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수(禽獸)아파트_901호
(짐승 금, 짐승 수)
# 01
이삿짐을 푸르고 완벽히 정리하고 나니 일주일이 지나 있었다.
친구도, 아는 사람도 다 잃은 상황이니 딱히 도와달라고 할 사람도 없었으니,
이왕 이렇게 된 거 느긋하게 해보자는 심보로 짐을 풀었더니 일주일이 지나 있었지만
정말, 근육통 하나 안 생길 정도로 편하게 했다.
“후우.”
그동안의 굵직한 일이라면 중간에 헤어졌던 남친(개새끼)한테 전화가 왔었다는 건데,
어째 사설이 길다 싶더니만 사업을 하고 싶은데 돈을 빌려 달란다.
참 어이가 없어 욕을 한바가지 하고 끊은 뒤였는데...
“와아..”
푸른 산이 창밖으로 보이니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았다.
그 편안함을 느끼며 역시, 이사 오길 잘 했다는 생각을 했다.
아침마다 맑은 공기를 맡으니 더 건강해 지는 것 같고 잠도 잘 왔다.
부동산 아주머니는 분명히 바로 앞에 산이 있는 게 유일한 이점이라며
금수산은 심하게 험하진 않은 산이라 운동 삼아 오르내릴 수 있다고 했으니...
“주말엔 산에 올라가 봐야지. 일단은 일을 좀 구하고...”
콧노래를 부르며 노트북을 켜고 일자리를 찾기 시작했다.
찬찬히 살펴보니 이 주변엔 일자리 자체가 별로 없었다.
웬만한 직장은 다 빌딩 숲으로 나가야 있겠지.
그렇게 되면 여기 사는 이유가 없는데... 싶어 멍하니 페이지를 넘기는데...
“동물.. 병원?”
유일하게 괜찮아 보이는 공고가 있었는데 이름마저도 ‘금수동물병원 앤 샵’이었다.
동물을 딱히 잘 알고, 좋아하는 건 아니었지만 페이가 좋고... 아니, 그런 모든 걸 떠나서 집 주변이다!
오면서 이마트를 봤는데 그 사거리 바로 맞은편이란다.
“괜찮은데..?”
그렇게 대뜸 이력서를 써서 보내 놓았다.
아아- 어디든 붙겠지. 안 붙으면 조금 더 쉬고 뭐.
역시 돈이 생기니까 급할 게 없어지는 구나. 이 시간에 졸리기까지 하고.
하암-
늘어지게 하품을 쭉- 하고 노트북을 덮었다. 잘 때가 아니라 장을 좀 봐야 하는데...
지금 굳이 안 나가도 되긴 했지만 야생동물이 있다는 아주머니의 말이 거슬리긴 하니...
결국 해가 완전히 지기 전에 나갔다 와야겠다고 생각하며 지갑과 핸드폰, 차키를 들고 집에서 나왔다.
“졸린데 운전하다가 잠드는 건 아니겠지.”
지하 1층 주차장에서 내려 어두운 주차장을 걷는데, 역시 지하 주차장은 어느 곳이나 무섭다.
“으으. 미쳤지 왜 지하에 차를 댔지. 다음엔 지상에 대야지.”
괜히 걸음을 두두두- 빨리 하며 나는 차에 올랐다.
이상하게 좌석이 내 몸에 안 맞게 틀어져 있었다...
누, 누가 탔었나?
아, 아... 이삿짐 아저씨가 잠깐 타셨었지.
“휴우.”
그래 괜히 무서워 하지 말자.
라고 생각하면서도 왠지 모르게 께름칙해져서 노래를 틀었다.
그러니 조금 나은 것 같았다.
역시 쇼핑하러 갈 땐 음악이지.
그렇게 말도 안 되는 논리를 펼치며 룸미러를 보며 눌린 앞머리를 필사적으로 살려보려는데.
“아악!!!”
부, 분명히. 분명히 봤다.
희멀건 한 사람의 얼굴을 말이다.
머리카락이 덥수룩하게 나 있어서 남잔지 여잔지도 모르겠고,
그걸 구분할 만한 정신도 없었다.
내 안에서 궁금증과 두려움이 마구 싸우고 있는데
결국 궁금증이 이겨버려, 질끈 감은 눈을 떠 아주 조심스럽게 룸미러를 통해 뒤를 보니.
