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호석/김태형] 여름밤의 꿈 04 | 인스티즈](http://file2.instiz.net/data/cached_img/upload/2016/02/08/22/8b6976d44b66c7d22c4bd79d77083dec.gif)
「 여 름 밤 의 꿈 」
04
[ 기다려. ]
“ … ”
[ 지금 갈게. ]
새벽 공기는 선선했다. 일어나기 직전인 해가 산 너머 빛을 뿜어냈다. 뒷산으로 가는 길에 고여 있는 호수 근처에서 울타리 사이에 앉아 가만히 아침 해를 바라보았다. 다시 마주볼 용기가 없었다. 아무도. 그치만 보지 않으면 힘들 것 같았다. 그래서 불러낸 것이다. 더 웃긴것은 김태형 번호조차 몰랐다. 아는게 없어서 무작정 중학교 앨범에 끼여있는 김태형의 집 전화번호를 찾아 헤맸다. 그렇게 무작정 전화를 걸었지만 막상 만난다고 해도 내가 어떤 이야기를 꺼내야 할지도 모르겠고, 어떻게 말을 시작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내가 김태형과 다시 얘기를 나누고, 오해를 풀고, 그런다 해도 나아지는 게 있을까 모르겠다. 이미 꼬인 건 엉켜서 풀리지 않을 정도로 꼬였고, 시간은 너무 지나있었다. 그래서 더욱 용기가 없었다. 후회가 가득 들었다. 내가 정호석을 확실히 내치지 못하고 도망쳤던 것도, 김태형에게 전화했던 것도, 그리고 1년 전 그 날도. 모두 후회만 가득했다.
무릎을 굽히고 다리 위에 얼굴을 묻었다. 눈을 질끈 감아도 아침해가 떠오르는게 몽실 느껴졌다. 뭐가 싫은지도 모른채 속으로는 계속 싫어, 싫어 하고 다분히 외치고 있었다. 나를 만지는 손길이, 얼굴이, 목소리가 전부다 그 때와 똑같아서 더욱 힘겨웠다. 매순간의 감정은 시시각각 변한다는데, 네가 찾아온 후로는 줄곧 힘들었다. 피하고 싶단 마음이 가득했다. 김태형도 같았다. 김태형 자체가 그 때의 기억을 살리는데 충분한 흔적들이 가득 묻어있었으므로, 나는 또다시 김태형을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그 짙은 눈동자를.
“ …야. ”
네가 입고 있던 것과 똑같은 교복을, 네가 얘기할 때마다 환히 웃음을 터뜨렸던 그 입을, 너에게 놀림을 받을때마다 파르르 피어오르는 두 볼의 열꽃을
사실은 바라볼 자신이 없었다.
내 발끝을 툭툭 치는 건드림에 제발 내가 무릎 위에 묻었던 고개를 올렸을 때 울음자국이 없기를 간절히 바라며 얼굴을 들었다. 진짜로 마을에 찾아온 김태형은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보다 똑같이 고개를 숙이고는 내 옆에 앉아 난간 사이로 양 발을 들이밀었다. 나와 똑같은 자세가 된 김태형이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후, 하고 깊이 한숨을 내쉬었다. 마침내 아침해가 완전히 자리를 잡고, 강 주변은 햇빛에 의해 한차례 환해졌다. 새 지저귀는 소리가 났다. 예전에도 김태형과 여기 와서 등교시간이 다 되갈 때까지 놀고 있던 적이 있었다. 계곡 아래에서 두 바지 끝을 걷어붙이고는 바깥 날씨하고는 완전히 다른 시원한 물에 발을 담그고는 어린 애들처럼 유치하게 물세례를 던지며 놀았었다. 이제는 갖고있기도 뭐하고, 버리기에도 아까운 추억들이었다.
