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아치 권순영 X 개과천선 너봉
" 너가 김세봄? "
당황한것은 나뿐만이 아니라 반 아이들 모두가 그런듯했다. 유일하게 혼자서 느긋한 얼굴을 한 권순영이 내게 물었다. 니가 김세봄이냐고. 올려진 손에서 풍기는 담배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그에 어깨에 올려져있던 손을 문제집을 쥔 손의 반대로 끌어내리며 말했다. 어, 내가 김세봄인데? 웅성웅성, 저멀리서 속닥거리는 여자애들이 눈에 들어왔다. 눈을 꾹 감았다. 또 피곤해지겠네. 이런 애들하고 어울리면 다른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락내리락 하는것쯤은 식은죽 먹기였다.
" 이거. "
" 이게 뭔데. "
" 너 부승관 친구아냐? 걔가 놓고간거니까 가져다주라고. "
툭, 내 손에 의해서 떨어진 제 손을 힐끔, 바라본 권순영이 다소 낮아진 목소리로 말했다. 음악, 부승관. 정갈하게 적혀있는 이름옆에 그려진 한라봉에 픽, 웃음이 터졌다. 얘는 꼭 지같은것만 그려놓네. 부승관과 권순영이 친한사이인건지 잠깐의 의문이 들었지만, 나중에 물어봐도 되는것이였기에 일단 음악책을 받았다. 살짝, 스친손에 권순영이 다급하게 손을 떼네었다. 뭔가 기분나쁘기도 하고 머쓱해진 기분에 가만히 입을 다물고 뒤를 돌았다. 좀 있다가 또 주러 가야겠네.
" 저기… 이지훈. "
" 왜? "
" 너 이거 어떻게 푸는지 알아? "
" 아… 잠깐만. "
톡톡, 조심스럽게 치자 고개를 든 이지훈이 뭐냐는듯 나를 쳐다봤다. 이거 어떻게 푸는지 알아? 내 말에 썼던 안경을 벗고 머리를 정리한 이지훈이 영어문제집을 덮었다. 괜히 시간을 방해한것같아 조금 미안해졌다. 아…이거 좀 어려운문제네. 문제집을 한번 흝은 이지훈이 샤프로 먼저 공식을 적어내려갔다. 아, 맞다. 저거였지. 끄덕끄덕, 친절히 설명해주는 이지훈의 말을 따라 눈이 돌아갔다.
이제 알겠지? 문제집 보니까 공부 꽤 하는거 같던데. 그냥 공식만 적어줄껄 그랬나. 무뚝뚝한 말과 다르게 살풋 웃는 얼굴은 남자치고 귀여운 모습이었다. 그에 머쓱히 웃으며 고맙다고 전하자 됐다며 손을 내저은 후 다시 영어문제를 푸는 그모습을 바라보다가 자리로 돌아왔다.
담배냄새. 설마했던 권순영이 정말로 내 뒷자리인걸 확인하고 대수롭지 않게 지나가려던 찰나, 훅, 끼쳐오는 담배냄새에 코를 틀어막았다. 의자를 뒤로 젖히고 핸드폰게임을 하는 그 모습에 인상을 절로 찌푸려졌다. 길게뻗은 다리는 책상위에 올라가있었다. 하… 어이가 없어 작게 한숨을 쉬며 자리에 앉았다. 양아치같은 애들이 제일싫어. 시끄럽게 울리던 핸드폰 게임소리가 멎었다.
