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BY BABY
W. 풋
F
"아저씨 지금 회사예요?"
[네! 애기씨는요?]
"저,저는 집이죠!"
남산만하게 부른 배를 부여잡고 회사까지 온 것을 알면 분명 다시 돌아가라고 할테니까, 절대로 말 할 수는 없다. 무거운 몸을 천천히 이끌며 안으로 들어섰다. 가만 있자, 아저씨 사무실이 어디 있더라. 아, 15층 복도 제일 끝. 가다가 다칠까봐 걱정이 되지만 여기까지 온 거 그냥 돌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우웅-하는 소리와 함께 올라가는데 밖이 훤히 보여 머리가 조금 어질, 했다. 안된다. 조금이라도 아픈 기색이 보였다가는 아저씨가 난리칠테니까. 담담하게 열리는 문을 통과하고 밖으로 나왔다. 사실 회사에 오는 것은 처음이라 조금 낯설다. 주변을 두리번 두리번 거리다가, 복도 끝에서 어떤 여직원과 서있는 아저씨를 발견했다. 어, 여직원 그것도 엄청나게 예쁜, 여직원. 뭐 어차피 아저씨는 관심이 없겠지.
「애기씨, 애기씨는 왜 질투 안 해줘요?」
「네?」
「막, 질투하고, 다른 여자랑 있으면 왜 있냐고 물어보고 따지고 그런거요. 왜 그런거 안해요?」
「…해야 해요?」
「허…」
「아니 그냥, 아저씨 믿으니까 그렇죠. 아저씨 그런 사람 아니잖아요. 혹시 내 착각이예요? 막 다른 여자랑 있으면 다른 생각들고 그런거예요?」
「다,당연히 아니죠!」
가만, 생각을 해보니 아저씨가 왜 다른 여자들처럼 질투를 안해주냐며 볼멘소리를 한 적이 있었더랬다. 드라마 속 여주인공들처럼 귀엽게 질투도 부려줬으면 좋겠다고 그랬던가. 영 내 적성에 맞지 않는 영역이지만 아저씨가 원한다면야. 그리고 순진한 아저씨를 놀려 먹는 재미도 쏠쏠할 것 같다.
일단 정색을 얼굴에 장전해 주시고, 슬금 슬금 걸음을 옮겼다. 배를 부각하며 아장 아장 걸어가니 아저씨가 눈을 커다랗게 뜨고 다가온다. 앞에 있던 여직원은 갑자기 밀려버려 어벙하게 서있었다.그 모습이 웃겨서 웃음이 터질뻔했지만 꿋꿋하게 참았다.
"애,애기씨! 집이라면서!"
"지금 그게 중요해요?"
아 나, 진짜 못해먹겠다. 아저씨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자꾸 웃음이 터지려한다. 왜 자꾸 웃기지? 옆에 있는 여직원의 어벙벙한 표정도 한 몫한다.
"아저씨 회사에서 아무 여자랑 막 얘기하고 그래요?"
"…네?"
내 말이 이해가 안되는지 입을 헤-벌리고 고민하던 아저씨가 뒤늦게 의미를 알아차리고 손을 휘휘 내젓는다. 아오, 귀여워!
"지금! 나는! 누구때문에 이렇게 배가 불러가지고 집에 짱 박혀있는데 아저씨는 다른 여자랑 막 얘기하고!"
발까지 쿵쿵 굴리며 말하자 아저씨의 얼굴에 당혹스러움이 잔뜩 퍼진다. 웃겨 죽겠다.
"똑바로 말해요. 이 여자 누구예요? 첩이야?"
첩은 좀……. 내가 말해놓고도 후회했다.
"아,아니 애기씨…무슨 말이예요. 이 분은 그냥 회사 직원…"
"나 진짜 몰라요. 난 아저씨만 믿고 사는데! 나 배봐요…어…?"
갑자기 배가 슬슬 아프다. 뭐지, 그 신호는 아닌 것 같은데. 가만, 생각해보자. 예정일은 분명히 2주후다. 그런데 어째 느낌이 안 좋다.
"애기씨 왜 그래요?"
"아, 아니예요. 아무튼! 바람피고 그럴거예요?"
"아니 진짜, 갑자기 왜 그래요. 이,일단 안으로 들어와요."