“... 잘못 봤나?”
심장이 벌렁거리며 부동산 아주머니가 했던 이야기들과, 귀신 따위 안 볼 거라고 장담했던 내 거지같은 몇 주 전의 모습들이 교차된다.
"아. 진짜 귀신 있는 거야 뭐야."
인간의 고집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머릿속에 노래가 아른거린다.
*
“후우-”
내 손에는 한가득 쇼핑한 물건들이 들려 있다.
마트 안에 있는 한의원에서 보약도 한 첩 지었다.
귀신을 상대할 때는 기 싸움에서 지면 안 된다고 들었으니까.
다행히 지상 주차장이 있어서 마음이 놓였지만 마른 침을 삼키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없지.. 어... 없어..! 그, 그래도 일단은 산거니까 마셔보자.”
한의원에 가서 귀신을 본 것 같다고 하니,
임시방편으로 먹으라고 받은 한약을 차 앞에서 꿀꺽 꿀꺽 마시고 눈싸움이라도 하듯 차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군인처럼 긴장 가득한 몸짓으로 차에 올랐다.
“나타나기만 해봐... 죽여버릴거야...”
살벌한 선전포고를 하며 말이다.
마트 밖으로 나오니 길 건너편에 동물병원이 보인다.
꽤 크다. 아마도 이 동네 하나뿐인 현대식 동물병원일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손님도 많았다.
저기에서 일하게 되더라도 마냥 한가롭진 않겠다는 생각을 하며 갓길에 차를 잠깐 세우고 받은 메일을 확인했다.
“어...? 벌써 답장 왔네.”
메일 보낸 지 한나절도 안 된 것 같은데 벌써 답장이 와 있다니.
[지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력서를 면밀히 검토해본 결과 000씨는 저희 매장에 적합하신 것 같네요.
면접은 편하실 때 보러 오시면 됩니다. - 금수동물병원 앤 샵]
일단 붙은 것 같다는 생각에 기뻐하며 편할 때가 도대체 언제일지 생각했다.
언제 가야 적당할까? 맘 같아서 여기까지 차타고 나온 김에 처리하고 싶은데 입에서 한약 냄새가 너무 심하게 났다.
괜히 이런 냄새 풍겨서 떨어지진 말자. 하고 생각하며 집으로 향했다.
날이 반쯤 저물어 있었다.
“지상에 대자.. 지상에 제발 자리야 남아 있어라.. 제발...”
내가 그렇게 늦은 것도 아닌데, 6시면 별로 늦은 시간도 아닌데
아파트 단지를 뱅- 돌아도 자리 하나가 없다.
제발 한 집에 자동차 1대만 소유합시다.
...차가 많은 건 도시나 여기나 마찬가지다.
“아아.. 미치겠네.”
결국 지하주차장 행이다.
자리 찾겠다고 30분을 넘게 빙빙 돌지 않았으면 주차장 괜찮은 자리에 주차할 수 있었을 지도 모른다.
주차장 입구 쪽 같이 외지지 않은 곳으로.
“그냥 미련 버리고 주차장으로 올 걸...”
역시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오늘도 어느 아이돌 가수의 노랫말이 머릿속을 맴돈다.
그나마 남은 자리 중에서 어제랑은 절대 같은 자리에 대고 싶지 않아서, 정반대편 지하에 차를 댔다.
올라오는 것도 지하 엘리베이터로 올라오기가 싫어서, 빙 돌아서 지상으로 나와 1층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들어왔다.
“하아.. 하아...”
힘들었지만 이런 내 모습이 웃기기도 했다.
무섭지 않다면서 은근히 겁먹은 모습이라니.
그래도 운동 되고 좋은 것 같았다.
몸도 가벼워진 것 같고....
어? 가벼울 리가 없는데, 가볍다!?
..... 짐은?!
“아 이런 씨!!!!”
차에 두고 내렸다.
아. 결국 다시 내려가야 하는구나.
"아 써글!!"
귀신이고 뭐고 지하 1층으로 바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서, 내리자마자 차로 걸어가서, 뒷좌석에 넣어 둔 집을 딱 들고...!
“으어거ㅓ거거겋어억!!!”
짐 든 채로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왜, 왜...?
“왜.. 고양이가 있어!!?!!!?”
