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야말로 아비규환이 따로 없었다. 빌딩 내부를 울린 두 발의 총성, 아래층에서부터 들리는 여자들의 비명과 꽤 많은 사람이 뛰어가는 듯 점점 거대해지는 구두 굽 소리. 한참이나 씩씩거리며 모니터를 째려보던 나도, 회의 준비에 바빴던 우리 팀 사람들도 모두 복도로 고개를 돌렸다. 무슨 일이 일어난 게 틀림없었다. 그중 가장 행동이 빠른 우리 팀 막내 지민이 복도로 달려갔다. 복도 끝에 붙은 유리창틀 밖으로 빼꼼 고개를 내민 녀석이 금세 자리에 주저앉더니 이윽고 고개를 숙인 채 구부정한 자세로 걸어왔다. 얼굴은 하얗게 질려있었다.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잘 안 보이는데 다들 정문 밖으로 나가려고 난리예요. 몇 명은 인파에 밀려 넘어진 것 같은데 도무지 무슨 소란인지 모르겠어요."
지민의 말에 우리 팀 사람들 모두 하던 일을 멈춘 채 서로를 쳐다봤다.
탕-
또다시 울린 총성에 옆 팀 여사원이 소리를 지르며 주저앉았다. 심장이 쿵 떨어질 것만 같았다. 아래층에서 울리는 비명도,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와 욕지거리도 점점 커져갔다. 불안감에 가슴이 쉴 새 없이 두근거렸다. 대체 무슨 상황인지 전혀 가늠되지 않았다. 우리 팀이 위치한 15층도 뒤늦게 동요하기 시작한 것 같았다. 해외영업A팀이 위치한 맞은편 사무실 문이 열리고는 사원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종이컵을 손에 쥔 석진 선배의 얼굴이 불안으로 가득했다.
"일단 우리도 나가자."
선배의 말에 우리 팀 사람들은 물론 옆 팀 사람들까지 가방을 들고 일어섰다. 몇몇 여사원들은 초조한 얼굴로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하고 있었다. 꿈인가 싶었다. 어딘가에 화재라도 난 건가 싶은데 자꾸 총성으로 추정되는 소리가 귀에서 반복적으로 울려댔다. 극심한 초조함에 손끝이 떨렸다. 말도 안 돼. 대한민국 한복판에서 이런 일이 일어날 거라고는 상상해본 적 없었다. 대체 무슨 일인지 분명하게 알 수는 없었지만, 예삿일은 아닌 것 같았다.
석진 선배가 불투명한 유리문을 열어 재끼려고 할 때였다.
"엘리베이터는 안 됩니다."
우리 부서 바로 옆 마케팅B팀 막내 사원 전정국이었다. 양복바지 주머니에 손을 찌른 채로 일어난 그가 꽤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뛰쳐나가려던 사람들이 멈춰 서서 그를 응시했다.
"화재도 마찬가지지만, 이런 상황일수록 엘리베이터는 안 됩니다. 만일 밖으로 나가는 문이 막혀있다면 오히려 아래층에 모여있는 쪽이 더 위험합니다."
그럼 어떻게 하라는 거야, 날카로운 말들이 부서 안을 가득 메우고 있을 때였다.
"테러래요."
휴대폰을 응시하던 여사원 하나가 소리쳤다. 사무실이 쥐죽은 듯 고요해졌다. 전정국이 재빨리 사무실 한가운데로 뛰어가 리모컨을 집어 들었다. 한쪽 벽면에 걸린 HD 모니터가 번쩍 빛을 내며 켜졌다.
'오후 2시 30분경 삼성동에 위치한 한 대기업에 무장괴한이 잠입했다는 속보입니다.'
