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D에게 ;
20XX년 X월 X일 날씨 맑음
안녕. 오늘부터 너에 대해서 이야기를 쓰려고 해.
네 이름을 몰라서 이러는 것은 아니지만, 너를 오늘부터 D라고 부르기로 했어.
괜찮지? 오늘도 넌 멋진 것 같아. 딱 오늘 날씨같은 너.
20XX년 X월 X일 날씨 맑음
요즘 들어 날이 많이 풀린 것 같아. 너도 그렇게 생각하니?
너가 매일 웃었으면 좋겠어. 오늘은 기분이 그렇게 좋아보이지는 않더라.
비록 내가 너에게 다가가지는 못하지만, 바라보기만 해도 좋은 너야.
너는 해같아. 너를 똑바로 보지는 못하겠거든. 뒷모습이 다인걸.
20XX년 X월 X일 날씨 흐림
오늘은 처음으로 너와 말을 해 보았어. D, 목소리도 참 좋은 것 같아.
웃을 때 눈이 휘는 것도 멋있고, 내 말도 잘 들어줘서 너무 좋았어.
너한텐 기억에도 남지 않을 사소한 순간이었겠지만 나는 그거 하나 하나가 다 큰 의미야.
20XX년 X월 X일 날씨 맑다가 비 조금
애들이 그러는데 너가 학교에 안 나올지도 모른대. 아니었으면 좋겠어.
지금 비가 조금씩 오고 있는데, 너가 우산을 안 들고 간 게 신경이 쓰였어.
비 맞으면 감기 들 텐데. 너가 아픈 건 싫어. 소문은 소문이길.
오늘은 날씨처럼 우울해.
20XX년 X월 X일 날씨 비
소문일 거라고 늘 생각하고 있어. 너가 간다는 건 생각하기도 싫거든.
오늘 뉴스에서 보니까 이제부터 장마래.
D 너는 비가 오는 거 싫어하잖아. 나도 비 오는 건 싫어.
사소한 거라도 너와 공통점이 있다는 게 나는 너무 좋아.
20XX년 X월 X일 날씨 비
난 정말 운이 좋은 아이일 거야. 정말로! 매일 기도했는데 오늘 이뤄진 것 같아.
비록 너를 제대로 쳐다볼 용기를 갖고 있지는 않지만 너랑 짝이 돼서 정말 기뻐.
너는 어떨지 잘 모르겠다. 늘 웃는 너라, 내가 싫었어도 웃어줬을 거란 생각이 들어.
그래도 좋게 생각하려고. D, 잘 자.
20XX년 X월 X일 날씨 비 온 뒤 차차 갬
오늘은 너무 떨려서 뭐라고 적지도 못하겠어.
가끔은 내가 변태인 건가, 하는 생각도 들어.
진지하게 너가 귓속말을 나한테 하지 말아줬으면 좋겠어.
떨리거든....
20XX년 X월 X일 날씨 흐림
D 너가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다는 얘기를 들었어.
누군진 모르겠지만 나와는 비교도 안 될 것 같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
속상하지만 그래도 난 너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20XX년 X월 X일 날씨 비 옴 천둥도 침
너한테 짜증을 내고 말았어. 미안해, D.
누군진 몰라도 애들 말처럼 너가 그 아이랑 차라리 잘 됐으면 좋겠어.
내가 너한테 욕심을 내는 게 너무 싫어.
20XX년 X월 X일 날씨 맑음
내 기분이랑 다르게 오늘은 날씨가 맑더라. 이제부터 쓰는 걸 그만둬야 할 것 같아.
보기만 해도 좋았던 너였는데, 이젠 너가 없어.
공항에 오라고 했던 너가 야속해. 가는 순간까지 네 뒷모습만 보고 있는 내가 너무 싫었어.
이제 너가 없는 나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왜 너는 가야만 하는 걸까. 하나도 모르겠어. 그냥 모든 기억이 없어졌으면 좋겠어.
20XX년 X월 X일 날씨 맑음
한 달 만에 쓰게 되었네. 너가 미워서 이제야 온 거야.
매일 매일 운 것 같아. 그래도 내 옆자리가 텅 빈 건 마찬가지지만, 꿈에서라도 널 보고 싶었는데,
꿈도 요즘 못 꿔. 병원에 가 봤더니 스트레스성 불면증이래. 매일 졸업식만 기다려. 그때 너가 온다고 했었잖아.
20XX년 X월 X일 날씨 흐림
요즘은 잠이 잘 오는 것 같아. 너가 보고 싶은 건 매한가지지만 너가 언젠가 돌아왔을 때,
다시 너를 만났을 때, 떳떳해지려고 열심히 살고 있어.
근데 요즘 네 얼굴이 잘 생각이 안 나. 그래도 수많은 사람 가운데 너가 있다면 널 찾을 수 있을 것 같아.
스무 살에 널 볼 수 있었으면 좋겠어.
20XX년 X월 X일 날씨 맑음
미국은 어때? 비가 오지 않았으면 좋겠어. 넌 비 오는 날을 싫어하니까.
한국은 날씨가 맑아. 너를 못 본 지 1년 째야. 스무 살까지는 반 년 정도 남았네.
20XX년 X월 X일 날씨 흐림
한 달 남았네. 애들이 나보고 바보같대.
하긴, 너가 2년 전의 약속을 기억할 것 같지는 않아. 넌 뭐든 깜빡깜빡하곤 했으니까.
그래도 난 지킬 거야.
20XX년 X월 X일 날씨 비 옴
내일이야. 괜히 떨리네. 어차피 안 될 일인 거 아는데, 그냥 기대되고 그러네.
내일 다섯 시라고 너가 말했었는데. 기억도 안 나겠지, 뭐.
이제 내일이 지나면 내 마음을 비우려고 해. 이제 이것도 마지막이 될 거야.
D, 내 봄이 돼 주어서 고마웠어. 진심으로 널 좋아했어.
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너는 나를 기억할까. 그 어떠한 작은 연락도 주고받지 않았던 너와 나였던 터라, 의미 없는 약속이 될 것이 분명했다.
2년 동안 나와 함께해준 일기장을 가방 안에 넣고 졸업식이 끝나고 나서라 아무도 없는 학교 운동장 구령대에 앉았다. 겨울 바람이 매섭게 코 끝을 스쳤다.
얼마나 지났을까. 시계를 보니 5시 10분이었다. 그 누구도 오지 않을 것 같았다. 텅 빈 주변을 둘러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어차피 못 만날 거 알고 있었으면서, 왜 기대를 한 거야. 하긴, 너가 올 리가 없잖아.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바보.
그래도 괜찮아. 내가 기다린 게 너였으니까, 너 덕분에 내가 행복했었으니 괜찮아.
교복 입고 만나기로 했었었는데, 춥게 괜히 입고 나왔네.
종이 접듯 접으면 끝날 일인걸. 애써 자기 최면을 걸었다. 이제는 일어서도 될 것 같다. 다섯시 반, 아무도 없는 운동장을 바라보며 너와의 추억을 정리해 보려고 했다.
"왜 혼자 울어요, 여기서."
"네? 안 울어...."
"늦어서 미안."
"비행기 도착하자마자 너 보려고 왔는데, 늦었네. 많이 기다렸지."
"......."
"보고 싶었어, 많이."
"......."
"안녕, 내 첫사랑."
본격 이석민 기억조작글....!
석민이 번외도 쓰고 싶네요. 허허.
쿱데포드레는 내일 찾아올 것 같습니다. 늘 사랑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