차 안에는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
그러면서 약간의 경계 혹은 긴장되는 눈빛을 하고 있는 작은 고양이 한 마리가 태연히 있었는데,
마치 자기 집인 것 마냥 편안해 보인다.
나는 주변을 슥슥 둘러보며 도와줄 만한 사람이 없는지 둘러보았지만
이미 거의 가득 찬 주차장에 인적은 드물었다.
나는 왜 진작 생각하지 못 했던 걸까.
이 곳의 지명이 금禽, 수獸, 그러니까 짐승 금에 짐승 수라는 것을.
왜 나는 깊게 생각해 보지 않았던 걸까..? 하아-
“아, 아.. 저기 고양아... 내릴래?”
아마도 키우던 고양이가 아니라 야생 고양이 같았다.
젖 먹이 정도로 아기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어른 고양이도 아닌 것 같은 크기.
섣불리 만지지도 못하고 그저 입을 쯧쯧 차며 고양이를 유인하려고 했지만 점점 포근한지 몸을 눕힌다.
"악. 미치겠네."
그러고 보니 어스름하게 열을 뿜어내고 있는 따듯한 본네트들 위에 고양이들이 드문드문 앉아 있는 것이 보인다.
추운 날 주차장은 본네트 침대가 놓여있는 호텔인 거구나.
그렇다면 이 곳은 동물들의 ‘핫 플레이스’가 되겠구나.
왜 나는 진작에 이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캬오옹-
“.... 착하지~ 고양아~? 나와~ 엄마한테 가렴? 응~?”
참, 고집도 세기도 하지.
아직 어린 고양이 같은데 벌써 독립이니?
나처럼 너도 이른 독립을 한거니? 응?
“나는 너의 좋은 주인이 되어 줄 수가 없어요오.
나는 굉장히 이기적이고 개인주의인 나쁜 인간이란다? 응?
그리고 난 지금 누굴 보살피고 그럴 심적 여유가 없는 사람이야... 아휴.. 나오라니까?”
캬오. 오옹-
뭐지. 저 기분 나쁜 텀은?
무슨 끌끌대면서 웃는 소리 같잖아?
헛생각을 하다가 마트에서 참치캔을 샀던게 떠올라 생 참치캔을 하나 까서 유혹을 하고
룸미러에 걸려 달랑거리고 있는 솜뭉치를 떼서 달랑거려도 봤지만.
이 놈의 고양이는 요지부동이다.
“후우. 일단 나와 봐. 계속 거기 있을 순 없잖아, 그치?”
그렇게 30분간의 진빠지는 대치 상황이 끝난 후, 거의 나의 패배인 것으로 승부가 기울기 시작했을 때, 문득 좋은 생각이 들었다.
나는 휴대폰을 들고 낯선 전화번호를 눌렀다.
“네~ 저 면접 보러 오라고 하신 김탄소인데요~ 지금 면접 보러 가도 될까요?”
동물 병원이니 길 잃고 엄마 잃은 동물을 어떻게든 해 주겠지.
어쩌면 귀엽다면서 의문의 착한 손님 한분이 입양이라도 해가지 않을까?
어쨌든 이게 최후의 수단이었다.
“내가 동물이랑 친하기만 했어도, 아니 만질 수만 있었어도...! 분하다.”
그렇다.
나는 아무리 귀엽다고 지랄하는 쪼그만 동물이든 멋있다고 하는 동물이든 만지지 못한다.
무섭고 이상하고 어색하다.
뭔가 동물의 뜨거운 체온과 함께 갈비뼈가 두둘두둘 만져지는 그런 느낌이...
으. 상상만해도 소름끼친다.
“그런 주제에 왜 내가 동물병원 면접을 보러 가는 거여... 참나.”
주 업무가 재고파악과 카운터라고 했으니까...
으... 괜찮지 않을까?
유일하게 만질 수 있는 동물은 인간뿐인 내가. 잘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꼭. 붙고 싶었다.
가까우니까. 흐흥.
*
놀랍게도 난 단 3분 만에 채용하겠다는 확답을 받았다.
그런 원장님을 보며 어? 너무 쉽게 결정하시는 거 아닌가요? 라며 붙잡고
‘저는 사실 동물을 못 만져요. 보는 건 좋아하고 귀여운 것도 알겠는데요...
정말 만지는 건.... 제 취향이... 으윽.’