아저씨가 당황을 잔뜩 집어 먹은 얼굴로 나를 끌어다 사무실로 데려간다. 몇 번이고 앞에 있던 여자분에게 사과를 한 아저씨가 나를 따라 들어왔다. 내가 괜히 씩씩거리며 소파에 앉자 나를 따라오던 아저씨가 머리를 긁적이며 입을 연다.
"아니…애기씨…도대체 이해가…아니, 내 마음 알잖아요. 난 진짜 애기씨밖에 없는데…"
"……."
아저씨가 우물쭈물하며 조근 조근 변명을 토해내는데, 그 모습이 마치 햄스터 같아서 입꼬리가 자꾸 넘실거린다. 아, 도저히 못하겠다.
"풉…"
"난 진짜 애기씨밖에 없어요. 아까도 그냥! 그 회의 끝나고 사무실 오는데요, 그 분이 질문 할게 있다고 하셔서…저는 진짜 그럴려고 그런게…"
"푸하하하, 아저씨…아오 진짜! 왜 이렇게 귀여워요."
"응…?"
"아 나 진짜 못해먹겠어요. 아저씨 때문에 거짓말도 못하겠어요."
"네?"
아저씨가 어벙벙하게 나를 응시하더니 이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슬쩍, 웃는다.
"애기씨. 장난 친거예요?"
"아, 당연하죠! 내가 그런 오해를 왜 해요. 내가 아저씨를 모르면 몰라도."
"…얼마나 놀랐는줄 알아요? 나는 진짜, 애기씨 밖에 없는데…막, 억울해가지고…"
울먹거리며 말하는 아저씨가 귀여웠지만 한 편으로는 장난이 조금 심했나, 싶어서 뒤뚱뒤뚱 걸음을 옮겨 아저씨 옆에 앉았다. 그러자 아저씨가 한숨을 푹 쉬며 내 쪽으로 허리를 돌린다. 그 와중에 배가 욱신 욱신, 이상했다. 아침에 뭘 잘못 먹었나.
"아저씨 마음 내가 다 알죠. 내가 왜 몰라요. 그냥 전에 아저씨가 질투가 너무 없다고 하길래…장난 겸 쳐봤어요."
"전에는 그냥…애기씨는 이상하게 내가 다른 사람하고 있어도 반응이 없어서…혹시 감정이 식었나 싶어서…"
"아닌데. 사실 나는 아저씨가 불편할까봐, 티를 못내는거예요. 그리고 나 배봐요. 이렇게 불렀잖아. 그래서 말도 못해요, 힘들어서."
배를 쭉 내밀었더니 아저씨가 픽, 웃으며 배 위로 따뜻한 손을 얹고 쓰다듬는다.
"그래도 진짜 그러지마요. 그건 질투가 아니고 화내는 것 같아요."
"알았어요. 그럼 다음에는 화내는거 말고 진짜 질투하는걸로?"
"콜."
아저씨가 해맑게 웃음을 터트린다. 나도 그를 따라 웃다가 이내 또 욱신거리는 배 때문에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그러자 아저씨가 어디 아프냐며 내 어깨를 감싸 안는다.
"아니요 그냥…좀…"
"네?"
"…이상해요."
"배 아픈거 아니예요? 지,진통 와요?"
"아, 그런가? 계속 이게…주기적으로"
"빠,빨리 병원가야죠! 이 바보야, 그게 진통이예요!"
바,바보? 이 씨, 아저씨 뭐야……. 뭐라고 말을 해야하는데 점차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고통때문에 뭐라고 말 할 수도 없었다. 아저씨가 허둥지둥 움직이더니 어딘가로 전화를 건다. 차 어쩌고 하던 아저씨가 바쁘게 옷가지를 챙긴다. 애기씨, 아…어떡하지…업혀, 아 그것도 아닌데…내가 안을게요! 아저씨가 냅다 나를 안는다. 아저씨…이러지마요, 창피하니까……. 아저씨의 허둥지둥하는 모습에 또 자꾸 웃음이 터져나왔다. 왜 이렇게 바빠, 이 사람은.
그 때였다. 아저씨네 비서인지 전에도 몇 번 본 도경수씨가 무표정하게 들어선다.
"밑에 차는 대기 시켰습니다. 그냥 바로 내려가시면 돼요."
"아…경수씨…저기 어떻게 해요?"
