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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O/경수] 별이 빛나는 밤에 下 | 인스티즈

 

 

 

 

 

 

 

'별이 빛나는 밤에 上, 中' 있습니다!

 

 

 

 

별이 빛나는 밤에 下

w.꼬밍

 

 

 

 

 

그 여자가 너 마음에 드는 모양이더라.

 

경수에게 그것은 나쁜 소식이 아니었다. 오히려 조금은 반가웠다. 군대를 갔다 온 이후에 여자친구가 없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날이 싸늘해지기 시작하자 경수는 조금은 여자와 연애가 고파지기 시작했다. 도경수는 평범한 남자였고, 젊은 대학생이었기 때문에 당연한 것이었다. 그래서 대학교 지인을 통해서 여자 한 명을 소개 받았다. 유명한 여대의 경영과 학생이었다. 휴학을 했기 때문에 졸업은 아직이라고 덧붙였다. 그런 것들은 사실 크게 상관은 없었다. 그냥, 그런 정보는 소개팅 도중의 대화 소재에 유용히 쓰였을 뿐이다. 소개받은 사람은 긴 생머리에, 옷차림은 하늘하늘. 전체적으로 '여성스러움'이 딱 떠오르는 사람이었다. 휴학하는 동안엔 여행을 다녔다고 했다. 경수는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속으로는, 바람직하고 뻔하게 시간을 보냈구나 혼자 생각하면서.

 

그래도, 경수도 그 여자가 마음에 들었다. 물론 여자가 고프지 않았던 시기라면, 지나가면서 봤다면, 붙잡지 않았을 사람이다. 그런데, 지금은 상대가 꽤 괜찮아보였다. 그래서 그 여자 역시 경수를 마음에 들어한다는 말을 지인을 통해 들었을 때, 경수는 꽤 기분이 좋아졌다. 그리고 그녀에게서 먼저 연락이 왔다. 며칠 몇시에, 어떤 카페에서 만나자고. 경수는 미소를 녹인 목소리로 그러겠다고 대답했지만, 왜 무슨 일만 한다하면 카페에서 만나야하는 건지는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도 일단은 갔다. 약속 시간과, 장소에 맞게.

약속장소 카페 '별'은 전체적으로 하얀색 외관에 노란색, 오렌지색에 가까운 별이 작게 그려져있는 곳이었다. 그렇게 크지도 작지도 않은 카페였다. 경수가 손목의 시계를 봤다. 약속시간 5분전. 적당한 시간이네. 경수는 카페의 문을 열었다. 문에 달려있던 종이 '짤랑-' 맑은 소리를 울려보냈다.

 

그리고 경수는 마주하게 된다, 어떤 눈동자를, '어서오세요'하는 목소리를. 경수의 생각보다는 그 몸이 더 빨랐다. 소개팅녀를 찾느라 바쁘게 움직였던 눈이, 한 순간 바로 뒤를 향해 멈춘다. 그렇게 어둠 속에서만 마주쳤던 두 눈이, 따뜻한 오렌지를 머금고 있는 조명 아래에서 만났다. 현실적으로는 3초가 지났다. 하지만 온 세상이 멈춘 기분이었다. 수 많은 생각들이 스쳐지나갔다. 오랜 시간이었다. 마주친 두 사람의 눈은, 그 안을 들여다보면 천천히 확대되고 있었다. 동공이 순간적으로 더 커졌다. 나오려던 목소리가 목에 탁 걸려버렸다. 그러던 중에, 뒤에서 소개팅녀가 경수를 불렀다. '여기에요!'. 그 목소리에 놀라 경수가 다시 시선을 옮겼다. 소개팅녀가 손을 들고 경수를 향해 웃고있었다. 경수는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신발 밑창이 껌으로 이루어지기라도 한 듯, 느리고 어려운 발걸음이었다. 

 

  " 빨리오셨네요. "

  " 아, 네. 먼저 오셨을 줄은 몰랐어요. 더 빨리 나올걸. "

  " 아니에요, 경수씨도 약속 시간보다 먼저 오셨잖아요. 아, 맞다. 음료는 제가 먼저 시켜놨어요. "

 

경수는 자기 쪽에 놓여있는 잔을 봤다. 그리고는 '고마워요'라고 말했다. 음료는 여자가 샀으니, 저녁은 자신이 사야겠다라는 정형적인 생각을 덧붙여했다. 아, 이미 마실 게 있으니까, 자신이 카운터 쪽으로가서 주문할 일은 없겠다고도 생각했다. 카운터로 가서 주문이라. 아까 그건 뭐였지. 어째서 내 시간이 잠시동안 그렇게 멈춰있는 것 같았을까. 고개를 틀어 뒤만 돌아보면, 그 원인을 다시 한 번 볼 수 있을텐데도 경수는 그러지 않았다. 우선은 앞에 앉아있는 소개팅녀의 이야기에 집중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집중하려고 노력했다. 왜냐하면, 이미 경수의 집중은 흐트러진 상태였으므로.

머릿 속에 카운터. 직원. 카페 '별'. 주문. 주문. 카페. 직원. 직원. 그 여자 직원. 그 여자. 너. 너. 따위의 단어가 혼잡하게 떠오르고 흩어지기를 반복했다. 흩어져있던 단어들은 퍼즐조각과 같은 모양새가 되어서 다시 하나로 맞춰지고, 제 자리를 조금씩 찾아갔다. 퍼즐조각들은 만들어낸다. 하나의 큰 형상을. 정확히는 5년 전 자신이 바라보았던 풍경과 누군가의 얼굴을. 그 사람의 이름을.

 

경수와 같은 경험을 한 사람은 또 있었다. 경수와 눈을 마주쳤던 카페의 직원. 정확히는 카페에 홀로 있는 직원. 지금은 카운터 쪽에 자리잡고, 책을 읽는 '척'하고 있는 여자 직원이었다. 그녀 역시 방금 자신의 시간이 멈춰있었음을 기억했다. 경수처럼 뭘 본 건지에 대해서는 혼란스러워하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이 본 사람이 어떤 얼굴을 하고 있었는지, 어떤 표정이었는지, 심지어는 누군인지 조차도 분명히 알아차렸다. 그래서 집중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손님이 더 이상 들어오지 않았던 탓도 있지만, 읽고 있는 책에도 집중하지 못했다. 이제 약 50페이지 정도 남겨놓은 소설인데. 열심히 집중해서 재미있게 읽었던 글인데도, 문장이 단어로 흩어지고, 단어가 음절로 흩어지고, 음절이 자모음 따위로 흩어져 눈에 박혀들어왔다. 머릿 속으로 전달될리가 없었다. 그녀는 사실 약 4m정도 떨어져있는 뒷통수에 자꾸만 시선이 갔다. 그리고 그 맞은편의 여자에게도.

 

나를 알아봤을까?

 

그러다가, 손님이 다시 하나 둘 오기 시작했다. 그녀는 바쁘게 손을 움직여서 커피나 음료, 샌드위치 같은 것들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일이 생기니까 조금 나았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시간이 조금 지나고 손님이 하나 둘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4m 거리의 그 뒷통수가 위로 이동했다. 그리고 맞은편에 앉아있던 여자와 경수가 제 앞을 지나쳐서 문 밖으로 나왔다. 그녀의 입에서 나온 말은 하나 뿐이었다. '감사합니다'. 경수의 시선은 그녀에게로 한 번도 돌아서지 않았다.

 

못 알아봤나보다. 그제야 그녀는 무게만 느끼고 있던 책을 뒤집어 놓았다. 그리고 문 쪽을 보면서 생각했다. 못 알아본거겠지. 아니면, 내가 잘못본걸까. 하지만 그 얼굴이나, 특유의 커다랗고 동그란 눈, 그 시선도, 앙다문 입술도 그대로였다. 간간이 들려오는 목소리 역시 그 때와 똑같았다. 그렇다면, 내가 잘못본거는 아니겠지. 그러다가, 다시 문득 정신을 차렸다.

 

왜, 내가 이런 생각을 하고있어야 하는거지? 나는 왜 신경쓰지 않는척, 그 쪽을 신경쓰고 있는걸까. 어째서 나는 지금, 아무렇지도 않아야할 지금 자꾸 눈으로 그 손님이 나간 문을 좇고있는걸까.