라고 사실대로 말해야 한다는 양심의 충동을 느꼈지만,
붙고 나니 그런 말은 내장 깊숙이 들어가 버리는 것이다. 흐흐.
“아 맞다...”
고양이!
마침 손님도 없고...
‘착하고 동정심 많은 동물병원 점원 아가씨’의 이미지를 만들 만한 대본이,
내 머릿속에서 타타탁- 만들어지고 있다.
“선생님~”
“네?”
아참, 그거 말 했나? 수의사 선생님도 참~ 젊어. 크크.
여기 있는 간호사들이 수의사 겸 사장이기까지 한, 게다가 젊고 잘생긴 이 남자를 호시탐탐 노리는 게 보였지만
뭔가 눈이 높을 것 같은 느낌이 드네. 고로 가망성이 제로인 것으로 보이는 구나~
“제가 오늘 낮에 길 잃은 고양이 한 마리를 봤거든요~
근데 자꾸 가라고 해도 안 가서.. 데려와 버렸는데. 선생님이 좀 봐주실래요...?”
“그러죠.”
왜냐구? 이 선생님은 나한테 빠지셨거든~
좋아하지도 않는 남자한테 꼬리치고 다니면 안 된다!라고 말해주는 좋은 여자 친구들이 있었지만,
왜 그 여자 친구들에겐 나와의 의리는 없었던 걸까?
로또 당첨된 걸 믿고 말해주지마자 어쩜 그렇게 소문이 일파만파 퍼지던지.
흥!
“가 볼까요?”
사실 그냥 보고 있기엔 아깝잖아.
이 동네에서 10년을 찾아봐라. 이 남자만큼 괜찮은 사람이 있을지!
“아, 가요. 잠깐만 키 좀 챙기고요.”
이름도 멋있어. 김남준.
으읍. 정말 손으로 입 틀어막고 막 웃고 싶구나.
그런 내 등 뒤로 간호사랑 직원들의 희번뜩한 눈초리가 꽂힌다.
미안합니다. 이 남자 제 남자 하겠습니다.
지금은 나한테 별 관심 없어 보이지만...
뭐 같이 지내다보면 좋아질 수도 있는 거 아니겠어? 사람 일 모르는 거잖아~
“어제 이사 오셨다고요?”
“네. 저기 금수아파트 살아요.”
“어 저돈데. 몇동이요?”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가는 중에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는데.
같은 아파트에 산단다!
음. 아무래도 운명인 것 같은데?
“901호니까.. 1동인가요?”
“아 A동이네요. 저는 맞은편에 D동 사는데... 이웃이네요.”
하하. 네에. 그러네요.
진심이 섞인 장난이었지만 진짜로 길게 장난해보고 싶어진다.
흐음. 아무리 봐도 잘 생겼는데.
게다가 같은 아파트라니. 어쩌지~하며 앞장서 걸으며 온갖 상상을 했다.
아마 내 이상한 표정 퍼레이드를 펼치고 있는 내 얼굴을 봤으면 이웃이고 채용이고 물 건너갔겠지.
“이 고양이에요?”
“아, 네. 진짜 너무 작고 귀엽죠.”
나는 이 잘생긴 의사 선생님이 들라고 은근히 의도하며 문을 잡고 서 있었고,
내 의도대로 잘생님(잘생긴 의사 선생님)은 아주 익숙하게 고양이를 품에 안고 병원으로 돌아와서
한 손으로 들고 이곳저곳을 눌러보기도 하고 살펴보며 둘러본다.
그 모습을 보면서 역시 프로는 다르구나 하며 감탄을 하고 있는데 주변으로 날파리들이 달라붙는다.
“와아... 진짜 귀엽다. 어디서 굴러온 복덩이에요?”
“진짜 특이한 무늬네. 뱅갈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아휴 알았어요. 여러분.
장난 그만 칠게요.
저 이 남자한테 진심 아니에요!
그렇게 마음먹고 한걸음 물러나려고 했는데 이미 늦었나보다.
여자들이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고 했었지.
"탄소씨가 키워요~ 차에 들어온 거면 탄소씨가 마음에 들었다는 건데~”
“하하. 저는 쫌...”
“고양이가 막 다가오는 거 흔치 않아요~ 혼자 살면 키워봐요. 진짜 너무 귀여운데~ 나라면 키웠다!”