"뭘 어떡해요. 그냥 사모님 데리고 바로 가시면 됩니다. 이럴 때일수록 본부장님이 침착해지셔야죠. 일단 제가 필요한 물건들은 사놓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애기씨 괜찮아요?"
아우, 난 괜찮으니까 빨리가요. 경수씨가 우리를 보는 표정이 너무 떨떠름하다. 뭐 저런 바보 같은 사람들이, 하는 표정으로 내려다보는데 조금 뻘쭘하다.
"그, 그 뭐지? 그 호흡, 노마즈? 노마즈 호흡법?"
"라마즈겠죠. 본부장님, 좀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너무 허둥지둥하지마시고 침착하게 있으세요. 일단 제가 아래까지 함께 모시겠습니다. 사모님, 괜찮으시죠?"
"아…네."
어째 아저씨가 내 남편 같지 않고 경수씨가 내 남편인 것 같은 느낌이.
우여곡절에 병원에 도착하긴 했다. 자꾸 라마즈 호흡을 하라고 하는 아저씨 때문에 입이 바짝 바짝 말랐다. 이게 뭐람. 아저씨에게 물을 달라고 했더니 수건을 갖다준다. 이 사람 나보다 더 당황했다. 미치겠다.
"아오 아저씨이-너무 걱정 말아요. 좀 아프긴 한데…"
"우리 애기씨…아파서 어떡해요…"
울겠다. 아저씨가 입꼬리를 축 늘어뜨리며 나를 응시한다. 내 손을 두 손으로 꼭 부여잡고 몇 번이고 손등에 키스를 하는데, 딱히 로맨틱 하지 않고 웃기기만 했다. 누가보면 본인이 애 낳는줄 알겠다.
"아으…아프다-"
"아,아파요? 진짜…"
내가 고통에 찬 신음을 뱉어낼 때마다 아저씨가 더 늙는 것 같다. 제가 더 크게 놀라며 한숨을 뱉는 아저씨가 웃겼다. 일단 병원 수속은 다 밟았습니다, 본부장님이 함께 옷 갈아입고 들어가시면 되겠네요. 경수씨가 서류를 이것 저것 챙겨 들고와 차근차근히 보여줬다. 아, 이게 이렇게……. 아저씨는 보라는 종이는 안 보고 내 얼굴만 보고 있다. 아, 이 철딱서니 없는 아저씨야……. 나와 경수씨가 마주보고 허허 웃었다.
"일단 대충 필요한 것들 챙겨왔습니다. 본부장님 댁에 들릴 수는 없어서 새걸로 다 샀는데, 괜찮겠죠?"
"어…네. 너무 감사해요. 저희가 너무 실례를…"
"뭐 사실, 업무가 산처럼 쌓여있고 우리 본부장님 간수하느라 힘들지만, 한 두번도 아니고 괜찮습니다. 사모님도 아기 낳느라 고생많으시구요."
"…아…죄송합니다. 아저씨도 빨리 미안하다고 해요!"
"미,미안해요 경수씨."
그러자 경수씨가 괜찮다며 고개를 절레 절레 흔들며 씨익 웃는다. 감사합니다, 하고 몇 번이고 인사했더니 손사레를 친다. 그래도 고맙다. 이것 저것 다 챙겨주고. 원래라면 우리가 해야했던 일인데 말이다. 조금 업무적인 것만 빼면 참, 괜찮을텐데.
"아, 그리고 본부장님 본가와 사모님 부모님께도 연락 드렸으니까 곧 오실겁니다. 일단 저는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와, 진짜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아기 낳으시면 꼭 사진 보내주세요."
"큽…네."
"아마 사모님 닮아서 예쁜 아기 낳으실겁니다. 오늘 다시 보니까 되게 미인이시…"
갑자기 아저씨가 벌떡 일어나 경수씨 팔을 찰싹 찰싹 때리며 어서 가란다. 왜 저래, 또. 간간히 진통이 오는 배를 부여잡고 두 사람을 보고 있자니 아저씨는 궁시렁 궁시렁, 경수씨에게 뭐라고 말을 하더니 아예 밀어버린다.
"빨리 가요, 빨리!"
"아, 알았어요 진짜. 그럼 저 가보겠습니다."
경수씨가 아저씨를 보고 씨익, 웃더니 병실을 나선다. 아저씨는 뭐가 마음에 안드는지 저 혼자 입을 삐죽이더니 이내 다시 내 두손을 잡고 걱정모드에 돌입했다.
