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PD 홍지수 X 방송작가 너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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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개편 무렵의 방송국은 참 바쁘다.
프로그램을 지켜내야 하는 자와 따내야 하는 자들의 싸움으로 그 열기가 뜨거운 것이다. 그런 열기가 슬며시 피해가는 곳이 존재하기도 했으니, 너봉은 햇수로 따지면 대학시절 알바까지 7년째, 어르신들만 계신 마을에 찾아가서 생기를 불어넣어 드리는 프로그램인 '전국방방마을'의 대본을 쓰고 있었다. 담당PD는 그보다 더 오랜 13년째 자리를 지키고 있는 50대 중후반의 YBC 시사교양국 공식, 아니 YBC 방송국 공식 또라이 최PD였다. 그런 최PD가 입버릇처럼 하던 말은 방송국 때려치우고 세계일주나 떠나고싶다. 였는데 올 초 사고를 치고야 말았다. 결국 최PD가 세계일주의 첫번째 행선지 남미로 날아가버린 덕에 임시담당PD 한PD가 배정되었고, 한PD의 입버릇은 빨리 개편철이 되어 이 자리를 벗어나고 싶다.는 것이었다. 전국방방마을의 PD자리는 소원성취의 장인지 그 소원 또한 곧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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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봉이 작가실 소파에 앉아 멍하니 커피잔을 바라보고 있는데 너봉의 친한 선배 고은희 작가가 옆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김작가, 너는 홍프로랑 회의 안 잡아?"
"반년 새에 피디 셋을 보려니 별 감흥도 없네요."
"당장 다음주에는 촬영 들어갈텐데 얼굴은 봤어?"
"한낱 시사교양국 작가가 귀하신 예능국 PD님을 알현했을리가요."
"홍피디 소문때문에 그래?"
사실 얼굴따위 보지 않아도 그에 대한 웬만한 건 모두 알고 있었다. 홍지수. 아니 조슈아 지수 홍. 나이 2016년 현재 서른셋. 입사 6년차. 입봉작 평균시청률 23.2%로 미친듯한 주가를 달리다가 정말 미쳐버려서 최PD가 떠난 현재 방송국 공식 또라이. 하도 또라이짓을 하고 다녀서 예능국장, 나아가서는 사장 귀에까지 들어가 시청률 2.3%도 안 나오는 전국방방마을로 쫓겨났다더라. 하는 소문까지 모조리 알고 있었다.
"그게 소문인가. 사실이지."
작가실 막내 강슬기였다. 홍PD와 가요프로그램을 같이하다 정말 죽을 뻔 했다는 산증인. 너봉이 홍PD와 함께 하게 됐다는 얘기를 듣자마자 선배!!!하고 달려와 너봉을 꽉 안아주던 그 행동만으로 어떤 사람인지 짐작이 됐고, 그래서 더 쉽사리 먼저 연락할 수 없었다.
"하긴 사실이지. 그래도 어떡해. 먹고 살아야 하는데."
"이 놈의 방송국 내가 때려치워야지."
한숨을 푹 내쉬며 마음에도 없는 말을 뱉은 너봉은 답답한 마음에 다 마신 종이컵을 구겼다. 그래 김너봉. 방송작가 프리인생 7년을 악착같이 또라이 밑에서 일했는데 까짓거 젊은 또라이도 한 번 상대해보자! 하고 다짐하던 너봉은 주머니에 꾸깃해진 종이를 꺼냈다. 내선번호 928. 홍PD가 죽치고 있다는 편집실 번호였다. 두 눈 질끈 감은 너봉은 벌벌떨며 작가실 전화 수화기를 잡았고, 그 순간 큰 소리로 전화가 울렸다.
"엄마야!"
놀란 가슴을 진정시킬 새도 없이 전화를 받았다.
"네 YBC 작가실입니다."
"김너봉 작가 있습니까?"
"제가 김너봉인데 누구십니까?"
"홍지숩니다. 우리도 회의합시다."
"네?"
"5분 뒤에 4층 휴게실."
전화는 끊어졌다. 또라이기만 하면 다행이라고 생각했더니 싸가지도 없었다.
"홍PD?뭐래?"
"뭐래요?"
"5분 뒤에 회의하자는데?"
"5분?"
허겁지겁 수첩과 필기구를 챙긴 너봉은 4층으로 내려갔다. 거기엔 벌써 지수가 담배를 태우며 앉아 있었다. 약한 천식이 있는 너봉은 인상을 확 구기며 들어갔다.
"담배 좀 꺼주시죠."
"한 대 줘요?"
"아뇨. 꺼달라구요."
첫 만남 첫 대화였다. 몇 마디 더 할 줄 알았는데 순순히 재떨이에 꽁초를 꽂아넣은 지수였다.