 

그런데, '짤랑-'하는 소리가 울려퍼지고 누군가가 들어왔다. 그녀는 '어서오세요'라는 말도 꺼낼 수 없었다. 보는 순간 숨이 멈추는 것 같이, 모든 것이 멈춰버렸기 때문이었다. 그 사람은 숨을 조금씩 헐떡였다. 숨을 고르는 듯 보이다가, 숙였던 고개를 홱 들고는 그녀와 눈을 마주했다. 어둠 속에서만 보았던, 5년전의 그 눈동자들이 마주닿았다.

 

  " ○○○. "

 

저 목소리로 저 이름을 듣는 것이 얼마만이었을까.

 

  " ○○아. "



긴장되는 침묵이 멤돌았다. ○○은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경수도 그 이후로는 말이 없었다. 맞닿은 시선은 여전했다. 그 때, 그 긴장되는 분위기를 깨고 '짤랑-' 소리가 들려왔다. 도도도도, 작은 발걸음이 빠르게 경수의 앞을 지나갔다. 그리고 ○○에게로 다가오더니 폭싹 다리를 싸안았다. 작은 꼬마 아이었다. 두 사람의 시선이 멀어지고, 그 아이에게로 집중되었다. 아이가 ○○을 보며 입을 열었다. 맑은 눈동자를 깜빡이며, 그 조물한 입을 달싹이며.

 

  " 엄마. "

 

아까와는 다른 분위기의 침묵이 카페 안을 순식간에 채워버렸다. ○○이 아이를 바라보다가, 순간 생각났다는 듯 경수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경수의 얼굴에, 눈동자에 당황스러움이 스쳐지나갔다. 아이의 시선은 ○○을 향했고, ○○의 시선은 경수에게로, 경수의 시선은 아이에게로 향해있었다. 재미있는 구도였다. ○○이 경수를 보다가, 입을 살짝 달싹였다가 다시 다물었다. 그리고 시선도 거두었다. 그 때서야 경수의 시선이 ○○에게로 다가섰고, 후에는 아이와 ○○의 전체적인 모습을 눈에 담았다. 경수는 더 무슨 말을 하려하다가 주춤했다. 그리고 천천히 몸을 돌렸고, 힘없이 카페 밖으로 나왔다. '짤랑-'거리는 소리가 유난히 힘없고 아쉬웠다.

 

경수가 나갔음을 알고 ○○이 자세를 낮추어 아이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 누나가 '엄마'라고 막 부르지 말라고했었지? 엄마가 아니라 누나라니까. "

 

○○은 슬쩍 미소짓고있었지만, 그 웃음은 힘이 없었다. 그러다가, 또 다시 생각한 것이었다. 왜 자신은 경수에게 이 아이의 존재를 확실히 밝히려고 생각을 했을까. 왜 순간적으로 '이 아이는 내 아이가 아니야'라고 해명하고 싶어졌을까. 왜 그런 충동 앞에서 고민해야만 했을까. 입을 달싹였다가, 다시 다물어야만 했을까. 하면 했지. 안 하면 안했지. 왜 주춤했을까.

 

나는 너에게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걸까, 경수야.

 

 

*

 

 

  " 몸은 좀 어때요? "

  " 어떠긴 뭐가 어때. 그냥 그렇지, 뭐. 가게 일은 안 힘들어? "

  " 손님이 그렇게 많은 게 아니라서, 힘들고 말 것도 없어요. "

  " 나쁜 년, 말하는 꼴 하고는. "

 

○○이 웃음지었다. 병실 안 분위기는 훈훈했다. 병원 침대에 몸을 기대고 있는 여자는 부풀어오른 배 위에 손을 얹어두고 있었다. ○○은 그 모습을 보면서 슬쩍 웃었다. 여자는 ○○이 일하고 있는 카페 '별'의 사장이었다. ○○과 알고 친하게 지낸지는 3년이 넘었다. 원래는 함께 카페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보다시피 임신 중이라 지금은 일 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이제는 가게 나오지 말고 쉬세요. 몸이 조금 무리했는지 병원 신세까지 지게됐다. 사장은 ○○에게 카페를 맡겼다. 열쇠를 맡기고, 카페를 맡길 정도로 이제는 믿고 친하게 지내는 사이였다. 그리고 사장의 첫째 아이인 4살 '윤'도 잠시 돌보고 있었다. 유치원에서 돌아오는 늦은 점심부터 저녁 가까운 시간까지. 약 2,3시간 정도. 그 때쯤으면 사장의 남편이 아이를 데리러 왔다.

 

카페 '별'을 연지 이제 3개월. 요즘은 널린게 카페라서 큰 유명세를 얻고있는 건 아니었지만, 어느 정도 자리를 잘 잡아가고 있는 중이었다. 아르바이트 생을 따로 뽑지 않아도, 혼자서 일하기에 충분했다. 그렇게 혼자서 일한지 이제 일주일정도 되었는데, 어제 경수가 다녀간 것이었다.

 

  " 윤이는 말 잘들어? "

  " 다행히 엄마 안닮아서 그런지 말 잘들어요. "

  " 너 임산부한테 맞아봤어? "

  " 언니, 하하. 푹 쉬세요, 걱정말고. 다 잘하고 있으니까. 둘째 생각도 하셔야지. "

 

사장이 웃으면서 '그래' 대답했다. ○○은 그런 사장을 보다가, 병실을 슬쩍 둘러보다가, 그녀의 남산만한 배를 보았다. 아이. 아기. 임신이라. 여자의 아이라. 나의 아이라.

 

 

5년전 가난한 동네를 떠나고, 조금 먼 곳으로 와서 다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그 돈을 적당히 모아서 바리스타 학원을 다녔다. 시험을 통과하고나서 카페에서 제대로 일 할 수 있게되었다. 학원을 다니면서 ○○은 지금의 사장을 만나, 지금까지 인연을 이어오게 되었다. 이렇게 간단히 정리가 될 정도로, 그녀의 삶은 순탄했다. 그녀의 삶은 부유하지는 않았지만, 이제 더이상 가난하지만도 않았고 비참하지도 않았다. '평범'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남들과 비슷한 삶을 살기 시작했다.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든 적은 없었다. 그건, 사실 그 날 이후에는 당연한 일이었다. 살고자 한 의지를 준 사람이 있었으므로.

 

그러니까 5년동안 그녀는 어떻게든 살았다. 살아있었다. 지금도 살고있다. 아무렇지 않게, 남들처럼, 적당하게 평범하게. 대학을 간 것은 아니었지만, 직업이라고 당당히 말 할 수 있는 것도 생겼고, 정기적으로 돈을 벌고 있었고, 사람을 사귀고, 때때로는 가볍게 조금은 무겁게 연애도 하면서 그렇게 살았다. 그녀의 엄마가 말했던 것 처럼. ○○은 제 인생을 살아내고 있었다.

 

 

*

 

 

밤 10시. 가게 문을 닫을 시간이었다. 정리를 하려고 옷을 갈아입고 나온 뒤, 주방 쪽을 정리하고 있을 때였다. '짤랑-'하는 소리가 안에 울려퍼졌고, ○○는 습관적으로 말하면서 문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 죄송합니다, 영업 시간이 다…. "

 

○○이 말을 다하지 못하고 흐린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어서였다. 그러니까, 예를 들자면. 밤 10시, 퇴근 시간에 갑작스럽게 찾아온 손님이 도경수라던가.

 

경수는 무표정이었다. 시선을 살짝 아래로 내렸다가, 슬쩍 올려 ○○을 바라보았다. 어제 찾아왔던 것 보다는 침착한 모습이었다. 경수가 입을 열었다.

 

  " 여기서 얘기할래? 아니면, 나가서 술 한 잔 할래? "

 

○○은 아무말도 하지 않고 경수를 바라보았다. 두 눈을 정 속도로 깜빡이며, 그렇게 말 없이 경수를 봤다. 두 사람이 말 없이 서로를 보고 있었다. 그리고 ○○은 문 쪽으로 다가가 'OPEN' 팻말을 뒤로 돌려 'CLOSE'로 바꾸었다. 다른 불은 어느정도 끄고, 구석 자리와 카운터 쪽에만 조명을 켜놓았다. 그리고 경수를 보면서, 구석자리를 시선으로 가리켰다. 경수가 그 쪽으로 가서 앉자, 그녀는 주방에서 팔다 남은 케익 한 조각과 아이스티를 가져와 경수의 앞에 내려놓고 맞은 편에 앉았다. 잠시간의 침묵. ○○은 먼저 입을 열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다짐했다. 경수를 그냥 친구처럼 대하기로. 중간의 일은 모두 잊고, 그냥 오래전의 친구였던 것 처럼 대하겠다고.