"진통은 좀 어때요?"
"슬슬…좀 심해져요…으-"
슬슬 숨이 막힐 것 처럼 아파온다. 아까는 대화하느라 몰랐는데, 자꾸 더 심해지는 고통에 미간이 절로 찌푸려진다. 아저씨가 눈을 커다랗게 뜨고 손을 꼭 부여잡는다.
"으…"
"아,아파요?"
"아으…"
점점 정신이 아득해지고 있었다. 허리가 끊어질 것 같다는 말로 형용 할 수 없는 고통이 찾아들고 있었다.
눈을 떴다. 어떻게 몇시간이 흘러갔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아래로 내려다보니 배는 어느새 홀쭉해 있었고, 대체 아까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잔뜩 녹초가 되어 쓰러져있는 아저씨가 보였다. 그 옆에는 세훈이가, 우리 부모님이, 그리고 시부모님이 앉아 있었다. 다들 옹기 종기 모여 지친 얼굴로 한숨을 푹푹 내쉬고 있었다. 단체로 운동회라도 하고 왔나.
"아저씨…"
"애기씨?"
아저씨가 벌떡 일어나 다가온다. 타이도 없이 셔츠 차림을 하고 있는 아저씨의 얼굴이 매우 늙어보였다.
"괘,괜찮아요?"
"…네. 아까 내가 많이 힘들게 했죠?"
어렴풋이 아저씨를 잡고 흔들었던 것 같기도하고. 그래서인지 아저씨의 머리가 엉망이다. 조금 미안해져서 아저씨의 머리를 손으로 쓸어주었더니 아저씨가 곧 눈물이라도 터트릴 것 처럼 손을 잡아 내려 제 손으로 감싼다.
"애기씨…"
"…왜,왜요…"
"진짜 고생했어요. 애기씨 아파하는 것 보니까 내가 다 아파가지고…"
"아, 괘, 괜찮아요…아저씨 뒤에 부모님들 계시잖아요…"
뒤에서 우리 비웃고 계시잖아요. 게다가 세훈이의 표정을 보고 있자니 굉장히 껄끄럽다. 지금 누나가 힘들게 애를 낳았다는데, 저러고 있어?
"애기 예쁘더라. 너 안닮아서 그런듯."
"넌 누나한테 너가 뭐야."
엄마와 아버지가 시원하게 세훈이의 뒷통수를 갈겨주셨다. 아, 통쾌해.
"우리 며늘아기, 고생했다. 사돈총각 말대로 정말 예쁘더라. 우리 며늘아기 닮아서 그런가봐. 그죠, 여보?"
"그럼. 우리 며늘 아기 닮아서 워낙 예쁘더라."
아니예요, 아저씨 닮아서 그렇죠. 좋은 말만 해주시는 시부모님이 고마워 밝게 웃으며 인사했다. 그런데 잠깐만, 아들이야 딸이야. 예쁘다고하는걸 봐서는 딸인 것 같은데…….
"근데 아저씨, 딸이예요?"
"…딸이었으면 좋겠어요?"
"상관없는데…"
"딸이예요. 애기씨랑 꼭 닮았어요. 너무 예뻐서 떨어뜨릴뻔 했어."
아저씨가 해맑게 웃는다. 그렇구나. 한 번 보고 싶은데. 나도 표정이 축 쳐졌다. 이런 내 마음을 읽은 것인지 아저씨가 곧 아기 볼 수 있대요, 라며 손을 꼭 잡아온다.
"아, 그리고 우리 정식으로 결혼식 못 올렸잖아요. 오늘이 우리 결혼기념일이었으면 좋겠어요. 우리 애기씨랑, 나랑 그리고 우리 아기까지…이제 진짜 정식으로 부부가 된 것 같으니까…"
아저씨가 수줍게 볼을 붉히며 말했다. 나는 곧 울컥하고 감정이 밀려들 것 같아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진짜 고생했어요. 고마워요. 꼭 잘 키워요. 내가 더 잘할게. 사랑해요."
"……나두요."
아저씨가 말을 마침과 동시에 내 볼에 짧게 키스했다. 아오, 못 보겄다! 어디선가 문을 박차고나가는 소리가 들렸지만, 애써 무시했다. 뿌듯했다. 그 어느 때보다도.
[애기씨 애기씨!]
"왜요!"