“ 아까, 그 말 있잖아.. ”
“ …응 ”
“ 그.. 호석이..가 보인다는 말. ”
굳이 살피지 않아도 충분히 당황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을거란걸 안다. 이런 반응이 예상되어서 말하고 싶지 않은 거였다. 언제나 사람들은 이상을 꿈꾸면서 현실을 직시하고 살으라 한다. 막상 꿈에서 나올 법한 기괴한 일들이 주위사람들에게 벌어진다면 믿지 않으려고 한다. 나또한 그런 과에 속했다. 과학적으로도 증명되지 않은 귀신따위의 물체들이 만약 김태형의 눈 앞에 보인다고 하면 나는 김태형이 꿈에서 깰 수 있을만큼 머리를 때려줄 자신이 있었다. 그런데 그 황당한 일이 나에게 벌어졌다. 1년전에 죽은 친구가 눈앞에 보인다. 그것도 생생히. 나는 지금 내 머리를 돌로 떄리고 싶을만큼 절망스럽고 혼란스러웠다. 그건 듣는 김태형도 마찬가지일것이다. 최대한 나를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 미친년 같지? ”
“ … ”
“ 말도 안돼잖아. 죽은 애가 어떻게 나타나. ”
내가 내뱉고도 무슨 소리를 하는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그저 그냥 이런 멍청한 얘기를 들어줄 사람이 생겼다는 거에 감사하게 생각했다. 1년전에 싸운 애를 불러다가 이게 무슨 자질구레한 짓인지. 내 말이 꽤 충격적으로 다가왔는지 말없이 나를 바라보는 김태형이었다. 깨끗한 계곡물 위에 주황빛 비늘을 자랑하고 있는 물고기 한 마리가 파닥파닥 거렸다. 이 마을 전부가 내 과거의 흔적이었다. 학교가는 길에 보이는 편의점 하며, 계곡물, 그 위에 물고기들, 얼마전에 공사한 아스팔트 도로. 전부 다 우리의 과거들이어서 매일 둘러볼때마다 죄책감이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치솟는 우울감에 다시 고개를 묻고 눈을 감았다. 매미가 울기 시작했다. 입을 열기조차 싫은 순간이었다.
“ 이제 가. 너 학교 가야하잖아. ”
“ … ”
“ 홧김에 부른거야. 너랑 계속 얘기하고 싶어서 부른것도 아니고, 그냥, 그냥 가. 나 죽은 애 보는 또라이같은 말 하는 애라고 생각하고 그냥 가. ”
“ 나는 너랑 얘기하고 싶어서 온다고 한건데. ”
반 포기식으로 했던 말에 돌아오는 대답은 조금 의외였다. 가슴이 꽈배기처럼 돌돌 말리는 기분이었다. 그 말들이 가시가 되어서 어딘가 모를 내 몸 한구석을 쿡쿡 찔렀다. 순전히 자신의 마음을 토로한 김태형의 대답이었다. 욕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아팠다. 답답했다.
“ 가자. ”
“ 야, 야 뭐하는거야? ”
“ 너 아침밥 안먹고 왔지. ”
김태형이 무작정 내 손을 덥석 잡고는 계곡 근처에서 빠져나왔다. 난간 사이에 끼웠던 내 두발은 간신히 빼냈고 그 이후로는 김태형에게 억지로 이끌려갔다. 이런 전개가 될줄은 상상도 못했다. 익숙한 골목길로 들어가서는 김태형은 두 갈래로 나눠진 길에서 큰 길쪽으로 가는 길을 택했다. 억지로 붙잡힌 손목이 따끔해서 작은 신음을 냈더니 살짝 힘을 풀고 약하게 내 손목을 잡는 김태형이었다. 따뜻했다. 호석이 손과는 비교도 안되게 따뜻했다. 너 학교는 어쩌고? 내 다급한 말에 김태형이 입꼬리를 올리며 대답했다. 이미 늦었어.
“ 너 지금 나랑 뭐하자는거야. ”
“ 뭐하긴. 떡볶이 먹자는거지. ”
“ 너는 내 말이 말같지도 않.. ”
김태형이 내 입 안으로 떡볶이 하나를 물렸다. 졸지에 떡볶이가 담긴 내입은 웅얼웅얼 알아듣지도 못할 말을 내뱉다가 멈춰서 오물오물 떡볶이를 씹었다. 저 나쁜 새끼. 김태형이 데리고 온곳은 큰 길과 연결된 마을 한구석의 떡볶이 가게였다. 학교와 가깝기도 해서 예전에 고등학생이 되자마자 자주 찾던 곳이였다. 오자마자 나와 김태형을 알아본 떡볶이집 아주머니가 손뼉을 치면서 생글생글한 눈웃음과 함께 우리를 반겼다. 아주머니는 나보고 태형이는 많이 왔는데 너는 왜 그동안 안왔냐고 하면서 나를 자리에 앉히고 바로 떡볶이 2인분을 준 것이다. 1인분 하나는 오랜만에 본 선물이라는 말을 덧붙이고는 아주머니는 다시 주방으로 들어갔다. 계속 일부분의 말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김태형은, 이미 나 말고 누군가와 많이 왔구나 이곳에.