" 야. "
" ……. "
" 야 김세봄. "
" 왜? "
" 나 담배냄새 많이나냐? "
웃기지도 않는 물음이었다. 니가 생각하기엔 안나는거 같아? 살짝 날카롭게 나간 말에 입을 다물었다. 옆에 있던 수정이가 괜히 내 눈치를 보며 말을 걸었다. 야, 야야 김세봄! 나 이 문제 모르겠어. 저런 새끼들이 제일싫어. 남한테 피해주고 모른척하는 새끼들. 으득, 이가 갈렸다. 안좋은 기억이 다시 나올락말락했다. 그런 내 말에 꿀먹은 벙어리마냥 입을 다문 권순영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교실을 빠져나갔다. 그래 이새끼야. 제발 들어오지마. 그런 내 행동에 왜 너답지 않게 예민하냐며 팔을 퍽퍽치는 수정이에게 그냥이라며 웃어보였다. 더 말했다간 정말로 내 치부를 다 드러낼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
"음, 그래서 말이야. 선생님은 물론 너를 믿지만… "
지겹도록 들은 말이었다. 선생님은 너를 믿어, 믿는데. 믿는데? 믿는데 어떻게 저런 소리를 할수 있을까. 재작년같은 일은 없어져야 하잖아, 그렇지? 물론 너가 아니란걸 알아. 지금 니가 하는 행동만 봐도 거의 개과천선 했다고 보니까. 근데 자꾸 주변에서 안좋은 얘기가 들려와서… 재작년 너랑 같이다녔던 애들 소식도 몇개있고. 어쩌라는걸까. 나에게 저런말을 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아무튼, 이런 얘기 하는건 별 뜻은 없어. 그냥 너가 다시 흔들릴까봐 선생님이 걱정되서 그렇지. 참, 원우는… 우욱, 들려오는 이름에 헛구역질이 나왔다. 어머, 괜찮니? 호들갑을 떠는 선생님에게 손사래를 치며 교무실을 뛰쳐나왔다. 앞에있던 남자애와 부딫힌건 신경 쓸 겨를도 없었다. 그날의 나를 떠올리면 너무나도 비참하고, 또 비참했기에 이를 악 물었다. 다신 흔들리지 않겠다고, 다른삶을 살아보자고 결심했던게 이름 하나로 송두리채 흔들리고 있었다. 전원우. 다신 듣고 싶지 않은 이름이었다.
' …제가 봤어요. '
' …뭐라고? 야, 전원우 너, '
' 이만가보겠습니다. 괜히 생사람 잡지 말아주세요. '
3월의 봄은 아직 춥다. 새옷을 입기 위해 준비하는 나무들은 따뜻한 햇살을 비춰달라며 아우성을 친다. 그 모습이 마치 예전의 나와 비슷해보여 눈물이 고인다. 착잡한 마음을 달랠곳이 필요했다. 지친 발걸음을 옮겨 운동장 벤치로 다가갔다. 열심히 뛰어노는 남자애들을 바라보다가 푹, 고개를 숙였다. 괜찮아. 잘 해낼수 있을꺼야, 라고 생각하며 애써 기를 북돋았다. 그것도 잠시, 저 멀리서 보이는 부승관의 모습에 가만히 손을 흔들었다. 김세봄!! 거기서 뭐해!! 걸어오면서 소리를 질러대는 부승관의 바보같은 모습에 웃음이 터졌다. 뭘 오면서 묻고 있어.
" 뭐야. 왜 혼자 청승맞게 이러고 있어? "
" 그냥… 아, 참. 이거. 너 음악책 놓고갔다더라? "
" 어? 어어…고마워. "
털썩, 익숙하게 내 옆에 앉은 부승관이 쭈쭈바 하나를 건넸다. 너 주려고 샀는데 다 녹아버렸네. 아쉬운듯한 목소리에 가만히 웃으며 쭈쭈바를 받고 입에 물었다. 내가 건넨 음악책에 당황한듯한 시선이 이리저리 흔들렸다. 너 권순영이랑 친해? 라는 물음은 차마 물어보지 못한채 목구멍을 가득 메웠다. 아 맞다. 너한테 말 안했나? 오늘 찬이 왔어. 너 안와서 서운하다고 어찌나 찡찡대던지… 뭐? 정말로? 너 왜 나한테 말 안했어! 툭, 부승관에 입에 물려있던 아이스크림이 무릎위로 떨어졌다. 야! 먹는데 턱을 치면 어떡해!
야 그런건 빨리 말했어야지! 우리 찬이 어떡해, 오늘 내가 보러갔어야했어! 등교도 같이 했어야 했다구! 내 말에 어이가 없다는듯 아이스크림을 다시 입에문 부승관이 빼액 소리를 질렀다. 니가 그렇게 안해도 오늘 이찬 인기 겁나 많았거든? 아주 김민규랑 쌍으로 초콜릿이랑 사탕을 이만큼, 민규? 민규도 왔어? 야 부승관 그런건 좀 미리 말했어야지! 답답한 마음에 쭈쭈바를 앙, 깨물었다. 내가 이렇게 흥분하는 이유는 사실 별거 없었다. 그냥, 너무 보고싶었달까.