 

  " 오랜만이네. "

 

경수는 자신도 모르게 헛웃음을 지었다. 오랜만이네, 라고? 그래, 하지만 맞았다. ○○의 말에 틀린 말은 없었다. 오랜만이었다. 5년이라는 시간은 긴 것이었으므로. 5년만에 만나는 우리는 '오랜만이다'라는 말을 쓰기에 참 적절한 지점에 놓여있었다. 하지만, 오랜만이라고? 그게 우리 사이에 나올 수 있는 말이었을까. 

그런 생각들을 일단은 한 번 삼키고, 경수도 입을 열었다. 그래, 그러네.

 

두 사람의 시선이 서로 바로 앞 테이블이나, 창 밖에 지나다니는 자동차나 사람 따위에게로 떨어졌다. 어색하지는 않지만, 조용하고 느릿하고, 불안한 시간이었다.

 

  " 여기서 일하는거지? "

  " 응. "

  " 일한지 얼마나 됐어? "

  " 삼개월 쯤. 이 전에는 다른 곳에 있는 카페에서 일하다가 삼개월 전 쯤에 이사했어. "

  " 그래. …어디 살아? "

  " **역 근처에. 너는? 여기 근처에 살아? "

  " 아니, 여기는 잠시 볼 일 있어서 왔던 것 뿐이고. 나는 ##동. 여기서는 조금 거리가 있어. "

  " 아, 음, 대학은? "

  " 군대갔다와서 이제 3학년. "

  " 아, 그렇구나. "

 

일상적인 대화였다. 그냥 5년만에 만나는 친구끼리 무난하게 주고받을 수 있는 질문이었다. 두 사람 머릿 속에는 수 많은 이야기들과 질문들이 비 쏟아지듯 떨어져내리고 있었지만, 티 내지는 않았다. ○○의 경우는 이런 질문도 있었다. '그 때, 이 카페에 같이 있었던 사람은 누구야? 여자친구?' 하지만 그 질문이 머릿 속에 들어있음을, ○○은 인정하지 않았다. 외면했다. 사실 그런 질문이 꽤 주를 이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외면하려고 노력해서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또 잠시간의 침묵. 두 사람은 앞에 놓인 케익도, 아이스티에 입 한 번 대지않았다. 그러다가, 경수가 다시 입을 열었다. 조심스럽기도 하면서, 아까보다는 더 무거운 목소리였다.

 

  " 왜 그랬어? "

  " ……. "

  " 왜, …떠났어? "

 

 ○○은 시선을 창 밖으로 던졌다. 유리창 밖으로 보이는 자동차, 가로등 불빛들이 눈이 부셨다. 그러고보니, 그 산동네에서 내려오고, 이런 낮은 곳에서 살고있으니 이런 불빛들을 자주보는 것 같다. 자동차 불빛, 환한 가로등 불빛, 간판 불빛 등등. 그래서 그런지, 이 곳에서는 별을 볼 생각을 못하고 지냈다. 그렇게 찾았던 희망인데, 내가 보고싶었던 별들인데.

 

  " 우리는, "

 

○○의 시선은 여전히 밖을 향해 있었다. ○○은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무거운 미소였다.

 

  " 우리는 아주 긴 꿈을 꾼거야. 아주, 긴 꿈. "

 

그리고 경수에게로 시선을 옮기며 말하는 것이었다.

 

  " 우리는 지금 각자의 현실에서 잘 살아가고 있잖아. "

 

우리는 서로가 없이도, 나는 네가 없이도, 너는 네가 없이도 서로 잘 살아가고 있잖아. 그 모든 것들이, 영원하길 바랐던 그 달았던 순간들이, 아팠던 순간들이 정말로 꿈이었던 것 처럼. 꿈이어도 상관없는 것 처럼.

 

 

*

 

 

  " 윤아, 얌전하게 있으라고 했지? "

  " 엄마 미워. "

  " 엄마가 아니라 누나라니까. "

 

○○이 한숨을 푹 쉬고는 떨어져있는 윤에게로 다가갔다. 손님이 없어서 다행이지, 있었으면 소란스러울 뻔 했다. 저를 피해 달아나는 윤을 잡으려고 ○○이 발걸음을 옮겼는데, '짤랑-'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는 들어온 사람이 문 앞에 있는 윤을 안아올렸다. 으쌰. 익숙하게 윤을 안아올리는 모습에서, ○○은 미소를 지었다.

 

  " 어서와요, 오빠. "

  " 중간에 시간이 비어서 들렸어. 아메리카노 한 잔만 부탁할게. "

  " 네. "

 

그 사람은 백현이었다. ○○에게 반짝거리는 작은 별이었던, 변백현. 백현은 수트차림에 사원증을 목에 걸고 있었다. 윤을 안아올리며, 으쌰으쌰 달래는 모습이 익숙하고 듬직해보이기까지 했다. 윤도 백현에게 안기는 것이 익숙한 듯, 꼬옥 안겨있었다.

 

  " 윤이는 또 왜 이렇게 침울해, 응? "

  " 제가 안 놀아줘서 그래요. 삐졌어. "

  " 엄마 미워! "

  " 엄마 아니라 누나라고 했지? 에구구, 윤아 누나가 미안해. 잘 놀아줄게, 응? "

 

백현은 그 사이에서 하하 웃으면서, 윤을 에구구 하면서 안아주고 있었다. ○○은 이런 모습을 보면서 자주 웃었다. 그리고 동시에 좀 묘한 감정이 생기기도 했다. 언젠가 꿈 속에서 봤었던, 죽음의 끝에서 봤었던, 언젠가 저가 자주 상상해봤었던 장면이었기 때문이다. 이럴 때 마다, 새삼스럽게 떠올려보곤 하는 것이다. 변백현과 자신 사이에, 그러니까 우리 사이에 아이가 있었다고.

그런 과거가 아무렇지 않게 느껴진다는 건 힘든일일 것이다. 그런데, 이 둘은 잘 극복해냈다. 두 사람은 그 때의 일을 기억한다고 해도, 드러내지는 않았고, 어느 정도 묻어두고 살아갈 수 있을정도로 성숙해졌다. 서로를 아끼는 마음은 있으나, 남녀관계가 엮인 관계는 더 이상 아니었다. 5년이라는 시간은 그러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각자 다른 사람과 연애를 하기도 하고, 따로 사회 생활을 하면서 저 나름대로 살아가고 있었다.

 

○○이 백현에게 연락을 한 것은 약 2년 전 쯤이었다. 어느 정도 일을 하고, 예전 일을 꿈처럼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을 때, ○○은 백현에게 받았던 메일 주소로 연락을 했다. 길지 않은 메일이었다. 3년의 이야기를 전하기에는 짧은 내용이었다. 하지만 모든 것이 담겨있었다. 오빠, 잘 지내시죠. 저 ○○○이에요. 전 어떻게 어떻게해서, 지금은 이렇게 살고있어요. 오빠, 이제는 오빠에게 말을 할 수 있을만큼 시간이 지난 것 같아요. 보고싶네요. 잘 지내시는지 궁금하기도 하구요. 아, 제 휴대폰 번호는 이거에요. 나중에 연락주세요. 거의 그런식의 내용이었다. 왜냐하면 백현은 희망없던 그 날에, 찾아들어온 반짝반짝 작은 별이었으므로. 앞으로도 잊을 수 없는 그 날의 생명의 은인 같은 것이므로.

 

그 메일을 보낸 저녁,-○○의 시점으로는 그렇게, 하지만 백현에게는 확인하자마자 바로인- 백현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리고 두 사람은 전화로는 적당한 이야기를 나누고, 다음날 시간을 내서 만났다. 그리고 길게 이야기를 나눴다. 그런 식으로 잘 지낸지 2년이 또 지났다.

 

  " 요즘 일은 잘돼가요? "

  " 이번 프로젝트가 좀 힘드네, 고생 좀 하고 있어. "

  " 오빠는 커피 무료로 제공하니까, 힘들 때 마다 오세요. 회사 바로 근처니까. "

  " 그래, 저녁에 한 번 더 올게. 그 땐 다른 분들 커피 사러. "

 

시간은 꽤 흘렀다. 외국의 좋은 학교에 유학까지 다녀온 백현은 바로 한국에 돌아와 괜찮은 회사에 취직했다. 삼개월 전에는 우연히 백현의 회사 근처로 카페를 이사하게 됐다. 그 때문에 더 자주 만나게 되었다. 백현 덕분에 카페 홍보도 적당히 되고 있었고. 윤이 백현에 안겨있고, ○○과 백현이 서로를 보면서 웃고있던 그 때, 또 다시 카페 문이 열렸다. 모두의 시선이 한 곳에서 만났다.