“ 맛있지. ”
일부러 대답을 피했다. 하기 싫었다.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내 기분이 어떤지도 모른 채 김태형은 계속 히쭉 웃으며 나에게 이것저것 말을 걸었다. 씹히는 떡볶이의 양념 향이 입안 가득 퍼졌다. 예전의 맛이 여전했다. 이른 아침 먹는 떡볶이는 실로 오랜만이었다.
“ 아주머니! 저희 왔어요! ”
“ 야! 정호석, 김태형 너네 뭐해! ”
“ 호석이 왔어? 근데 너네 지금 학교 갈 시간 아니냐? ”
“ 저희 셋은 괜찮아요. ”
뭐가 괜찮다는거야. 떡볶이는 이른 아침에 학교 째고 먹는 것이 최고라면서 등교시간이 임박할 때 기어이 나를 떡볶이 집으로 끌고 온 김태형과 정호석이었다. 이럴 때만 둘이 쿵짝이 정말 잘 맞았다. 하는 수 없이 자리에 앉은 나는 떡볶이가 나올 때까지 초조하게 시계를 확인하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아, 오늘 첫교시가 뭐였더라. 담임이면 죽는건데. 그렇게 걱정하고 있던 타이밍에 떡복이 2인분이 나왔다. 한눈에 봐도 먹음직스러운 비주얼에 군침이 돌기 시작하면서 방금전까지 했던 걱정들은 눈녹듯이 사라졌다. 분명히 눈깜짝할새에 자기들끼리 다 먹어버릴 녀석들이었으니 필사적으로 젓가락을 들어 떡볶이에 꽂았다. 그리고 막힘없이 입안으로 넣자, 쌉쌀하고도 묘한 맛에 금세 미소를 지을 수 밖에 없었다.
“ 와, 꿀이다 진심. ”
“ 야, 근데 우리 첫교시 뭐야? ”
“ 아마 국어일걸. ”
먹던 떡볶이를 대답했던 김태형의 얼굴에 대고 뱉어버렸다. 켁켁 하고 목이 막혔다. 김태형이 자신의 코 위에 올려져있는 씹다 만 떡볶이 하나를 두고 멍하니 앉아있을 때 정호석이 얼른 물을 갖고와서 내 앞에 두었고 나는 그 물을 벌컥벌컥 마시며 불덩이 같은 목을 식혔다. 와, 살았다. 그 동시에 김태형이 휴지로 내가 뱉었던 떡볶이를 닦아내고 나에게 소리를 질렀다.
“ 아 더럽게 진짜! ”
“ 야, 그게 중요한게 아냐. 첫교시 국어면은 담임이잖아! 망했다고 우리! ”
“ 어물쩡 넘어갈 생각마라. 나도 먹고 뱉어버릴거야.”
김태형이 떡볶이를 입안에 욱여넣기 시작했고 정호석은 슬금슬금 뒤로 피하는 나를 보고 배를 잡고 웃기 시작했다. 야, 야! 그건 내가 잘못했어! 잘못했다고! 햄스터 한 마리같이 입 안 가득 떡볶이를 물고온 김태형이 진짜 뱉을 기세로 달려왔다. 나는 정신없이 떡볶이 집 안을 배회하며 뛰다가 정호석의 어깨 뒤에 숨었고, 살짝 얼굴을 빼꼼히 내밀다가 나를 본 김태형이 입안에 있던 떡볶이를 뱉어버렸다. 다시 상황을 살폈을 땐 김태형은 깔깔 웃기 시작했고 정호석의 얼굴에는 떡볶이 양념이 덕지덕지 묻어있었다.
“ 너 죽을래? ”
“ 아, 진짜 미안. 진짜 미안 정말로 ”
“ 무슨 떡볶이 4개를, 먹다 뱉은걸. 넌 죽었어. 이리와 김태형. ”
“ 야야야! 윤계상! 야 빨리 도와줘봐! ”
“ 내가 왜? ”
“ 정호석은. ”
“ … ”
“ 생각없이 너 찾아오는 애 아냐. ”
셋이였을 땐 금세 바닥을 비웠던 떡볶이가 지금은 여전히 산처럼 쌓아져있었다. 벗겨낼 수 없었다. 산처럼 쌓은 추억들이 바닥을 보이기엔 이미 나는 너무 많이 올라와 있었고, 너의 흔적은 이 곳에 가득했다.