아..나. 이래서 여자 다수를 상대로 막 깝치는 게 아니었는데.
또 이렇게 인생의 좋은 경험 한번을 쌓는구나.
“그래요 그럼. 접종도 다 놔 줄게요. 보니까 5개월 정도 된 것 같네요. 얌전히 앉아 있는 거 보면 이제 다 컸고.”
“하하, 아직 이삿짐도 정리도 안 됐고...”
아, 잘생기고 멋있다고 한 거 다 취소할래.
이젠 웃기만 잘 웃는 의사까지 나에게 키우라며... 웃는다!
이 사람들 단체로 나 속이는 것 같아.
“어차피 접종 몇 개 맞추고 혹시라도 모르니까 엑스레이도 찍고 그러면 하루, 이틀 더 걸릴 거에요. 천천히 데려가 돼요.”
“그래요~ 혼자만 차지하려고 하지 말고 여기에 좀만 둬요, 탄소씨.”
와. 이거 이중적인 말 맞지? 와.. 진짜 살 떨리게 무서운 곳이었어, 여기.
정말 금수라는 이름답게, 정글이나 사파리가 아닐까?
난 맹수인 줄 알았는데 그저 새끼사자였던 거구나... 윽.
“그럼 탄소씨 오늘은 그만 돌아가고 내일부터 정식으로 출근해 주세요. 은근히 할 일 많으니까 각오하고요~”
“예에.. 그럼 안녕히 계세요. 내일 뵙겠습니다.”
내 행동은 낮에 귀신을 봤던 것처럼 경직되었다.
이 사람들 전부다 웃으면서 날 배웅했지만, 어딘가 그 웃음이 이중적이었어...
무서워... 으...
돌아서면서 케이지 안으로 넣어지고 있는 호랑이 가죽 무늬의 고양이를 째려보는 것도 잊지 않았으나...
헉...
그 고양이는 내가 보기도 전부터, 그리고 나보다도 더 무섭게, 날 노려보고 있었다.
정말 사람이나 고양이나 전부 여긴 무서운 곳이다.
괜히 까불지 말고 조용히 살아야겠다.
원래부터 나 조용히 살기로 했잖아.
초심대로 살자.
*
첫 출근, 그 소감을 말해보자면,
그리 힘들진 않았지만 그리 편안하지도 않다.
큰 매장답게 취급하는 물건도 많아서 일일이 외우고 재고 파악하고,
동시에 카운터도 봐야 하고 예약 수술까지도 받아놔야 했으니...
“익숙해지면 쉽겠는데 일 자체가 많은 건 어쩔 수 없겠어...”
그리고 이 동네 동물들은 왜 이렇게 많이 다치는 건지.
이상한 걸 삼킨 개가 2마리, 야생동물이랑 싸워서 온 개가 1마리,
공원에서 산책하다가 삐끗한 개 2마리. 발목을 접질린 고양이 무려 4마리.
고슴도치랑 무슨 어쩌구 도마뱀은 오늘 태어나서 처음 봤다. 으....
“퇴근해요?”
“아, 네. 정신없는 하루였네요.”
어떻게 이렇게 동네에 동물이 많이 살아? 나도 모르게 솔직하게 감상을 말해버렸다.
정신없는 하루였다고.
말하고 나서 아차 싶었지만 번복하는 게 더 웃겨서 가만히 있자
김남준 선생님은 (이젠 딱딱하게 부르기로 했다. 예의를 갖추면서도 거리를 두는 정도의 호칭으로.)
하얀 라텍스 장갑을 툭툭 벗어 쓰레기통에 던져 넣었다.
툭-
완벽하게 쓰레기통 안으로 들어간 장갑이 경쾌한 소리를 만든다.
“오. 골인이네요.”
“제가 운동신경이 좀 좋아요.”
“아... 그래요?”
전혀, 네버, 1도 안 그래보이시는데요.
하긴, 좋다 안 좋다는 상대적인 개념이니까.. 하하.
이 세상 누구보다는 좋겠지.
그럼 이만 저는 퇴근하고 싶은데요... 슨생님...
“아, 탄소씨 김간호사가 줄 게 있다던데? 잠깐만 기다려봐요.”
“... 예?”
왓 더... 나는 이제 이 사람들의 호의가 순수한 호의로만 보이지 않는단 말입니다요.
