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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한 차분해져야 했다. 불안하고 혼란스러운 감정은 밑바닥까지 가라앉히고 여기저기 조각나고 찢어진 기억을 또렷하게 덧대어야 한다. 완성된 그림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밑그림조차 존재할 리 없는 백지가 되어버린 하루들. 잘도 숨어지내며 타이밍을 노리다 순간 튀어 오른 공포감이 제 세상인 양 사지를 휘둘렀다. 그 탓에 조각들은 제자리를 찾기는커녕 어지럽게 엉켜 들었다. 특히 놀이터에서 정신 나간 사람처럼 장대비를 맞은 이후의 날들이.
남은 기억들이나 하나씩 꺼내보는 게 우선이었다.
그래서 고작 그 버섯 때문이라고?
버섯이 아니라, 그거 먹은 기생균 때문이라고!
여태 먹은 GMO 식품 다 토하고 싶다.
또래 아이들이 학교에서 몇 명이 모이기만 하면 지난 저녁과 밤, 당일 아침에 보고 들은 정보를 교환하던 것. 좀비와 닮은 기괴한 증상으로 온 나라를 들썩이게 한 바이러스의 원인. 유전자가 조작된 버섯. 그것을 먹은 어느 생명체와 그 몸에 빌붙어 살던 기생균. 부러 헛구역질하던 더부룩한 표정. 벌벌 떨리는 목소리들에 담겨 퍼지는 공포가 교실을 지배하고 있었다.
이거 봤냐? 학교에 좀비가 몰려 들어왔대.
이러다 우리 동네까지 오는 거 아냐?
쌤이 그랬는데, 시에서 한 명이라도 감염자가 나오면 휴교래.
난 좀비 되기 전에 자살할 거야. 끔찍해. 징그러워…….
…하긴.
좀비는 시체잖아.
수업이 제대로 진행될 리 없었다. 대부분 아이들이 당장에 처한 비극에 허덕이기 바빴다. 학교에 도착하자마자 휴대전화를 제출해야 한다는 교칙도 과거에 불과하게 됐다. 언제 긴급속보가 떠오를지 몰랐다. 언제 우리 동네를, 내 일상을 습격할지 몰랐다. 그나마 다행인 건, 우리 집과 학교가 속한 시구역에 발병자가 없었다는 것이다. 감염자가 나타나기 전까지 일상생활을 영위하라는 메시지가 있었다. 몇몇은 그것에 반발했다. 그것들이 언제 덮쳐올지 모르는데 일상생활이라니, 하며. 나는 그 반대였다. 극도의 공포감에 쩔어 집안에 박혀있는 일은 그들이 다가오기 직전까지 미뤄놓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너 지금 뉴스 안 봤지?
이어진 기억이 아니라는 걸 알아챘다. 교탁에 섰던 선생님의 얼굴이 순식간이 바뀌었다. 평소처럼 수업을 진행하시던 비문학 파트 선생님이다. 이편이 더 나았다. 수업 중에는 불안을 증폭시키는 요란한 말소리가 사라졌다. 대신 찢어지거나 접힌 종이가 책상 사이를 돌아다녔다. 뭐가 그리 급했는지 휘갈긴 문장이 새겨진 줄공책 파편이 내 앞에도 놓였다.
왜?
민간인한테도 총기를 보급해야 한다고 난리래. 통과되겠어, 설마? 우리 같은 사람들은 쏘지도 못하는데 말이야. 괜히 엄한 사람 죽어나게.
끝으로 갈수록 글씨가 커졌다. 총기 보급이라. 만약 총기 보급이 실현된다면 김태형은 살겠네. 헛웃음이 톡 튀어나왔다. 어울리지 않는 상황에서 웃음을 흘리는 것이 못내 이상했는지 옆자리에 앉은 남자애가 정신병 환자를 보듯이 눈동자만 도르르 굴려댔다. 정작 쪽지를 쓴 경혜는 날 쳐다보지도 않고 손톱을 물어뜯으며 휴대전화에만 신경을 쏟았다. 그 옆모습이 참, 가엽다고 느꼈던 것 같다. 나도 마찬가지였으면서.
지난 17일 ○○동에서 찍힌 CCTV 영상입니다. 도심 한가운데 팔 관절이 꺾인 채 해괴한 걸음걸이로 걸어 다니는 괴생명체가 보입니다. 경찰이 출동해 총으로 팔, 다리를 명중했지만 계속해서 움직이다가 머리를 정통으로 관통하자 쓰러집니다.
