔을 들어 올리고서 옷을 끼워 넣었다. 힘 없는 택운의 팔목이 달랑거린다.
-
강직한 발소리가 차가운 나뭇바닥을 울린다.
욕탕의 발을 걷고 안을 살펴보는 홍빈의 거만한 눈동자가 어린 계집을 찾고 있었다.
"청하 님."
"치장은 다 시켜 놓은 것이냐?"
"예. 침소에 계십니다."
홍빈의 입꼬리가 부드럽게 밀려 올라간다. 백색의 선녀는 더욱 아름다우려나.
아름다우면 아름다울수록 좋고, 치명적이면 치명적일수록 좋다.
그래야 내가 너를 거둬들인 의미가 있지 않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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