 

도경수. ○○과 경수의 시선이 만났고, 그 이후에 경수와 백현의 시선이 만났다. 백현이 어?, 하면서 바로 반가운 기색으로 입을 열었다. 경수야. 경수는 백현을 보고, 백현이 안고 있는 아이를 보고, 그 다음에 아이까지 세 사람이 함께있는 그림을 눈에 담았다. 그리고, 경수는 사실 오해했다. 이 상황을. 하지만 드러내지 않았다. 경수는 태연한 척 했다. 그리고 백현을 보고 슬쩍 웃었다.

 

  " 오랜만이네요, 형. "

  " 그러게. 진짜 오랜만이다. 너는 더 멋있어졌네. "

  " 형도 보니까, 회사 다니시나봐요. "

  " 응, 어쩌다보니. 그나저나, ○○이랑 다시 잘 알고지내는지는 몰랐네. "

 

그 말에는 ○○도, 경수도 어색하게 웃을 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잠깐 침묵이 도는건가, 라는 생각이 들 때 쯤 경수가 다시 입을 열었다. 아, 일단은 먼저 가봐야겠다. 그러자 백현이 벌써 가냐면서 경수를 말로 붙잡았다. 경수는 슬쩍 웃으면서 가보겠다고 하고는 나가버렸다. 그리고, 카페 안에 묘하게 무겁고 어색한 기운이 남았다. ○○은 제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이 어색하고, 묘하고, 걱정되고, 쓰라린 느낌을.

 

그리고, ○○을 잘 알고있는 백현은 발견한 것이다. ○○의 표정을. 그리고 이 분위기가 ○○에게서 나오는 것이고, ○○을 이렇게 만든 것이 방금 나간 경수라는 것을.

 

평소라면 '싸웠어?' 물어봤을 백현은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윤을 꼭 안아들고 그 작은 등을 토닥거리면서, 얼굴로는 ○○을 보면서 입을 열었다. ○○아. ○○이 그제야 시선을 백현에게로 옮겼다. 네? 하지만 아직도 눈동자 안에 있는 초점은 제자리를 찾아가지 못하는 것 같았다. 백현이 그 모습을 보고, 슬쩍 웃었다.

 

  " 윤이 아버님 언제오셔? "

  " 아, 이제 곧, 오시겠네요. "

  " 그래? 그럼 잠깐 이야기는 가능하겠지. "

  " 네? "

 

그러던 중에 정말로 문이 열리더니, 사장의 남편이 들어섰다. 백현과 몇번은 마주쳐서인지 안면이 있어서, 두 사람은 반갑게 인사를 주고받았다. 백현이 안고있던 윤을 사장의 남편에게 넘겨주었다. 사장의 남편은 백현에게, ○○에게 고맙다고 말하면서 자리를 나섰다. 아, 그 전에 ○○이 윤의 볼을 감싸안으면서 내일 보자, 윤아 라고 말하는 것을 잊지않고. 그리고, 손님 없이 백현과 ○○ 두 사람만이 가게에 남았다. 카운터 바로 앞에 있는 의자에 ○○이 앉았고, 백현이 그 옆에 앉았다. 백현이 ○○을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 이제, 말해봐. "

  " 네? 뭐를요? "

  " 경수랑, 무슨 일 있었어? "

 

○○은 입을 다물었다. 백현의 입에서 나오는 '경수'라는 이름이 어쩐지 낯설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마음 속으로 '경수', '도경수' 불러본 적은 많았지만, 그 이름을 귀로 직접듣게되는 것이 얼마만이었을까. 우스운 생각이지만, 경수를 자신만보는 환상같은 것이라고도 여겼던 것 같다. 그런데 막상 백현을 통해서, 그 존재를 직접 확인받으니 기분이 이상했다. 그 동안 정말로 자신의 앞에 있었던 사람이, 이렇게 찾아오는 사람이 정말로 '도경수'라는 것이. 5년전에 봤던, 그날의 반짝반짝 별. ○○을 살게 만들어준 죽음의 끝에 있는 그 하나의 별이라는 것이 조금 실감났다.

 

  " 아니에요, 갑자기, 왜, "

  " ○○아. 무슨 일 있잖아. 그렇지? "

 

그랬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백현이었다. 저를 잘 아는, 저를 정말로 위해주던 또 한 사람 변백현이었다. 가끔은 자신보다 자신을 더 아껴주고, 잘 알아주는 사람이라고 느끼게 되는 사람. 물론 지금은 두 사람이 '남녀관계'의 감정이 섞인 사이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소중한 사람이지 않은가 서로에게. 그러니까, 백현은 또 알아주는 것이다. 그래서 ○○은 더 이상 거짓말을 못했다. 모른척 못했다. 백현의 말에 잠시 멍 때리다가, 씁쓸하게 미소지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백현이 또 봤다. ○○은 잠시 생각을 정리하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말했다, 그 날의 일들을. 5년 전에 경수가 ○○을 좋아하고, ○○이 경수를 좋아했던 그 때의 일들을. 서로를 좋아했던 그 벅찬 마음을 담아냈던 그 날의 심장 크기를. ○○이 경수를 어떻게 떠났는지, 그리고 어쩌다가 오늘에야 다시 만나게 되었는지를. 그런 대화를 끝내고 ○○이 입을 다물고있자, 백현이 보다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 왜 경수를 좋아했는데, 아무말없이 떠난거야. 나한테처럼 언급한번 없이. "

  " … 그 때는 모든 것을 다 새로 시작하고 싶었어요. 그 곳에 있으면 모든 악몽들이 떠오르니까. 다 잊고, 그냥 진짜 내 삶을 찾아떠나고 싶었어요. 그리고, "

  " 응, 그리고. "

  " … 경수의 인생에서 이제 내가 없어져야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어요. 걘 너무 많은 시간을 나를보면서 썼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았으니까. "

  " ○○아. "

  " 네. "

  " 지금은? "

  " 네? "

  " 그렇다면, 지금 너는 어떤데. …흔들리고 있는 중이야? "

 

백현의 미소는 따뜻했다. ○○은 그 웃음을 멍하게 쳐다보았다. 그러니까, 나는. 5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나는,

 

 

*

 

 

그렇다면, 5년 전 그날 이후 도경수는 어떻게 살아왔는지 보자. 경수는 바로 다음날 ○○이 없어진 것을 알았다. 집 문이 열려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안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남은 가구같은 것들이 보였지만, 한 눈에도 더 이상의 애정이 묻어있지 않은 버린 가구였다. ○○이 없어졌다는 건 그 때 바로 알았지만, 인정하기까지는 약 나흘. 그 때는 막연히 돌아오겠지라고 생각했다. 돌아오지 않을거라고 느끼면서도, 억지로 그런 식으로 생각했다. 거리를 돌아다니고, 수소문해 ○○이 일하던 카페에도 찾아갔다. 백현의 연락처도 알아내어 물어봤지만, 백현에게서 돌아오는 말은 '자신도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였다. 몇달은 ○○의 동네로 왔다. 늘 앉아있던 그 담벼락에 기대어 ○○을 기다렸다. 비가오나, 눈이오나, 바람이 부나, 밝을 때나, 어두울 때나.

크리스마스 같은 큰 행사때도 저녁 쯤엔 그 곳에 왔다. 눈이 내리던 크리스마스 밤. 화이트 크리스마스였다. 그리고, 그 날 제과점에서 케익을 사온 경수는 담벼락에 앉았다. 내리는 눈을 바라보며, 희미한 가로등 불빛을 찾으며, 혹시나 이 사이에서 ○○의 발걸음 소리가 들리지 않을까 기다렸다. 네가 오면 케익에 초를 꽂고 크리스마스를 함께 축하해야지. 그 동안 사라졌던 것은 용서해줄게. 크리스마스니까. 그러니까 제발 나타나만 줘. ○○이 떠난 이후 처음으로, 경수가 울었다. ○○이 없던 크리스마스였으므로.