무슨 꿍꿍이가 있을거야 꿍꿍이가.
툭-
봐봐! 이거 봐! 멀쩡하게 켜져 있던 매장 불이 다 나가버렸잖아!
“어... 저기요~ 선생님? 저 조금 무서워지려고 하는데요...?”
나는 점점 뒷걸음치며 매장 출입구로 향했고 스텝전용 출구로 나갔던 김남준 선생님은 묵묵부답이었다.
하하. 그냥 갈래. 무 서 워.
“그럼 내일 봬... 악!”
“어딜 가요~ 내가 탄소씨 주려고 챙겨 놓은 세튼데. 가져가요. 차 가져왔죠? 차까지 같이 가줄게요.”
“아.... 감사합니다.”
내가 생각해도 건전지 로봇처럼 참으로 감정 없는 인사였다.
쇼핑백 세 개를 김간호사님과 김남준 선생님이 나눠서 들고 오셨는데
그 안에는 한 가득 고양이 장난감, 쿠션, 캣타워...?가 들어있었다.
“너무 많은데... 이걸 다 고양이가 써요?”
“네. 그럼요. 이 녀석은 다른 녀석보다 금방 클 걸요?”
오 마이 갓.
그리고 굉장히 분홍분홍하고 레이스가 치렁치렁 달린 이동식 케이지엔
오늘 낮까지 내 계속해서 내 시야 안에서 거슬리던 녀석이 들어 있었다.
와, 대체로 이런 공주풍의 케이지는 새하얀 고양이들이 하는 거 아닌가요?
이 호피무늬를 한 녀석에겐 별로 어울리지... 않는.. 것...
“그럼 예쁘게 키워요! 아주~ 건강한 고양이니까 아무 걱정 말고!”
“가, 감사합니다. 김간호사님. 선생님도요. 감사합니다.”
두 번의 성의 있는 체를 하는 감사인사를 하니
주인이 고양이가 든 케이지를 들어야 한다는 김간호사님의 이상한 논리에, 케이지를 품에 안았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건, 케이지 안에 든 녀석이 잠잠하게 있어주었다는 것이다.
“가요~”
주차장에 내려와 차에 가보니 더 가관이었다.
이 나이에 딱이라는 고양이 사료 한 푸대가 내 트렁크에 이미 실려 있는 게 아닌가.
와, 와우. 고양이 키우기 장려운동 같은 모임에서 나오신 건 아닐까.
어쩜 이렇게 준비가 철저해.
“갈게요~”
나는 차 밖으로 손을 휘휘 흔들며 주차장에서 빠져나왔다.
조수석에는 부농레이스 이동식 케이지가 그 존재감을 뽐내고 있었다.
으... 어쩜 좋아. 그리고 흘긋 사이드미러를 보니, 김남준 선생님은 돌아가고 김 간호사님 혼자 남아 나에게 손을 흔들.....
“저 토끼는 언제 데리고 나오신 거람.”
하얀 토끼를 품에 안고 있었다.
내 의심이 점점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장면이었다.
역시 평범한 동물병원 의사 수간호사가 아니라, <애완동물 키우기 장려운동>의 회장 부회장 이신 게 틀림없다.
“에효. 얘, 얘야...? 어쨌든 잘 부탁한다.
나, 나는 너의 좋은 주인은 못 되겠지만 적어도 밥은 제때 제때 줄게.”
갸오-오오-옹-
근데 무슨 고양이가 이렇게 울어.
사람이 뭔가가 맘에 안 들어서 ‘아, 아니, 아니아니~’라고 말하는 것처럼.
그저 내 착각, 내 자격지심이겠지?
“싫어도 어쩔 수 없어 친구야.
에효. 난 널 못 만진단다.
그냥 우리 음... 서로를 서구식 개인주의가 만연한 동네의 룸메이트라고 생각하자. 응?"
그, 그 정도면..... 내가. 많이... 양보한 거야!!
캬오-오오-옹-
“하하, 싫구나.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친구야. 거긴 우리 집이다, 내가 주인이라고.”
도대체 알아 듣지도 못할 고양이랑 뭐하는 건지.
오늘도 역시 지상은 꽉 찼고 지하에 겨우겨우 차를 댄 다음 짐을 옮기기 시작한다.
한 번에 옮길 수가 없는 짐이었지만 두 번이면 옮길 양을, 4번에 나눠서 옮겼는데.
