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띵동띵동- 

 

 

일요일 아침부터 울려대는 초인종 소리가 잠을 깨웠다. 이 시간이면 아직 한밤중인데. 잠이 덜 깨어 초인종 소리는 현실성 없게만 들렸다. 몸을 일으켜 잘 떠지지도 않는 눈을 달고 현관으로 몸을 향했다. 그 와중에 인터폰 화면을 힐긋 보니, 혹시나가 역시나다. 노란 후드에 달린 모자가 신경질적으로 벗겨지고 이리저리 부드럽게 맞물린 머리칼이 드러났다. 힘을 주어 문을 열자 멍청하게 웃는 놈의 얼굴이 보였다. 

 

"...내가 벨 막 누르지 말랬지" 

"안 그러면 너가 못 듣잖아." 

"왜 왔어" 

"내 베프보러-" 

 

능청스레 말을 건네며 놈은 내 집 안에 발을 들였다. 옆 동에 있을 때는 그냥저냥 지내는 사이였는데, 같은 동으로 이사하고부터는 무슨 변덕인지 하루가 멀다하고 찾아온다. 무식하게 초인종을 눌러대던 날에 기겁을 하며 문을 열어줬더니 그 뒤로 더 저러는 것 같다. 옆 집 이모가 착해서 정말 다행이었다. 

 

"너 앞으로 초인종 한번만 더 그렇게 눌러봐. 말도 안 할거야, 너랑." 

"매정한 정필교." 

"너랑 친구 안 할거야" 

"친구하지 마라." 

"뭐?" 

 

순간 어안이 벙벙해져 뒤를 돌아보니 식탁에 쭉 엎드려선 멍청히 웃으며 자신을 보고 있는 정혁이 있다. 진짜? 라는 의미로 눈썹을 살짝 찡긋 해보이자 손을 들어 가까이 오라는 손짓을 한다. 돌아갈 수도 있었다. 평소처럼 저 미친새끼, 하고 넘어갈 수도 있었는데 그냥 뭔가에 홀린 듯 다가갔다. 잠이 덜 깼던 것도 같다. 나는 살짝 멍하게 걸음을 떼어 녀석의 바로 앞에 섰다. 그런 나를 본 놈은 좀 놀란 듯도 싶었지만 내색하지 않고 여전히 능글맞게 웃고 있었다. 

 

"와써" 

 

가까이 섰는데도 별 반응이 없어서 굉장히 무안해졌다. 그래서 '왔어'라고 재차 강조를 했는데, 혀가 덜 풀렸는지 발음이 뭉개져서 이상하게 튀어나왔다. 조금 쪽팔려서 귀가 붉어진 것도 같은데 모르겠다, 보일라나? 하여간 문정혁은 이상하다. 같이 있으면 괜히 불편하고 아무것도 아닌 것도 신경쓰이고, 내가 이유 없이 사람을 멀리 하지는 않는다. 아무 말 없이 웃기만 하던 문정혁이 이제 웃지도 않고 나를 본다. 가슴이 답답하게 불편하다. 하여간 도움이 안 된다. 얘랑 있으면 빨리 죽을 것 같아. 

 

"너 그러면 안 돼" 

"응?" 

"너 왜 요즘따라 나한테 내숭떠냐?" 

"뭐!? 야, 내가, 은제!!" 

"은-제" 

"아씨!" 

 

말렸어 진짜, 아침부터. 이거는 진짜 억울하다. 

흥분하니까 말이 더 이상하게 튀어나온다. 쪽팔려서 진짜, 뭐가 그리 웃긴지 문정혁은 내 말투를 따라하다가 막 웃었다. 솔직히 나는 정말 저한테 내숭 따위 떤 적이 없다. 필요도 못 느낄 뿐더러, 씨알도 안 먹힐 놈한테 내가 뭣하러 하냔 말이다. 

 

"정필교 삐졌냐?" 

"아니, 너 나가." 

"애교 부리면. 정혁오빠- 나가주세요- 해봐." 

"미쳤냐?" 

"충재가 해달라고 했으면 해줬을거면서" 

"걘 충재고! 넌 지금 존나 진지하잖아, 미친놈이 진짜." 

