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PD 홍지수 X 방송작가 너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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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는 그렇게 출발을 했고 나머지 기억은 없다. 난 잤으니까. 아주 푹.
아홉시즈음 출발했는데 도착했을 땐 이미 점심이 넘은 시각이었다. 이장님 댁에 찾아가 인사도 드리고, 점심도 얻어먹고, 촬영개요까지 설명드리고 있었다.
그러자 대뜸 부녀회장님께서 질문을 하셨다.
"작가처녀는 결혼은 한겨?"
"네? 하하 아니 아ㅈ..."
"네, 저랑 했어요."
"오메, 애는 있고?"
"아직이요. 조만간 힘 좀 써봐야죠."
홍피디가 능청스럽게 눈을 찡긋하며 말했다.
평소 같았으면 저 개가 또 짖는구나 왈왈. 했을텐데 이미 뱉은 말을 번복할수도 없고, 아직 혼전이라고 했을 때의 잔소리도 예상되어 그저 웃었다.
그렇게 다시 설명을 시작했고 잘 따라와 주신 덕에 순조롭게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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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녀회장님이 댁으로 돌아가시고 한숨 돌리나 싶었는데 홍피디가 어디선가 일복과 장화를 들고 와서는 건내주었다.
진짜 현장답사 시간이니 나오란다. 결국 쉴틈없이 옷을 갈아입고 갯벌로 나섰다.
생전 처음 느껴보는 느낌이 생소했다. 발이 움푹 빠져 한 걸음 내딛기도 힘든 길을 홍피디는 성큼성큼 잘도 걸었다.
"어어-"
내 몸이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는 방향으로 기울더니 결국 넘어지고야 말았다. 몸을 일으키기도 쉽지가 않았다.
어떻게 일어나야 할까 생각을 하는 새에 홍피디가 다가와 손을 쑥 내밀었다.
그의 손을 잡고 일어나려는데 내가 잡고 있는 팔에 힘을 빼버려서 다시 한 번 엉덩방아를 찧었다.
도대체 이 남자의 장난은 어디까지일까. 이번엔 진짜라며 내미는 손을 내 쪽으로 확 잡아끌었고, 그 바람에 홍피디도 내 옆으로 털썩 쓰러졌다.
"계속 당하더니 늘었네요."
"칭찬이죠? 감사합니다."
그 뒤로도 갯벌과 고군분투하고, 마을도 돌아보고, 어르신들 사전인터뷰도 진행하는 등 바쁘게 보내고 나니 어느덧 저녁시간이었다.
이장님댁으로 다시 돌아가니 맛있는 냄새들이 후각을 자극했다.
보약밥상이라며 제철나물들과 해산물들이 가득한 정성어린 밥상을 지어주신 것이다.
이장님 내외분들은 이미 식사를 마쳤으니 편히 먹으라며 따로 자리를 내어주신 이장님댁 아주머니께 감사인사를 한 후 자리에 앉았다.
정신없이 그릇을 비우는데 옆에서 시선이 느껴졌다. 홍피디가 밥을 먹다 말고 날 뚫어져라 쳐다보는 것이다.
"식사 안 하세요?"
"너무 맛있게 먹어서 보기만 해도 배가 부릅니다."
"얼른 드세요. 편식하면 못 써요."
그 새를 못 참고 또 능글능글 해졌다. 아까부터 밥상이 입에 안 맞았는지 깨작거리던 홍피디였기에 핑계 한 번 좋다고 피식 웃었다.
"하.. 이래서 이 프로그램 싫었는데."
바쁘던 젓가락질이 절로 멈춰졌다. 그의 능구렁이 같은 모습에 홍피디가 예능국에서 소박맞다시피 쫓겨났다는 것을 잊고 있었다.
방송국은 싫어해도 프로그램에 애정을 가지고 있던 최피디와는 다르다는 말이다.
내 젓가락질이 둔해짐을 느꼈는지 홍피디가 한 마디했다.
"걱정말아요. 내 멋대로 굴긴 해도 책임감은 있으니까."