그 이유는 혹시라도 누가 내려놓은 고양이를 가져가는 건 아닐까 싶어서.
“친구야, 벌써부터 나 허리가 휘는 것 같아.”
이런 거에 책임감 느끼고 그러는 거 진짜 싫은데.. 으으. 한마디만 더하자.
“친구, 나 외동이야. 음... 어린 너한테 이런 말을 하는 게 알맞은지 모르겠지만...
그러니까 내가 쫌 개인주의... 거든?”
에효- 알아듣지도 못하는 고양이 앞에서 뭘 하는 거람.
[띵동- 지하 1층입니다]
“내가 네가 싫어서 거릴 두는 게 아니라는 거야. 응.
넌 충분히 귀엽게 생겼다, 친구.”
갸오-오오-옹-
아이고. 그래. 못 알아 듣겠지?
그래도 말해서 나는 편하다!
봐봐, 나 이기적이라구, 작은 고양이 친구.
“흐으... 무겁다... 친구야.”
짐을 엘리베이터로, 또 엘리베이터에서 집 앞으로, 집 앞에서 현관으로 옮기고 나니 근육통이 생길 것만 같았다.
나는 포장을 뜯어 거실 한 켠에 재빨리 설치해 준 다음
여름도 아닌데 땀이 쭐쭐 흐르는 이마를 손등으로 슥 훔치고 녀석의 케이지를 열어주었다.
안 나와서 손으로 꺼내줘야 되면 어쩌냐 싶었는데 다행히 알아서 잘 나왔다.
그리고 자기 집인 걸 아는지 아니면 본능적으로 피곤했을 뿐인지 구석에 놓아놓은 쿠션 위에 떡하니 자리를 잡는다.
, 그리곤 나를 한번 흘낏 올려본다.
“고맙다는 거냐 뭐냐.”
확실히 덜 썰렁해 보이긴 하네.
나는 만족감을 느끼며 화장실로 들어가 사워를 하는데, 땀을 많이 흘렸는지 샤워하는 내내 목이 겁나게 말라오는 것이 아닌가.
"생명수!!!"
나는 대충 수건으로 주요부위만 가린 다다닥- 껌껌한 부엌으로 달려가 물을 하마처럼 벌컥벌컥 마셔재꼈다.
갸오-오오-옹-
아오. 또 웃는 것 같은 저 울음소리.
“뭐야 친구. 내 몸을 보고 비웃는 거냐.”
“.....”
“헤이. 듀. 왜 말이 없나? 혹시 반한 거냐? 그럼 곤란하다구. 종족을 초월한 사랑은 퐌태지야, 퐌.태.지”
갸오-오오-옹-
그래, 썩은 드립 미안해다. 자제할...
“난 늑대고 넌 미녀!”
갸오-오오-옹-!!!
어, 그래. 미안. 참... 성깔 있어... 역시 우린 개인주의적인 서구의 룸메이트 정도의 관계가 좋겠어.
서로 해 끼치지 말고, 그렇다고 너무 쌩까지도 말구. 그렇게 잘~ 지내보자 친구야.
옷 입어야지~ 방으로 런런런~ 난 멈출 수가 어~없어.
그렇게 방으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는데 문득 부끄러워 지는 것이다.
아무리 고양이라지만... 알몸은 좀....
그리고 고양이한테도 내 비루한 몸을 보여주기가 조금 미안...하고.
"악! 귀찮게 진짜!"
결국 그날 이후로 나는 화장실에 갈아입을 옷을 바리바리 싸 들고 가는 습관이 생겼다.
어린 룸메의 안구 보호를 위해서 말이다.
=======
원벌스에요
써놓은게 꽤 있어서 빠르게 연재될 것 같아요! 1일 1연재 정도로요~
읽어주시는 독댜님들 참 감사해요!
+
아참 그리고 이 글은 호러가 아니에요ㅋㅋㅋㅋㅋ
(프롤로그 배경이 퍼러딩딩했어...(쥬륵)
유쾌하고 가벼운 듯한 빙의글이애오!
++
마ㅉ다...! 이거 원랜 수위 있는데...힝.
이제 불맠 없어졌다면서요.ㅠㅠ
안되겠네요(수정한다...)
+++
>안녕하세요암호닉모음이애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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