“ 분명 이유가 있어서 찾아온거겠지. ”
“ … ”
“ 그러니까 만나면돼. ”
부딪히면 된다고. 김태형이 정신을 잃고 멍하니 앉아있는 내 이마를 말아쥔 주먹으로 살짝 때렸다. 그럴까 정말로. 피할 수 없으면 부딪히는게 나은걸까. 처음으로 먼저 올려다본 김태형의 눈빛은 굳건했다. 자신이 말했던게 정답이라고 확신하고 있는 것처럼. 오묘했다. 나는 김태형이 다 잊었다고 생각했었다. 나를, 호석이를 다 잊었다고 생각했었다.
“ 나도 누구처럼 학교나 빠지고 집에 가야겠다. ”
“ 김태형. ”
“ 야 그리고 전화할거면 번호도 좀, 알려주던가. 어? ”
“ … ”
“ 학교도 계속 빠지려고만 하지 말고. ”
“ 네가 내꺼 보충 멋대로 신청했어? ”
김태형은 쭉 지켜보고 있었다. 내가 학교를 계속 빠지는 것을. 더이상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나는 생각보다 김태형을 더 모르고 있었나보다. 김태형의 눈빛이 당혹스러움으로 바뀌었다. 맞긴 맞나보네. 주방에서 일하고 있던 아주머니가 나오면서 아직 그대로인 떡볶이 그릇을 보고 이것밖에 안먹느냐고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평소라면 잘만 대답할 김태형이 의외로 먼저 대답하지 않았다. 아, 배가 갑자기 아파서 잘 못먹겠네. 죄송해요. 나중에 꼭 3인분으로 시켜서 다 먹을게요. 그래서 대신 대답했다. 김태형이 그제야 손을 움직이고는 천원짜리의 꼬깃꼬깃한 지폐 3장을 아주머니에게 건넸다. 아주머니의 마지막 미소를 보고는 떡볶이가게에서 나올 수 있었다.
“ 저, 윤계상.. ”
“ 원망 안해. ”
“ 어? ”
“ 고마워. ”
“ 뭐? ”
김태형이 얼빠진 표정으로 되물었다. 두 눈을 비빈 김태형이 다시 나를 새파랗게 뜬 눈으로 바라봤다. 충동적으로 한 말이었다. 몰려오는 부담감에 황급히 뒤를 돌아 마을로 걸어갔다. 살짝 걸음을 빨리 하니 뒷목부터 시작해서 열이 오르는 기분이었다. 더운 바람이 살랑살랑 불었다. 시간은 어느새 오후를 넘어가려고 하고 있었다.
“ 어데 갔다 왔어? ”
“ 아, 잠깐 아침 운동좀 하고왔어. ”
“ 그래. 아침밤은 묵었고? ”
집안에 들어서자마자 된장찌개를 끓이며 넌지시 물어오는 할머니의 말에 습관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려다가 구수한 된장냄새가 코를 찔렀다. 군침이 돈 나머지 고개를 세게 저었다. 할머니가 주방용장갑으로 다 끓인 된장찌개를 식탁 위에 올렸다. 나는 밥솥 안에 있는 하얀 쌀밥을 한공기 퍼서 할머니 앞에 놓아드렸다. 더운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뜨거운 공기밥을 입안으로 밀어넣었다. 매일 방 안에서 나오지 않고 낮이 될때까지 버티고 있다보니 할머니와 이렇게 아침밥을 먹어보기는 실로 오랜만이었다. 할머니가 많이 먹으라며 내 밥그릇 위로 멸치 몇개와 생선조각을 얹어주었다. 나는 군말않고 목으로 삼켰다.
따르릉. 하고 갑자기 집 전화벨이 울렸다. 나는 먹다말고 할머니를 한 번 쓱 쳐다보다가 거실로 달려나가서 전화를 받았다.
“ 여보세요? ”
수화기 안에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뭐지? 잘못 전화했나? 여보세요. 한번 더 물었음에도 역시나 돌아오는 반응은 없었다. 그렇게 수화기를 내려놓으려고 했을 참에, 킁 하고 코막힌 소리가 났다. 숨소리 언뜻 비슷한게 들리는 것으로 봐서는 마치 울고 있는 것 같았다. 의아하기보다는 당황해서 말없이 가만히 있었는데 갑자기 툭 끊겼다. 살짝 기분이 상해 미간을 한 번 찡그리고는 다시 식탁에 앉았다. 아까까지만해도 연기가 피어오르던 된장찌개가 다 식었다.