 

어떻게 어떻게 합격했던 대학은 잘 들어갔다. 신입생으로 들어간 1학기는 바빴다. 사람은 바쁘면 자연스럽게 과거의 것을 잊어가게 된다. 그래서 조금씩 ○○을 지웠다. 사실은 지워나가려고 노력했던 것이다. 그래도 술에 취한 밤이면, 생각이 깊어지는 밤이면, 경수는 힘든 발걸음을 옮겨 그 자리로 향했던 것이다. 이제는 다른 사람이 이사를 온, ○○과의 마지막 기억이 있는 그 골목에.

 

그러다 정신을 차리고 경수는 대학생활을 즐겼다. 친구들, 동기들과 놀고 때때로 연애도 했다. 가볍게도, 조금은, 아주 조금은 무겁게도. 그리고 군대를 갔고, 그 때의 여자친구와는 헤어지고. 휴가를 나왔다가, 다시 들어갔다가 나왔다가 하다가 전역했다. 학교에 복학하고 열심히 다니고 있었다. 연애가 조금 고파져서 소개도 받았다.

 

그리고, 너를 만났다. ○○○. 5년만에.

 

도경수는 오해하고 있었다. ○○에게 아이가 있고, 그 아이의 아빠가 백현이라고. 어쩌면 두 사람이 잘되어서 지금 결혼을 한 건지도 모른다고. 그렇다면, 잘된 일일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제 경수 제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은 그냥 오랜만에 만난 소꿉친구니까. 그냥 우리는 오랜 만에 만난 오래전 사람들 뿐이니까. 그런데, 방금 백현과 아이, 그리고 ○○이 다 함께 서있는 그 풍경을 보고 전혀 괜찮지가 않았다.

 

○○을 그 카페에서 처음 마주쳤을 때, 경수는 느꼈다. 놀라움에 뒤이어 두근두근 심장이 쿵쿵. 그 이후의 몇 번의 연애동안에도 느끼지 못했던 그 감정을. 추억이라고 치부해버렸던 5년전, ○○에게 멈춰있던 그 감정을. 그리고 ○○을 두 눈으로 제대로 확인하고, 아이의 존재를 알아차렸을 때도 충격을 받기는 했지만, 곧 생각했던 것이었다. ○○의 아이라면, 너의 아이라면 괜찮다고. 그 아이까지도 어쩌면 품을 수 있을 것 같다고. 백현까지 봐버렸을 때는, 그냥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경수는 인정했다. 5년전 ○○에게 고백했던 그 날 처럼, 그는 제 감정을 인정했다.

 

 

나는 너를 좋아한다. 많이, 많이, 정말로 많이.

 

그래서, 경수는 그 날 밤에 ○○을 보고 말해버렸던 것이다.

 

  " 보고싶었어. "

 

 

*

 

 

카페 문을 닫을 시간이었다. ○○은 옷을 갈아입고 카페의 문을 닫고 있었다. 그 때, 누군가가 ○○의 손목을 잡아 그녀를 돌려세웠다. 열쇠로 막 문을 잠근 ○○은 그 반동에 몸이 홱 돌아갔고, 저를 돌린 사람을 마주하게 된다. 도경수. 눈이 살짝 풀린 것이나, 분위기를 보자마자 느꼈다. 아, 술 마셨네. 그런 생각을 하는 중에 눈이 마주쳤고, 경수가 말했다.

 

  " 보고싶었어. "

 

그 말을 듣고 ○○은 멍해졌다. 아? 뭐라고? 차마 말로는 묻지 못했지만, 속으론 그런 생각이 떠올랐다. ○○은 느리게 두 눈을 깜빡이며, 제 앞에 있는 경수를 보고있었다. 보고싶었어, 라니. ○○은 지금 어떤 표정을 자신이 지어야 하는지 몰랐고, 자신이 어떤 표정을 짓고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 차마 소리내어 경수의 이름을 불러볼 수 조차 없었다. 말해버리고 나면, 경수가 지금 자신의 앞에 있다는 것이 너무 실감이 날까봐. 제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몰라서.

 

  " ○○○. ○○아. "

  " 취했어, 너. 빨리 들어가. "

  " 미안해. 미안했어. "

  " 뭐가, 도대체 뭐가. "

  " 네 아이까지 품어주지 못해서. 네 아이까지 품어서 아껴주지 못해서 미안해. 미안해, 내가 미안해. "

 

자신도 모르게, 어떤 의지와는 상관없이 ○○의 눈에 곧바로 눈물이 차올랐다. 미안, 미안이라니. 지금 이 상황에서 왜 미안하다는 말이 나와야하는 걸까. 사실 그 날 아무말도 없이 떠난 것은 ○○, 저 자신인데. 미안하다는 말을 해야하는 것은 저인데. 경수는 5년전의 일도 아니고, 지금의 일도 아니고, 무려 7년 전의 이야기를 ○○에게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날의 일을 사과하고 있었다. 미안하다고. 그 때, ○○의 뱃속에 있던 아이까지 품어서 좋아해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은 그 사과에, 경수의 말에 울컥했다.

 

  " 이제 내게 있었던 일에 대해서 미안해하지 않아도 돼. 사과하지마. 왜 하는데? 그 건 아주 긴 꿈이었어. 우린 긴 꿈을 꾼거야. 넌, 이제 더 이상 내 인생에 상관하지 않아도 돼. 이제 나를 신경쓰지 않아도 돼. 왜 이러는건데, 우린 그냥, 그냥 꿈을 꿨잖아. "

 

경수는 술을 마시긴 했지만, 취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분명하게 ○○을 보고 말했다.

 

  " 나 지금 너를 위해서 네 인생에 신경쓰고 있는 거 아니야. 나 때문이야.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거야. 내가 하는거라고. "

  " 도경수. "

 

그리고 ○○은 그 이름을 부르면서 사실은 인정한 것이다. 눈 앞에 있는 경수의 존재를.

 

  " 꿈을 꾼거라고? 무슨 꿈이야, 꿈은. 다 우리에게 있었던 일이잖아. "

  " 경수야. "

  " 그렇다면 내 앞에 나타나지를 말았어야지. 이제와서 꿈이라니 그게 말이 돼? 너를 다시 마주치지 않았다면 꿈 같이 흘려보낼 수 있는 시간이었어. 그런데, 이제는 아니야. …네가 지금 내 앞에 있잖아. ○○○. "

 

만난 순간부터, 너는 다시 내 세상으로 들어왔다. 꿈이라고 착각할 수 있는 시간들은 없다. 다시 살아가고 있는 현실에 서로가 서로에게 개입되어버렸으므로.

 

  " 그러니까, …보고싶었어. ○○아. "

 

가로등 불빛, 간판 불빛, 자동차 라이트가 환한 이 낮은 거리에서 ○○은 별을 보았다. 눈이 부시는 별똥별을 보았다. 5년 전에 보았던 반짝반짝 그 빛나는, 크게 빛나는 그 별을 보았다.

 

그런 분위기를 깨고 ○○의 휴대전화가 울리기 시작했다. 사장의 남편이었다. 뭐지? 하면서, 일단은 느낌이 이상해서 전화를 받았다. 네, 여보세요. 네. 네, 네? 뭐라구요? 아, 아 지금 갈게요, 바로 갈게요. 다급한 목소리, 다급한 뜀박질, 그리고 다급하게 경수까지 ○○과 함께 병원으로 향하게 된 것이다. 각자에게는 별 다른 의미 없었지만, 두 사람이 함께이기 때문에 미묘한 기분이 드는 '산부인과'로.

 

 

*

 

 

○○은 유리창에 붙어서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세상의 그 어떤 것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그 작은 존재들을. 그 모습을 ○○은 미소를 지으면서 보고 있었다. 경수는 그 옆에서 그런 ○○을 바라보고 있었다. 신생아실. 산부인과에 온 적은 있었지만, '신생아실'이라는 공간은 낯설기만 했다. 어린 날의 소년과 소녀는 아이를 지우러 이 곳에 왔으니까.  

 

예정보다 빨리 나왔다는 사장의 둘째 아이는 다행히 건강한 공주님이었다. 걱정에 달려온 ○○은 무사히 아기가 태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사장의 얼굴을 한 번 보고, 그 아이를 보러 신생아실 쪽으로 온 것이었다. 예쁘다. 작고, 여리고, 귀여워. 그러고 있는 두 사람 앞에 사장의 남편이 윤과 함께 다가왔다. 윤은 ○○을 보자마자 '엄마' 외치며 또 달려와서는 ○○의 품에 안겼다. ○○이 습관적으로 말했다. '엄마가 아니라 누나라고 했지? 이제 동생도 생겼는데 그럴거야?' 경수를 의식하지 못하고 한 행동이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경수는 잠시 얼떨떨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누나? 그런 두사람 앞으로 사장의 남편이 다가왔다.