민규와 찬이는 내가 중학생때부터 알았던 동생들이었다. 나를 잘따르고 또 애교도 많은 찬이와, 장난도 잘치고 재밌는 민규와 놀때면 걱정거리가 사라지는 느낌이었달까. 그 어릴때부터 쭉 이어오던 우정은 민규와 찬이가 학교장 추천으로 교환학생으로써 한국을 떠날때 잠깐 쉼표를 찍었었다. 둘다 워낙에 예쁨을 많이 받던 아이들이라 잘 해결하고 오겠지, 라고 생각하며 오면 첫번째로 보러가겠다고 했었는데… 에라이 부승관 진짜! 짤짤, 내 손에 마구 흔들리며 부승관이 소리질렀다. 미친, 김민규나 이찬이나 둘중 하나만하라고!
" 안돼, 그건 너무 힘든결정이야. 찬이는 귀엽고 민규는 멋있잖아. "
" 뭐래. 이찬은 멍청한거고 김민규는 그냥… 완전 병, 아! "
" 혼날래? 찬이가 뭐가 멍청해. 너보다 똑똑할껄? "
" 허, 참. 아주 이찬 어머니 납셨어."
절레절레 고개를 젓는 부승관을 노려봤다. 에라이, 좀있다가 점심시간에 민규랑 찬이랑 같이 밥먹자고 해야지. 키 좀 많이 컸을까 궁금하네. 찬이가 키작다고 많이 속상해했는데. 띠리링- 울리는 종소리에 엉덩이를 대충 털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야 나 간다! 좀있다 민규랑 찬이 데리고 급식실로 내려와. 야 김세봄 나는?! 나는 같이 안먹냐? 이 치사한 기지배야!! 뒤에서 소리지르는 부승관의 목소리에 웃음이 터졌다. 넌 그냥 오고! 손에 쥐어있던 아이스크림은 이미 모조리 녹아 물이 되버린지 오래였다.
*
" 새학기인 만큼, 오늘은 자리부터 바꿔보자. "
" 아, 쌔앰! 그냥 친한애들끼리 앉으면 안돼요? "
" 안돼. 새학기인만큼 여러애들이랑 친해져야지. "
" 아, 핵싫어! "
킁, 아까 너무 서러운 마음에 밖에 오래앉아있던 탓일까, 슬쩍 코끝을 매만져보니 아주 차갑다. 마이만 입고오긴 좀 무리였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툭, 뒤에서 뭘 그렇게 부산스럽게 움직이는지 계속해서 의자에 닿는 발에 성질이 나 훽, 뒤를 돌아 권순영을 쳐다봤다. 그런 내 행동에 평소에 무섭게 찢어져있던 눈이 동그래졌다. 의자 좀 그만칠래? 내 말에 아…하고 탄식을 내뱉은 권순영이 다시 원래대로 얼굴을 돌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미안.
그에 아까처럼 앞으로 몸을 돌리려던 찰나, 코를 찌르는 페브리즈 냄새에 다시 뒤를 돌았다. 창가를 쳐다보던 권순영이 내 시선을 느낀건지 고개를 돌려 나와 눈을 맞췄다. 왜? 너… 페브리즈 뿌렸어? 내 말에 어버버거린 권순영이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뿌렸는데, 왜? 아니, 그냥. 냄새나길래. 무슨냄새? 담배? 내 말에 입을 다문 권순영이 가만히 내 대답을 기다렸다.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 담배냄새가 난다고 하면 어떤 반응을 보이려나, 하는 그런거?