[지금 야근하고 있어요?]
"응.지금 작업 하고 있는데, 왜요?"
[큰일 났어요! 우리 딸이! 우리 딸이!]
…뭐여. 왜 이러고 끊는데! 손이 덜덜 떨렸다. 우리 딸이 뭐 어쨌다고. 아, 미치겠네. 안 그래도 야근때문에 미치겠는데 딸내미까지 무슨 일이 생긴건가. 허겁지겁 스캐너니 태블릿이니 하는 것들을 밀어넣고 가방을 챙겼다. 집에 가서라도 일을 마무리 할 수 밖에 없다. 일단 물건들을 챙겨 내려갔다.
택시를 잡아다 가는 도중에도 몇 번이고 전화를 걸었지만 전화를 받지 않았다. 정말 무슨 일이 있는걸까. 미칠지경이었다. 누가 내 딸 건드리기만 해봐라, 다 총으로 쏴 죽일거야. 마음을 굳게 잡고 있으려고 해도 자꾸 눈시울이 붉어졌다. 정말 무슨 일이 있으면 어쩌지…….
집에 도착하자마자 미친듯이 뛰어들어갔다. 원래 초인종을 누르고 들어가야하는 낮은 담장도 뛰어넘고 그냥 들어갔다. 허들도 아니고. 정말 우사인볼트에 빙의 된 사람처럼 뛰어들어가 문을 열었더랬다. 그리고 문을 열자마자 터지는 소리.
"엄마!"
"결혼 기념일 축하드립니다!"
"…?"
"엄마?"
"여보…"
그러고 보니 내일이 수정이 생일이자, 결혼기념일이었다.다리에 힘이 풀려 그 자리에서 주저앉았다. 숨을 거칠게 내어쉬며 주변을 두리번 거리다 내게 다가오는 딸을 품에 안았다.
"아,아빠 엄마 울어요…"
"어? 어, 울어요?"
둘 다 똑같이 생겨가지고 왜 사람을 놀려먹어, 놀려먹긴. 이러면 안된다는 것을 알면서 자꾸 눈물이 터져나왔다. 어헝, 딸 너 엄마 그렇게 놀려 먹으면 못 써…….
이내 딸까지 울음을 터트린다. 올해로 다섯살이 되는 딸은 다른 나이 또래 아이들보다 어른스럽지만-이상하게도 가끔 너무 바보같아서 유치원에서 별명이 바보란다. 아무래도 이건 아저씨를 닮은 것 같다- 아이는 아이인지 내 목을 끌어안고 엉엉 운다. 아저씨가 내 앞을 서성이며 당황스러워한다. 진짜, 이럴거면 왜 놀라게 해가지고!
"그게…미안해요."
아저씨가 정말 미안하다는 얼굴로 싹싹 빈다. 눈을 확 흘겼더니 깨갱하고, 수그러든다.
"우리는 그냥 놀라게 해주고 싶어서 그랬어요…내일, 아니 이제 오늘이네. 오늘 결혼기념일이잖아요. 근데 야근하느라 힘들어보여서…"
"그래도 이런 장난은 하지마요. 진짜 납치라도 당했나 싶어서 얼마나 놀랐는 줄 알아요?"
"알았어요…사실 수정이가 하자고 그런건데…"
아저씨가 눈물 범벅이 된 수정이의 볼에 쪽, 뽀뽀를 하며 말한다. 그런 아빠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나와 똑같이 눈을 확, 흘긴다.
"아빠가 이렇게 하면 엄마가 엄청 좋아한다고 그랬어요!"
"쓰읍, 그런거 말하는거 아니예요."
"아니긴 뭘 아니예요. 아빠가 그랬잖아요."
이제 다섯살짜리 딸한테도 잡혀사는 아저씨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
"맞다, 딸. 아빠가 아까 엄마 오면 뭐라고 해달라고 했지?"
"……모르겠어요."
아까 아이답게 엉엉 울던 딸은 어디로 갔는지, 귀를 후비적 파며 고개를 갸웃거린다. 뭐야 또. 뭐길래 저러는거야. 아저씨가 초조한지 마른침만 꿀꺽 삼킨다.
"아까 말했잖아요! 빨리 빨리!"
"뭔데. 뭐길래 이래요."
아저씨가 딸 귀에다 대고 뭐라고 속삭이는데, 다 들린다. 다름 아닌 '동생 만들어주세요-'하는 대사를 치라는 것인데, 참. 허술해죽겠다, 이 양반.