 

혈압이 끓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진짜 미친 놈 같다. 갈수록 심각해지는 게 하루 빨리 병원에 데려가야 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또 실실 웃으며 쳐다보는데 팬들은 껌벅 죽는 그 표정이 왜 나는 한 대 까버리고 싶은지, 쟤는 연예인이라 다행으로 생각해야 한다. 

 

"당연히 진지해" 

"또 뭐!" 

"둔해 빠졌어" 

"뭐?" 

 

이제까지 가만히 있던 놈이 갑자기 몸을 세웠다. 순식간에 올려다보게 된 상황에 당황해서 굳은 채로 쳐다보기만 했다. 이렇게 가까이서 눈이 마주쳐본 게 너무 오랜만이라 아무 생각도 안 났다. 진짜 둔해 빠져서 얼굴이 점점 가까이 오는 것도 모르다, 문정혁 숨이 내 피부에 느껴질 때에야 퍼뜩 정신이 들었다. 

 

"너." 

"야, 뒤로 좀," 

"헷갈리게 좀 하지마." 

"야," 

"미친 놈들은 원래 다 이래." 

"......-" 

 

그 뒤로는 아무 말도 못 했다. 할 수가 없었다. 입이 막혀버렸다. 다짜고짜 놈은 입을 맞춰왔다. 멤버간에 장난스레 뽀뽀를 해도 얘랑은 거의 한 적이 없는데. 그냥 아무 생각도 안 났지만 어느 순간부터 내가 자연히 눈을 감았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맞물린 입술을 자연스럽게 놈의 혀가 가르고 들어옴과 동시에 뒷머리를 단단히 감싼 손이 느껴졌다. 나는 손을 둘 데를 몰라 어색하게 내리고 있었는데 나머지 한 손이 다가오더니 내 한 손을 끌고가 자신의 허릿께에 얹었다. 모든 게 꿈처럼 몽롱했다. 피부 께에 분명히 느껴지는 숨도, 점점 더 깊게 들어오는 놈의 혀도, 닿아있는 입술의 느낌도, 모든 것이 비현실적이었다. 숨을 쉬는 것도 잊어 턱 끝까지 차올랐을 즈음에야 다른 세상에 있다 돌아온 것처럼 퍼뜩 정신이 들었다. 뭔가가 쿵 내려앉는 것 같았다.. 눈을 떴다, 그 미친 놈은 눈도 안 감고 있었다. 순식간에 얼굴에 열이 몰렸다. 불에 덴 듯 황급히 떼어내자, 놈은 순순히 떨어져 나가 번들거리는 제 입술을 엄지 손가락을 세워 가볍게 훑었다. 찌를 듯이 날카로운 시선이 한시도 내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당황해서 말을 하려다 말고를 반복하며 입술만 달싹이다가, 끝내는 눈도 못 마주치겠어서 고개도 숙여버렸다. 아직까지 가쁜 숨이 내게 혼란을 더했다. 미쳤다, 미쳤어, 미친거야. 눈가에 작게 경련이 이는 것이 느껴졌다. 욕하고 때릴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장난으로 치부해 넘겨버릴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 쿨한 척 잘한다 새끼야, 말을 건넬까도 싶었다. 

생각대로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달아올랐을 귀를 가리고 싶어 후드라도 쓸까 고민하는데 문정혁이 움직였다. 머리에 묵직한 손이 가볍게 얹어졌다가 떨어졌다. 절대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아무리 둔하다 해도 이 쯤 되면 모를 수가 없는거다, 나이를 헛살지 않은 이상. 모른척하면 그거야말로 내숭이고 잔인한 짓이다. 그래서 그냥 가만히 있었다. 걸어가는 게 느껴졌다, 돌아보지 않았다. 

 

"미친 놈이라 그래." 

"......" 

"신경 쓰지마" 

 

쾅- 

문소리가 났다. 

그제서야 입에서 절로 욕이 튀어나왔다. 

시발, 너는, 도대체 언제부터. 

코 끝에 미미하게 남은 향기 중엔 담배 향이 섞여있었다. 어쩌면 지금쯤 놈이 피우고 있을지도 모를. 

 

미친 놈이라서 그런다라니. 

어디에 미쳤다는거냐, 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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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으흐흫긓그휴ㅠㅠㅠ 재밌어요
신화글잡방은 오랜만에올라오는거라 더반갑ㅜㅜ

8년 전
독자2
아 너무 재밌어요 ... 읽고보니 4년전이네... 아직 계신가요..?
4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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