 

  " 너 자꾸 누나한테도 엄마라고 할거야, 윤아? "

  " 엄마. 엄마? …아빠야? "

 

윤이 품에 안긴채로 경수 쪽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아빠야? 그제서야 ○○이 경수의 존재를 알아차렸고, 순간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아빠? 경수 역시 당황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아니면 아니었지, 두 사람은 딱 보기에도 서로를 향해 어색하고 묘한 기운을 풍기고 있었다. 그냥 어린 아이의 흔한 말실수 같은 것이었다. 여자를 보면 엄마라고 하고, 남자를 보면 아빠라고 하는. 그런데도 괜히 두 사람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사장의 남편이 윤을 안아들고, ○○과 -처음보는-경수에게 와줘서 고맙다는 말을 전했다. 내일 미역국이라도 끓여올게요. ○○은 웃으면서 말했고, 두 사람은 병원 밖으로 나왔다.

 

  " 너는 나를 보면, 자꾸 그 때의 일들이 떠올라? "

 

나오자 마자 경수가 물었다. 술기운 같은 것은 전혀 남아있지 않았다. 조금은 진정되고 더 진지한 목소리였다. ○○은 경수의 목소리에 잠시 귀기울였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 그 때의 일들은 이제 묻어둘 수 있는 것들이잖아. 그건 5년 전에도, 이미. "

  " 변백현이랑은 무슨 사이야. "

  " 5년 전과 변함 없는 사이. "

  " 왜 나한테는 …연락하지 않았어? "

 

○○은 경수를 올려다봤다. 5년 그 사이에도 키가 클 수가 있구나, 새삼 느꼈다. 소년과 소녀는 언제 이렇게 자랐을까. 5년의 시간은 무엇이었을까. 꿈이라고 그 모든 시간을 인정하기에는 너무도 짧은 시간이었을까. 아니면 서로를 볼 수 없었기 때문에 너무 긴 시간이었을까. 언제 성인이 되어서, 또 다른 남자와 여자로 만나서 우리는 지금 이 곳에 있는걸까.

 

  " 그냥 오랜 시간동안 너무 힘들었잖아. 내가 내 인생을 살아가면, 너도 내가 없는 네 인생을 살길 바랐어, 경수야. "

 

그리고 조용해졌다. 자동차가 지나다니는 소리만이 두 사람 사이를 채우기 시작했다. 불어오는 바람은 5년 전 처럼 가을을 잔득 머금고 있었다. 경수는 말이 없었다. 그 말을 들은 것이 분명한데, 마치 듣지 못한 사람처럼 가만히 있었다. 그러다가, 경수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단단하고, 분명한 목소리였다.

 

  " 그럼 넌 누구에게 네 일들을, 인생을 맡기고, 믿으며 함께 살건데. …나한테는 그게 왜, 힘든데? "

  " ……. "

  " …좋아해. "

  " 아, "

  " 너를 보자마자 나는 알아차렸는데. ○○아, 너는 그 때의 나를 좋아하지 않았어? "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긴 침묵이 돌았다. 끝까지, 그 침묵은 자동차와 사람들의 소음만 채워졌을 뿐이었다.

 

 

*

 

 

  " ○○아. "

  " 네, 오빠. "

  " 생각을 해봤어. "

  " 생각이요? "

  " …이제는 너도 행복해도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 "

  " …네? "

  " 물론 이제 너는 더 이상 불행하지 않은 거 알아. 잘 지내고 있다는 것도 알고. 그런데, 지금 네가 진짜 행복한 건지 의문이 들어. 그 때 네가 해준 이야기를 듣고 난 뒤에는 더더욱. "

  " 백현 오빠. "

 

백현이 부드럽게 웃으면서 ○○에게 말한다. 저 웃음은 언제나 변함이 없다.

 

  " 그러니까, 이제는 행복해.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고. 하고 싶은 대로 해. 네 인생을 산다는 건 그런거야, ○○아. "

 

 

*

 

 

저녁 시간 쯤에 경수가 카페에 찾아왔다. 카페에 자주 가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경수는 스스로 그 생각을 잘 깨고있는 중이었다. 경수가 별 다른 특별한 말이나 목적없이 카페 '별'에 찾아온지 이주째. ○○은 경수를 아무렇지 않게 손님처럼 받고 있었지만, 아무렇지 않을 수가 없었다.

사실 경수가 좋아한다고 고백했던 그 날 이후, 카페에 찾아오는 이유는 분명한 것이었다. 그건 경수에게도, ○○에게도 확실한 것이었다. 하지만 경수는 와서 늘 별 다른 행동없이 제 일만 하고 갔다. 책을 들고와서 읽는 날도 있었고, 과제가 있는지 노트북을 들고와서 이리저리 자료를 찾고, 무언가를 쓰기도 했다. 그냥 카페에서 평범한 일상을 보내는 사람 같았다. 경수와 특별하게 말을 주고 받은 일은 없다. ○○도, 경수도 주문 할 때를 제외하고는 누구 먼저 말을 걸지 않았다.

 

그런데, 이 날은 좀 달랐다. 경수가 들어오고 약 20분 쯤 후 가게 문이 '짤랑-'소리를 내더니 어떤 여자가 들어왔다. 어째서 인지 ○○은 그 여자의 얼굴을 기억하고 있었다. 경수와 처음 이 곳에서 재회했을 때, 함께 있던 여자였다. 그러니까, ○○은 모르는 경수의 소개팅녀였다. 그 여자가 들어오자마자, 경수는 이쪽이라는 듯 손을 살짝 들었다. 여자가 경수의 맞은 편에 앉았다. 그리고 대신 주문하겠다며 경수가 ○○의 앞에 와 섰다. 두 사람의 눈은 마주쳤지만, 경수는 무표정이었다. 그리고 정말로 모르는 사람을 대하듯, 그냥 카페 직원을 대하듯 음료의 이름만 대고, 계산만 하고 다시 가버리는 것이었다.

 

뭐지, 이 상황. 뭐지, 지금 이 분위기. 아니, 뭐야. ○○의 머릿속이 조금씩, 조금씩 엉망이 되어가고 있었다.

 

카페에 다른 손님들도 있었지만, 유난히 경수가 있는 테이블의 소리가 크게 들렸다. 사실 다른 테이블보다 오히려 조용한 편에 속했지만 ○○에게는 그렇게 들렸다. 여자의 가식 숨겨진 웃음소리나, 경수의 쾌활한 목소리나 가벼운 웃음같은 것들이 자꾸 들려왔다. ○○의 시선이 저도 모르게 자꾸 그쪽으로 향했다. 다른 손님들이 모두 나가고, 거의 마지막까지 경수와 여자가 남아있었다. 있은지 한 시간이 넘어섰는데도 대화는 계속 되고 있었다. 그러다가, 두 사람의 대화가 '벌써 시간이-'로 흘러갔다. 헤어지려나보다 싶었는데, 경수의 입에서 나온 말이 ○○을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다른 곳으로 자리 옮길까요? 시간도 늦었는데.' 시간이 늦었다면서 두 사람이 갈 곳이 어디있다는 말인가. 갈 만한 곳은 술집 밖에 없다. 사회 생활도 해보고, 연애도 그 사이에 해봤던 ○○이 이를 모를 리가 없었다. 그리고 두 사람이 정말로 자리에서 일어섰고, ○○을 스쳐서 문을 열고 나갔다. 그 순간, ○○은 자신도 모르게 조용히 불렀던 것이다.

 

  " 도경수. "

 

하지만 제대로 닿을리가 없었다. 그 것은 소심한 목소리였으므로. 경수와 여자는 카페 문 밖으로 나가버렸고, ○○은 가만히 그 뒷모습을 보다가 텅 비어버린 카페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생각하면서 헛웃음을 지었다. 내가, 왜 도경수를 불렀을까.

 

그러는 중에 다시 카페 문이 '짤랑-'소리를 울려보냈다. 그리고, 그 앞에 경수가 있었다. 눈을 깜빡이고 있는 ○○과 시선을 마주치면서 경수가 입을 열었다.