그 말에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충 식사를 마쳤다. 너무 얻어먹기만해 죄송한 마음에 설거지라도 하겠다고 두 팔 걷고 나섰더니
남편이랑 산책이나 하고 오라고 등을 떠미시는 바람에 홍피디와 밖으로 나왔다.
"아아아. 춥다."
"바지 안 챙겨왔습니까?"
"가방에 챙겨왔어요."
"얼른 가서 갈아입고 나와요. 아까부터 자꾸 거슬려."
인상쓰며 툴툴대는 홍피디의 말에 얼른 들어가 바지로 갈아입었다. 고분고분 말에 따르면서도 이 남자에게 길들여지고 있다는 생각을 씻을 수가 없었다.
방구석에 핫팩이 보여 얼른 주워 주머니에 넣고는 다시 집을 나섰다.
대문 앞에 서있던 홍피디가 사라져 두리번 거리다가 별안간 왘!! 하고 놀래키는 소리가 나서 비명을 질렀다.
또 홍피디의 장난이었다. 이제 화도 나지 않고 어떻게 되갚아줄까 고민하다가 쪼그리고 앉아 놀란척을 했다. 그리고 눈물을 글썽였다.
그 모습을 보더니 많이 당황했나보다.
"김작가. 괜찮아요? 나, 나는...나는 그냥 장난...너봉씨?"
나를 일으켜준 홍피디는 허리를 숙여 내 얼굴을 살폈다. 그 때 마침 눈물이 한 방울 툭 하고 떨어졌다.
김너봉 스물여덟 나이에 데뷔해도 되겠다고 자축하며 장난이라고 웃어넘기려던 찰나
홍피디가 나를 끌어당겨 와락 안았다.
"미안해요. 응? 너봉아 미안해. 뚝 그치자."
처음 듣는 다정한 음성으로 내 등을 토닥거리는 홍피디에게 장난이라는 말을 꺼내기가 무서웠다.
그리고 지금 이 상황이 나쁘지 않았다.
이미 이 남자에게 길들여진듯했다.
그렇게 산책내내 애걸복걸 미안하다고 비는 홍피디와 아련한 여주인공처럼 힘없이 괜찮은 척하는 연기를 한 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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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을 한 바퀴 돌고와서 씻고 환복을 했다. 이장님댁 아주머니의 안내를 따라 작은 방으로 가니 친절히 이부자리까지 마련을 해주셨다.
그런데, 어째서, 왜 베개는 둘인데 이불은 하나일까. 이불 하나를 더 받으려 문 쪽으로 몸을 돌리자 홍피디가 나를 붙잡았다.
"우린 결혼한 겁니다."
"아..."
그 자리에서 굳을 수 밖에 없었다. 이 좁디좁은 방 안에서 내이는 불가능했고, 그렇다고 어느 한 쪽이 밖에서 잠들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홍피디가 머리를 쓸어 넘기며 말했다.
"어제 마감하느라 힘들었을텐데 자요. 내가 안 잘테니까."
"피디님 여기까지 운전하셨잖아요."
"난 괜찮으니까 자요."
"내일 졸음운전 하실텐데요. 제 안전이 걱정돼서 그래요."
홍피디가 갈등하는 게 보였다.
"아무 일도 없을테니 그냥 같이 자요."
내가 쐐기를 박자 홍피디가 멈칫하더니 물어왔다.
"괜찮겠어요?"
"피디님이 소문만 안 내면 혼삿길은 안 막히겠죠."
"혼삿길 막히면 내가 데려갑니다. 안 막혀도 내가 데려갑니다."
말장난 쯤은 무시하며 자리에 먼저 누웠다. 머뭇거리던 홍피디가 전등을 끄고 내 옆에 누웠다.
그렇게 나는, 아니 우리는 한참을 잠 못 이루며 뒤척였다.
***
어쩌다보니 이런 (제 기준)늦은 시각에 마무리를 하게 되었네요ㅋㅋㅋㅋ
아무래도 내일은 못 오지 않을까 싶은데 개학하고도 올 수 있을까 걱정이 되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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