" 아니, 페브리즈 냄새. "
" 아… "
" 근데 좀 적당히 뿌리는게 낫겠다. 너 냄새 너무 많이나. "
한통을 쏟아부은건지 뭔지 진동을 하는 장미꽃 향에 손으로 코앞을 휘저으며 얘기하자 머쓱한듯 머리를 턴 권순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좀 많이 뿌렸나보네. 이리저리 흔들리는 눈이 갈피를 못잡고 흔들렸다. 뭐야…왜저래? 고개를 갸웃하며 몸을 돌리기 무섭게 나를 부르는 선생님의 목소리에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앞으로 나갔다. 아, 뽑기구나. 17번이라고 정갈히 적힌 종이를 보고 칠판으로 다가가 이름을 적었다. 아직 18번은 없네.
" 야 김세봄 너 어디임? "
" 나? 나 17번. "
" 야 나 12번! 미친 개이득! "
" 난 11번. "
" 어…? 어어, 어. 안녕… "
내 앞자리인 수정이가 내 손을 붙잡고 방방뛰었다. 존나 다행이다! 나 친한애 없어서 걱정했는데! 그 모습을 바라보며 그저 웃고 있자 저멀리서 걸어온 이지훈이 태연스레 정수정 옆자리에 가방을 둔다. 난 11번. 그 목소리 놀라 눈을 둥그래진채 이지훈을 쳐다보자 그냥 씩, 웃고만다. 어색하게 자리에 앉아 인사를 건네는 수정이의 모습에 턱을 괴고 구경했다. 정수정 잘됐네. 이 김에 공부좀 하는게 어때? 조용이하라고! 아 개어색해…
자, 다들 자리로 이동해. 웅성웅성거리는 아이들이 불만과 환희를 동시에 쏟아내며 가방을 들고 옮겼다. 텅빈 옆자리를 한번 쳐다보고 앞으로 시선을 옮겼다. 나에게 울상을 지어보이는 수정이를 한번 쳐다보고 이지훈을 불렀다. 야, 이지훈. 왜. 내 목소리에 고개를 돌린 이지훈의 대답에 가만히 웃으며 수정이를 가리켰다. 얘가 너한테 물어볼 문제있대. 이런 미친! 입모양으로 욕을 벙긋거린 정수정이 저를 빤히 쳐다보는 이지훈의 시선에 어색히 웃으며 문제집을 펼쳤다. 아, 이거. 응, 이거…
" 근데 18번 누구야? 왜 니 옆만 비어있냐. "
" 몰라. "
" 난데, 18번. "
" ……너라고? "
" 어. 못믿겠으면 칠판 보던가. "
의문을 가지기 무섭게 올려진 가방에 고개를 들어 그 인물을 살폈다. 손을 교복 바지 주머니에 찔러넣은 권순영이 고개를 까딱이며 칠판을 가리켰다. 미친. 진짜 징한 인연이네. 못믿겠으면 칠판 보던가.당당하게 나온 말에 고개를 돌려 칠판을 쳐다봤다. 17번, 김세봄. 18번…김정훈? 뭔가 이상한 느낌에 인상을 찌푸리며 권순영을 오려다보자 내 표정을 본 권순영이 칠판으로 시선을 옮긴다.
……. 입을 꾹 다문채 눈을 데굴데굴 굴린 권순영이 다급히 어딘가로 걸음을 옮겼다. 김정훈이라는 남자아이에게 다가가는듯 했다. 야, 너 왜 내 번호에 이름 적어놔, 헷갈리게. 싱긋, 웃는 권순영의 얼굴에 얼굴이 새파래진 남자아이가 와다다 달려가 순식간에 제이름을 칠판에서 지워냈다. 미, 미안! 잘못적었어… 나 18번 아니고 순영이가 18번이야!
내 앞으로 다가와 해명까지 해주는 남자아이의 모습에 얼떨떨한 기분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 어어… 내 대답에 한시름 놓은듯 한숨을 쉰 김정훈이 뺑 돌아 1번자리로 돌아갔다. 그에 뭐가 그리 좋으지 입꼬리를 올린채 웃고있는 권순영을 한번 쳐다보고 고개를 돌렸다. 뭔가 이상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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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hoh 분량조절 실패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ㅎㅎ... 다들 읽는데 힘드셨죠
1화는 일부러 뒤죽박죽 섞었어요 나중에 나올 스토리들을 정리해놓기 위해서!
과거에서 했던 대사들은 전부 회색이니 헷갈리지 말고 읽어주세요!
그럼 아디오스
아직 시리즈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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