먼 거리에서 촬영된, 흐릿한 영상임에도 불구하고 선명하게 머릿속에 자리 잡은 영상. 이전까지는 사람이었을 그것은 ‘괴생명체’라 불렸다. 얼마 후에는 ‘감염자’라고 불렸고, 종내엔 ‘좀비’가 됐다. 영화 속에서 튀어나온 듯한 좀비. 스크린 속 그것들은 분장과 연기로 연출된 가짜였고, 현실의 좀비는 그것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수많은 사람들의 살결을 물어뜯었다. 뉴스에선 한참 좀비가 찍힌 영상들을 보도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아예 빠졌다. 뉴스가 아니어도 창밖으로 고개만 내밀면 그 모습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유일하게 감염자가 발견되지 않았던 ○○시가 안전지대에서 벗어났다는 소식입니다. 전 국민이 위험에 노출된 것입니다. 현재 모든 공항이 폐쇄된 가운데, 지난주 자국으로 돌아간 중국인 승객 한 명이 이상 증세를 보여 좀비 바이러스에 대한 불안은 전 세계로…
…러스에 대한 공포가 확산되면서 감염에 대한 루머가 SNS를 통해 퍼지고 있습니다. 이에 보건복지부는 외상이 없는 사람은 비감염자라고 확정 지어도 무관하다며…
…는 총기 보급에 대한 논쟁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여론 역시 극명하게 갈린 가운데 정부는……
온 가족이 텔레비전 앞에서 눈을 부라렸던 기억. 아빠는 이럴 때 뉴스를 보지 않는 건 자살행위라며 밥을 먹을 때도 거실에 상을 차리자고 했다. 엄마도 같은 생각인 것 같았다. 세연이는 말이 없었다. 그저 작은 손으로 숟가락을 꽉 쥔 채 턱없이 적은 양의 밥만 깨작거릴 뿐이었다. 가뜩이나 또래보다 작아 왜소해 보이는 연이가 걱정되어 끼니마다 내 몫을 덜어줬다. 그리곤 소중한 보물이라도 되는 것처럼 바깥 풍경을 감춘 커튼으로 들어갔다. 걸어 다니는 무언가가 보였다. 꼭대기 층이라 좀비인지, 사람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다시 커튼을 치고 나오면 입맛이 뚝 떨어져 있었다. 조금이라도 밥알을 넘기면 구토가 나올 정도로.
좀비 이외에 것을 쏘면 바로 구속이야. 세연이는 나이 때문에 배급이 안 된다고 하더라고.
총기 보급 건이 통과됐었나 보다. 기억은 목소리뿐이었다. 눈을 감고 있었던 건지, 장면이 사라지고 목소리만 남은 건지는 알 수 없다.
기억을 잃어버린 건 내 의지가 아닌 게 분명했다. 만약 과거의 내가 기억을 지울 수 있었다면 총기를 배급받아 집으로 돌아온 아빠와 그를 맞아주는 우리 가족의 형상을 지우진 않았을 테니까. 그 장면이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이 안타깝거나 슬프다고 해도 말이다. 지금 내가 지워버리고 싶은 건……
허억, 허어억, 커헉, 크억, 크허억…….
코앞에 다가와 있던 그로테스크한 얼굴. 그곳이 어디인지, 언제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배경은 흐리고, 괴생명체… 좀비의 일그러진 얼굴만이 남은 기억. 흰자위는 금방이라도 검붉은 피를 흘릴 듯이 빨갛고 눈동자는 불투명하게 변해 탁한 회색을 띠었다. 색을 잃은 피부는 늘어져 있었고, 입술은 거의 보라색에 가까웠다. 짧고 부자연스러운 호흡은 끔찍한 음성을 동반했다. 아니, 음성이 아니라 괴성이다. 그런데 정작 틀어막고 싶은 건 눈이나 귀가 아닌 코였다. 날카롭게 코를 찌르는 썩은 냄새.
내가 이 기억을 남겨뒀을 리 없다.
유난히 비위가 약한 난 분명 초점 없는 눈을 내 얼굴 언저리로 고정한 괴물의 얼굴을 제일 먼저 지웠을 거다. 그리고 다른 기억을 채워 넣었을 거다. 불안을 해소하고 안정을 불어넣는 것들.