앵커의 말이 느리게 귀를 맴돌았다. 낯익은 건물이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공중에서 촬영한 듯 건물의 꼭대기에는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법한 기업 로고가 햇빛에 반사돼 유난히 번쩍거렸다. 생중계되는 화면을 유독 뚫어지게 보던 정국이 재빠른 손놀림으로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내 뒷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입이 바짝바짝 말라왔다. 테러라니. 온 몸에 힘이 풀리는 것 같았다. 이제 어떻게 할 지 결정 해야 했다. 다른 사람들처럼 밑으로 내려가든지, 여기서 외부의 개입을 기다리든지. 그도 아니면 어딘가에 숨어 있든지.
그때 손에 쥔 휴대폰이 진동했다. 이윽고 새까만 휴대폰 액정에 발신자 이름이 깜빡였다.
'개자식'
민윤기였다. 타이밍 참 기가 막히네. 받을지 말지 잠깐 고민하다가 통화버튼을 눌렀다. 앞일을 예견하는 건지 이 거지 같은 상황을 잘도 빠져나간 것에 대해 일말의 죄책감이라도 느끼길 바라서였다.
"너 지금 어디야."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가 꽤 상기되어 있었다. 그 특유의 껄렁하고 낮은 목소리였지만 바짝 긴장한 듯한 느낌은 유선상으로도 충분히 알아챌 수 있었다.
"민윤기 팀장님, 타이밍 한 번 죽이네요."
"지금 사무실 안이야?"
"네. 기가 막힌 타이밍으로 이 상황을 피해간 팀장님과는 달리 꼼짝없이 갇혀있죠. 곧 있으면 주재원 파견에, 오늘 같은 날은 반차라니. 대단하시네요."
"비꼬는 것도 일단 살고 나서 해. 내 말 잘 들어. 절대 아래층으로 내려가지 말고 거기서 기다려."
유난히 단호한 어투였다. 끼이익. 파열음이 울리고 이내 클랙슨 소리가 수화기를 타고 흘러나왔다. 운전 중인 것 같았다. 대체 뭘 알기는 하느냐는 말을 뱉기도 전에, 팀장님이 먼저 입을 열었다.
"금방 갈게."
"여기가 어떤 상황..."
뚜뚜뚜. 전화가 끊겼다. 팀장님은 점심시간이 될 무렵 가방을 챙겨 들고 이대리와 함께 사무실을 나섰었다. 밥을 먹는 둥 마는 둥했던 것도, 회의 준비전까지 모니터를 노려보고 있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팀장님, 사적으로는 구남친. 일년 반의 연애 끝에 내게 이별을 고하고는 내 입사 동기 이대리와 사귀게 되었다고 속을 뒤집어 놓더니, 일주일 전에는 주재원 파견에 본인 이름과 동기 이름을 나란히 올려놓아 일주일 동안 술을 퍼마시게 했다. 오늘은 미국 비자 발급 건으로 팀장님은 이사원과 점심시간에 반차를 냈다.
더럽게 운이 좋은 인간. 젠장. 입에서 욕이 튀어나왔다.
로비에서 들리는 것으로 추정되는 비명이 15층까지 몰아쳤다. 탕. 또 한 발의 총성이 울렸다. 부서 내 몇몇 여직원들의 얼굴이 눈물로 범벅이 되고, 사무실 안에서는 여러 대의 휴대전화가 제각기 소리를 내며 울려대고 있었다.
석진 선배가 다시 불투명한 유리문을 열어 재꼈다.
"선택해."
"내려가는 건 절대 안 됩니다."
정국이 성큼 걸어와서 문을 막아섰다. 마케팅팀 박차장이 담배를 입에 물고는 넥타이를 거칠게 풀어 재꼈다. 유독 다혈질에 아랫사람은 매섭게 다그치기로 유명한 사람이었다. 박차장은 정국에게 가까이 가더니 문을 막아선 그를 밀쳤다.
"네가 뭘 알아. 막내야."
"그냥 믿으세요. 지금은."
정국이 눈도 깜빡 않고 되받아쳤다.
"너 낙하산 티 내니? 여기서 그럼 다 죽어?"
박차장의 말에 사람들이 술렁였다.
"다같이 살자고 이러는 겁니다. 딱 100까지 세고 있으세요. 함부로 움직이다 날아간 목숨은 제가 책임 못 집니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야 이 미친새끼야. 네가 뭘 책임져!"