“ 누구야? ”
“ 모르겠어. 갑자기 끊던데? ”
“ 암말도 안하고? ”
“ 응. ”
간단한 대화 뒤로는 할머니와 나 사이에는 말 한마디 없었다. 밥알들이 삼켜지며 밥그릇에 바닥이 보이기 시작했다. 갑자기 기침을 한 할머니가 가슴을 부여잡고는 한 손으로 물컵을 쥐고 벌컥벌컥 마시기 시작했다. 사례 하나는 노인에게도 위험한 일이라 휘둥그레 눈을 뜨고 할머니를 바라보았다. 한참동안 기침을 연이어 하던 할머니는 이내 괜찮다며 웃음을 보였다. 눈가에 주름이 선명해졌다가 다시 흐려졌다.
“ 할머니. ”
“ 어야. ”
“ 감기 걸렸어? ”
“ 다 늙은 노인네가 다 그렇지 뭐. ”
허허 하고 할아버지 웃음소리를 낸 할머니가 반절이나 남은 밥공기를 싱크대 위에 올려두었다. 내가 그 때 걸렸던 감기가 할머니에게도 옮겼나보다. 방금전까지 아무 말 없던 할머니가 내 이름을 다시 불렀다. 왜? 하고 대꾸하니 여행 한번 갈까? 하고 내게는 깜짝 놀랄만한 발언을 덤덤하게 하셨다.
“ 정말? ”
“ 그럼. ”
“ 어.. 아직 잘... ”
솔직히 당황스러웠다. 이제껏 여행이라고는 생각해본적도 없고 가본적도 없다. 놀이공원같은 곳을 가고싶다며 떼를 써본 적도 없고, 그 흔한 동물원도 같이 가본적이 없었다. 할머니의 뜻밖의 제안에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두 눈을 크게 뜨고 이리저리 눈알을 굴리며 초조하게 구는 나를 보던 할머니가 작게 웃었다. 고민이 있을째 어디가면 퍼뜩 날라가지 않겠어? 입이 절로 다물어졌다. 생각보다 내 주위에는 나를 지켜보는 사람이 많은가보다. 마지막 숟가락을 삼키고는 고개를 떨구었다.
“ 할머니. ”
한 마디, 한 마디 내뱉을때마다 공기가 나를 짓누르는 느낌이다.
“ 내가 고민 맨날 맨날 말해줄테니까. ”
“ 얼씨구. ”
“ 할머니는 내 고민 들어줘야해. ”
“ 그럼 당연하지. ”
“ 할머니 힘들면 나도 옆에 있을게. ”
그러니까 할머니도 내 옆에 있어야해.
“ 그러니까 죽지마. ”
이렇게 될까봐 겁나.
해가 완전히 떨어질 때까지 기다렸다. 생각해보면 너는 여름밤에만 나타났다. 김태형 말대로 찾아온 건 그 이유가 있어서 그런 것일 거다. 호석이가 찾아온건 내게 어떤 바람이 있어서 찾아온 것이 아닐까. 여러 생각이 종합적으로 머릿속을 오가며, 심장이 더 빠르게 뛰었다. 더위가 차츰 가셨다. 매미소리와 모기 날아가는 소리만이 일정하게 방 안을 울렸다. 이렇게 일방적으로 피하기만 하면 나역시 괴로운건 매한가지일것이다. 말그대로 그 이유만 물으면 될 것이다. 그럼 호석이가 왜 왔는지도 설명되고. 나는 그걸로 끝인거다. 생각만 하면 간단했다. 두려움이 없다고 하면 그것은 거짓말이다. 나는 1년 전, 그 사고 이후로 일순간 매일 그 기억들과 부딪혀왔다. 죄책감도 수없이 많았고, 회의감도 많았다. 두렵지만,
네 말대로 부딪혀볼게. 김태형.
*
생각보다 전개는 어렵네요...'-' 어쩐일인지 등록버튼만 누르면 503?이 떠서 심심해서 4화만 수없이 고친 것 같아요. 여름밤 여자 주인공의 감정은 어렵습니다ㅠㅠㅠㅠ
아참, 그리고 치환 꼭 하시라고 일부러 윤계상으로 바꿔두었어요! 마의 4화를 넘겼네여 기분이 아주 좋습니다! 이제 완결도 별로 남지 않았네요.
사랑합니다!
♡암호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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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족한 글인데도 신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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