 

  " 왜? "

  " …어? "

  " 불렀잖아. "

 

○○이 당황했다. 정작 불러놓고도, 경수가 들었으리라는 생각하지 못했다. 아니, 부르는 것에만 저도 모르게 신경썼지, 불러놓고 난 뒤에 어떻게 할 지는 생각하지 않았다. 아니, 이제 생각해보니 왜 자신이 경수를 불렀는지도 몰랐다. 그래서 ○○은 아무말 하지 않고, 경수를 바라봤다. 경수가 슬쩍 미간을 찌푸렸다가, 다시 물었다. 왜, 불렀어. 그 말에 ○○은 고개를 저었다. 아무 것도 아니야, 혹은 부른 적 없어라는 뜻의 행동이었다. 경수가 웃음기 없는 모습으로 ○○을 보면서 무게있게 물었다.

 

  " 정말로, 할 말 없어? "

 

○○은 대답하지 않았다. 경수는 그런 ○○을 보고, 뒤를 돌아 다시 카페 문 밖으로 나갔다.

 

정말로, 할 말이 없나.

 

○○은 혼자 있는 카페에서 그런 생각을 했다. 그러다가, 한 쪽에 놓아둔 읽다 만 책을 펼쳐들었다. 하지만 역시 아무런 내용도, 글자도 머리까지 들어오지 않았다. 눈에서 튕겨 나가고 있었다. 그러면서 10분이 지나고, 20분이 지났다. 책에 있는 글자들로 억지로 막아세웠던 생각의 벽이 무너지면서, 머릿 속에서 돌아다니던 수 많은 말들이 폭발하듯 튀어나왔다.

 

아까 그 여자는 누구야. 그 여자는 뭐하는 사람인데 또 만나고 있어. 너는 그 동안 어떻게 지냈어. 대학교 생활은 어땠어. 너는 나를 어떻게 생각하면서 살았니. 나를 많이 원망했어? 나를 많이 미워했어? 군대는 잘 갔다온거야? 너 그 동안 여자 몇명이나 만나봤어. 진지한 마음으로 사귄거야. 혹시 내가 떠나고도 그 가난한 동네에 올라간 적이 있었어. 잘 지냈어, 경수야. 너는 키가 그 사이에 더 컸다, 어떻게? 멋있어졌어. 남자 다 됐어, 도경수. 그런데 네 얼굴이나 그 눈은 그대로더라. 우리 어릴 때 봤던 그 동그란 눈 그대로더라. 경수야. 경수야. 도경수. 경수야. 도경수. 도경수. 보고싶었어. 보고싶었어. 네가 그리웠어. 그리웠어. 정말로 그리웠어. 네가 보고싶어서 죽는 줄 알았던 날들도 있었어. 미안해. 미안해. 경수야.

 

  - 도경수, 보고싶어.

 

그래서 뛰쳐나왔다. 어디로 가야하는지는 몰랐다. 경수가 떠난지 20분도 지났다. 그 동안 경수의 휴대폰 번호도 알아낼 생각도 하지 않았다. 어떻게 해야하는지 몰랐다. 학교를 알아도, 대략적인 동네를 알아도, 지금이 중요했다. ○○은 경수가 보고싶었으므로. 그런데, 기적처럼-적어도 ○○의 입장에서는 이를 기적이라고 느꼈다- 카페에서 나오자마자 바로 근처에 서 있는 경수를 발견하게 된 것이다. ○○의 빠른 발걸음을 느낀 경수가 이를 알아차리고 시선을 돌렸다. 자신의 바로 앞까지 나와있는 ○○의 모습을 보고 경수는 놀랐다. 카페 문을 닫을 때 까지는 아직 2시간도 더 남았다. 그런데, 지금 ○○이 제 앞에 있었다. ○○도 당황했다. 나간지 20분이나 됐으면서, 아까 그 여자는 어디에 있고 경수가 왜 이 근처에 서있는지 알 수 없었다.

 

  " 너 왜 안가고 있어. "

  " 너는, 왜 나왔는데. "

  " 왜, 안갔냐고. "

  " …발걸음이 안 떨어져서. "

 

그 말을 듣자마자, ○○의 눈에 눈물이 조금씩 맺히기 시작했다. 경수가 그런 ○○을 보다가 다시 물었다. 너는 왜 나왔는데. 단호한 목소리에서, 무언가를 듣고싶어하는 경수의 마음이 느껴졌다.

 

  " 그냥, 그냥 나오고 싶어서. "

  " 나오고 싶어서? "

  " 보고 싶어서. 그냥, 네가, "

 

○○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경수가 ○○을 품에 안았다. 경수의 품에 들어간 ○○의 말이 막혔다. 그리고 그 가슴팍에 얼굴을 묻고, 눈물을 닦아냈다.

 

  " 됐어, 그만하면 크게 용기낸거니까. "

 

꽤 많은 시간을 돌아왔지, 우리. ○○은 경수의 품 안에서, 경수는 그런 ○○을 안으면서 같은 생각을 했다. 사실 어떻게 돌고 돌아서 지금 이 곳에서 이러고 있는 건지는 생각하기 어려웠다. ○○은 사실 자기 혼자서만 어른이 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혼자서 힘든일을 겪으면서, 그 가난한 동네에 살아가면서, 죽음의 끝에 같아오면서 저 혼자 성장하고 혼자 어른이 된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사실은 경수도 그 만큼 아프면서, 좋아하면서 성장하고 어른이 되었는데.

제 마음을 담기에도 벅찼던 어린 소년과 소녀는 지금은 성장해 이 곳에 함께 있었다. 오랜 시간을 만나지 못해도, 서로가 누구인지 알며, 어떤 사람인지 알며 그렇게 함께 서있었다.

 

집안이 망하고, 아버지가 도망가고, 아이를 임신했다가 낙태하고,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자살 시도를 하고. 가난한 동네에서 인생의 끝을 보고 있을 때, 도경수는 ○○을 붙잡고 말한다. 널 좋아해. 예전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이 경수의 품에서 나와서, 고개를 들었다. 가까운 곳에서 경수와 ○○의 시선이 만났다. 미묘한 분위기가 긴장된 줄 위를 살살 타고 흐르는 중에, ○○이 살짝 몸을 올려 경수에게 다가섰다. 그런데, 경수가 그런 ○○의 어깨를 붙잡고 내렸다.

 

  " 그 전에 너, 나한테 해야할 말들 많잖아. "

 

예전에도 이렇게 입만 맞추고, 꿈이라며 그렇게 사라져버렸다. ○○역시 알고 있었다. 그래서, 해야할 말들은 경수 처럼 아주 많았지만 그냥 딱 한마디로 대신했다. 한 단어로. 왜냐하면 그 것은 오래전부터 전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않았던 말이고, 지금도 간직하고 있는 말이였으므로.

 

  " 사랑해. 경수야. 도경수, 많이많이 좋아해. 사랑해. 내가 널 정ㅁ, "

 

그리고 이번에는 경수가 못 참고 그런 말을 쏟아내는 ○○의 입술에 입맞춘 것이었다.

 

첫키스를 나눴던 19세의 그 날보다 그들은 많이 자랐다. 다른 사람과 연애했다는 것을 서로에게 드러내기라도 하 듯, 두 사람의 키스는 능숙하게 이어졌다. 서로가, 서로에게 괘씸한 생각이 잠시 들 정도였다. 언제 이렇게 늘었데. 하지만 그런 가벼운 생각들은 정말로 곧 사라져버렸다. 5년이라는 공백이 무색할 정도였다. 어색함은 없었다. 갑작스러운 고백에 대한 당황스러움도 없었다. 사실은 둘다 알았다. 원래 처음부터 우리는 제자리에 있었고, 같은 마음이었으며, 서로를 보고있었으므로, 그냥 시간만 5년이 흘렀을 뿐이지 우리는 똑같았다고.

 

입술이 떨어지고, 경수가 가볍게 다시 ○○의 입에 쪽- 소리 나게 입맞췄다. 그리고 그 큰 눈에 드디어 미소를 담아서 ○○에게 말했다. 사랑한다고.

 

네 인생을 산다는 건 그런거야. 백현의 말이 떠올랐다. 우리가 우리의 인생을 산다는 건 이런거였는데. 우리는 이렇게 서로를 좋아하고, 사랑하며 살았으면 되는거였는데.

 

반짝반짝 별이 눈부셨다. 하늘에 별이 떠있는 건지 아닌지는 몰랐다. 그렇지만 두 사람의 눈 앞에 지금 반짝이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확신했다.