박차장이 그를 잡으려 했으니, 정국이 조금 더 빨랐다. 그는 뒤돌아서서 모두에게 자리를 지키라는 언질을 한 뒤, 회사 마크가 새겨진 문을 열어 재꼈다. 아무에게도 나가지 말라고 당부한 그가 제일 먼저 문밖을 향하자 사람들이 웅성대기 시작했다. 그런데도 누구 하나 움직이지 않았다. 전정국의 말투에 서린 이유모를 단호함 때문이었다. 그는 뒷걸음질 치며 나와 눈을 마주쳤다.
"딱 100까지 세는 겁니다."
THE TERROR LIVE
정국은 부서를 나오자마자 정장 재킷 안쪽에 걸쳐놓은 이어폰을 신경질적으로 잡아 꺼냈다. 오른쪽 귀에 검은색 이어폰을 쑤셔 넣고는 재빠르게 비상계단을 내려가며 뒷주머니에 짓이겨 넣었던 회색빛 헝겊 뭉치를 꺼내 들었다. 헝겊을 풀어낸 정국의 손에 소음기가 부착된 검은 소형 권총이 들렸다.
"위기대응팀 전정국입니다. 곧 로비 진입합니다."
쉴 새 없이 계단을 내려가던 정국의 걸음이 3층에서 제법 느려졌다. 탕- 하고 울리는 총소리가 제법 가까워졌다는 걸 본능적으로 감지했다. 비상계단 벽에 몸을 기대 숨을 고른 정국이 양손을 내려 조심스레 손에 든 권총을 장전했다. 조심스레 눈을 감았다 뜬 그가 시선을 내려 층계를 살폈다. 하나둘 쓰러진 사람들 사이로 검은 피가 계단을 흥건히 적시고 있었다. 생각보다 상황은 더 심각했다. 벽에 기대어 한 발자국씩 옮기는 그의 걸음을 저지시킨 건, 이어폰 속 목소리였다.
'전정국. 잊지 마. 네 역할은 상대를 파악하는 것까지야. 일 크게 만들 생각하지 마라.'
익숙한 목소리, 김남준이었다. 정국의 오랜 파트너인 남준은 상황을 보지 않아도 그가 어떤 행동을 할지 훤히 꿰고 있는 듯했다. 잠시 이어폰을 빼버릴까 했지만, 그건 명백히 규율에 어긋나는 일이었다. 정국은 짜증스러운 얼굴로 걸음을 옮겼다.
'괜한 행동할까 봐 덧붙이는데, 너 이번에도 정체 탄로 나면 최소 3개월은 정직이다. 본부에 들어와서 머리 박고 있기 싫으면 말 듣는 게 좋을 거야. 넌 산업스파이 잡으러 간 거지, 총질하러 간 거 아니다. 곧 테러전담TF팀 도착할 거야.'
정국이 신경질적으로 뒷주머니에 권총을 찔러넣었다. 조심스럽게 숨을 고르고 계단을 한 발, 한 발 걸어 내려가던 그가 걸음을 멈췄다.
철컥. 제법 가까운 곳에서 들리는 소리 때문이었다. 분명 탄창을 열어 탄피를 삽입하는 소리였다.
젠장. 정국이 깊게 숨을 들이켰다. 이토록 손에 땀을 쥐게 한 적은 국가정보원 마지막 면접 이후로 처음이었다. 그의 눈이 더 날카롭게 빛났다.
조심스레 손을 뒷주머니로 옮겨 총구를 잡았다. 총을 쥔 채로 몸을 돌린 순간이었다.
하마터면 그대로 방아쇠를 당길 뻔했다. 생각지도 못한 인물의 등장에 정국의 얼굴이 굳어졌다.
"...민팀장님."
아직 시리즈가 없어요
최신 글
위/아래글
공지사항
없음

인스티즈앱
현재 sns에서 난리난 눈쌓인 포르쉐 낙서 박제..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