"동생 별로."
딸이 고개를 설레 설레 흔든다. 곧 내 품에 안겨 있던 딸이 시크하게 고개를 내저으며 뛰어내린다. 자기 방으로 들어가려는 딸을 붙잡은 아저씨가 귀에대고 뭐라고 속삭인다. 아, 이번에는 너무 멀어서 그런지 들리지 않는다. 뭐라고 했는지는 몰라도 딸의 표정이 조금 밝아졌다. 아이답게.
"엄마! 수정이 동생 보고 싶어요!"
"……너무 작위적인데."
"작위적인게 모예요?"
귀엽게 눈을 반짝이며 묻는 딸을 보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 참, 딸이나 아빠나. 귀엽게 눈을 찡긋, 하던 딸이 동생 주세요!하는 작위적인 멘트를 잊지 않으며 방으로 쏙 들어가버린다. 뭐야 이게……. 멍하니 그 모습을 보고 있다가 허탈하게 웃으며 소파에 털썩, 앉았다.
"애기씨이…"
그러자 아저씨가 슬금 슬금 다가온다. 아, 왜 이렇게 붙어요-하며 손을 뗐더니 싫다고 아예 고개를 어깨에 기대온다.
"아까 뭐라고 했길래 갑자기 상황이 바뀐거예요?"
"……."
"응?"
"…경수씨랑 놀이공원 놀러가게 해준다고."
"……하."
"…하하하."
"경수씨 이제 몇살이지?"
"서른 하나인가, 둘인가."
"미치게하네, 진짜. 딸까지 이런 아저씨 데려오면 나 진짜 못살아요."
괜시리 아저씨 볼을 쿡쿡 찔렀더니 입을 삐죽인다. 아니, 이게 무슨 서른 여섯이나 먹은 아저씨야. 세월이 흘러도 변하질 않는다, 이 아저씨는. 물론 특유의 바보스러움과 스킨쉽까지도. 슬슬 몸을 붙여오는 모양새가 이상한데. 작업할 거리도 잔뜩 쌓여있는데 이러지 말아요, 하며 밀어내니 섭섭한 얼굴로 더 붙는다. 아오, 진짜.
"여보, 둘째……."
"아, 나보고 또 낳으라고? 못해요 진짜. 나 일해야해."
"자기야아…"
"싫어요. 싫다고. 떨어져 빨리!"
슬슬 얼굴을 들이밀며 볼에 키스를 한다. 아으, 이러지말라니까…
"나 같은 아저씨랑 아기 하나만 더 만들어요, 응? 애기씨-"
"진짜 못 살아…"
아저씨가 푸흐흐, 웃으며 입을 맞춰온다.
몇 년이 지나도 그는 여전하다. 그 놈의 애기씨 소리는, 질리지도 않는지.
BABY BABY FIN.
========
애기씨 바보 루한.....사요나라....ㄸㄹㄹ
좀 너무 열린결말이랔ㅋㅋㅋㅋ좀 답답하신분들 있지 않을까...
뭐 여튼 베이비베이비가 드디어 끝났네요!ㅋㅋ
생각보다 길었지만ㅋㅋ여차저차 마무리된 것 같아서(ㅋㅋㅋ좀 이상한 결말이라 마음에 걸리지만)
기뻐요!ㅎㅎㅎㅎ......ㅜㅜㅜ
시험을 잔뜩 망치고 돌아온 저는 이 한을 글잡에 불싸지르도록 하겠습니다.ㅋㅋㅋㅋㅋㅋㅋ하.....
사실 다음 썰은 준비하고 있었던게 있는데 페이드 인처럼 그게 좀 우울우울하고......야....야하고(의심미)ㅋㅋㅋㅋ
그래서 그냥 밝고 달달한 종대썰로 찾아뵐까! 생각중이예요. 생각해보고 둘 중 하나를 선택해서 돌아오겠습니다
읽어주신 분들 모두 모두 감사해요!
댓글 달아주신 독자분들도 감사합니다!
암호닉
우유향 님
만두짱 님
홍홍내가지금부터랩을한다 님
은팔찌 님
루한부인 님
망태기 안의 쓰니 님
유후 님
징징 님
루루 님
뎨훙 님
니니 님
(암호닉은 늘 열려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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