그러니까, 가자. 우리 함께. 별이 빛나는 밤에, 이제야 모든 것을 찾으러. 반짝반짝 빛나는 너를 만났으니까.

 

 

fin.

 

 

 

 

 

 

 

 

여러분 안녕하세요.

늦게 와서 죄송해요, 일정이 많았어요.ㅠ_ㅠ

 

마지막을 가장 잘 써내고 싶었는데, 남은 건 멘탈붕괴와 쓰레기 작품.ㅎㅎ

마지막이 애매하고 심심하게 끝난 것은,

번외를 위한 것이라고...소심소심하게 말하겠습니다.

(사실 그냥 핑계지만...ㅠ_ㅠ)

 

별이 빛나는 밤에는 상중하 로 끝이 납니다.

하지만 다음에는 번외편으로 조만간 찾아뵐게요.

원래 분위기보다 달달하게 오도록 하겠습니다.

 

그동안 '별이빛나는밤에'를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 암호닉 ♥

롱이 / 여기있나영 / 꽃사탕 / 낑깡 / 꿀징
진리 / 라퓨타 / 뀨뀨 / 핫바 / 카푸치노

늘늘 정말로 감사합니다 최고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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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근이

12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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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꺅~~~~번외편두기다릴게요^ㅇ^♥
12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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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2
정말짱이네여ㅠㅜ눈물이 핑도는ㅜㅠㅠㅠ어휴 진짜 대박이에여 책으로 내셔도 될것같아요 진짜ㅜㅠ짱bbㅠㅠㅠㅠㅠ번외기대하겠습니다ㅜㅠ
12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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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3
ㅠㅠㅠㅠㅠ아...진짜이걸왜이제서야보게된건지ㅠㅠㅠ진짜짱짱이에요 번외도기대하구있을게요!!!!!!
12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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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4
이게 쓰레기라뇨???진짜 와...잘썼다고 느낀 저는 쓰레기 독자인건가요?ㅠㅠㅠ..진짜 저 상중하 다 보고 진짜 울컥했다가 너무 좋았다 이해가갔다...진짜 여러감정이 차올랐네요ㅠ^ㅠ....진짜좋아요...딱 여기서 끝내는것도 여운이 진하게 남지만..번..외..보구싶네요^^... ♥♥♥♥♥♥♥기라느??얘네ㄴ너무 힘들니까 진짜이제 행복하게 살앗살았으면 ㅠ.ㅠ...
12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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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5
라퓨타예요ㅠㅠㅠ이런 감성돋는글을 새벽에보니 더 마음이 울컥ㅠㅠㅠㅠㅠ정말 오랜만이예요ㅠㅠㅠ신알신에 작가님 필명 딱 있는거보고 바로 글읽으러 달려왔어요ㅠㅠㅠㅠ둘의 긴 여정의 끝이왔군요ㅠㅠㅠ한편으론 아쉽기도하고ㅠㅠㅠ둘의 해피엔딩에 너무너무 기분도좋네요ㅠㅠ늘 둘에게는 안좋은일만있었으니 이렇게 쭉 행복하기를......♥그리고 번외가있다니!!!설마 큥이번외는....아니겠져?!!!!!!!큥이도 은근히 불쌍하시만 좋은사람만났으면 좋겠어요......♥새벽ㄱ에 감성충전도하고....♥하 오늘은 뭔가 기분좋은날이될거같네요 감사해요 작가님♥
12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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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6
신알신하고가여ㅜㅠㅠ
12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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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7
비타민으로암호닉신청해도되여?ㅠㅠㅠㅠㅠㅠㅠㅠ
12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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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8
카푸치노입니다! 작가님 오랜만이에요 기다리고 있었어요..ㅠㅠㅠ 새벽에 글 올라온줄 모르고 자다가 이제서야 보네요.. 오늘부터 시험이라...☆ 드디어 하편!! 영화 한 편 본 기분이에요.. 여주가 경수한테서 떠나고 5년 동안 뭐했을지 궁금했는데 평범하게 살고있다고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어요.. 근데 경수랑 만났을때 자꾸 꿈이라고 다 지나간 일이라고 말할때마다 조금 답답해서..ㅠㅠㅠㅠ물론 경수한테 그런 속내를 드러내기가 어려웠을테지만 아ㅠㅠㅠ그래도 잘돼서 너무 좋아요ㅠㅠㅠ 백현이도 한 몫 했겠죠.. 여주한테 항상 따뜻하게 대해주고 아껴주고ㅠ..여주랑 경수랑 행쇼할 것 같으니 백현이도 그런 모습 보고싶네요 5년전 백현이 마음도 알고싶고 지금도.. 그냥 뭔가 안쓰럽죠 왜때문에..ㅠㅠㅠㅠ
번외편 있어서 다행이에요!! 지금 여운이 길게 남아서.. 시험 다 끝나고 또 봐야겠어요 진짜ㅠㅠㅠ 작가님 긴 글 쓰시는데ㅠㅠㅜ수고하셨고ㅠㅠㅠ 번외편 기대할게요! 다음 작품 있으시면 그것도..ㅋㅋㅋㅋ 잘 보고 갑니다!! :)

12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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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9
핫바/
아... 어떡하죠.... 너무 몰입해서 읽었나봐요... ○○이가 겪은 일들이 마치 제가 겪은 일인것 마냥ㅠㅠㅠㅠ " ...발걸음이 안 떨어져서. " 이 부분에서 눈물 맺히더니 아직도 안멈춰요ㅠㅠㅠㅠ 어쩌죠ㅠㅠㅠ 책임져주세요ㅠㅠㅠㅠ 경수의 말 다음에 ○○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는 문장보고 소름돋았어요 저도같이 울고 있었으니까요ㅠㅠㅠ 제목이 왜 '별이 빛나는 밤에' 인지 이제서야 알것같아요. 백현이가 작은 별이었다면 경수는 가장 소중한, 깊은 곳까지 밝혀주는 그런 큰 별.... 고마워 경수야
워낙 친구에서 연인으로 라는 소재를 정말 좋아하는데 이 소재로 이렇게 금쪽 같은글 써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려요. 3부작 드라마 보는 느낌이었어요. 표현에서부터 전개까지 읽는내내 와... 이러고 감탄하면서 봤어요. 저도 만약 나중에 글을 쓰게된다면 꼭 꼬밍님 처럼쓰고 싶어요... 진짜 짱짱.
사실 오늘이 시험 첫째날이었거든요..ㅠㅠㅠ 결과가 안좋았던 터라 마음이 싱숭했었는데 별이 빛나는 밤에 그리고 꼬밍님 덕분에 크게 힐링하고 가요ㅠㅠㅠ 흔하디 흔한 엔딩이엇는데 너무 감동적이고 마음속까지 치유된거같아요 이런 분위기의 글 사랑합니다♡ 이런글이 쓰레기라니 말도 안돼요ㅠㅠㅠㅠ 별이 빛나는 밤에 메일링 하실 생각 없신가요...? 영구 개인소장 하고싶네요ㅠㅠㅠㅠ 번외도 꼭 기대할게요! 다시 한 번 감사드려요 사랑합니다♥

12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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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9
헐ㅠ작가님진짜여운있게잘쓰신다ㅠ
12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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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0
좋아요 좋아요 짱짱
12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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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1
댓글은 처음 달아보는데 진짜 글잘쓰세요..ㅜㅠ이거보고 전작들도 다 보고왔네요 하나같이 재밌음.. 감정선이 좋아서 몰입도쩌네용 오랜만에 재밌는 글 읽은거같아요ㅎㅎ 작가님 옆에 앉혀두고 하루종일 글만 쓰게 하고싶을정도예여!! 진짜 금손이심 완전 팬될거같아요 요즘 좀 힘들었는데 이렇게 재밌는글보면 힘나요 감사합니당..이제부터 꼬박꼬박 챙겨볼게용 날씨추워지는데 건강조심하시구..자주 와주시면 감사하구..ㅋㅋㅋㅋ신알신 하고갑니당!
12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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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3
좋은 글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희망차고 뿌듯한 완결이라 뭔가 저도 덩달아 기분 좋게 하루를 마무리하고, 또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작가님의 멋진 필력에 감동하고 가요.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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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4
와...대박. 작가님 필력 대단해요. 잘 읽고가요. 감사합니다ㅠㅠㅠ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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