"김너봉. 스물여덟. 7년차. 프로그램 두세개 병행하다 저번 개편 때 모두 정리하고 전국방방마을 하나만 남음. 튀는 걸 싫어하고 프로그램 욕심도 거의 없어서 방송국에서 존재감이 없으며 평판은 좋은편. 하긴 최현식PD 아래서 7년 일했으면 말 다했네. 안 그래요?"
탁자 위에 놓인 수첩을 집어든 지수가 어느 페이지를 펴더니 저 말들을 줄줄이 읊었다. 적잖이 놀란듯 너봉의 눈이 커지자 지수는 비웃듯 피식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그 쪽도 이 정도 조사는 했을 거면서 뭘 놀랍니까."
딱히 틀린 말은 아니라 반박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호칭은 거슬렸다. 엄밀히 선배한테 그 쪽이라니. 호칭을 정리 하기 위해 말을 돌렸다.
"6년차시더라구요."
"공영방송에서 2년 근무하다 쫓겨난 것 까지 8년입니다. 이건 조사 못 했나봐요?"
지수는 이미 간파하고 있었다는 듯 씩 웃었다. 방송국에서 쫓겨날 정도라니 도대체 뭐하는 남자란 말인가. 빨리 일얘기로 돌리는 게 낫겠다 싶었던 너봉은 화제를 전환했다.
"현재 2주분 촬영마쳤고, 다음 촬영지는 경북 안동군..."
"알아요."
"네?"
"한PD한테 다 들었다고. 방금도 편집하다 왔는데."
"아..."
그럼 자기를 왜 부른건지 진지하게 고민하던 너봉은 할 말이 없어 입을 꾹 닫았다.
"글이 굉장히 올드하더라고요?"
이건 또 무슨말인가 싶어 미간에 주름을 잡고 지수를 쳐다봤다.
"그렇게 죽일 듯 노려볼 필요는 없고, 혹시 이지훈PD랑 같이 일했었습니까?"
이지훈PD...라디오국 피디라는 걸 깨닫고선 2,3년 전 6개월 정도 함께 작업한 게 떠올라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이PD 거쳐간 작가들은 다 올드해지더라고."
굉장한 걸 발견이라도 한듯 홀로 고개를 주억거리는 지수가 기가막힌 너봉은 호출 이유를 물었다.
"머리도 식힐 겸. 프로그램 하나를 혼자 쓰는 여작가라니 궁금하기도 하고. 굉장히 체력좋게 생기신 분으로 상상했는데 의외로 가녀리고 어려보이네요."
욕인지 칭찬인지 구분 못할 말을 툭 던진 지수는 자주보자는 뻘한 소리를 하며 쌩하니 나가버렸다.
뭐 저런 미친놈이 다 있어.
당했다는 생각에 화가 머리 꼭대기까지 치솟은 너봉은 가장 친한 친구이자 YBC 조연출인 세정에게 전화를 걸어 술약속을 잡았다. 그 날 저녁 자주 가는 호프집엔 세정이 먼저 와 기다리고 있었다.
"홍지수 미친놈 아니야?"
앉자마자 지수 욕을 퍼붓는 너봉이었다.
"홍피디님 만났어?"
"넌 그런 선배랑 어떻게 얼굴 맞대고 살아?"
"왜 이래 최현식피디님이랑 7년 일해놓고."
"최피디는 나말고 윗 사람들한테 또라이였고! 이 새끼는 나 잡으려고 작정했다니까?"
너봉이 저속한 말을 입에 담는 일이 흔치 않았기에 세정은 넋놓고 그 모습을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아무리 원고가 안 풀려도 한숨만 푹푹 내쉬던 순둥이가 욕이라니. 라고 생각하는 순간 술 약한 너봉이 생맥주 한 잔을 그대로 들이부었다. 세정이 말리자 속에서 불이나 참을 수가 없다며 술을 부어댔다.
"능구렁이 같은 새끼..."
저 말을 끝으로 너봉은 테이블 위로 장렬히 쓰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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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지수도 편집을 대충 마무리 한 후 퇴근하려 겉옷을 집어들었는데 전화가 울렸다. 친구 승철이었다. 급약속에 약간은 들뜬 지수가 주차장에서 차를 몰고 올라와 약속장소로 향했다.
"왔어?"
"응. 아으 피곤하다."
"편집은 다 끝냈냐?"
"몰라 디지겠다."
"담당작가는 만났어?"
"어 오늘 드디어."
음식이 나오고 술잔을 주고 받느라 말이 잠깐 끊겼다.
"어때?"
"예뻐."
"미친놈."
"진짠데. 내가 꼬실거야."
지수의 눈이 진지하게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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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처음뵙겠습니다.
제목조차 못 정하고 글 올리는 무능한 글쟁이 프랄린입니다.
암호닉 감사하게 받겠으니 많이 신청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