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준영X유승우X로이킴] 화염 - 4
그 남자가 누구인지는 얼마 지나지 않아 알 수 있었다.
고3이라고, 수업보단 자습으로 일관하던 음악시간이었는데 오늘은 왠일인지 음악실 수업을 하게 되었다.
아무렇지도 않게 문을 연 음악실에는,
그 남자가 있었다.
* * *
"자, 이번에 새로 오신 교생 선생님이시고. 나 대신 1,2,3반을 담당하실거야."
인사 하시죠,
고개를 까딱이며 그런 뉘앙스로 자리를 비켜준 음악 선생님이 옆으로 물러섰다.
천천히 교단쪽으로 몸을 옮겨 똑바로 선다.
그 차갑고도 깊은 시선으로 정면을 쭉 훑는다.
그 낯선 시선에 음악실은 조용했다.
잠시 그와 눈이 마주쳤다고 생각했다.
"...정준영입니다."
목소리가 나즈막하게 울렸다.
듣기 불편한 소리는 아니었으나, 이상하게도 거슬렸다.
저 사람이 여기서 나갔으면 싶다.
"25살이고..."
장담할 수 있다.
이번엔 확실히 눈이 마주쳤다.
나를 응시한다.
눈을 피하고 싶지 않았다.
당신 누구야.
"....잘 부탁합니다."
그가 살짝 미소를 띄며 말한다.
그 말이 꼭 나를 향한것 같아 기분이 좋지 않았다.
왜 내가 당신을 보면 불안한 마음이 드는건지 모르겠어.
어째서 오늘 처음 만난 당신에게 이렇게...
패배감을 느껴야 하지?
* * *
그의 성격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무뚝뚝하고, 무관심하고, 차가워 보이는 인상이었다.
그런데 또, 그렇지만은 않은 모양이었다.
질문 있습니까?
소개가 끝난 후, 남은 시간은 재량껏 해도 좋다며 나간 음악선생님을 힐끗 보고 계속 교생의 눈치를 살피는 반 녀석들에게 그렇게 말했다.
우물쭈물 몇명인가가 다소 형식적인 질문 몇개를 던졌고, 그는 꽤나 친근하게 받아쳤다.
나이 차가 적게 나서 그런지 얼마 지나지 않아 편하게 말이 오고갔다.
음악실의 분위기는 누그러졌다.
그러나 내 얼굴은 좀처럼 풀어질 생각을 안했다.
"선생님, 무슨 전공 했어요?"
악기에 대해서 아는 것도 없는 어떤 녀석이 그런 질문을 했다.
나는 가만히 고개를 숙이고 약간 흘러내리려는 목도리의 끄트머리를 만지작거리고만 있었다.
나른하기까지 한 목소리가 익숙한 단어를 말했다.
"기타."
내 이름을 부른 것도 아닌데 괜시리 움찔해 고개를 번쩍 들었다.
눈이 마주쳤다.
왜 나를 보고 있어.
기분이 더러워져 인상을 쓰자, 또다시 예의 그 비릿한 웃음으로 시선을 돌린다.
오오오, 기타래.
아무것도 모르는 녀석들은 멋있다는 듯 감탄사를 내었다.
"아, 쌤. 얘도 기타 쳐요."
"어? 맞다, 상우 기타 치잖아. 얘 완전 천재에요, 천재."
나 저번에 보고 존나 반했잖아.
저 새끼들은 왜 오버를 하고 난리야.
순간 짜증이 치밀어 가만히 앞만 쳐다봤다.
저 사람이 그냥 신경쓰지 않고 넘어갔으면 했다.
밴드부 있는 학교에 기타치는 사람 몇명 있는게 신기한 일도 아니잖아.
"아... 그래? 상우가 누구지?"
"얘요, 진짜 잘해요 얘."
맞아, 맞아.
야, 나가서 한번 쳐봐 오랜만에 좀 듣자.
씨발... 짜증나.
"아, 네가 상우야?"
대충 슬쩍 고갯짓으로 답하자, 그가 웃는다.
웃지 마.
나 보고 웃지 말라고.
"나와서 한번 쳐보지. 저 뒤에 기타 있던데."
"아니요. 됐습니다."
내가 왜?
나는 이제 대놓고 적개심을 드러냈다.
어리게 보이는것을 싫어하면서도. 내가 왜 이러는지는 나조차 몰랐다.
아쉽다는듯 나를 툭툭 건드려대던 녀석들도 내 기분이 좋지 않다는걸 눈치 챈 것 같았다.
그의 눈은 몇초간 나를 응시했다.
기분나쁜 시선.
손을 올려 목도리를 조금 정리했다.
아아.
그의 시선이 떠나갔다.
목도리에 붙은 작은 보풀을 천천히 떼어냈다.
오늘 기분 최고였는데.
* * *
종이 치고, 아무런 필요가 없었던 책이며 필통을 챙겼다.
그때까지도 괜시리 내 눈치를 보던 녀석들은 몇번 웃어보이는 내 모습에 별것 아니었다는 듯 떠들며 문을 나섰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고3이라는 것이 이렇게 다행스러운 적도 없었다.
아마 저 사람에게 음악을 배울 일은 없을 것이다.
저사람은, 아마도, 내게 있어 자습감독 정도의 역할만을 하게 되겠지.
마지막으로 문을 나서는데, 어깨에 무엇인가가 닿았다.
손이었다.
나도 모르게 시선이 간 손은 굉장히 컸다.
약간 거칠고, 길다란 손가락. 약간의 굳은살.
가슴 속이 싸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손이 천천히 내려가 등쪽을 툭툭, 두드렸다.
그가 내 옆에 섰다.
그리고 나는 분명히 들었다.
"유승우 정도는 돼야..... 천재지."
툭.
한번 더 내 등을 두드리고, 걸음을 옮긴다.
뒷모습.
검은 뒷모습.
똑똑히 들린 그 이름이,
소리를 내며 나를 집어삼킬듯 타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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