예컨대,
아빠의 따듯한 목소리라던가, 엄마의 애정 어린 눈빛이라던가, 세연이의 하얀 얼굴이라던가, ……김태형이라던가.
***
땅이 흔들린다. 내 몸을 단단히 받친 땅에서 온기가 느껴진다. 땅이 아닌가. 안정적이면서도 공중에 떠 있는 듯했다. 그러나 미친 듯이 흔들렸다. 일정한 속도로 마찰음이 들렸다. 머리가 지끈지끈했다. 접착제라도 붙여놓은 양 눈꺼풀을 들어 올리기가 힘들었다. 조금씩 침범하는 빛에 인상이 찌푸려진다. 결국, 반도 뜨지 못한 눈으로 상황파악을 해야 했다.
“…….”
“……김태형…?”
무의식에서 방금 뛰쳐나온 목소리가 볼품없었다. 잔뜩 갈라지고 작은 목소리를 조율할 틈은 없다. 김태형이 눈앞에 있었기 때문에. 거칠고 다급한 숨소리를 토하면서도 달리고 있었다. 그것도 나를 안아 든 채로. 눈에 띄게 말랐다. 아래에서 올려다본 턱과 쇄골에 얇은 가죽이 안쓰럽게 달라붙어 있었다. 내 목소리는 듣지 못한 것 같았다. 초조한 기색이 역력했다. 달음질하면서도 쉼 없이 주변을 살폈다. 앞을 주시하다가 양옆으로 고개를 휙휙 돌린다. 그리곤 뒤를 쳐다본다.
“…씨발, 하아, 하, 진짜…….”
“…….”
그렇게 무거웠던 눈꺼풀이 말려 올라갔다. 두리번거리느라 느려졌던 속도가 다시금 빨라진다. 마찰음이 잦아졌다. 뒤에서 무엇을 보았는지는 궁금해하지 않아도 됐다. 죽은 장기에서 비롯된 끔찍한 숨소리가 저 멀리서부터 고막을 마구잡이로 긁어 내리기 시작했기 때문에. 벅벅 긁힌 귓구멍에서부터 발끝까지 소름이 돋았다. 온몸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살 썩은 내를 풍기며 내게 다가오던 시체의 형상이 의식을 범람했다.
“신은재?”
속절없이 떨리는 몸에 김태형이 아래를 내려다본다. 시선이 맞물렸다. 눈가 근육이 파르르 떨렸다. 여태 쉬지 않고 움직이던 다리가 멈췄다. 놀라움에 크게 뜨인 눈이 두어 번 깜빡였다. 공포감에 질려 덜덜 떨어대는 꼴이 놀라운 건지, 내가 눈을 뜬 자체가 놀라운 건지 수 초간 정적 속에서 허덕이던 그는 이내 무언가 떨쳐내려는 듯이 머리통을 흔들었다.
“…잠깐 일어설 수 있지?”
다시 마주한 눈은 고요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지탱하던 팔을 천천히 풀어내는 것에 몸이 바로 세워진다. 평평한 지면에 다리가 하나씩 곧게 섰다. 두 발을 땅에 붙이고 서 있는 것이 낯설었다. 내가 밟고 있는 것이 눌어붙은 석유 찌꺼기인지 그르렁대는 야수의 커다란 등인지 알 수 없었다. 인간이 발을 들여선 안 될 색이 쨍한 밀림, 한가운데를 차지한 사나운 짐승의 진한 갈색 털에 윤기가 흘렀다.
괴성이 가까워진다. 커지는 데시벨에 의식이 아득히 멀어지다가 다시 돌아오는 것을 반복했다. 김태형의 등 뒤로 다가오는 그림자가 보였다. 하나가 아니었다. 시야를 가린 가슴팍이 사라질까 두려웠다. 아스팔트 위로 그려진 까만 실루엣조차 제대로 응시할 수 없었다. 시야가 흐려졌다. 입 밖으로 흐느끼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쉬이. 은재야.”
“흐으, 으…….”
“사라질 거야, 곧.”
그가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낸다. 눈에 가득 들어찬 액체를 흘려보내기도 전에 큰 손이 뒤통수를 감싸 안았다. 눈꺼풀을 꾹 눌러 감자마자 눈물이 볼 위로 길을 텄다. 김태형이 몸을 옆으로 틀었다. 목에 힘을 주어 얼굴을 떼어내려 하자 되레 코가 짓눌렸다. 힘이 잔뜩 들어간 손이 조금씩 옆으로 움직이더니 내 귀를 막아 눌렀다.
“하나…”
한 번 트인 길을 따라 장대비마냥 액체가 줄줄 흘러내렸다. 이유 모를 카운팅에 숨소리조차 내지 않으려 소리를 꽉 눌렀다. 괴성이 다가오고 있다. 귓구멍을 틀어막은 손가락을 뚫고 썩은 시체 냄새를 동반한 비명이 들려왔다.
“둘”
속삭이듯 세어나가는 숫자의 의미를 찾아내려 애썼다. 그래 봤자 보이는 건 그의 티셔츠 자락뿐이었다. 마비라도 온 것처럼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 팔을 들어 마른 허리를 끌어안았다.
“…셋.”
콰앙.
탕.
탕.
폭발음.
아니, 총성.
이전처럼 몸이 들렸다. 시야가 흔들렸다.
***
전속력으로 뛰어온 곳은 김태형의 집이었다. 도어락 비밀번호를 몇 번이고 틀린 이마엔 식은땀이 맺혔다. 추운 날씨가 무색했다. 날 먼저 밀어 넣은 그가 현관문을 쾅 닫고 신발을 신은 채로 성큼성큼 방으로 걸어 들어갔다. 현관문의 우유 투입구가 훤하게 뚫려있었다. 덮개가 없다. 김태형은 책상 위로 리볼버의 탄창을 열어 실탄과 탄피를 쏟아냈다. 탄창을 돌려 실탄 다섯 발을 끼워 넣는 손길이 다급했다. 그 역시 총기 배급을 받은 모양이었다.
“숨 참아.”
책상 위에 있던 셔츠를 들고 내 앞으로 다가왔다. 영문을 알 수 없지만 그대로 따랐다. 훅 들이마신 숨이 닳는 사이에 셔츠가 온몸에 비벼졌다. 오물을 닦아내는 듯한 움직임이었다. 다시 그것을 책상 위에 올려둔 김태형이 내 목덜미에 코를 박았다. 피부에 닿는 숨이 간지러워질 때쯤 두 팔에 몸이 갇혔다. 숨이 부족했다. 코로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악취가 폐부를 가득 채웠다. 그대로 김태형을 밀쳐냈다.
부패한 시체 냄새. 그것들을 모두 쏟아내고자 한참을 쿨럭거렸다. 그가 멀어졌는데도 가까운 곳에서 냄새가 올라왔다.
“…언제 익숙해질래.”
“…….”
“입으로 쉬어. 천천히. 응?”
온몸에서 악취가 났다. 체내로 그것들이 스며드는 것만 같았다. 혐오스러웠다. 기침이 멎고 입으로 호흡하는 와중에 계속해서 좀비와 동질화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창고 방으로 갈 거야. 가는 길 기억하지?”
“…….”
고개를 저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그 말 말고도, 전부. 왜 나한테 악취를 묻혔는지. 나는 왜 집 밖으로 나왔는지. 우유 투입구 덮개는 왜 사라졌는지. 아빠, 엄마, 세연이는 어디에 있는지. 너는 왜 나를 안고서 뛰고 있었는지. 왜 내 눈과 귀를 막아줬는지.
우리가 왜 함께 있는지.
“……처음 갔었던 곳, 제일 오래 있었던 곳. 생각 안 난다고?”
쾅.
쾅쾅쾅.
동시에 고개가 돌아갔다.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 우유 투입구로 누군가의 바짓단이 보였다.
“…….”
“일단 가. 여기 있다간 쟤들 밥 되는 거 시간 문제야.”
피로 물들고 밑단이 찢어진 바지. 쿵쿵거리는 소리가 늘어났다. 이번에도, 하나가 아니었다. 김태형이 베란다가 있는 쪽으로 빠르게 걸었다. 창을 열어젖힌 그가 고갯짓한다.
“안 와?”
열린 창으로 찬 바람이 끼친다. 이렇게 추운데 이상시리 햇빛은 쨍쨍했다. 그 앞에 선 김태형은 바람도, 햇빛도 그대로 맞았다.
“…얼른.”
그의 머리카락이 흔들렸다.
“…….”
햇빛에 반짝이는 진한 갈색의 머리카락.
맹수의 것과 같은.
“은재야.”
태형아.
여긴,
밀림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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